야생동물보호운동가 박그림


“아이쿠, 11일에 출발하면 13일에나 도착할 텐데.”

설악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하루 10시간씩 사흘 걸려 서울까지 왔단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자전거 ‘그리메’를 타고 설악산까지 돌아가려면 그만큼 또 달려야 한다.

웃음이 났다. 요즘 세상에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괴짜가 아닌가. 피곤하고 불편할 텐데, 굳이 이 먼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는 이유는 뭘까. 그는 노동하는 만큼만 움직이고,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자전거는 인류가 만든 가장 가치있는 탈것이라며 올해의 풀꽃상을 받은 자전거를 사랑하자고 설파한다.

궁금해진다. 무슨 행사도 아닌데 설악산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선택한 박그림 선생(54세)이. 유명한 환경운동가 중에도 이런 사람은 못 봤다. 그저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정도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설악동 골짜기에서 생태환경운동을 하는 그는 아는 만큼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그게 박그림의 사는 법이다.

보신문화가 야생동물 다 죽인다

그가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초등학교 근방에 방을 얻고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다. 산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산에 대한 그리움이 늘 사무쳐 이름도 ‘그림(그리움의 준말)’으로 바꾸고, 설악산에 들어가 환경운동을 하게 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첫 대면에 그가 내민 산양 그림엽서가 힌트였다. 그 엽서 뒤쪽엔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을 꿈꾸며-산양의 동무 작은뿔 설악녹색연합 박그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염소와 산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명함이다. 가든한 살림,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정갈한 그의 집에서 홍차와 우리밀 크래커를 앞에 두고 산양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1967년 문교부 설악산 학술조사 보고서에 보면 산양이 처음 나와요. 해마다 수백 마리를 잡았다고. 68∼69년에는 3000마리가 민가로 내려와 죽었다는 보고가 있지요. 폭설이 내리면 산양은 먹이를 구하러 민가로 내려오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저는 72년 설악산을 오르다 우연히 산양을 보게 됐어요.”

산양의 자태를 잊지 못하던 그는 산양을 지키기 위해 설악산에서 환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온순한 채식 포유동물인 산양은 뿔이나 체구, 짧은 네 다리 등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좀체 변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살아있는 고대동물’ ‘화석동물’로 불린다. 산양은 바위타기의 명수다. 단단한 고무 같은 쪽발로 해발 600m 이상의 험한 바위산과 가파른 벼랑을 평지 걷듯 오르내린다. 1970년대까지 백두대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돼 있다.

“설악산에만 약 100여 마리 정도 살아요. 제대로 된 조사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저도 몰라요. 환경부가 자연자원조사를 통해 밝혀야 하는데, 특정 종의 분포조사는 따로 없지요. 특정 종을 정확히 조사하려면 몇 년은 연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20∼30일 합니다.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에 따르면 산양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은 비무장지대일 거라고 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그렇다는 예상이다. 양구,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에 몇 군데 산양의 흔적이 있다. 그밖에 삼척, 울진 등에 사는 것까지 합치면 아마 600∼700마리 정도 살지 않을까 추정한다는 것. 문화재청이 산양을 멸종위기 종으로 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보호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박그림 씨는 지적한다.

“내 집 식구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밥 짓는 격이죠. 멸종위기 종 보호대책이란 것도 순전히 인간의 잣대로 바라보는 거예요. 산양 먹이주기 사업 같은 게 대표적인데, 산양들이 다니는 길목에 감자를 쌓아놔요. 그렇지만 산양들이 전혀 먹지 않죠. 그런 걸 왜 하는지 몰라요. 차라리 결식아동 밥을 주지.”

밀렵꾼도 설친다. 대부분 지역사람들인 밀렵꾼들은 주문을 받고 산양을 잡아 한 마리에 150만 원 정도에 판다. 설악산에는 흑염소와 산양을 중탕해서 먹을 수 있다는 야생동물 중탕 전문점까지 있다고 한다.

“보신문화가 야생동물 다 죽입니다. 잡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 처벌해야 해요. 밀렵하면 5년 이하 징역에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하는데, 벌금 100만 원도 안 나와요. 모든 게 사람 위주로 가니까 야생동물은 소멸되는 겁니다. 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산은 죽은 산입니다.”

10년 간 산양을 만나러 산에 올랐지만 멀리서 스치듯 본 게 전부였다. 산양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싶어 용인 에버랜드에 갔다.

“너무 불쌍했어요. 철창에 갇혀 정신적으로 불안해선지 계속 뛰어다니고 뿔을 막 비벼요. 야생동물은 그들이 사는 터전에 놓아주어야 하는데. 부모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한번 보고 즐기면 됐지, 야생동물이 받고 있는 고통은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태도로 자연교육 해봤자죠.”

20평 아파트에 매일 100명씩 방문한다면?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설악산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에게도 깊은 경계심을 갖고 있다. 설악산에서 훈련하고 세계적인 산에 오른 산악인들이 과연 진정한 산악인인지 묻고 싶다고 한다.

“진정한 산악인이라면 겸손과 인내, 산에 대한 배려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악산이 병들어 가고 있는데, 대피소는 등산객의 숙소와 가게로 변해버렸고, 산중 사찰 가운데는 ‘전통차+안흥찐방 3500원’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장사하는 데도 있어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침묵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그 사람들은 산악인이 아니라 등산기술자 아닙니까?”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에게 산에서 산양말고 다른 짐승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만날 짐승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살고 있는 젖먹이짐승은 멧돼지, 산양, 노루, 고라니 정도죠. 그런데, 만날 수 없어요. 짐승의 터전을 깎아 도로와 등산로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짐승이 발붙이고 살 데가 없지요.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등산로를 폐쇄하고, 100년 동안 설악산을 휴식년으로 묶자고. 우리가 지금 결단하면 후손들에게 칭찬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욕먹겠죠. 산은 누구나 오르고 싶지만 참아야지요. 그건 인간 의지의 문제입니다.”

지난 4월 그는 러시아 시호테 알린 자연보호구역을 다녀왔다. 그곳은 1년에 40명만 출입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산양은 물론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설악산엔 1년에 300만 명이 드나든다. 20평짜리 아파트에 매일 100명의 손님이 온다면 배겨낼 수 있겠는가.

그는 산양이 다니는 길목에서 3박4일 기다리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산을 내려온다. 산양은 200m 거리에서도 낙엽 밟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밖에 볼 수 없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산양에 대한 그의 애정은 ‘몰래 엿보고, 주변을 맴도는 사랑’이다.

“올 4월이었어요. 산에 가면 산양의 흔적을 쫓아다니다 날이 저물곤 해요. 그러면 산양이 쉰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지요. 새벽 3시쯤이었어요. 날씨가 추운데다 얇은 점퍼를 가져가 잠도 설풋 들었죠. 아주 가까운 곳까지 산양이 와서 10분 가까이 울다 갔어요. 그 뒤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렇게 가까이에서 산양의 울음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지요.”

그는 ‘생각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고 한 박노해 씨의 말에 기대어 더 기다려볼 참이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박그림 씨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산다. 아내는 서울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아들은 군대에 갔으며, 딸은 풀무농업학교에 다닌다. 떨어져 살지만 가족간의 정만은 애틋하다. 그는 딸 동호가 그려준 산양을 수첩 속에 넣어 갖고 다닌다. 아들이 만들어 준 사람인형은 책꽂이에 놓여 있고, 아내가 챙겨준 전기주전자는 힘차게 끓고 있다. 그는 하루 세끼 밥을 먹지 않는다. 때때로 채소와 과일을 먹지만 다른 욕구가 생길까봐 생식을 한다.

“산에 며칠씩 들어가게 되면 짐이 너무 많아요. 먹기 위한 짐이 많잖아요. 그리고 산양 조사하면서 음식냄새 풍기면 산양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 산에서는 생식만 하죠. 세끼를 다. 자연이 나에게 맞출 수 없으니 내가 자연에 맞춰야죠.”

그는 환경운동가라면 그 자신부터 생태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못 살 거면 환경운동가로 아예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신념대로 그의 집엔 TV가 없다. 음악도 때로는 소음처럼 들릴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음악은 아직까지 그의 친구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설악산에 들어가는 일이고 그 다음은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강연이다. 어린이 환경교육이라면 만사 제치고 간다. 그는 요즘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없앨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둘을 없애면 한결 느리고 여유있는 삶이 되겠지만 요긴할 때도 있다. 주로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간혹 차 쓸 일이 있다. 휴대전화는 산에서 위험한 일이 생길 때 비상통신수단이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생계유지는 어떻게 할까.

“주로 교통비 쓰죠. 아이들 교육비가 문젠데… 그럴 때마다 도움이 손길이 있더라구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들은 제게 물어요. 불안하지 않은가. 불안하지 않아요. 도시에서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내일 일을 알고 사나요? 마찬가지예요. 저는 굉장히 편하고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전 서울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욕심 버리면 내려올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렵죠?”

죽으면 화장해 산양 사는 데 묻어달라

그는 죽으면 화장해서 산양들이 사는 곳에 뿌려달라고 가족들에게 말하곤 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므로 유언도 어렵지 않다. 절대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죽은 뒤 장기는 기증하고 나머지는 해부용으로 기증할까 생각중이라는 그는 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우므로 저 세상도 아름다울 거라며 웃는다. 죽기 전까지 아이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책을 많이 펴내고 싶을 뿐이다.

“나중에 누군가 나처럼 산양에 미쳐 돌아다닐 때 참고하라고 책을 만들고 싶어요. 나처럼 헤매면 낭비잖아요?”

그는 2006년 설악산 산양분포 조사보고서를 펴낼 예정이다. 3∼4년은 ‘인간 스캐너’가 되어 산양이 살고 있는 좌표를 정확히 찍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내년엔 러시아의 산양학술서적을 번역해 낼 계획이다. 돈 안 되는 일이라 출판사가 나서지 않으면 자비로라도 출판할 생각이다. 내년엔 또 자전거를 타고 일본으로 ‘산양관리 실태’를 연구하러 떠날 생각이다. 설악산 환경백서를 내고 설악산의 옛 지명을 찾아 지도를 만들 것이다. 금강산에서 사진 찍던 사람들이 분단 이후 설악산에 정착하면서 관광지 개발의 주역이 되었는데 그들이 금강산 지명을 설악산에 붙여놓아 이름이 금강산과 똑같은 게 많다. 이를 바로잡을 셈이다.

“산양 연구 해봐야 돈 안 되죠. 돈도, 명예도 없어요. 그렇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연구할 때 사회가 점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종종 산양똥을 나눠준다. 더러 그는 그것을 먹기도 한다. 기생충 때문에 요즘엔 맛을 보는 정도지만. 왜 산양똥을 먹을까.

“산양이 뭘 먹었는지 확인하려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산양을 내 속에 담고 싶어서. 잡아먹을 수는 없잖아요? 하하하.”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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