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진영의 대선전략 본격 가동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시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낡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은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뜨거운 호응으로 나타났고, 2000년 총선에서 유일한 승자는 총선시민연대라는 평가도 있었다.

470여 시민단체가 결합한 연대활동이었다는 점 이외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시민운동〓낙선운동’이라는 등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낙천낙선운동은 가장 성공적인 시민운동의 모델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낙천낙선운동의 기대를 넘어선 성공은 시민단체들에게는 새로운 딜레마를 제공했다. 즉 낙선운동은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무슨 캠페인을 하더라도 낙천낙선운동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지어놓은 것이다. 올 12월 대선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는 시민단체들에게도 그러한 고민이 묻어난다. 총선연대에 보여준 전국민적인 뜨거운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이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아이템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지방선거와 월드컵의 터널을 지나온 시민단체들의 대선을 향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7월 10일에는 연대회의 주최로 ‘2002 대선, 시민단체 대응방안’이란 주제의 워크숍이 열렸다. 이 워크숍은 그동안 지방선거와 월드컵 등으로 대선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각 시민단체들이 모여 대선에 대응한 각 단체의 입장을 표명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 상지대 정치학과 정대화 교수는 “2002년 대통령선거는 양김정권과 3김정치를 마감하고, 60년간 지속된 낡은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선거로서, 정당개혁으로 촉발된 정치개혁이 보수정치, 보스정치, 지역정치, 부패정치를 타파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이번 대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참가한 각 시민단체들의 대표자들은 아직 단체 내부에서도 대선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았음을 자인하며 향후 대선에 있어 무엇보다도 시민단체들이 공동목표를 설정하고 연대의 틀을 통해 대선에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연대회의의 역할강화도 강조되었다.

지방자치선거에 직접 후보를 내세웠던 환경연합의 서주원 사무처장은 “녹색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개입했던 지자체선거와는 달리 대선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며 후보자에 대한 당선운동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는 “대선은 지자제와 총선과는 달리 첨예한 정파적 개입이 있어 훨씬 더 형식상의 중립성이 필요하다”며 후보자에 대한 직접개입보다는 시민사회의 의제를 정치의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낙선운동만큼의 파괴력 기대하기 힘들 것

시민운동진영에서는 대선에 대한 각 단체별 대응과 연대의 방법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 대선을 대처하든지간에 2000년 총선의 낙천낙선운동만큼의 파괴력이나 시민들의 호응은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후보에 대해 직접 개입하지 않는 선거의 대응활동은 운동의 동력을 얻기 힘들 것이며, 이번 대선에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같은 기대치를 갖고 보면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김기식 사무처장은 시민운동이 정책대응을 해서 실효성을 얻은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책캠페인으로 갈 경우 핵심적인 쟁점들을 부각시켜내고 개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총선연대, 노사모, 붉은악마 등의 사례를 열거하며 “20대, 30대의 선거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핵심”이라며 인터넷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실련 도시계획센터 박완기 국장은 “대선 자체가 정치적인 상징성이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시민단체 입장에서 보면 운동프로그램을 가동하려고 했을 때 지자제선거나 총선보다 훨씬 운신의 폭이 좁다”고 강조하면서 “풍부한 프로그램보다는 핵심적인 프로그램을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선이 정치사회적으로 중대한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민운동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고민을 드러냈다.

민주당 경선을 통해 한국정치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가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봤지만, 지자체 선거는 이러한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대선 역시 이러한 지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시민운동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이러한 지역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의 성향이 뚜렷이 대비되고 있어 정책선거로 치러질 수 있는 가능성도 커,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고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행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광주전남연대회의 서정훈 사무처장은 “이번 선거가 지역주의로 흐르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문제에 대해 각 지역 단체들이 의지와 대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지역언론에 대한 감시활동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역단체들은 이번 대선에 대한 시민단체의 연대활동이 서울중심이나 대선 기획단에 한정되지 않도록 지역단체 또는 개별단체가 어떻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단체들은 대단히 기능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회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정책토론 중심의 선거대응에서 지역의 경우에는 지방분권 문제와 자치제도 개혁과 관련된 의제는 중요하게 쟁점화 했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대선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구상

시민단체들은 2002년 대선에서 정치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청소년과 여성 등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이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선거에서 들러리에 불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여성들의 각성과 참여확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여성민우회 최명숙 사무처장은 “그동안 동원의 대상이었던 여성을 참여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 여성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과제를 같이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여성 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선에서 진보정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역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진보정당과 직접적인 연대를 이룰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사회당과 녹색평화당 등 다른 진보정당을 비롯해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까지 참여하는 범진보진영 대표자간담회를 통해 대선공동선대본부발족, 대선후보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을 제안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16일 열렸던 간담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다른 진보정당들은 내부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시민단체들의 특성상 참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대선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대응 논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관심은 대선에 집중될 것이고 시민단체들 역시 ‘대선체제’에 돌입할 것이다. 대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어떠한 의제를 설정하고, 어떻게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2002/08/10 00:00 2002/08/10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690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