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입장 대변하는 시민단체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부의 직접적 규제가 신용카드 시장구조를 왜곡시킨다.”

“발전노조는 파업을 철회하고 조속히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재계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기업체 등에서 내놓은 의견은 아니다. 한 시민단체가 성명서나 심포지엄을 통해 주장한 내용들이다. 재계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난 2002년 3월 6일 창립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단체지만 그동안 시민회의가 보인 활동내역을 보면 단체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기업들이 주장하는 바와 완전히 닮아 있고 때론 노골적으로 재계와의 ‘돈독한 유대(?)’를 대내외에 자랑하기도 한다.

7월 3일 시민회의가 신용카드 제도개선을 위해 마련한 심포지엄. 시민회의는 카드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여신금융업협회의(이하 여신협회) 후원을 받아 이 행사를 마련함으로써 물의를 빚었다. 카드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직접적으로 이권이 개입되어있는 여신협회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 더구나 이 심포지엄 개최 소식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연구소 회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즉, 카드관련 심포지엄을 카드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에서 후원하고, 관련 재벌연구소가 홍보해준 셈. 역시나 해당 심포지엄에서는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가 신용카드 시장을 왜곡시킨다(박상수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 “카드 빚이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든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인 여론몰이(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등 카드사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카드회사들의 무분별한 회원확보 경쟁으로 신용불량자가 대량으로 양산되고, 각종 카드범죄들이 등장해 신용카드사들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주장들이다.

시민회의가 기업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의혹은 그동안 그들이 발표한 성명서를 뜯어보면 더욱 짙어진다. 그들의 성명서 대부분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노동계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주5일근무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며, 노동계의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재벌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시민회의 조중근 사무처장은 “우리 단체가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실현되는 사회를 추구하다보니 상당부분 재계와 입장이 일치될 수 있다. 하지만 재벌을 대변하거나 그들을 옹호하지는 않는다”며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창립당시 시민회의는 기업에게도 후원금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 상한액을 1000만 원으로 정했다. 조중근 사무처장은 “현재 기업의 후원금을 받고있지만 많지는 않다”고 주장했지만, 재정에서 기업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에 대해서는 “아직 대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한사코 답변을 거부해 투명성을 의심하게 했다.

한편, 이익집단이 아닌 비영리 순수단체로서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단체의 특성상, 재벌 등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의 등장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87년 이후 진보적 시민단체가 등장하고, 김영삼, 김대중정부를 거치면서 시민사회가 급격히 성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사회가 신보수화 되는 경향이 발생했는데 ‘자유시민연대’,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보수적 시민단체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국사회에서의 보수적 시민운동의 등장을 설명했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2002/08/10 00:00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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