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미연방 의회에 갔을 때다. 안내할 사람을 기다리는데 재채기가 터져나왔다. 한쪽에 앉아 일하고 있던 사무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말을 했다. “블레스 유!” 순간 미국놈들이 나를 놀리는 건가 의심했다. 자극을 받은 내 코의 점막 신경은 세번째 재채기를 발사했다. 이번에도 그 직원은 서류를 뒤적이며 “블레스 유”를 외쳤다. 그러자 통역을 위해 곁에 있던 셸스테드 부인이 “댕큐”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그런 경우에 ‘댕큐’라고 대답해 주라고 했다.

뒷날 알아보니, 거기에는 나름대로 논리와 이유가 있었다. 예로부터 사람이 재채기를 할 육체와 정신의 그 방심한 순간을 틈타 악마의 기운이 파고든다고 한다. 따라서 악기(惡氣)가 미처 들어가기 전에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 신의 이름을 불러 막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맙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 풍속을 무시한다. 서양의 문화가 어떻든, 아직 그 문답은 “시원하시겠습니다”보다 덜 친숙하다.

깃발도 원래는 주술적 기능을 했던 모양이다. 동물이나 부적을 그린 깃발은 악귀를 쫓는다고 생각하여, 행렬의 선두에 선 지도자와 함께 펄럭였다. 그리고 곧 전투에 이용됐다. 깃발은 평시에는 왕을, 전시에는 지휘관을 상징했다. 전장의 깃발이 쓰러지지 않고 휘날리는 한, 병사들은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런 깃발이 점차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가 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최초의 국기라고 주장하는 도시국가 제노바의 깃발에는 성 조지 십자상이 그려져 있었다. 적의 침입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적을 향해 쳐들어갔을 때 승리를 보장해 줄 수호신으로 모시고 싶었을 것이다. 13세기 초 덴마크 왕 발데마르는 전투중 핏빛 하늘에 나타난 흰 십자가를 보았다. 지금의 덴마크 국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국기는 붉은 바탕에 가로로 흰 줄이 그어져 있다. 오스트리아 왕은 전쟁터에서 깃발을 잃어버리자 기지를 발휘해 외투를 벗어 흔들었다. 외투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허리띠를 두른 부분만 흰 줄로 남아 있었다. 국기는 이렇게 저마다 애국적 전설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국민들에게 국가를 상징하고, 나아가 충성서약을 요구하기도 한다.

근원으로 보나 오늘날 각 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보나, 국기는 국가주의의 상징적 도구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나 허망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전쟁의 시대라면 모르나, 평화를 전제로 한 새 세기에 국가주의 또는 국가주의의 상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미끼로 한 현대 국가권력은 여러 가지 상징을 대중 조작의 교묘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상징은 인간의 내면 세계를 우아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지만, 자주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국기와 상징에 대한 장황한 상념은 태극기의 존엄성과 그에 대한 충성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로 북쪽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공기를 둘러싸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다고 떠들썩하더니, 응원단의 인공기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검찰의 고집이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직 국가보안법밖에 없다. 이 나라의 공안권력은 북한과 관련해선 그 법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헌법도, 남북교류협력법도, 형법의 외국국기모독죄도, 유엔헌장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주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검찰은 인공기를 우리 국민을 해하려는 악귀로 보고 있다. 그 애틋한 성정에 아랑곳없이 우리는 재채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함께 하는 재채기가 국가보안법을 날려버릴 때까지.

차병직 변호사 • 참여연대 협동처장 bjcha@hklaw.co.kr
2002/09/24 00:00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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