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정치평론가 리프만(Walter Lippmann)은, 공론(公論)이 없는 다수결은 ‘다수의 독재(dictatorship of the majority)’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다수결 원칙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수결 원칙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공론 형성의 과정 없이 찬반투표로만 정책을 결정할 경우, 폭력적인 독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51%의 사람들이 나머지 49%의 사람들을 강요할 수 있는 제도가 민주주의인가? 또, 지난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유권자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투표한 결과에 대해 나머지 사람들이 수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극단적인 역사적 사례 하나를 들어 보겠다. 1933년 독일 국민들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히틀러를 총통으로 선출했다. 이때 폭력이 동원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부정선거도 없었다. 아마도 오늘 대한민국의 상당수 언론인들은 서슴없이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정치인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수결 원칙만을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다수의 횡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여론조사의 결과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속된 논리 속에서 공론은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공론화의 과정을 무시한 채 다수결과 여론조사를 맹신할 경우 국민들은 단순한 거수기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나라의 정당에서 자주 목격되고, 심지어는 시민단체의 회의 과정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바와 같이, 뻔한 결론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찬성표를 던지고 박수나 치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데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이와 같은 우민화(愚民化)는 특히 한국 언론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사설은 사설대로, 시론은 시론대로, 독자 투고는 독자 투고대로, 하나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면서, 마치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소수자로 전락하고 만다고 협박하듯이 여론조사의 결과를 대서특필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 언론이다. 공자와 같은 성인도 틀릴 수가 있는데, 특정 견해를 마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과장하면서 국민을 호도하는 일부 언론의 우민화 논리는 민주화의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국민의 뜻을 수렴하는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국민주권이 실현된다. 그러나 금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 정치권과 언론은 극심한 공론 결핍증세를 보여주고 있다. 금년 대선은 21세기 민주 사회의 초석을 다진다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불과 석 달 남짓 남겨두고 있는 현재까지도 뚜렷한 공론화 과정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이나 말실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전망함에 있어서 그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재벌청산의 문제가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다. 각 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친재벌적 수구론자가 아니라면 이는 분명 우리 정치권과 언론의 직무 유기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부패문제, 지역주의 문제, 교육문제, 조세 형평성 문제, 동아시아 국제전략 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쟁점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사안들이 공론화되지 못한 시점에서 어떻게 국민들이 후보를 판단할 수 있으며, 또 그에 대한 지지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쟁점을 발굴하고 공론을 형성하는 적극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시민사회에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영 상지영서대학 외래교수 daeyoungkim@hanmail.net
2002/09/24 00:00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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