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주의냐, 경제개혁이냐
2002/2002년 09월 :
2002/09/24 00:00
극우에서 진보까지 북한의 변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최근 남북관계가 급류를 타고 있다. 제7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10가지 합의안을 이끌어 낸 남북은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8·15 남북민족통일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화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9월 8일에는 남북 대표단의 축구시합이 예정돼 있고,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선수단이 참가할 예정이라 남북관계는 당분간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제7차 장관급 회담을 먼저 제의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런 변화 조짐은 대남정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난 7월 1일 북한은 쌀값을 비롯한 물가와 임금을 현실화해 인상했고,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는 등 경제개혁조치가 취해졌다.
북한의 경제개혁조치, 서해교전에 대한 유감표명, 대남유화정책 등 일련의 북한 변화를 바라보는 남한의 시각은 다양하다.
8·15를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대표적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정부의 굴욕적인 대북정책 및 북한의 위장평화공세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에서 자유시민연대는 ‘김정일’과 ‘인공기’의 화영식까지 치르며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했다. 이날의 모습은 남북이 손을 맞잡고 6·15공동선언 이행과 통일을 다짐하던 8·15 공동행사장의 그것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오히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이 이번에 취한 경제개혁조치는 식량난과 경제난을 동시에 타개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시각에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해석을 두고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것부터 체제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입장, 그리고 새로운 사회주의의 실험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다.
북한의 경제개혁정책을 대하는 여러 시각
중앙대 민족통일연구소 이상만 소장은 지난 8월 21일 대한상공회의소 2층 회의실에서 열린 북한경제정책 토론회에서 “북한의 이번 경제개혁 조치는 임금·물가 인상과 배급제 폐지로 분배관리시스템을 폐기하고, 책임경영제 및 성과급제를 도입함으로써 생산관리시스템을 가동했다”면서 “북한은 본질적으로 ‘시장경제시스템’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못 박았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이하 자통협)의 박지학 정책위원장은 “북한이 물가 및 임금의 현실화, 인센티브제 등을 도입했어도 여전히 북한의 소유체계에는 변화가 없다”며 “이는 북한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다기보다 사회주의 경제제도를 개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사전문가 지만원 박사는 “북한은 경제개혁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쌀값을 비롯해 물가인상을 단행한 것은 경제개혁이 아니라 통제불능의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배급을 못해줄 바에야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다양한 갈래의 시각은 북한 경제개혁조치가 앞으로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갈렸다.
자통협 박지학 정책위원장은 “북한은 경제개혁조치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러한 조치는 북한 경제난을 극복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것”이라고 전망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북한의 경제개혁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의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남북관계, 대미·대일관계의 개선이 뒤따라야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뒤 “북한 경제회생의 가장 큰 파트너는 남한”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한내 보수단체들은 북한경제정책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조남현 자유시민연대 대변인은 “북한의 경제개혁조치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은 체제붕괴 위험을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지난 8월 18일 배를 통해 북한을 탈출한 순룡범 씨 가족과 관련된 성명을 통해 “최근의 물가·임금 현실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의 본질적 삶에는 변화가 없다고 드러났다”며 “체제유지를 위해 임시방편적으로 변화 제스처를 쓸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하라”고 촉구했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상반된 시각
지난 8월 16일 『동아일보』 2면 하단 광고면에는 지만원 박사가 “시스템 사회운동본부” 명의로 “국민여러분, 좌익세력의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내보냈다. 그는 이 광고를 통해 2000년 남북 6·15 공동선언을 북한에 약점 잡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안 접촉’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그 후 퍼주기, 감싸기, 지뢰제거, 남침통로 열기…” 등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하며, 8·15 남북공동행사, 남북축구, 아시안게임등 “일련의 이벤트들이 국가전복작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광고에서 스스로 “국민들은 증거 없이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듯이 이러한 지 박사의 주장은 근거 없는 망언에 가깝지만,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우익의 시각이 이와 같은 흐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가장 상반된 시각을 드러내는 대목은 최근 북한의 대외정책과 김대중정부의 대북지원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재향군인회 안상원 홍보국장은 “북한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상대로 남한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 다니고 있다”며 “북한의 대외정책에서 일관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고 최근 북한을 대남정책도 평가절하했다.
자유시민연대 조남현 대변인도 “대북정책은 엄격한 상호주의에 입각해 속도보다는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며 “대북지원은 조건부로 이뤄져야 하고, 이러한 조건이 이행되지 않으면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보적인 단체와 인사들은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내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은 서해교전 발발 이후 보수단체들이 즉각적인 대북지원 중단을 요구할 때에도 화해협력 정책을 유지하고 대북식량지원을 계속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지학 자통협 정책위원장은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 공동선언 이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북한의 대남정책을 평가한 후 “김대중정권의 대북지원 규모는 김영삼 정권 때보다 오히려 줄었다. 이를 두고 대북 퍼주기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근거 없는 수구적 논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현재 북한의 경제개혁조치와 대외관계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양하고 이는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북한을 통일로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남한체제를 위협하는 경계대상으로 볼 것인가. 이 시각이 앞으로 대북정책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인식차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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