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재산권의 제한이며,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도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처럼 투자제한은 자본주의 원칙과는 상반되는 측면이 있지만 자본주의의 위협요소 중 하나인 독과점 문제 등 시장실패에 따른 자본배분의 비효율성을 조정하는 긍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산업, 금융업 등 주요산업에 대해서는 업종의 특성상 투자에 대한 인허가 제도를 특별법으로 두어 실질적으로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업종특성에 따른 투자제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투자제한, 즉 특정 투자주체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한도를 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출자총액제도’가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소수의 지분을 가진 특정기업주체가 실질적인 자기의 출자는 없이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기존 회사들을 통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을 통해 계열회사를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에 의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출자총액제한 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회사는 순자산의 25%를 초과하여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게 된다. 이 제도는 재벌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기업경영방식 및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재벌의 경제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87년 도입 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대폭적인 수정을 겪었다. 92년 출자총액제한의 예외가 확대되고, 94년에는 총액한도가 40%에서 25%로 감소하였으며 예외인정기간도 연장되었다. 98년에는 제도가 아예 폐지되기도 하였다. 당시는 97년 외환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여러 가지 경제제도 개혁이 이뤄지던 중이었다. 특히 외환위기를 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차입경영, 선단식 경영 등 재벌의 무분별한 경영행태가 지목되어 재벌개혁을 위한 법률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호출자금지 강화, 신규채무보증금지와 기존채무보증의 해소 등 당장 성과가 나타날 수 있는 제도들이 만들어진 대신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완전히 공정거래법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유는 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다각화 가능성이 줄었고,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외국인들의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에 대해 국내기업들이 대응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이후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간에 순환출자가 크게 늘고 내부지분율이 크게 높아져 한 사람이 적은 지분으로 여러 계열사를 소유, 지배하는 구조가 다시 나타났다.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실질적인 자본증가 없이도 부채비율을 명목상으로 감소시킬 수 있어 재무구조개선이 형식에 그치게 되고, 한계기업의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이 참여함으로써 부실계열사의 퇴출을 억제하는 등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당초 우려했던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99년 대우그룹의 부도사태는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에 다시 불을 붙였다. 같은 해 12월 정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01년 3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다.

대우 부도사태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출자총액제도를 없앤 지 2년도 되지 않아 다시 제도를 부활시킨 것은 재벌의 폐해는 지속적이고 상시적이며, 구조적 변화가 없었다는 증거이다. 대우그룹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에도 막대한 차입경영을 하고 있었고 실질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은 채 기존 경영방식의 문제점을 덮기 위한 무모한 사업확장을 꾀하다가 결국 무너졌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는 2001년 12월 또다시 고쳐진다. 이번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예외를 확대한 것이다. 정부는 98년 이후 기업의 지배구조개선 및 경영투명성 제고 등을 위한 각종 제도가 도입된 점을 고려해 예외를 확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된 내용은 이렇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핵심역량 집중을 위하여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 투자사업을 위한 출자, 공기업 민영화 대상회사의 인수를 위한 출자, 동종업종 및 관련업종에 대한 출자 등에 대하여는 출자총액제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의 소속회사 또는 그에 편입된 회사가 지정일 또는 편입일부터 1년이 지난 후에도 출자한도액을 초과하는 주식을 계속 소유하는 때에는 초과분에 대해 처분명령을 하는 대신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구조조정 관련 출자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예외인정시한을 2001년 3월 말에서 2003년 3월 말로 2년 연장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개정은 다시 한 번 재벌의 사업확장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동종사업, 관련사업에 대한 출자의 경우 사업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하여 국회 통제를 받지 않고 정부 단독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종업종 및 관련업종의 선정 방식에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정보가 규제당국과 규제대상 기업에만 있는 문제점으로 인해, 재벌의 로비에 의해 기준이 더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부 주도의 업종 전문화 정책실패나 외환위기 이후 이루어진 빅딜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동종업종, 관련업종에 대한 자유로운 출자로 재벌들이 기존 사업체보다 더 큰 사업확장을 이룰 수 있다는 위험도 따른다.

예외확대와 규제완화로 제도 퇴색

한편 출자총액위반에 대한 제재도 출자총액제한 한도(순자산의 25%)를 초과한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만 금지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개정 전 주식의 처분명령보다 가벼운 제재로 볼 수 있다. 또한 공정거래법에 의해 새로 취득한 주식을 의결권 제한 주식으로 본다면, 재벌들은 새로운 회사지분 취득 이후 기존 회사의 주식소유를 재편성하여 기존회사 주식을 편입시킨 회사 대신 기존회사의 주식을 매각했다 다시 사게 되면 지배권이 확실한 기존회사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새로 취득한 회사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도를 넘는 예외인정과 규제완화로 출자총액제도가 완전히 무력화될 위기에 놓였다. 최근 동부그룹의 아남전자 인수,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SK그룹의 KT지분 취득 등 재벌기업들의 사업확장시도와 여전히 뿌리뽑히지 않고 있는 재벌총수의 무분별한 경영방식은 우려를 더한다.

김선웅 변호사 •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법제도연구실장 elaws29@cgcg.or.kr
2002/09/24 00:00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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