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영화감독


극장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 <죽어도 좋아>의 두 주인공과 감독의 이력이다. 몇 줄에 불과한 이력으로 그 사람을 알려고 드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알 만한 나이는 됐다. 하지만 이번엔 이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인터뷰의 문을 열고 싶다.

극장에 걸리지 않아 영화를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이 영화는 이미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칠순에 접어든 ‘신혼’ 부부의 격정적인-정신적이고도 육체적인-사랑을 기록하듯 담아낸 이 영화는 불행하게도(!)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위원장 유수열)로부터 7월 23일 ‘제한상영가(可)’ 판정을 받았다. 한국영화에 이런 판정이 내려진 건 처음인데, 한국엔 이 등급의 영화를 상영할 전용극장이 아직 없다(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일반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관과 같은 건물에서 상영할 수 없고, 광고는 물론 비디오 출시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일반인들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방법은 없는 셈이다. 소위원회에서 이 영화를 사실상 ‘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운 그 무엇으로 규정하며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판단의 근거로 밝힌 걸 요약하면 ‘너무 야해서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소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이 ‘제한상영가’ 4명, ‘18세 이상 관람가’ 4명으로 팽팽하게 갈렸을 때, 결정적으로 ‘제한상영가’ 편을 든 유수열 소위원회 위원장은 영화전문지 <씨네21> 363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의를 하면서, 위원들 대부분이 작품의 의도에는 공감한 것 같다. 나이 칠십 먹은 노인들이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도 생활이 있고, 목표가 있고, 또 그걸 섹스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도 새로운 이슈를 제기한다는 뜻에서 이견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오럴섹스 장면에서 성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아 극장에서 상영됐을 경우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반 성인 비디오도 성기노출을 금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런데도 상영을 허락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 제한관람가 등급 의견을 낸 것은 이불 속에서 한다든지 어떻게든 상징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는데 굳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회의에서는 이미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장면도 논란이 됐다.”

말썽이 된 것은 오럴섹스를 포함한 7분간의 ‘실제 정사’ 장면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쟁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므로 또 하나의 의견을 덧붙일 생각이 없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나는 이 영화를 보았지만-영화사에서 인터뷰에 참고하라며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보내주었다-문제의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본 것은 이렇다. 짙은 어둠 속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노부부의 절정으로 내닫는 사랑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준 것은 두 사람의 목소리와 대화뿐이었다. 거기서 할아버지의 ‘덜렁거리는 그 무엇’과 오럴섹스를 보았다니, 나보다 시력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 놀랐다. 참고로 내 교정시력은 두 눈 다 1.2이다.



박 감독과의 인터뷰는 8월 16일 밤 9시 20분부터 11시쯤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 영화의 제작사인 메이필름 사무실에서 이뤄졌다(난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고, 감독에게 영화를 본 뒤 질문을 더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더 이상 묻지 않고 기사를 쓰기로 했다. 이런 논쟁에 휩싸였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나쁘고 우울하다는 그에게 영화에 대해 뭔가를 묻는다는 게 결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성애(性愛)영화가 아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는데, 결과가 어떨 것 같나.

“글쎄…내 느낌에는…더 힘들다고 본다.”

또 제한상영가 판정이 나온다면?

“모르겠다. 공식적 답변은 ‘도와주는 분이 많아서 이제는 우리 손을 떠났다’는 것이다.”

비공식적 입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감하고 우울하고 복잡하다. 어찌됐건 난 이 영화를 성애(性愛)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처음 만들 때도 노인들 섹스를 팔아서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한테 서운해 하거나 원망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어떤 영화를 보면 ‘저건 포르노에 가깝네’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니까. 다 자기 주관인데, 그걸 뭐라고 하겠나?”

예술성이 높은 영화라는 쪽과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음란한 영화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

“내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예술이냐 아니냐 따질 영화도 아니고. 난 음란하다 아니냐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예술이냐 포르노냐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영화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대체로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영화의 외설성을 문제삼는 기사가 없다. 한국의 중앙일간지가 보수적(!)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특이한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이나 여론 주도층이 우호적이다. 영화를 본 뒤의 판단일 텐데, 영화의 진심이 전달됐다고 본다. 소위에서 4대 4 동수를 이룬 것도, 몇해 전 <거짓말>(장선우 감독 작품) 때의 전원일치 ‘등급보류’ 판정에 비하면, 사회적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뀌지 않았나 생각한다. 많이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볼 때, 내 영화가 기존의 기준을 명백하게 벗어난 작품이기는 하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노출의 정도, 범위 등을 벗어나 있으니까.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만든 사람 처지에서 얘기하면, 영화의 진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력을 보니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던데, 영화가 왜 그렇게 좋은가.

“영화랑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를) 만들 때는 잘 모르겠는데, 영화를 볼 때 행복하다. 영화를 생각할 때도 그렇고.”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행복해 하지만, 모두 감독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행복의 수치가 굉장히 높은 거다. 영화랑 함께 있으면 (영화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행복하다.”

다큐 PD 경험이 첫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영향을 받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럴 자신도 있었고. 그런데 영화 본 분들이 ‘다큐 PD 경력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라고 했던데.

“와전된 것 같다. 사랑이 아니라 사람 얘기라고 말했다. 하긴 사랑도 사람 사는 거니까 틀린 건 아니다. 난 사랑이란 사람에 대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꼭 에로스로만 표현되는 건 아니니까. 어쨌건 막 꾸미는 영화는 체질상 못할 것 같다. 능력도 없고.”

영화가 다 사람 얘기 아닌가.

“잘 모르겠다. 사람이 느껴지냐 아니냐가 있다. 요즘은 사람보다는 상황에 의존하는 영화가 굉장히 많다. 사람 이야기가 중심인 영화와 상황이 중심이 된 영화는 다르다. 요즘 한국 영화에는 상황만 있지, 사람이 없다. 사람은 나오는데 그 이야기가 공감이 안 된다. 절대로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람, 절대로 될 법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그럼 어떤 게 사람 이야기인가?

“보통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것. 요즘 영화엔 대부분 굉장히 잘생기고 능력 있는 인물들이 나온다. 공감이 별로 없고 유행도 많이 탄다. 그런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관통하는 의식이나 느낌들이 별로 안 보인다. 난 그런 (과장된) 캐릭터에 괴리감을 느낀다. 이런 성향은 10년 이상 걸어왔던 길(시사다큐 PD)과 상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정의를 구현한다든지 거창한 사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새 노인전문가가 돼 있더라. ‘넌 대한민국 노인 사회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싶었구나, 잘했다’ 그러더라. 그런 시각에 대해 처음엔 불만이었다. 그분들은 노인이기 전에 사람이고, 또 한 남자와 한 여자라는 시각을 갖고 만든 사랑 영화인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어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영화의 표현은) 자연스레 쌓인 성향에서 나오는 버릇인 것 같다.”

어느 인터뷰에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찍으려고 했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표현한 적 없다. 사람마다 나이를 떠나 사랑의 순간이라는 게 있다. 정말 눈앞에 그 인물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랑의 시점이 있는데, 설레면서 주욱 올라가는 절정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거짓과 가식 없이 담아내고 싶었다. 시처럼.”

영화가 아직 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이미 적잖은 이들이 본 것 같다. 나이나 성별에 따라 반응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많이 다르다. 20대는 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며 재미있게, 로맨틱 코미디로 봐주는 사람이 많다. 30대 이상은 노후에 대한 걱정이 있는 탓인지 희망적으로 보는 분이 많은 것 같다. 또는 슬프고 우울하게 보는 분들도 있다. 내가 30대이기 때문에, 내 나름의 느낌을 갖고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들은 또 다른 느낌을 갖는 것 같더라. 영화를 만들어 내놓은 순간, 영화는 더 이상 감독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난 영화를 하며 좀 슬펐다. 많이 아리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으로 만든 영화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희망적으로 보는 것 같다.”

왜 그렇게 아렸나?

“설명하기 어렵다. 표현이 안 된다.”

영화를 디지털로 만든 것은 재정적인 문제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이 영화는 철저하게 디지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배우로 출연했고 규모도 작으니까. 재정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다(영화의 제작비는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인 30억 원에 훨씬 모자라는 3억 원이다. 제작사는 마케팅비로 3억 원 남짓을 따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디지털로 제작할 생각인가.

“이야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번 아이템과 같은 것으로 다시 한다면 디지털로 하겠지만, 상업적인 배우와 스태프를 쓴다면 다를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엔 평범한 30대 가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던데.

“글쎄, 이거 하고 싶었다 저거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두세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어쨌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연령은 좀 낮아져야 할 것 같다. 70대는 아닐 거고. 지금 내가 그걸(노인영화) 또 한다면 앞날에 암운이 드리울 것이다(웃음). 아직은 특별하게 사회적 욕심을 부릴 처지가 아니다. 제도권 안에서 영화를 해야 하니까. 나중에 내가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노인영화는) 진지하게 다시 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힘이 축적되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을 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다. 동생도 영화를 한다던데?(그의 동생은 올초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15분짜리 단편영화 <리퀘스트>를 찍은 박진오 감독으로 미국 뉴욕대학 영화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방송인이고, 어머니도 방송인이자 작가다. 굳이 유전적인 걸 따지면 외할아버지가 전주에서 10년간 조그만 극장을 하셨다.”

어려서부터 영화 많이 봤겠다.

“많이 봤다. 우리 세대가 할리우드 키드 아닌가.”

어떤 영화가 좋았나?

“<씨네 21>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써달라고 했는데, 나는 내 인생의 영화를 모른다. 너무 많아서. 첫 경험은 <신상>이라는 코끼리가 나오는 인도 영화이고, 어려서 할머니 손에 이끌려 <십계> 같은 것도 봤다.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라스트 콘서트>, <러브 스토리>, <챔프>, 이런 영화들을 보고 울며 컸다고 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늙을 때까지 영화만 하고 싶나?

“감독은 잘 모르겠고, PD라는 안정된 직업을 그만둘 때 영화에 가까이 가자고 생각했다. 뭘 하든지 영화랑 같이 있고 싶다.”

어떤 영화 감독을 좋아하나.

“허진호, 박찬욱 감독을 좋아한다.”

재밌게 본 영화는?(훌륭한 영화가 아니라).

“<친구>를 재밌게 봤다. 재미를 감동, 느낌 등 종합적인 의미로 본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 <파이란> <고양이를 부탁해>를 재밌게 봤다.”

“이제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다!”

박 감독은 인터뷰 내내 답변의 앞뒤에 ‘잘 모르겠다’는 말을 붙였다. 스스로를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그로선, 자신의 상식과 생각이 녹아든 영화 <죽어도 좋아>가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 상황이 우울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박 감독이 쓴 ‘감독의 변’으로 문을 닫아야겠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것이며 실존인물들이 직접 주인공을 연기한 것입니다. 출연을 허락한 박치규, 이순예 님의 용기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언덕에서 꽃핀 절대사랑… 이젠 죽어도 좋을 만큼 여한이 없는…아니, 죽기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절실한 사랑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은 이미 많이 늙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젊은 사랑을 하며 그들의 사랑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아주 특별하고 아름답다. 마음은 전혀 늙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자꾸만 몸만 늙어간다는 사실이 슬프긴 하지만…그래서, 그들에게 섹스는 곧 삶이고 인생이며, 지금,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나는 이제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다. 산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몸짓이니까.”

(첨언 : 독자들이 이 책을 받아볼 때면 재심 판정도 나왔을 텐데, ‘제한상영가’도 아니고 ‘18세 이상 관람가’도 아니고, ‘12세 이상 관람가’ 판정이 나오면 좋겠다. 그래서 할머니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가끔 투덜대는 조카랑 함께 본 뒤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훈 본지 편집위원 『한겨레』기자 nomad@hani.co.kr
2002/09/24 00:00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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