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냐구요?'
2002/2002년 09월 :
2002/09/24 00:00
양심수 김경환의 부인 이경희
“대통령 할아버지도 북한 사람을 만나는데 우리 아빠는 왜 만나면 안 되는 거야. 생각이 다른 아저씨들하고 대화하러 갔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얘기가 그렇게 많아. 거짓말이야.”
초등학교에 들어간 승지가 요즘 부쩍 아빠를 찾는다. 전에는 글을 읽을 줄 몰라서 그랬는지, 요즘은 아빠가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운다.
월간 『말』지 기자로 일하다 99년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4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안동교도소에서 복역중인 김경환 씨 부인 이경희 씨의 요즘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늘도 딸아이가 엄마 배 위에 엎드려 울었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김씨가 붙잡혀간 지 3년이 훌쩍 지나 아이들도 감옥이 뭔지 알 정도로 커버렸다. 이번 8·15에는 특사가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를 했는데 여지없이 무너졌다.
“갔다 올게, 금방 올 거야”
두 사람은 대학 때 만났다. 한국외국어대 학보사에서 83학번, 84학번 선후배로 만나 졸업 후 결혼했다. 학생기자로 함께 활동 했고 김씨가 집시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는 것도 지켜봤다. 결혼 후에도 부부는 대화를 즐겼다. 퇴근 무렵이면 “소주 한병 준비해 놓으라”는 전화가 왔고 그런 날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밤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부모님이 모두 북에서 왔다. 그래서 북에 대해 아픔도 많이 느끼고 관심도 많았다. 남편은 『말』지에 들어가서 정치기사를 많이 썼고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체포되어 가는 날까지 난 아무것도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두려울 수도 있고 말렸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몰랐던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서해교전이 나고 잠수함 침몰기사가 나오고 나서 힘들어 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유는 자세히 몰랐다. 당시 기자를 계속해야 하는지도 갈등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문제인 줄 알았다. 내게 (일부러) 말을 안 한 것 같다. 국정원 직원들이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을 내밀 때 남편은 각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갔다 올게. 금방 올거야’하고 떠났다.”
김씨는 올 2월 옥중 산문집 『비상을 꿈꾸는 새는 대지를 내려다본다』(호미)를 펴냈다.
3월부터는 간디의 ‘날마다 한 생각’처럼 매일 집으로 엽서를 보내오고 있다. 주로 자신의 생각을 써서 보내는데 가끔 아이들을 위해 쓴 동시도 있다. 승지가 읽고 울었던 시는 ‘캥거루 사랑’이다.
<아빠는 캥거루/마음주머니 커다란/어미 캥거루, 승지가 보고프면/두근두근 설레이며/주머니를 열어보네, 승지는 캥거루/방글방글 해맑은/아기 캥거루/아빠가 그리우면/주먹쥐고 콩콩콩/주머니를 두드리네 -아빠 바보새가 승지 콩새에게>
서초도서관을 다 뒤졌다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은 1999년 일어났다. 국정원은 이 해 9월 북한이 80년대 학원가 친북투쟁을 주도한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해 조선노동당에 가입시키고 남한 내 혁명전위조직으로 민족민주혁명당이란 지하당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김영환(36세), 조유식(35세·전 『말』지 기자), 하영옥(36세·무직), 심재춘(29세·대학강사) 씨등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국정원이 발표한 김경환 씨의 혐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김씨는 간첩 진운방을 89년 9월 대학후배의 소개로 알게 됐다. 90년 5월경 함께 통일사업을 해보자며 남파간첩 신분을 드러낸 진운방에게 포섭되어 김영환과 진운방의 중간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또 98년 10월 진운방이 원진우로 위장해 재차 침투하자 원진우를 하영옥과 접선하도록 주선하고 원진우에게 여러 차례 활동내용과 국내정세 등을 보고한 혐의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들 중 김영환 씨와 조유식 씨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공소보류 의견으로, 하영옥 씨와 심재춘 씨는 기소 의견으로 각각 검찰에 송치했다. 현재 중간연락책에 불과했던 김경환 씨만 감옥에 있다.
“당시 남편이 김영환의 지시에 따라 전달했다는 민혁당 기관지 주체가치 9호가 국가기밀이라고 했다. 그게 국가기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신문 등 일반인이 볼 수 있는 내용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군방위비 지출 문제 등 그 기관지에 실린 내용을 찾기 위해 서울 서초도서관을 다 뒤졌다. 모두 보도된 내용이었다. 기소된 것 자체가 잘못이다. 법적 형평성에 어긋난다. 김영환 씨가 증언도 했다. 단순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러나 묵살됐다. 그게 제일 억울하다.”
이경희 씨는 국정원이 발표한 두 가지 혐의 중에서 진운방을 만난 것이 실정법에 위배된다면 인정하겠지만 과거 민혁당 활동의 경우 법 적용이 너무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98년 『말』지로 찾아온 진운방을 만난 것 자체가 국정원은 편의제공이라고 한다. 항소이유서에서 남편은 신고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개인적 친밀감을 느낀 상태이고 입에 캡슐을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운방을 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진운방은 하영옥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했으나 남편은 그를 설득했다. 민혁당이든 뭐든 다 해체됐다고 했고 민혁당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변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북한이 남한 운동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문제가 된다면 남편은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남편이 진운방에게 준 정보는 신문이나 논문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더구나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다 풀려났다.”
인권실천시민연대는 7월 24일 성공회대 교정에서 ‘감옥문을 열어라’라는 주제로 음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김경환 씨의 석방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김씨의 큰아들 일지는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많은 언론인들도 김씨의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냈고 44명의 국회의원이 서명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씨는 이번 8·15 특사에서 남편이 나오지 못한 걸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답답해 했다.
“사면권은 법이 미처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경우나 국민 화합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권에 필요한 사람만 사면된다. 울분만 토할 뿐이다. 대통령은 사면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나. 노벨상을 받은 인권대통령 시대에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라니. 시대는 변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이 있냐고. 이젠 관심도 줄었다. 남편은 수감생활도 모범적으로 하고 재범의 우려도 없지만 시국사범이라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남북화해를 포장하지 말고 양심수들도 이젠 풀어줘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도 그렇게 고통받았으면서 왜 UN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빛 좋은 개살구는 집어치우고 감옥부터 풀어라.”
김씨는 다행히 몸도 건강하고 교도소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운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으며 젊은 시절의 설익은 열정이나 급한 마음이 많이 성숙해졌다고 하더란다. 삶은 기니까 이것도 헛된 짓은 아닐 것이라고 아내를 위로하기도 했단다.
8·15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경희 씨. 위로전화 받는 것마저도 고역이지만 “엄마, 새옹지마 알지?” 하는 아들의 의젓한 위로 한마디에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잠시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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