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북촌
2002/2002년 09월 :
2002/09/24 00:00
안국동 네거리에서 정독도서관으로 나아간다. 양쪽에 높다란 돌담이 들어서 있는 이 골목길은 언제 걸어도 상쾌하다. 오른쪽은 풍문여고의 돌담이고, 왼쪽은 미 대사관 직원 숙소의 돌담이다. 같은 돌담이라고 해도 그 모양이 아주 달라서 풍기는 정취도 크게 다르다.
풍문여고의 전통 돌담은 이 길의 역사와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지만, 미 대사관 직원 숙소의 그것은 우리의 역사나 문화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의 거칠고 오만한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 미국은 정동의 경운궁 터로 이 숙소를 옮기려 하고 있다. 거칠고 오만한 미국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 돌담길을 지나면, 덕성여중고를 만나게 된다. 길 양쪽에 들어선 덕성여중고를 연결해 주는 작은 구름다리가 머리 위로 정겹게 보인다. 담장 안에서 울창하게 자란 느티나무의 가지들이 바깥으로 드리워져 골목길은 시원한 나무그늘 길이 되었다.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이 자리에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스럽다. 덕분에 이 길은 옛모습대로 여전히 오붓하고 아늑하다. 미 대사관 직원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다른 시설이 들어서게 되더라도, 그곳의 많은 나무들과 이 길의 정취는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도심에는 많은 학교들이 있었다. 이 학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남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앞을 다퉈가며 들어서게 되었다. 도심의 오붓한 모습은 그런 식으로 사라져갔다.
조금 더 길을 올라가면, 1970년대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 시절 서울 주거공간의 모습이 이곳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목공소가 있고, 목욕탕이 있고, 세탁소가 있고, 구멍가게가 있고, 쌀가게가 있고, 헌책방이 있고, 허름한 식당이 있고, 라면집이 있다. 낡았지만 익숙한 이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곳도 변하고 있다. 사람 사는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약국이건만, 이곳의 약국은 최근에 이곳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금 고급스런 식당으로 변해버렸다. 작은 서구식 샌드위치 전문점도 들어섰다. 전통적인 주택가의 모습이 조금씩 서구풍 상가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더미에서 홀대당하는 210살 회화나무
다시 조금 더 길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무사 뒤에 자리잡은 아트선재센터이다. 이 큰 건물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이곳의 가게들이 빠르게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 같다. 이런 시설이 들어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나 이 시설이 들어서면서 이곳의 본래 모습이 크게 망가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이 길에서 아트선재센터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시설은 정독도서관이다.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사하고 그 자리와 시설이 도서관으로 바뀌어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그 입구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보호수로 지정된 210살 먹은 회화나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나무의 앞은 지금 종로구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는 정독도서관의 입구가 쓰레기 하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홀대할 거라면, 도대체 왜 이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을까? 종로구의 너무도 몰상식한 쓰레기 행정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며 행인들이 앉아 쉬며 땀을 들이고, 이 나무의 혜택이나 이 장소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회화나무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온 파괴적 개발의 시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 나무와 함께 이 장소를 언제까지고 마음속에 간직하리라 다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쓰레기 하치장 때문에 이 아름다운 나무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기껏 보호수로 지정해 놓고는, 정작 쓰레기 하치장으로 그 나무를 욕보이고 있다.
답답한 가슴을 끓이며 정독도서관 옆길로 들어선다. 이제 본격적으로 북촌을 돌아볼 수 있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북촌은 감사원에서 내려오는 큰 길을 중심으로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화동, 삼청동, 가회동으로 이루어지는 서쪽 구역과 계동, 원서동으로 이루어지는 동쪽 구역이 그것이다.
정독도서관 옆길로 들어서면 삼청동 길을 굽어볼 수 있는 언덕길로 올라가서 가회동의 골목길을 지나 감사원에서 내려오는 큰 길과 만날 수 있다. 화동, 삼청동, 가회동을 얼추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길이다. 다시 1990년대 후반부터 뚫리기 시작한 큰 길을 건너서 감사원 쪽으로 올라가다가 중앙고와 이어지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는 큰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마음에 드는 대로 여기저기 샛골목들을 들락거릴 필요가 있다.
방향을 동쪽으로 잡으면, 결국은 작은 능선을 넘어 창덕궁 옆에 이르게 된다. 그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서 창덕궁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올라갈 때와는 다른 골목길을 택해 율곡로로 내려오다가 현대빌딩 옆의 공원에서 쉰다.
여기에도 큰 회화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예전에 궁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독도서관 앞의 회화나무처럼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훨씬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는 이 나무를 보며 오랜만에 둘러본 북촌에 대해 생각한다. 북촌은 벌써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주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분이 좋지 않다. 심란하다.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 파괴된 북촌
북촌은 파괴적 개발의 거친 손길을 벗어나 옛 서울의 주거공간이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조선 때에는 아주 높은 양반들이 살던 곳이었고, 조선이 망한 뒤에는 부자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옛 서울의 주거공간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서울시에서는 ‘북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북촌지역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입니다. 조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조선성리학에 기초하여 배치된 궁궐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치를 배경으로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http://hanok.seoul.go.kr/html/history_01.html)”
북촌이 정말 이 설명과 같은 동네라면 얼마나 좋으랴. 옛 북촌은 아마도 이랬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북촌은 그렇지 않다. 이 설명의 뒷부분은 이미 거짓말이다.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도 않으며, 따라서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극적으로 망가지고 부서지고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 공간과 문화이다.
서울시에서도 이곳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곳은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서울시에서도 원래의 모습대로 지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큰 애를 써왔던 것 같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런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미 북촌은 서울시가 설명하는 것과 같은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한옥들은 부서졌거나 부서지고 있으며, 크고 작은 건물이며 다세대 가옥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골목이며 집집마다 시커먼 전깃줄들이 볼썽사납게 늘어서 있는 것도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해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북촌은 조선의 가장 중요한 두 궁 사이의 아름다운 땅에 자리잡고 조선조 내내 아주 높은 양반들의 거주 지역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조선의 몰락과 그에 뒤이은 서울의 급격한 변화를 북촌도 피할 수는 없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 본명)가 이끌었던 저 ‘조국 근대화’ 시절의 파괴적 개발도 이곳을 피해 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지금 이곳을 휩쓸고 있는 난개발은 그때 시작된 것이었다. 현대그룹의 본사가 바로 그 상징과 같은 건물이다. 이미 북촌은 1930년대의 재개발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적지 않게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북촌은 여전히 한옥촌이었고,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으로서 커다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본사로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의 다세대 가옥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북촌의 이러한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송두리채 뒤흔들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휘문고가 떠나고 그 자리에 현대그룹의 본사가 들어선 것은 북촌의 재앙이었다. 북촌의 한옥이 토끼나 사슴이라면, 현대그룹의 본사는 그야말로 공룡이다. 이런 공룡이 이곳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동네가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경관이 크게 망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로 말미암은 후폭풍은 더욱 컸던 것 같다.
한옥 부서지고 다세대 가옥 들어서고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젊은 사원들이 근처에서 살 곳을 찾았고, 이 젊은이들에게 세를 주기 위해 집 주인들은 낡은 한옥을 고치거나, 아예 부수고 다세대 가옥으로 다시 짓고자 했다. 커다란 공간적 변화를 몰고 올 새로운 공간적 수요가 생겼고, 이 수요는 경제적 가치를 위해 문화적 가치를 크게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충족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적 원리가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북촌에서 이루어진 변화도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촌은 특별한 곳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일어난 변화가 북촌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경제적 가치를 위해 문화적 가치를 망가뜨리는 변화도 어떤 면에서는 공간의 정의를 실현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크고 높은 건물을 짓거나 다세대 가옥을 짓는 것은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이 쓰던 땅을 열 사람이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가치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공자산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북촌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변화는 공간의 정의를 파괴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은 예컨대 베니스처럼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했다. 베니스는 그곳이 생긴 뒤에 이루어진 변화, 곧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삶으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에 엄청난 문화적 가치를 지니는 공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화적 가치는 오늘날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낳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 없었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일까?
1990년대를 지나며 북촌의 모습은 지금처럼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이 변화는 세 가지로 줄여볼 수 있다.
첫째, 이른바 ‘마이카 시대’의 광풍이 이곳에도 몰아쳐서 두 개의 큰 길이 뚫렸다. 먼저 1990년대 초에 경복궁과 창덕궁을 잇는 동서 방향의 큰 길이 뚫렸다. 이 길은 북촌 전체의 구조를 크게 바꾸는 대사건이었다. 이어서 1990년대 후반에 감사원에서 율곡로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큰 길이 뚫렸다. 이 두 개의 큰 길은 집과 집이 어깨를 맞대고 복잡하게 늘어서 있는 북촌의 경관과 풍취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둘째, 새롭게 뚫린 큰 길을 따라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적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게 되었다. 길가에서는 이제 한옥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볼품없는 현대식 건물들이 한옥의 자리에 앞다퉈 들어서게 되었으며, 현대 빌딩이나 헌법재판소 부근의 식당가가 새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북촌의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감사원에서 율곡로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길가에는 고급 ‘빌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은 이미 더 이상 북촌이 아니다. 갈수록 이곳은 방배동의 ‘신흥 부촌’을 닮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북촌의 경관도 삶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셋째, 북촌의 곳곳에서 제멋대로 한옥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다세대 가옥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난개발의 풍경을 이곳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심각한 곳은 창덕궁 옆의 원서동이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며 율곡로로 흘러내리는 산줄기 위에 5∼6층 높이의 다세대 가옥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산줄기 위의 골목길을 그대로 두고 그 양쪽에 이런 큰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산줄기는 남아 있으나 창덕궁과 어우러진 예전의 그 산줄기가 아니며, 골목길은 남아 있으나 사람들이 정을 나누던 예전의 그 골목길이 아니다.
북촌을 ‘역사문화보전지구’로
북촌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북촌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북촌을 없애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종로구의 정책은 충분하지 않았고, 나아가 틀린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다카키 마사오의 잘못된 근대화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근대화 정책에서 중요한 한 축은 중산층 육성책이었다. 그는 하루빨리 중산층을 육성해서 자기가 이 나라의 ‘국부’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그는 땅을 이용했다.
부동산 투기는 빠른 시간에 중산층을 길러내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이 나라에서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떼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것은 땅을 가진 사람이 무능하거나 정부가 정책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었다. 북촌이라고 해서 이런 ‘상식’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북촌이 망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북촌은 이렇게 망가져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지난 10년 사이에 이루어진 북촌의 급속한 변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타까움이 북촌을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으로 되살려내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많이 망가졌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수백년 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회화나무는 푸르게 자라고 있고, 예전의 한옥들과 샛골목도 아직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난개발의 광풍이 이곳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기 전에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북촌의 곳곳을 차근차근 둘러보자. 이곳을 ‘역사문화 보전지구’로 지켜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고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야 한다.
낡은 것과 새 것은 서로 이어지고 어우러져야 한다. 북촌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지 말고, 더 이상 망가뜨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낡은 것과 새 것이 서로 이어지고 어우러진 공간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북촌도 변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오랜 역사를 두고 만들어진 그 정체성과 문화를 계속 살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회화나무처럼 변화를 이기며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풍문여고의 전통 돌담은 이 길의 역사와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지만, 미 대사관 직원 숙소의 그것은 우리의 역사나 문화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의 거칠고 오만한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 미국은 정동의 경운궁 터로 이 숙소를 옮기려 하고 있다. 거칠고 오만한 미국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 돌담길을 지나면, 덕성여중고를 만나게 된다. 길 양쪽에 들어선 덕성여중고를 연결해 주는 작은 구름다리가 머리 위로 정겹게 보인다. 담장 안에서 울창하게 자란 느티나무의 가지들이 바깥으로 드리워져 골목길은 시원한 나무그늘 길이 되었다.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이 자리에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스럽다. 덕분에 이 길은 옛모습대로 여전히 오붓하고 아늑하다. 미 대사관 직원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다른 시설이 들어서게 되더라도, 그곳의 많은 나무들과 이 길의 정취는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도심에는 많은 학교들이 있었다. 이 학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남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앞을 다퉈가며 들어서게 되었다. 도심의 오붓한 모습은 그런 식으로 사라져갔다.
조금 더 길을 올라가면, 1970년대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 시절 서울 주거공간의 모습이 이곳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목공소가 있고, 목욕탕이 있고, 세탁소가 있고, 구멍가게가 있고, 쌀가게가 있고, 헌책방이 있고, 허름한 식당이 있고, 라면집이 있다. 낡았지만 익숙한 이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곳도 변하고 있다. 사람 사는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약국이건만, 이곳의 약국은 최근에 이곳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금 고급스런 식당으로 변해버렸다. 작은 서구식 샌드위치 전문점도 들어섰다. 전통적인 주택가의 모습이 조금씩 서구풍 상가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더미에서 홀대당하는 210살 회화나무
다시 조금 더 길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무사 뒤에 자리잡은 아트선재센터이다. 이 큰 건물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이곳의 가게들이 빠르게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 같다. 이런 시설이 들어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나 이 시설이 들어서면서 이곳의 본래 모습이 크게 망가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이 길에서 아트선재센터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시설은 정독도서관이다.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사하고 그 자리와 시설이 도서관으로 바뀌어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그 입구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보호수로 지정된 210살 먹은 회화나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나무의 앞은 지금 종로구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는 정독도서관의 입구가 쓰레기 하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홀대할 거라면, 도대체 왜 이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을까? 종로구의 너무도 몰상식한 쓰레기 행정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며 행인들이 앉아 쉬며 땀을 들이고, 이 나무의 혜택이나 이 장소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회화나무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온 파괴적 개발의 시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 나무와 함께 이 장소를 언제까지고 마음속에 간직하리라 다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쓰레기 하치장 때문에 이 아름다운 나무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기껏 보호수로 지정해 놓고는, 정작 쓰레기 하치장으로 그 나무를 욕보이고 있다.
답답한 가슴을 끓이며 정독도서관 옆길로 들어선다. 이제 본격적으로 북촌을 돌아볼 수 있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북촌은 감사원에서 내려오는 큰 길을 중심으로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화동, 삼청동, 가회동으로 이루어지는 서쪽 구역과 계동, 원서동으로 이루어지는 동쪽 구역이 그것이다.
정독도서관 옆길로 들어서면 삼청동 길을 굽어볼 수 있는 언덕길로 올라가서 가회동의 골목길을 지나 감사원에서 내려오는 큰 길과 만날 수 있다. 화동, 삼청동, 가회동을 얼추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길이다. 다시 1990년대 후반부터 뚫리기 시작한 큰 길을 건너서 감사원 쪽으로 올라가다가 중앙고와 이어지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는 큰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마음에 드는 대로 여기저기 샛골목들을 들락거릴 필요가 있다.
방향을 동쪽으로 잡으면, 결국은 작은 능선을 넘어 창덕궁 옆에 이르게 된다. 그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서 창덕궁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올라갈 때와는 다른 골목길을 택해 율곡로로 내려오다가 현대빌딩 옆의 공원에서 쉰다.
여기에도 큰 회화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예전에 궁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독도서관 앞의 회화나무처럼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훨씬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는 이 나무를 보며 오랜만에 둘러본 북촌에 대해 생각한다. 북촌은 벌써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주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분이 좋지 않다. 심란하다.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 파괴된 북촌
북촌은 파괴적 개발의 거친 손길을 벗어나 옛 서울의 주거공간이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조선 때에는 아주 높은 양반들이 살던 곳이었고, 조선이 망한 뒤에는 부자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옛 서울의 주거공간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서울시에서는 ‘북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북촌지역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입니다. 조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조선성리학에 기초하여 배치된 궁궐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치를 배경으로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http://hanok.seoul.go.kr/html/history_01.html)”
북촌이 정말 이 설명과 같은 동네라면 얼마나 좋으랴. 옛 북촌은 아마도 이랬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북촌은 그렇지 않다. 이 설명의 뒷부분은 이미 거짓말이다.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도 않으며, 따라서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극적으로 망가지고 부서지고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 공간과 문화이다.
서울시에서도 이곳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곳은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서울시에서도 원래의 모습대로 지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큰 애를 써왔던 것 같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런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미 북촌은 서울시가 설명하는 것과 같은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한옥들은 부서졌거나 부서지고 있으며, 크고 작은 건물이며 다세대 가옥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골목이며 집집마다 시커먼 전깃줄들이 볼썽사납게 늘어서 있는 것도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해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북촌은 조선의 가장 중요한 두 궁 사이의 아름다운 땅에 자리잡고 조선조 내내 아주 높은 양반들의 거주 지역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조선의 몰락과 그에 뒤이은 서울의 급격한 변화를 북촌도 피할 수는 없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 본명)가 이끌었던 저 ‘조국 근대화’ 시절의 파괴적 개발도 이곳을 피해 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지금 이곳을 휩쓸고 있는 난개발은 그때 시작된 것이었다. 현대그룹의 본사가 바로 그 상징과 같은 건물이다. 이미 북촌은 1930년대의 재개발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적지 않게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북촌은 여전히 한옥촌이었고,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으로서 커다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본사로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의 다세대 가옥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북촌의 이러한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송두리채 뒤흔들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휘문고가 떠나고 그 자리에 현대그룹의 본사가 들어선 것은 북촌의 재앙이었다. 북촌의 한옥이 토끼나 사슴이라면, 현대그룹의 본사는 그야말로 공룡이다. 이런 공룡이 이곳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동네가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경관이 크게 망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로 말미암은 후폭풍은 더욱 컸던 것 같다.
한옥 부서지고 다세대 가옥 들어서고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젊은 사원들이 근처에서 살 곳을 찾았고, 이 젊은이들에게 세를 주기 위해 집 주인들은 낡은 한옥을 고치거나, 아예 부수고 다세대 가옥으로 다시 짓고자 했다. 커다란 공간적 변화를 몰고 올 새로운 공간적 수요가 생겼고, 이 수요는 경제적 가치를 위해 문화적 가치를 크게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충족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적 원리가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북촌에서 이루어진 변화도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촌은 특별한 곳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일어난 변화가 북촌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경제적 가치를 위해 문화적 가치를 망가뜨리는 변화도 어떤 면에서는 공간의 정의를 실현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크고 높은 건물을 짓거나 다세대 가옥을 짓는 것은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이 쓰던 땅을 열 사람이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가치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공자산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북촌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변화는 공간의 정의를 파괴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은 예컨대 베니스처럼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했다. 베니스는 그곳이 생긴 뒤에 이루어진 변화, 곧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삶으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에 엄청난 문화적 가치를 지니는 공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화적 가치는 오늘날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낳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 없었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일까?
1990년대를 지나며 북촌의 모습은 지금처럼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이 변화는 세 가지로 줄여볼 수 있다.
첫째, 이른바 ‘마이카 시대’의 광풍이 이곳에도 몰아쳐서 두 개의 큰 길이 뚫렸다. 먼저 1990년대 초에 경복궁과 창덕궁을 잇는 동서 방향의 큰 길이 뚫렸다. 이 길은 북촌 전체의 구조를 크게 바꾸는 대사건이었다. 이어서 1990년대 후반에 감사원에서 율곡로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큰 길이 뚫렸다. 이 두 개의 큰 길은 집과 집이 어깨를 맞대고 복잡하게 늘어서 있는 북촌의 경관과 풍취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둘째, 새롭게 뚫린 큰 길을 따라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적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게 되었다. 길가에서는 이제 한옥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볼품없는 현대식 건물들이 한옥의 자리에 앞다퉈 들어서게 되었으며, 현대 빌딩이나 헌법재판소 부근의 식당가가 새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북촌의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감사원에서 율곡로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길가에는 고급 ‘빌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은 이미 더 이상 북촌이 아니다. 갈수록 이곳은 방배동의 ‘신흥 부촌’을 닮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북촌의 경관도 삶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셋째, 북촌의 곳곳에서 제멋대로 한옥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다세대 가옥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난개발의 풍경을 이곳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심각한 곳은 창덕궁 옆의 원서동이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며 율곡로로 흘러내리는 산줄기 위에 5∼6층 높이의 다세대 가옥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산줄기 위의 골목길을 그대로 두고 그 양쪽에 이런 큰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산줄기는 남아 있으나 창덕궁과 어우러진 예전의 그 산줄기가 아니며, 골목길은 남아 있으나 사람들이 정을 나누던 예전의 그 골목길이 아니다.
북촌을 ‘역사문화보전지구’로
북촌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북촌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북촌을 없애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종로구의 정책은 충분하지 않았고, 나아가 틀린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다카키 마사오의 잘못된 근대화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근대화 정책에서 중요한 한 축은 중산층 육성책이었다. 그는 하루빨리 중산층을 육성해서 자기가 이 나라의 ‘국부’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그는 땅을 이용했다.
부동산 투기는 빠른 시간에 중산층을 길러내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이 나라에서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떼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것은 땅을 가진 사람이 무능하거나 정부가 정책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었다. 북촌이라고 해서 이런 ‘상식’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북촌이 망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북촌은 이렇게 망가져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지난 10년 사이에 이루어진 북촌의 급속한 변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타까움이 북촌을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으로 되살려내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많이 망가졌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수백년 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회화나무는 푸르게 자라고 있고, 예전의 한옥들과 샛골목도 아직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난개발의 광풍이 이곳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기 전에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북촌의 곳곳을 차근차근 둘러보자. 이곳을 ‘역사문화 보전지구’로 지켜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고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야 한다.
낡은 것과 새 것은 서로 이어지고 어우러져야 한다. 북촌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지 말고, 더 이상 망가뜨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낡은 것과 새 것이 서로 이어지고 어우러진 공간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북촌도 변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오랜 역사를 두고 만들어진 그 정체성과 문화를 계속 살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회화나무처럼 변화를 이기며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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