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눈에 비친 남과 북
2002/2002년 09월 :
2002/09/24 00:00
“왜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침묵합니까? 북한주민이 굶고 있으면 북한에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권 차원에서 요구할 것 요구하면서 햇볕정책 유지해야죠. 쌀 남는다는데 좀 퍼주면 어떻습니까? 침묵하는 바람에 탈북 많이 하면 남한사회만 더 곤란해지는 것 아니에요? 퍼줄 것 퍼주고 햇볕정책 유지하면서도 할말은 해야 합니다.”
김성호 민주당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며 탈북자 정책을 연구했던 김형덕 씨(29세). 그는 올 여름 중국에 다녀왔다.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가족들의 상황을 전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현재 진행 중인 탈북이 처음의 경제적인 이유에서 체제에 대한 거부 등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자칫 북한주민들의 실상을 외면하게 될까봐 우려하는 눈치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누나를 봤습니다. 우리 누나가 이제 서른한 살인데 마흔은 되어 보이더군요. 5년 동안 쌀을 구경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임신을 했다는데 몸무게는 40kg 정도래요. 저는 며칠간 울었어요. 식량난이 그나마 해결되었다니요? 배고파서 탈북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니요? 말도 안됩니다.”
나는 다른 탈북자와 다르다
탈북자들은 저마다 남한과 북한사회에 대해 서로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남한사회에 대한 시선도 각기 다르다. 자유나 자본주의의 개념도 남한사람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탈북자는 『참여사회』 8월호에 실린 호주제 폐지 문제를 다룬 기사를 보고는 “왜 자유국가에서 자식의 성을 선택할 자유조차 주지 않는가. 나는 남한은 모든 게 자유로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고 했다.
여성 탈북자는 남한사회의 사회복지 혜택이 충분치 않아 처음엔 실망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육아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남한에서 적응하며 살다보니 그래도 복지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있고 점차 변하는 것 같아 안도가 된다”고 말했다.
탈북자를 대하는 남한사회의 태도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견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앞서 말한 김씨의 경우 남한이 북한의 식량문제 등에 관심을 쏟지 않고 탈북을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려 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탈북자의 경우는 남한사회가 탈북자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8년 러시아를 통해 탈북했다는 의사 출신 김철수 씨(가명)는 탈북자에도 레벨이 있다며 자신을 다르게 봐달라고 말했다.
“나는 북에서 의사를 했다. 학력에 따라 탈북자들은 적응 속도가 다르다. 남한사회가 일방적으로 모든 탈북자들을 배고파 도망친 사람 취급하는 게 화가 난다. 사상적인 문제로 탈북한 사람들도 많다. 언론은 이제 탈북자의 다양한 적응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하층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다르게 대접해 달라.”
김철수 씨(가명)는 탈북자들이 남한의 자본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김씨는 “탈북자는 남한에서는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은 자본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한국 사회가 꼭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제일 먼저 사는 게 계산기라고 한다. 이들은 예전의 탈북자들 보다 처음엔 빠르게 적응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르더라. 자본과 인간관계가 함께 이뤄진 사회가 남한이더라”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남한과 자본주의에 대해 느낀 대로 말했다.
북에서 장교를 지내며 조선노동당 입당 등 정치사업을 하다가 98년 탈북한 이명숙 씨는 남편을 따라 중국에 잠시 나왔다가 남편이 갑작스레 탈북 계획을 밝히는 바람에 동행하게 되었다. 이씨는 북한사회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고 정치적인 갈등도 경제적인 고민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저는 남한 언론에서 탈북자들의 힘든 모습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게 싫습니다. 저는 잘살고 있습니다. 돈도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내년쯤에는 제가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통일이 되어도 할 수 있을 만한 사업을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지방에 살다 서울 와서 살면 힘든 거 아닙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은 탈북자나 일반 사람이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이어 이씨는 “남한 사람들은 요즘 탈북자들의 요구가 높다고 하는데 저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에선 남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해 대접이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남한에 오면 그만큼 자신도 대우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탈북자의 요구들을 다소 무리하게 느낀다면 그러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
김형덕 씨는 탈북자들의 이 같은 발언들이 그저 자신들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북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을지 모르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게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소위 고위급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탈북 후에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굶지 않았다고. 북에서도 잘살았다고. 기실 이는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거다. 북한의 상황에 대해 인정할 것은 탈북자들도 인정해야 한다. 고위 간부집 털어봐야 라면 몇 개 나오는 게 고작이다. 93년에 군인 30%가 영양실조였던 나라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군인들이 그 정도다”라며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이와 같은 과정조차 남한사회에서 적응하는 과도기 중의 하나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들이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고 나면 시인할 것이다. 북한의 상황에 대해 탈북자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총살당하는 것 본 적 있나. 그런 거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생각이 굳어 있다. 자유를 경험했던 여기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 못한다”며 초기에는 북한에 대한 문제의식이 탈북자에겐 생기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는 점은 세 탈북자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식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이명숙 씨는 “요즘 탈북 여성들이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러는 중국에서 쌍꺼풀 수술이나 문신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며 “아마 한국사회의 외모중심주의가 빠르게 전달되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하지는 그는 이런 사소한 변화가 그 만큼의 개방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고 전달했다.
김형덕 씨는 “북한사회의 자본주의 유입이 간부들의 위치를 변화시킬 것이다. 벌써부터 간부들은 달러를 모아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주민들은 자본주의는 썩어빠진 거라고 배워왔다.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에 임해야 한다. 경제가 유입되면 덩달아 다른 관점의 생각들도 들어오게 된다. 그게 북한주민을 변화하게 할 것이다. 현재는 주민들에게 자본주의나 자유에 대한 정보가 적은 편이다. 그럴수록 적극적이어야 한다”며 적극적인 경제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탈북자들은 남한과 북한에 대해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탈북자 사이에도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계급격차까지 드러내 다소 충격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동안 탈북자를 동정의 대상일 뿐 함께 사는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남북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들. 어쩌면 통일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이들이 될지 모른다.
김성호 민주당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며 탈북자 정책을 연구했던 김형덕 씨(29세). 그는 올 여름 중국에 다녀왔다.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가족들의 상황을 전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현재 진행 중인 탈북이 처음의 경제적인 이유에서 체제에 대한 거부 등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자칫 북한주민들의 실상을 외면하게 될까봐 우려하는 눈치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누나를 봤습니다. 우리 누나가 이제 서른한 살인데 마흔은 되어 보이더군요. 5년 동안 쌀을 구경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임신을 했다는데 몸무게는 40kg 정도래요. 저는 며칠간 울었어요. 식량난이 그나마 해결되었다니요? 배고파서 탈북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니요? 말도 안됩니다.”
나는 다른 탈북자와 다르다
탈북자들은 저마다 남한과 북한사회에 대해 서로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남한사회에 대한 시선도 각기 다르다. 자유나 자본주의의 개념도 남한사람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탈북자는 『참여사회』 8월호에 실린 호주제 폐지 문제를 다룬 기사를 보고는 “왜 자유국가에서 자식의 성을 선택할 자유조차 주지 않는가. 나는 남한은 모든 게 자유로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고 했다.
여성 탈북자는 남한사회의 사회복지 혜택이 충분치 않아 처음엔 실망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육아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남한에서 적응하며 살다보니 그래도 복지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있고 점차 변하는 것 같아 안도가 된다”고 말했다.
탈북자를 대하는 남한사회의 태도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견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앞서 말한 김씨의 경우 남한이 북한의 식량문제 등에 관심을 쏟지 않고 탈북을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려 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탈북자의 경우는 남한사회가 탈북자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8년 러시아를 통해 탈북했다는 의사 출신 김철수 씨(가명)는 탈북자에도 레벨이 있다며 자신을 다르게 봐달라고 말했다.
“나는 북에서 의사를 했다. 학력에 따라 탈북자들은 적응 속도가 다르다. 남한사회가 일방적으로 모든 탈북자들을 배고파 도망친 사람 취급하는 게 화가 난다. 사상적인 문제로 탈북한 사람들도 많다. 언론은 이제 탈북자의 다양한 적응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하층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다르게 대접해 달라.”
김철수 씨(가명)는 탈북자들이 남한의 자본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김씨는 “탈북자는 남한에서는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은 자본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한국 사회가 꼭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제일 먼저 사는 게 계산기라고 한다. 이들은 예전의 탈북자들 보다 처음엔 빠르게 적응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르더라. 자본과 인간관계가 함께 이뤄진 사회가 남한이더라”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남한과 자본주의에 대해 느낀 대로 말했다.
북에서 장교를 지내며 조선노동당 입당 등 정치사업을 하다가 98년 탈북한 이명숙 씨는 남편을 따라 중국에 잠시 나왔다가 남편이 갑작스레 탈북 계획을 밝히는 바람에 동행하게 되었다. 이씨는 북한사회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고 정치적인 갈등도 경제적인 고민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저는 남한 언론에서 탈북자들의 힘든 모습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게 싫습니다. 저는 잘살고 있습니다. 돈도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내년쯤에는 제가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통일이 되어도 할 수 있을 만한 사업을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지방에 살다 서울 와서 살면 힘든 거 아닙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은 탈북자나 일반 사람이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이어 이씨는 “남한 사람들은 요즘 탈북자들의 요구가 높다고 하는데 저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에선 남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해 대접이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남한에 오면 그만큼 자신도 대우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탈북자의 요구들을 다소 무리하게 느낀다면 그러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
김형덕 씨는 탈북자들의 이 같은 발언들이 그저 자신들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북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을지 모르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게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소위 고위급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탈북 후에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굶지 않았다고. 북에서도 잘살았다고. 기실 이는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거다. 북한의 상황에 대해 인정할 것은 탈북자들도 인정해야 한다. 고위 간부집 털어봐야 라면 몇 개 나오는 게 고작이다. 93년에 군인 30%가 영양실조였던 나라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군인들이 그 정도다”라며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이와 같은 과정조차 남한사회에서 적응하는 과도기 중의 하나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들이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고 나면 시인할 것이다. 북한의 상황에 대해 탈북자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총살당하는 것 본 적 있나. 그런 거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생각이 굳어 있다. 자유를 경험했던 여기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 못한다”며 초기에는 북한에 대한 문제의식이 탈북자에겐 생기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는 점은 세 탈북자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식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이명숙 씨는 “요즘 탈북 여성들이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러는 중국에서 쌍꺼풀 수술이나 문신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며 “아마 한국사회의 외모중심주의가 빠르게 전달되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하지는 그는 이런 사소한 변화가 그 만큼의 개방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고 전달했다.
김형덕 씨는 “북한사회의 자본주의 유입이 간부들의 위치를 변화시킬 것이다. 벌써부터 간부들은 달러를 모아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주민들은 자본주의는 썩어빠진 거라고 배워왔다.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에 임해야 한다. 경제가 유입되면 덩달아 다른 관점의 생각들도 들어오게 된다. 그게 북한주민을 변화하게 할 것이다. 현재는 주민들에게 자본주의나 자유에 대한 정보가 적은 편이다. 그럴수록 적극적이어야 한다”며 적극적인 경제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탈북자들은 남한과 북한에 대해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탈북자 사이에도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계급격차까지 드러내 다소 충격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동안 탈북자를 동정의 대상일 뿐 함께 사는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남북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들. 어쩌면 통일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이들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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