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뛰어넘어 제3의 길 찾는다
2002/2002년 09월 :
2002/09/24 00:00
“온 지 2주 됐습니다. 6개월 뒤에는 딴 데로 가야 합니다. 그전까지는 여기 있을 겁니다.”
금룡이는 이메일 체크에 바빴다. 4박5일간 전국을 돌며 재외동포들과 캠프를 다녀왔더니 메일박스가 꽉 찬 모양이다. 기자가 묻는 말에 답하면서도 그는 좀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북한산 자락이라 그럴까. 수유리 4·19탑 근처 주택가의 공기는 맑았다. 뒤뜰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마당에서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아이들. 그들의 모습은 여느 가정집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탈북 청소년 자립생활교육터전’ 늘푸른학교(교장 정진웅)는 지난 5월 3일 문을 열었다. 이 학교는 탈북 뒤 하나원 하나둘학교에서 2개월간 교육받은 탈북 청소년들 중 무연고 청소년들을 교사들이 돌보며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다. 하나둘학교와 늘푸른학교에서 약 2년간 탈북 청소년들과 호흡해 온 교사 신국균 씨(33세)는 탈북 청소년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는 이 아이들을 북한에서 이주한 ‘이민 1세대’라고 생각해요. 어느 나라든 이민 온 사람들은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잖아요. 사회체제, 생활환경, 문화, 교육여건….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더군다나 이들은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지요.”
늘푸른학교에는 학생 여덟, 교사 둘이 산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해먹고 나서 각자 중국어학원, 검정고시학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하룻동안 있었던 일과를 털어놓는다.
늘푸른학교 교육기간은 6개월이다. 교육내용은 주로 낮시간엔 학원 등에 다니며 진로관련 공부하기, 남은 시간엔 가계부 쓰기, 생활문화체험, 사회문화시설 탐방, 특기 및 취미 프로그램 등을 익힌다. 교육의 일환으로 이 아이들은 늘푸른학교에 사는 동안 월 생활비로 15만 원씩 낸다. 그걸로 아이들이 직접 살림도 해보고 장보기도 해본다. 그러면서 남한생활을 배우는 것이다.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활비 통장관리, 가계부 작성, 살림하기, 관공서·은행·부동산 등 생활관련 기관 활용법, 취미생활로 컴퓨터·영어회화·악기연주 등등 함께 하죠. 모든 게 낯설기 때문에 조금씩 생활의 감을 익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전기세, 집세 등을 국가가 지불해 주잖아요. 여기 온 아이들도 집세 등은 국가가 국민에게 줘야 하는 혜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간혹 집세와 각종 세금을 왜 내느냐고 묻기도 하고, 너무 비싸다고 말하죠. 전화도, 유선의 경우엔 선이 연결돼 있으니까 저쪽에서 쓰는 걸 알지만 핸드폰은 돌아다니면서 몰래 쓰는데 어떻게 알고 요금을 부과하느냐고 물어요. 조금 황당하겠지만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교사들은 이 아이들이 남한과 북한의 장점만을 배워 제3의 대안모델로 성장해 주기를 바란다. 천민자본주의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고, 전근대적 생활방식을 극복했으면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런 교사들의 바람을 알 리 만무하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에요. 남자아이들의 경우엔 가부장적 태도가 문제지요. 밥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밥숟가락 놔줘야 먹고, 설거지도 안 했어요. 언젠가 놀이프로그램으로 부침개와 잡채 만들기를 했는데, 한 남학생이 ‘날더러 지금 이걸 하라는 거냐?’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라구요. 그런 걸 몇번 겪으니 안 되겠어서 가족회의 시간에 슬쩍 꺼내봤어요. 그랬더니 다음부터는 좀 달라지는 태도예요.” 교사 김영미 씨(33세)의 말이다.
하나원을 거쳐 남한사회에 정착하게 되는 탈북 청소년들의 꿈은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거다. 남한사회에서 차별대우 받지 않고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교수, 변호사, 의사 이른바 한국사회에서 성공모델로 꼽히는 전문직이 그들의 동경대상이다. 만일 이 꿈을 이룰 수 없겠다고 판단하면, 다시 이민을 꿈꾸기도 한다. 이민 대상지역은 주로 미국이나 중국.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그저 사상교육일 뿐이더라구요. 오히려 아이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잘사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중국은 한국처럼 색안경 끼고 북한사람을 보지 않으니 오히려 속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들에겐 남도 북도 편한 나라는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가위눌림이 있고, 남한에 대해선 북한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자신들을 주눅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탈북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학교급식 할 때 ‘너 이런 거 못 먹어봤지?’ ‘나는 이거 안 먹으니까 너 다 먹어’ 하는 남한아이들의 태도 때문에 북한 아이들이 상처받지요. 또 아이들을 관찰하듯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과민반응을 보여요.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냐 그거죠.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함께 산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지요. 후훗.”
신국균 씨는 아이들의 변화에 보람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이들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밥을 굶고 기력이 쇠잔해진 아이들이 꼬박 이틀 사흘밤을 걸어 중국으로 넘어와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고, 공안에 쫓기며 살아와 그런지 좀체 사람에게 마음을 주려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참 어떤 때는 섭섭하다고 토로했다.
“진심으로 대해도 그게 안 통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정말 눈물납니다. 하지만 간혹 아이들한테 감동받을 때도 있어요. 하나원 하나둘학교에 있을 때 한 아이가 막 뛰어오더니 손에 뭘 꼭 쥐어줘요. 펴보니 불량식품이었어요. 안성에서 서울까지 오면서 그걸 제가 다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너무 감격스러워서요.” 김영미 씨의 말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험준한 삶의 고개를 넘어와 마음이 닫혀 있을 뿐이고, 그 마음이 열리면 곧 남과 북을 경험한 1세대로서 새로운 삶의 모델을 창출할 거라고 내심 기대한다.
“남북한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3의 대안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박하게는 그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별 탈 없이 크기를 바랄 뿐이고, 극도의 천민자본주의와 전근대적 생활양식을 극복해 건강한 성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금룡이는 이메일 체크에 바빴다. 4박5일간 전국을 돌며 재외동포들과 캠프를 다녀왔더니 메일박스가 꽉 찬 모양이다. 기자가 묻는 말에 답하면서도 그는 좀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북한산 자락이라 그럴까. 수유리 4·19탑 근처 주택가의 공기는 맑았다. 뒤뜰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마당에서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아이들. 그들의 모습은 여느 가정집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탈북 청소년 자립생활교육터전’ 늘푸른학교(교장 정진웅)는 지난 5월 3일 문을 열었다. 이 학교는 탈북 뒤 하나원 하나둘학교에서 2개월간 교육받은 탈북 청소년들 중 무연고 청소년들을 교사들이 돌보며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다. 하나둘학교와 늘푸른학교에서 약 2년간 탈북 청소년들과 호흡해 온 교사 신국균 씨(33세)는 탈북 청소년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는 이 아이들을 북한에서 이주한 ‘이민 1세대’라고 생각해요. 어느 나라든 이민 온 사람들은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잖아요. 사회체제, 생활환경, 문화, 교육여건….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더군다나 이들은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지요.”
늘푸른학교에는 학생 여덟, 교사 둘이 산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해먹고 나서 각자 중국어학원, 검정고시학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하룻동안 있었던 일과를 털어놓는다.
늘푸른학교 교육기간은 6개월이다. 교육내용은 주로 낮시간엔 학원 등에 다니며 진로관련 공부하기, 남은 시간엔 가계부 쓰기, 생활문화체험, 사회문화시설 탐방, 특기 및 취미 프로그램 등을 익힌다. 교육의 일환으로 이 아이들은 늘푸른학교에 사는 동안 월 생활비로 15만 원씩 낸다. 그걸로 아이들이 직접 살림도 해보고 장보기도 해본다. 그러면서 남한생활을 배우는 것이다.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활비 통장관리, 가계부 작성, 살림하기, 관공서·은행·부동산 등 생활관련 기관 활용법, 취미생활로 컴퓨터·영어회화·악기연주 등등 함께 하죠. 모든 게 낯설기 때문에 조금씩 생활의 감을 익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전기세, 집세 등을 국가가 지불해 주잖아요. 여기 온 아이들도 집세 등은 국가가 국민에게 줘야 하는 혜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간혹 집세와 각종 세금을 왜 내느냐고 묻기도 하고, 너무 비싸다고 말하죠. 전화도, 유선의 경우엔 선이 연결돼 있으니까 저쪽에서 쓰는 걸 알지만 핸드폰은 돌아다니면서 몰래 쓰는데 어떻게 알고 요금을 부과하느냐고 물어요. 조금 황당하겠지만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교사들은 이 아이들이 남한과 북한의 장점만을 배워 제3의 대안모델로 성장해 주기를 바란다. 천민자본주의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고, 전근대적 생활방식을 극복했으면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런 교사들의 바람을 알 리 만무하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에요. 남자아이들의 경우엔 가부장적 태도가 문제지요. 밥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밥숟가락 놔줘야 먹고, 설거지도 안 했어요. 언젠가 놀이프로그램으로 부침개와 잡채 만들기를 했는데, 한 남학생이 ‘날더러 지금 이걸 하라는 거냐?’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라구요. 그런 걸 몇번 겪으니 안 되겠어서 가족회의 시간에 슬쩍 꺼내봤어요. 그랬더니 다음부터는 좀 달라지는 태도예요.” 교사 김영미 씨(33세)의 말이다.
하나원을 거쳐 남한사회에 정착하게 되는 탈북 청소년들의 꿈은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거다. 남한사회에서 차별대우 받지 않고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교수, 변호사, 의사 이른바 한국사회에서 성공모델로 꼽히는 전문직이 그들의 동경대상이다. 만일 이 꿈을 이룰 수 없겠다고 판단하면, 다시 이민을 꿈꾸기도 한다. 이민 대상지역은 주로 미국이나 중국.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그저 사상교육일 뿐이더라구요. 오히려 아이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잘사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중국은 한국처럼 색안경 끼고 북한사람을 보지 않으니 오히려 속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들에겐 남도 북도 편한 나라는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가위눌림이 있고, 남한에 대해선 북한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자신들을 주눅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탈북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학교급식 할 때 ‘너 이런 거 못 먹어봤지?’ ‘나는 이거 안 먹으니까 너 다 먹어’ 하는 남한아이들의 태도 때문에 북한 아이들이 상처받지요. 또 아이들을 관찰하듯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과민반응을 보여요.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냐 그거죠.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함께 산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지요. 후훗.”
신국균 씨는 아이들의 변화에 보람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이들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밥을 굶고 기력이 쇠잔해진 아이들이 꼬박 이틀 사흘밤을 걸어 중국으로 넘어와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고, 공안에 쫓기며 살아와 그런지 좀체 사람에게 마음을 주려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참 어떤 때는 섭섭하다고 토로했다.
“진심으로 대해도 그게 안 통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정말 눈물납니다. 하지만 간혹 아이들한테 감동받을 때도 있어요. 하나원 하나둘학교에 있을 때 한 아이가 막 뛰어오더니 손에 뭘 꼭 쥐어줘요. 펴보니 불량식품이었어요. 안성에서 서울까지 오면서 그걸 제가 다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너무 감격스러워서요.” 김영미 씨의 말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험준한 삶의 고개를 넘어와 마음이 닫혀 있을 뿐이고, 그 마음이 열리면 곧 남과 북을 경험한 1세대로서 새로운 삶의 모델을 창출할 거라고 내심 기대한다.
“남북한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3의 대안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박하게는 그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별 탈 없이 크기를 바랄 뿐이고, 극도의 천민자본주의와 전근대적 생활양식을 극복해 건강한 성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