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20대의 힘으로!
2002/2002년 09월 :
2002/09/24 00:00
"2002 청년국토대장정" 335km의 여정
참여연대 의정감시팀 자원활동가들을 중심으로 20대 청년들이 ‘국토대장정’을 다녀왔다. 20대의 정치무관심을 극복하고 스스로 찾아나선 정치개혁의 상은 무엇일까. 그들의 고민을 엿보자.
2002년 여름을 난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달 동안 밤낮으로 준비하고 보름 동안 102명이 함께 걸었던 청년국토대장정. 그 잊지 못할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맨땅에 헤딩하는 거 아냐?
지난 5월 말,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한껏 들떠 있던 그때, 참여연대 한 회의실에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참여연대 의정감시팀 자원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20대가 바라는 세상(freechal.com/ drinkmaekju)’의 회원 10여 명이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동안 민주당 국민경선 현장감시활동, 후보검증 자료조사 등을 해온 이들이 새로운 활동을 찾아나선 것이다. ‘20대가 패널이 되는 대통령 후보자 초청 토론회’ ‘20대를 주제로 한 영상다큐 제작’ 등의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논의가 쉽게 전개되지 않던 터에 나온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로 청년국토대장정이었다.
국토대장정 기간 동안 낮엔 걷고, 밤엔 토론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함께 일할 사람들도 얻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을 만한 활동거리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확신만으로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걸을까?” “몇 명을 모집해야 하지?” “회비는 얼마씩 거둬야 하는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1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것도 국토대장정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뿐인 마당에 이런 큰 행사를 열겠다는 생각이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모한 생각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월초 준비위원회 구성과 1차 답사를 계기로 대장정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준비본부, 행진팀, 프로그램팀, 홍보팀, 지원팀으로 조직을 만들고 일을 나누었다. 행진팀은 쉴 곳과 잠잘 곳을 정했고, 프로그램팀은 매일 저녁의 프로그램을 구상했으며, 홍보팀은 홈페이지 관리와 홍보계획을 세우고, 지원팀은 필요물품을 뽑고 식사지원 준비를 했다.
7월초 홈페이지(freechal.com/youthpeople21)를 열고 2주 동안 참가자 모집에 들어갔다. 별다른 홍보수단이 없던 우리는 자주 가는 게시판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게시판에 홍보글을 퍼올리는 ‘게릴라 홍보’ 전략을 썼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동안 대장정 참가를 신청한 사람이 40여 명. 마감까지 일주일이 남았지만, 계획한 인원 100명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홍보전략 수정. 오프라인 홍보를 시도하였다. 포스터를 찍고, 안내문과 버튼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서울 인사동, 대학로, 신촌, 강남역 등 젊은이들이 모일 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다. 밤이 되면 대학교 교정으로 가 포스터를 붙였다. 한 명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모집 마감 하루 전까지 계속 했다. 마감 결과 140명이 넘게 신청했고 2차 모집까지 해야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8월 1일 대구를 출발하여 현풍, 창녕, 마산, 함안, 진주, 북천, 하동, 순천, 벌교, 송광, 화순을 거쳐 14일 광주 망월동까지 13박 14일 동안 총 335km를 걷는 대장정. 낮에는 땀흘리며 근현대사의 주요 흔적을 밟아가고 밤에는 함께 모여 자신, 사회, 20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청년국토대장정 대원들은 그렇게 모였다.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고민한다
8월 1일 드디어 대장정의 막은 올랐다. 집결지인 대구 화원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험난했지만(휴가철이라 고속도로가 꽉 막혔다) 모두 모인 102명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텐트를 치고 강당에 모여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 국토에 담긴 기억, 아픔, 기쁨을 알아가는 것이 후세의 의무이고, 삶의 방향을 세우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대원들을 격려했다.
2일. 대장정 이튿날이자 처음 걷는 날이다. 23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대원들은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섭씨 35도를 넘는 기온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태양은 대원들의 머리 위에 화살처럼 내리꽂혔다. 몸이 채 풀리지 않아 발목을 삐끗하고, 피부에 화상을 입고, 탈수증세를 보이는 대원들이 생겨났다. 그늘 없는 아스팔트에서 쉬어가며, 끝이 없어 보이는 논길을 걷는 첫날 일정이 끝났을 때, 모두는 서로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5일. 마산에서 함안까지 가는 날이다. 전날의 33.5km에 버금가는 33.2km의 긴 거리에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 험한 여로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행군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덕분에 남강 둑길을 걸으며 노을 비치는 남강의 절경을 즐길 수 있었다. 남강 둑길은 대장정 참가자들이 꼽은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7일. 이틀 계속 비가 내려 옷과 운동화는 젖어 있고, 몸과 마음도 지쳤지만 참가대원 부모님의 방문과 지역 주민들의 격려로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중간평가를 통해 대장정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풀어졌던 마음을 새롭게 추슬렀다.
9일은 대구를 출발해 경상남도를 거쳐 전라도로 넘어가는 날이다. 하동 송림을 거쳐 오전 10시경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인 섬진교에 닿았을 때, 대원들은 지역감정이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손을 맞잡고 걸었다. 이들의 기원에 응답이라도 하듯 연일 비를 뿌리던 하늘도 잠시 밝은 미소를 지었다.
11일. 벌교를 통과하여 송광으로 가려던 애초 계획은 비로 인한 도로유실로 5km 정도를 더 돌아 낙안읍성마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은 젖은 옷과 신발, 길어진 거리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내가 왜 걷고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잠깐 벌어진 판소리패 ‘바닥소리’의 공연은 대원들에게 새 힘을 북돋워 주었다.
13일. 광주 들어가는 날. 너릿재 고개를 넘을 때, 전남도청 앞에서 쉴 때, 금남로를 걸을 때는 전날 저녁에 본 5·18 광주항쟁 관련 영상물의 장면들이 눈앞에서 다시금 펼쳐지는 듯했다. 선배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그 땅에 우리가 두 발로 서 있다는 뜨거운 감격이 몰려왔다.
14일. 비를 맞으며 망월동 묘역에 갔다. 80년에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대원들이 대부분이지만, 숙연한 모습들이었다. 망월동에서의 참배와 해단식은 국토대장정 참가자들에게 간단치 않은 숙제를 남겨 주었다. 청년으로서 이 시대,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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