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으로 비판세력 탄압, 소주민족 차별 여전-말레이시아
2002/2002년 10월 :
2002/10/24 00:00
993년 7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인권특별세계대회는 여러 가지에서 인권신장에 이정표를 설정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서방세계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됐던, 또는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도 동시에 대립됐던 A규약의 사회적ㆍ문화적ㆍ경제적 권리와 B규약인 정치적ㆍ시민적 권리 사이의 해석에 나름대로 종지부를 찍고 A와 B는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개도국 특히 중국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A규약의 해결이 먼저이고 B규약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해석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회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의 가장자리에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이 있다. 그는 지금도 세계화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횡포를 막기 위해 개도국들을 대변하면서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957년 이후 계속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는 앞서 말한 비엔나 회의에서 “우리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적 가치에 의해 인권을 해석한다. 인권은 아시아적 가치 즉, 촌락 중심적, 경로사상의 가족 중심적인 틀 속에서 인권을 해석한다. 서구의 개인 중심적, 시민적 또 정치적 권리는 아시아적 가치에 도움되지 않았다. 우리의 아시아적 가치는 가정 윤리에 근거하기에 서구에서처럼 부녀가 함께 앉아 TV에 나오는 선정적 프로그램을 개인적 인권이라는 해석 때문에 관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갈파해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연설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럼 그가 통치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인권 상황을 살펴보자.
남한의 3배를 훨씬 넘는 국토를 갖고 있는 이 나라는 2300만 명의 인구분포를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고무생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고,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말리카 지역이 식민화되면서 서방세계와 접촉하게 됐다. 1641년 네덜란드가 식민종주국이 됐으며 1786년 영국이 이 나라를 점령했다. 1941년 일본이 약 4년간 점령한 후 제2차대전 후 다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 와중에 12년간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기도 했으며 1957년에야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국제안전법으로 비판세력 탄압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인권문제는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들 수 있다. 64%의 말레이족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휘두르면서 27%의 중국인과 10%의 인도인들 그리고 나머지 1%의 기타 민족들을 직간접으로 탄압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기에 인도인들과 기타 종족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
2001년 3월 인도인들은 마하티르 수상의 빈민정책에 반기를 들며 대규모 집회를 벌였는데, 이 중 6명이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1969년 말레이인들이 중국족들과 충돌한 사건 이후 가장 큰 충돌이었다.
말레이시아는 국내 보안법이 악명 높다. 국제안전법(International Security Act)이라는 이 법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비판세력들을 구금·체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학생서클이 조금만 비판적이거나 급진적 사고를 가지면 이 법으로 체포·구금되기 일쑤다. 야당인 캬디란당의 청년지도자 그리고 신망이 높은 에감 놀(Egam Nor)도 이 법에 의해 체포되었다. 야당 중 가장 급진적인 Pas(Parti Islam Se Malaysia)당은 집권당인 Ummo(United Malay National Organization)에 반격을 가하면서 자기들에게 더 표를 던져주면 보다 나은 회교국 말레이시아를 건설하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현재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온건이냐 강건이냐의 차이밖에 없으니 여타의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중국계 인도계 사람들의 입지는 암울하다. 77세의 마하티르 수상이 국제적으로 악명이 더욱 높은 이유는 자신의 부수상이었던 앤월 이브라힘(Anwar Ibrahim)을 1998년 이후 계속 구금하면서 집권남용과 동성애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세계인권단체들로부터 독재자로 낙인찍혔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브라힘 부총리에 대한 유죄판결은 그를 정치에서 손떼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므로 그에 대한 재판은 불공정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브라힘과 함께 기소된 달마완(Darmawan)은 6년형과 4개의 태형 선고를 받고 복역중 병보석으로 석방돼 현재 주거제한을 받고 있다. 이브라힘의 구속은 세계인권기구들의 관심 속에서 석방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마하티르 수상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요청이 지연되는 결과를 빚었으나 작년 9월 11일 테러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즉, 미국은 마하티르를 앞세워 그들의 테러와의 전쟁에 최소 묵인이나 찬성함으로써 아랍권의 지원을 얻어내야하고, 말레이시아는 이브라힘 문제로 답보상태인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미국과 말레이시아는 타협했고, 이로 인해 이브라힘은 미국 테러 사건 후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문맹률 18%
작년 10월 12일 쿠알라룸푸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는 3000명 이상의 모슬림 근본주의자들이 운집해 거대한 집회를 가졌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고 마하티르의 미국 정책에 대한 온건노선을 비난했다. 중국계 인도계인들은 나라의 이슬람화에 대한 심한 우려를 피력하면서 이제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런 종족 갈등은 이 나라에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지뢰 같은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모슬림 극렬주의자들의 준동은 이웃 나라들에게도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은 취임 후 작년 8월말 말레이시아를 방문, 말레이시아의 극렬주의자들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지난 8월 1일 자카르타 경찰이 체포한 26세의 말레이시아인 하림(Harim)은 자카르타에 있는 2개의 교회에 폭탄을 장치한 범인”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직도 남자의 10%, 여자의 18%가 문맹자인 말레이시아. 1995년 이후 이 나라는 ‘동방을 보자(See East!)’라는 구호를 부르짖고 있다. 이 배경에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을 보고 배우려는 야심찬 의도가 있다. 그들은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 비결을 보아야 하지만 두 나라가 성취한 평화적 정권교체도 배워야 할 것이다.
무궁무진한 천연자원, 아름다운 자연환경, 다수 종족이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이 권위주의 정권이나 종족갈등으로 인해 좌절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서방세계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됐던, 또는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도 동시에 대립됐던 A규약의 사회적ㆍ문화적ㆍ경제적 권리와 B규약인 정치적ㆍ시민적 권리 사이의 해석에 나름대로 종지부를 찍고 A와 B는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개도국 특히 중국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A규약의 해결이 먼저이고 B규약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해석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회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의 가장자리에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이 있다. 그는 지금도 세계화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횡포를 막기 위해 개도국들을 대변하면서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957년 이후 계속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는 앞서 말한 비엔나 회의에서 “우리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적 가치에 의해 인권을 해석한다. 인권은 아시아적 가치 즉, 촌락 중심적, 경로사상의 가족 중심적인 틀 속에서 인권을 해석한다. 서구의 개인 중심적, 시민적 또 정치적 권리는 아시아적 가치에 도움되지 않았다. 우리의 아시아적 가치는 가정 윤리에 근거하기에 서구에서처럼 부녀가 함께 앉아 TV에 나오는 선정적 프로그램을 개인적 인권이라는 해석 때문에 관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갈파해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연설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럼 그가 통치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인권 상황을 살펴보자.
남한의 3배를 훨씬 넘는 국토를 갖고 있는 이 나라는 2300만 명의 인구분포를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고무생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고,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말리카 지역이 식민화되면서 서방세계와 접촉하게 됐다. 1641년 네덜란드가 식민종주국이 됐으며 1786년 영국이 이 나라를 점령했다. 1941년 일본이 약 4년간 점령한 후 제2차대전 후 다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 와중에 12년간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기도 했으며 1957년에야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국제안전법으로 비판세력 탄압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인권문제는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들 수 있다. 64%의 말레이족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휘두르면서 27%의 중국인과 10%의 인도인들 그리고 나머지 1%의 기타 민족들을 직간접으로 탄압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기에 인도인들과 기타 종족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
2001년 3월 인도인들은 마하티르 수상의 빈민정책에 반기를 들며 대규모 집회를 벌였는데, 이 중 6명이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1969년 말레이인들이 중국족들과 충돌한 사건 이후 가장 큰 충돌이었다.
말레이시아는 국내 보안법이 악명 높다. 국제안전법(International Security Act)이라는 이 법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비판세력들을 구금·체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학생서클이 조금만 비판적이거나 급진적 사고를 가지면 이 법으로 체포·구금되기 일쑤다. 야당인 캬디란당의 청년지도자 그리고 신망이 높은 에감 놀(Egam Nor)도 이 법에 의해 체포되었다. 야당 중 가장 급진적인 Pas(Parti Islam Se Malaysia)당은 집권당인 Ummo(United Malay National Organization)에 반격을 가하면서 자기들에게 더 표를 던져주면 보다 나은 회교국 말레이시아를 건설하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현재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온건이냐 강건이냐의 차이밖에 없으니 여타의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중국계 인도계 사람들의 입지는 암울하다. 77세의 마하티르 수상이 국제적으로 악명이 더욱 높은 이유는 자신의 부수상이었던 앤월 이브라힘(Anwar Ibrahim)을 1998년 이후 계속 구금하면서 집권남용과 동성애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세계인권단체들로부터 독재자로 낙인찍혔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브라힘 부총리에 대한 유죄판결은 그를 정치에서 손떼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므로 그에 대한 재판은 불공정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브라힘과 함께 기소된 달마완(Darmawan)은 6년형과 4개의 태형 선고를 받고 복역중 병보석으로 석방돼 현재 주거제한을 받고 있다. 이브라힘의 구속은 세계인권기구들의 관심 속에서 석방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마하티르 수상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요청이 지연되는 결과를 빚었으나 작년 9월 11일 테러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즉, 미국은 마하티르를 앞세워 그들의 테러와의 전쟁에 최소 묵인이나 찬성함으로써 아랍권의 지원을 얻어내야하고, 말레이시아는 이브라힘 문제로 답보상태인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미국과 말레이시아는 타협했고, 이로 인해 이브라힘은 미국 테러 사건 후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문맹률 18%
작년 10월 12일 쿠알라룸푸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는 3000명 이상의 모슬림 근본주의자들이 운집해 거대한 집회를 가졌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고 마하티르의 미국 정책에 대한 온건노선을 비난했다. 중국계 인도계인들은 나라의 이슬람화에 대한 심한 우려를 피력하면서 이제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런 종족 갈등은 이 나라에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지뢰 같은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모슬림 극렬주의자들의 준동은 이웃 나라들에게도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은 취임 후 작년 8월말 말레이시아를 방문, 말레이시아의 극렬주의자들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지난 8월 1일 자카르타 경찰이 체포한 26세의 말레이시아인 하림(Harim)은 자카르타에 있는 2개의 교회에 폭탄을 장치한 범인”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직도 남자의 10%, 여자의 18%가 문맹자인 말레이시아. 1995년 이후 이 나라는 ‘동방을 보자(See East!)’라는 구호를 부르짖고 있다. 이 배경에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을 보고 배우려는 야심찬 의도가 있다. 그들은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 비결을 보아야 하지만 두 나라가 성취한 평화적 정권교체도 배워야 할 것이다.
무궁무진한 천연자원, 아름다운 자연환경, 다수 종족이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이 권위주의 정권이나 종족갈등으로 인해 좌절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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