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불감증의 바다로?
2002/2002년 10월 :
2002/10/24 00:00
이회창, 장상, 장대환을 통해 본 대한민국 상류사회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장남 이정연 씨가 하와이로 떠나기 전 얼마간 필리핀에 머물며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이정연 씨를 곁에서 돌보던 한 측근에 따르면 그는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시내에서 가장 부유층이 산다는 ‘다스마리냐스’빌리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필리핀 한인사회의 입도마에 오르기도 했다고.
그는 지금 2002 대선의 핵폭풍 병역비리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이미 97년 대선에서도 거론된 바 있는 이 문제가 잠잠하다 다시 고개를 들게 된 건 김대업 씨가 이정연 씨의 병역비리 내용을 고발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병역비리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아들의 병역비리뿐만 아니라 가회동 호화빌라파동, 손녀의 원정출산, 아버지의 친일 등 다차원적인 문제제기가 터져 나왔고 따라서 서민의 삶을 모르는 ‘엘리트 귀족’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표귀족 3인방?
대한민국 최초로 국무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됐을 때 온 국민의 눈과 귀는 국회 청문회장으로 달려갔다. 최초의 인사청문회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총리서리로 임명되자마자 아들의 국적문제, 땅투기 의혹, 학력허위기재 등의 도덕성 문제로 집중포화를 받고 있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국회가 인준해줄 것인가에 대해 촉각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각계 여성계 인사로 구성된 ‘최초 여성총리 지명의 의미를 나누는 여성모임’은 지난 7월 22일 성명을 통해 “장 총리서리가 인정받고 있는 경영능력과 조정력, 정치적 중립성은 현 시국 수습과 선거국면에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여성총리로서 모든 국정과제에 성평등적 관점을 반영하여 여성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우리는 장상 총리서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폄하되거나 혹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전폭 지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장상 씨는 참여연대 인사의견서에 따르면 “총리지명 이후 제기된 의혹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은 도덕성과 신뢰성에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총리에 임명될 줄 알았다면 아들의 국적을 그렇게 했겠느냐”거나 “사회활동을 하느라 집안살림은 모두 시어머니가 도맡아 해서 위장전입 등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일관하는 자세에서는 다분히 국민적 실망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물론 장상 씨가 최초의 여성총리 지명자라는 이유 때문에 청문회장에 나온 국회의원들이 발언을 조심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개인적 흠결 찾기식 선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난 또한 불거졌다.
장상 씨는 최초의 여성총리 서리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국민 앞에 섰지만, 국민들은 왜 하필 아들 국적문제나 땅투기 의혹 등으로 문제가 된 그 여성을 굳이 총리 자리에 앉히려 했는지 DJ정부의 판단에 고개를 갸웃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두 번째 총리서리로 나선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도 위에 언급된 인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대환 씨가 총리지명자로 지목된 다음 공개한 56억 원에 달하는 재산에 대해 과연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했겠느냐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 전국 각지에 다양한 땅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기도 했다. 장대환 총리서리 부부 명의로 된 땅의 분포는 이렇다.
서울 도봉구 도봉동 임야 991평, 제주도 서귀포시 하예동 임야 638평, 전북 김제시 옥산동 논 675평, 충남 당진군 송악면 임야 1600평,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2채, 서울 성북구 안암동5가 건물 소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건물 소유, 경기 가평군 별장 등. 다채로운 부동산 재산 현황이다.
장대환 총리서리 인사의견서를 발표했던 참여연대는 그의 재산형성과정과 한빛은행 거액대출과정에서의 의혹, 『매일경제신문』의 중소기업우선지원금 특혜대출의혹, 자녀들의 위장전입 등 도덕성과 신뢰성도 심각하게 의심된다며 결론적으로 장대환 총리지명자의 국무총리 인준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한 더러운 권력
정치계 교육계 언론계 ‘대표 귀족’으로 불릴만한 위의 ‘세 분’은 홍세화 『한겨레』 부국장의 표현대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정치계의 귀족이라면, 장상 씨는 교육계의 귀족이고, 장대환 씨는 언론계의 귀족일 뿐이다. 문제는 위에 거론된 ‘세 분’만 특별히 아들병역비리 의혹, 땅투기 의혹, 위장전입문제, 이중국적문제 등을 가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소위 한국사회에서 권력과 자본을 쥔 ‘사회귀족’은 원정 출산하여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갖게 하고, 교육은 조기유학으로 처리하며, 재산은 탈세를 감행하면서까지 되물림 하지 않느냐는 의혹이 사실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발언력을 가진 계층들이 이번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며 “그게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는 등 아예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저명한 칼럼니스트는 “장상 씨의 경우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일을 하는 여성의 경우 실제로 집안 일에 무관심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걸 마치 도덕적 흠결로 잡아 그가 가진 모든 능력을 폄하하고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무엇보다 장상 씨를 훈계하러 나온 ‘의원님’들은 얼마나 깨끗하신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반면 강남에서 보험영업사원으로 일하는 정명철 씨(가명·33세)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한국사회에는 그렇게 인물이 없는가. 기실 ‘고위층’ 중에 깨끗하고 정의로우며 국가경영능력이 탁월한 단 한 명도 없는 이 땅에 산다는 게 참으로 부끄럽다.”
한국사회가 영국처럼 국가 사회적으로 귀족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진 귀족은 있다. 소위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특권층으로 군림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다. 한 마디로 귀족의 권리는 많고 의무는 없다. 자신이 가진 힘과 지위로 사회를 더욱 부패하고 불평등하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 ‘귀족’ ‘고위층’이라고 생각한다면, 특권층을 누릴 생각만 하지 말고, 사회 내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생략되는 한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귀족은 없고,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한 더러운 권력만 남을 것이다. 온몸에 명품을 걸치고 거리를 배회하는 건 진정한 귀족이 아니다.
깨끗한 정치, 바른 언론, 정직과 신뢰를 가르치는 교육을 실천해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귀족’이 되는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쾌한 이 진실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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