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자가 강늠으로 모이는 이유와 폐혜


“애초 강남으로 이사올 때는 아이들 교육만 끝나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이 끝난 지금도 강남을 떠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서울 외곽으로 가자니 교통이 너무 불편할 것 같고, 다른 지역도 강남만큼 생활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이 없지 않은가.”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김아무개 씨(55세·주부)는 자신들이 강남으로 이주하게 된 주요 원인을 ‘아이들의 교육’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마치는 데로 조용한 서울 외곽이나 신도시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내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솔직히 강남 살다가 다른 곳에서 살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강남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과 생활환경

사람들이 강남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교육’ 때문이다. 소위 명문고교(단지 진학률이 높은)들이 밀집되어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유명입시학원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얼마 전 삼성동의 아파트에 이사온 황아무개 씨(40세)는 “여기저기 알아보니 이 아파트가 경기고등학교에 배정될 확률이 크다고 해서 좀 무리를 해서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털어놨다.

인근 부동산을 찾은 부부는 “큰애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이다. 고등학교는 8학군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서 근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파트 값이 너무 비싸 고민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강남지역과 타 지역의 대학 진학률은 차이를 보인다. 2000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발표 결과 서울 출신 합격자 1013명 중 강남의 8학군 출신이 50.6%를 차지했다. 또한 졸업생 100명당 서울대 진학률도 강남은 타 지역보다 최고 10배 가까이 높았다. 자식 좋은 대학 보내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의 부모들이 강남으로 향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환경’뿐 아니라 ‘생활환경’ 면에서도 강남은 타지역과 구별된다. ‘예술의 전당’을 비롯해 각종 문화시설과 체육·쇼핑몰들이 밀집되어 있다. 강남민들이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한 까닭도 사실은 여기에 기반한다. 뿐만 아니라 교통, 주거환경면에서도 강남과 다른 지역은 확연히 구별된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의 도시공원 수는 2000년 기준으로 각각 117개, 95개, 109개에 달한다. 반면 중랑구, 성북구, 강북구의 경우 45개, 20개, 35개에 지나지 않는다. 40m이상의 넓은 도로 분포에 있어서도 서초구가 3만7,927m를 보유하고 있지만 성북구는 830m만이 나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여건만 된다면 강남으로의 ‘입성’을 고대하게 된다.

직장과 거주의 일치 실현

하지만 교육과 생활환경만으로 사람들이 이처럼 강남을 ‘동경’하고, 강남의 아파트 값이 서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폭등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부자들이 강남으로 모여드는 또 다른 이유로 직장과 거주가 동일한 공간 내에서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테헤란 벨리가 들어서면서 강남 내에서 직·주의 일치가 가능해 졌고, 그로 인해 고급인력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대규모 거주지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고 말하는 남 교수는 “또한 이러한 조건 위에 IMF를 헤쳐 나온 이후 투기심리가 결합되면서 엄청난 아파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IT 중심의 테헤란 벨리의 조성은 과거 공장지대나 상업지대처럼 거주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발생하지 않았고, 전선을 모두 지하에 매설한다든지 도로를 확충한다든지 하는 정부의 투자가 계속되면서 거주환경도 나아졌다는 이야기다.

또한 그는 “사람들은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모이려는 심리가 강하다. 비슷한 소득수준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싶어하는 심리가 부자들이 강남으로 계속해서 모여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부유층들이 강남으로 집중되는 심리를 분석했다.

이러한 부의 편중이 심해지고 강남과 타지역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강남북 주민들 사이에는 심각한 위화감이 조성되었다. 올 초 ‘포럼서울비전’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서울 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강북 지역 주민 74%가 강남북 격차 확대에 따라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7%의 서울 시민이 앞으로도 강남북 불균형이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한 주부는 “언론을 통해 강남지역 부유층들의 소비행태나 타지역과의 차이가 보도될 때면 솔직히 힘이 빠진다. 어떤 때는 빚이라도 내서 강남으로 가야지 아니면 바보취급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고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부의 편중과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이외에 강남문제가 야기하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부자들의 강남 집중 현상이 부와 신분의 세습을 가능토록 한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남기범 교수는 “거주공간, 업무공간, 여가공간의 차별성 위에 교육까지 얽혀짐으로써 사회귀족들의 부와 신분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분상승의 요소가 다양하고 역동적이어야 하는데 공간적인 문제와 결합되면 계층간 이동이 힘들어 진다. 부유층들이 공간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문화자본과 교육자본을 투자해서 자식들에게 부와 신분을 세습하는 현상이 가속될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불평등 해소 위해 ‘역교부세’ 고려해야

비버리힐스의 예처럼 어느 나라나 부자동네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강남현상’은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비버리힐스의 경우 면적이나 인구에 있어서 그 규모는 전체 LA시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강남의 경우는 서울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따라서 비버리힐스의 경우 아무리 부유층이 모였다고 해봐야 극소수고 그들의 행태는 ‘그들만의 잔치’로 머물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명품, 수입품만을 고집하는 강남의 천박한 소비행태는 대한민국의 소비문화로 확대되고, 강남 아파트 값의 상승은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서울시는 강남북의 격차를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추진단’을 발족시키고, 지난 9월 4일에는 강남지역 아파트 값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분양권 매매 금지, 보유세 인상 등을 포함한 부동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시책들이 ‘강남 제일주의 현상’을 타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강남과 타지역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부의 편중에 의한 자치구별 세수와 재정의 차이를 들고 있다. 서울지역 자치구 가운데 강남구의 올해 예산은 2900여 억 원이다. 이에 반해 도봉구는 1100여 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치구간의 재정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강남과 타지역간의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필우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이러한 지역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유한 자치단체가 빈곤한 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역교부세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2002/10/24 00:00 200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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