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은 기업부터
2002/2002년 10월 :
2002/10/24 00:00
사회귀족 의무 다하기 캠페인 필요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추천해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간혹 말을 꺼내려다가도 “아니다. 그분은 노블리스가 아니다. 서민이면서 생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며 말을 접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연예인까지 이른바 사회특권층을 포함해 공인에 대한 윤리적 요구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 연예인 수재의연금 명단이 공개되면서 적은 금액을 낸 연예인들이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나 가수 유승준의 병역기피의혹문제 등이 사회쟁점화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은 사회특권층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것을 전제로 귀족이라고 일컬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블리스 의무 중의 대표로 사회환원을 들었다.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킨다』의 저자 KSS해운 박종규 회장은 이 책을 통해 기업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실수, 부끄러웠던 일, 고난 등을 사심 없이 토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킨 이유 중 하나는 말로만 그치기 쉬운 기업의 세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그는 세 아들이 있지만 전문경영인에게 1995년 3월 사장 자리를 물려줬고 자신이 가진 주식이 너무 많아졌다며 회사 전체 주식의 10%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으로 유학간 아들이 쓴 “제발 150달러만 보내달라”는 편지가 국세청 직원들의 수색에서 발견된 일화는 유명하다. 박 회장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독립심 밖에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삼공제약의 김경일 회장의 경우 크고 작은 단체들이 받는 기부금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쉽게 뿌릴 법한 보도자료나 사진 한 장 없다. 직원들은 “김경일 회장은 개인적으로 사회환원에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회사와는 관련 없이 개인이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인터뷰 요청도 거부했다.
노블리스의 사회적 의무는 개인에서 집단으로 옮겨가며 구체화되고 있다. 개인이 산발적으로 내놓는 기부금 형태에서 벗어나 사회환원에 대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진행된다. 그것을 사회도 요구하고 기업도 자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의 사회환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월 375개 회원사와 기업·기업인이 설립한 113개의 공익재단을 대상으로 사회공헌활동 현황 및 사례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사회공헌 활동 지출현황에 응답한 193개 기업의 2000년도 총지출액은 7060억6000만 원으로 평균집행액은 36억5800만 원에 달했다. 매출액을 공개한 192개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활동 총지출액은 매출액에서 0.3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경상이익과 세전이익에서 적자를 기록한 30개, 31개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활동에 지출한 평균 금액은 각각 13억2100만 원, 6억3000만 원이었다. 기부형태에 있어 90.2%가 현금기부로 나타났고 그 내역을 비교해 보면 교육분야에 대한 기부가 4747억7800만 원으로 전체의 70.8%를 차지했다.
기업재단의 경우 71개가 자산규모에 응답했다. 기업재단의 2001년말 현재 총자산액은 2조586억1900만 원으로 재단 평균 289억9500만 원 수준이었다. 자산규모의 분포를 보면 10∼50억 원 미만의 재단이 25개(35.5%)로 가장 많았고 이어 100억∼500억 원 미만이 24개(33.8%), 500억 원 이상은 5개(7.0%)였다.
삼성이나 제일제당 등은 일찌감치 이런 사업에 뛰어든 경우다. 제일제당의 경우 1999년에 전담 조직으로 사회공헌팀을 발족했다. 전문성을 위해 사회복지전문가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환원이 중요하다
곽대석 제일제당 사회공헌팀장은 “기업이 사회특권층으로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고객을 위해 최고로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게 가장 큰 윤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 사회환원이다. 미국은 경제공황, 일본은 고베 지진, 우리는 IMF를 통해 그런 인식이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위기다. 다국적기업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은 현지의 정착에서 좋은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펼친다. 몇 년을 넋 놓고 있으면 우리는 그런 기업들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 환원은 투자다”며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존경받는 기업의 이미지가 결국 매출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곽 팀장은 이러한 활동의 애로사항도 몇 가지 지적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공은 최고경영자의 마인드에 달려 있다. 이게 없으면 직원들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 더 높아져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내놓은 대부분의 기부금은 정치인에게 들어간다. 순수하게 사회복지분야에 기부하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부차원에서 기업이 이러한 기부관행을 변하게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 업체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참여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흥은행 홍보실 전영철 팀장은 “독일의 경우 은행은 환경오염유발업체에게는 대출시 이자를 더 많이 받는다. 그처럼 각 기업이 공익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들은 다양하다고 본다. 단순히 기부금을 많이 내거나 자원봉사하는 걸로 사회적 환원을 다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에 비해 금융권에 이런 인식이 높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은행의 경우 재단설립은 물론이고 금융박물관을 세우거나 운영하는 갤러리를 연중 무료로 대관하는 등의 일을 한다. 교육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도 사회환원의 하나다”며 사회환원의 방식이 좀더 다양해 질 것을 요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발족한 1%클럽에는 2002년 8월 현제 127개 사의 회원이 참가해 기업수익의 1%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식화 하고 있다.
비영리지식포럼(http://www.npoforum.or.kr)은 9월 26일부터 27일까지 여성여성플라자에서 각 기업의 사회공헌팀이 참가하는 지식정보포럼을 연다. ‘기업의 마케팅전략 이해와 비영리조직과의 관계’ ‘시장과 비영리조직과의 관계-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등이 발표되는 등 기업과 비영리단체와 학자들은 손을 잡고 기업의 사회환원 활동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윤리도 주요덕목
기업의 윤리적인 경영에도 본격적인 바람이 불고 있다.
(주)신세계는 윤리경영 추진과정과 활동내용을 정리한 ‘신세계 윤리경영 백서’를 지난 7월 1일 발간했다. 신세계는 1999년 12월 윤리경영을 대내 외에 선포한 이후 기업윤리실천팀을 사장 직속으로 따로 만들어 운영해 왔다.
기업윤리실천사무국 이병길 국장은 “미국의 유명 경영 전문지에서 미국의 존경받는 기업 1000대 기업을 조사, 발표했는데 1∼10위 존경받는 기업의 1999년 투자 수익률이 49.4%로서 S&P(국제신용평가기관)의 500대기업 평균 투자 수익률 20.3%를 훨씬 웃도는 실적을 나타냈다. 기업윤리는 회사 경쟁력을 강화시키며 회사 이익을 증대시키고 임직원 근무의욕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며 기업윤리실천부서가 따로 탄생하게된 배경을 밝혔다. 신세계 측은 윤리경영 도입 후 주가가 보통주는 260%, 우선주는 155%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은 결국 원칙을 지키는 일이 사회의 기득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경영이나 제품생산에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이를 사회에 환원할 때 진정한 사회의 노블리스로 존중받을 수 있다. 이러한 마인드가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계, 학계 등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져야 한다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을 위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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