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인권을 말한다1- 감옥엔 기본권이 없다
2002/2002년 10월 :
2002/10/24 00:00
인간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감옥 재소자들은 범법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심각한 인권침해 상태로 방치돼 있다. 따라서 본지는 인권실천시민연대와 공동으로 감옥 재소자들의 현실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속기획을 마련한다. 편집자 주
감옥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법률은 행형법이다. 이 법의 제1조 [목적]은 감옥의 존재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형자를 격리하여 교정교화하며 건전한 국민사상과 근로정신을 함양하고 기술교육을 실시하여 사회에 복귀하게 하며….”
행형법은 단순한 격리가 아니라 교정교화를 감옥의 존재이유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니, 단순히 ‘격리만’ 하여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교정당국은 2000년 한햇동안 재소자의 사망사건에 대해 12명의 재소자가 자살했다고 발표하였을 뿐, 다른 사망사건에 대해 일체의 언급도 없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된 재소자들의 잇단 사망사건의 경우 구타에 의한 것이든 병이 깊어진 탓이든 도무지 소생가능성이 없는 다 죽게 된 상태에서 감옥 밖으로 나온 재소자들은 그로부터 얼마 후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경우는 교정당국의 사망사고 통계에서는 빠진다. 교정당국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소자들이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생명권마저 이렇게 다뤄지고 있는 상황이니, 다른 권리의 침해는 그저 일상적인 일일 뿐이다.
감옥에는 심각한 인권문제가 많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래도 중요하게 생각해 봤으면 하는 몇 가지 문제만을 다루도록 한다. 아시다시피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옥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 지면 관계상 극히 일부밖에 다룰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하루에 600원을 벌다
2000년 한햇동안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뒤 법무부 교정국이 낸 교육훈련 성과보고에 따르면 초중고 과정에 재학중인 기결수는 2342명이다. 중입, 고입,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는 1204명이고 대입 합격자는 18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 통계에서 말하는 ‘초중고 과정에 재학중인 기결수’의 수는 소년범 재소자 2342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소년범 재소자의 경우에는 어찌되었든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재소자들 중 20세 미만의 재소자가 1046명이고, 특히 18세 미만이 145명이나 되는데도, 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이 진행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연령에 해당되는 30세 미만의 재소자가 1만4222명이나 되는데도, 1년 동안의 대입 합격자(전문대 포함)가 18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천안이나 김천소년교도소처럼 ‘검정고시 학과반’이라도 운영하는 소년교도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감옥에서 교육기회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형법 35조 이하는 재소자들의 작업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재소자들은 강제적으로 작업에 종사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재소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작업이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재소자의 교정교화,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
행형법 39조에 따르면 작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모두 국고로 잡히고, 재소자들에게는 (작업이 처벌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임금 대신 작업상여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작업상여금은 출소할 때 재소자들에게 지급된다. 2000년 한햇동안 작업에 나선 2만3618명의 재소자들이 벌어들인 돈은 모두 280여억 원(1명의 재소자가 한햇동안 120만 원 정도의 수익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이었으나, 작업상여금으로 지급된 돈은 59억 원 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1년간 꼬박 작업에 나선 재소자의 경우 평균 작업상여금 수령 액수는 22만8114원인 것이다. 일당으로 치면 하루에 600원이 조금 넘는 액수다. 출소할 때 지급받는 작업상여금이 새로운 출발에 최소한의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정도의 돈으로는 교도소 내에서 밑반찬을 사기에도 부족할 뿐이다.
정부는 재소자들의 작업으로 매년 280억 원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출소자들이 사회복귀에 실패할 경우의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턱도 없는 액수이다. 기결 재소자들의 경우 처음 교도소에 들어오는 사람이 45.8%에 불과하고 나머지 54.2%는 두 번, 세 번, 네 번째 감옥에 오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작업상여금의 현실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작업의 내용도 문제다. 작업을 하더라도 출소 이후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감옥에서 진행되는 작업은 대부분 50∼60년대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작업은 석방 후 정직한 삶을 얻을 수 있는 수형자의 능력을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유엔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현재 진행되는 작업과 작업상여금은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라는 형사정책적 측면에서도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교도소에서 배운 기술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4.8%에 그쳤다.
떡잠과 칼잠
감옥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정당국이 제시하는 구금시설의 수용정원은 5만8000명인데, 1998년의 경우 1일 평균 구금자가 6만7883명이었고, 1999년에는 6만8087명, 2000년에는 6만3472명이었다.
법무부가 제공하는 통계만 본다면, 감옥에는 적정한 인원보다 ‘조금’ 많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정한 수용정원부터 잘못됐다.
한국도 지난 1990년에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자유권조약)’ 10조는 “자유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은 인간의 고유한 존엄에 기초한 인간적인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앞서 소개한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은 인간적인 처우를 위해 최소한 재소자들에게 독방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 행형법에도 규정되어 있는데, 행형법 제11조는 “수용자는 독거 수용한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혼거 수용할 수 있다”고 독방원칙을 제시하며, 공동수용을 단서조항으로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부득이하게 혼거수용하는 경우에도 “수용자의 형기, 죄질, 성격, 범수(犯數), 연령, 경력 등을 참작하여 거실을 구별수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은 그렇다치고, 그럼 현실은 어떤가. 재소자들 중에서 독방을 쓰는 경우는 7% 정도고, 나머지는 전부 혼거방에 수용되어 있다. 단지 7% 남짓만 독방생활을 한다는 것은 감옥이 원칙(인권, 교정교화, 사회복귀 등을 위한)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혼거방의 현실은 또 어떤가. 역시 98년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도대체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감옥에 갇혔다는 이유만으로 강요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당신이 수용되었던 감방의 화장실을 포함한 면적은 몇 평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감방에 수용된 인원은 대략 몇 명이었습니까?”란 질문에 대한 출소자들의 답변들이다.
광주교도소 2동 15방은 3.45평에 15명/광주교도소 5동 12방은 4.5평에 33명/대구교도소 2동 3방은 약 4평에 20명/대전교도소 2동 4방은 1.4평에 9명….
놀라운 결과다. 감방에서 화장실 면적을 빼면 누워서 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과밀 수용이다. 좁은 방도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방도 있으나, 평균적으로 2.3평 정도에 8명의 재소자가 생활하고 있다. 잠을 자야 하고,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텔레비전(설치된 경우에 국한되지만)을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편지를 쓰고, 공부를 하고,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 매우 좁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기본권이 일상적으로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감방에 건달이라 불리는 조직폭력배가 끼어 있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건달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두 어깨를 바닥에 붙이고 자는 소위 ‘떡잠’을 잘 수 있지만, 일반 재소자들은 모로 누워서 자는 ‘칼잠’을 잘 수밖에 없다. 감방 내에서 행해지는 구타, 금품 탈취, 괴롭히기, 왕따 등도 역시 일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과밀수용은 교정교화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97년의 경우 기결 구금자가 3만3502명이었고, 1998년에는 3만6645명, 1999년에는 3만9438명 등으로 꾸준히 늘어났지만, 미결구금자의 경우에는 1997년에는 2만5825명, 1998년에는 3만1238명, 1999년 2만8609명, 2000년 2만4745명 등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이런 상황은 IMF 이후 생계형 범죄의 급증, 김대중 정권 초기 검찰의 불구속 위주의 수사방침 등에 기인한 것이다. 검찰은 언제나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만, 기실 수사의 편의나 구속 수사로 인한 미결구금상태가 주는 징벌효과 때문에 말로만 불구속 수사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문자 그대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진행해 미결구금자의 수를 대폭 줄인다면, 급한 대로 과밀수용의 문제는 다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과밀수용 해소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들을 대폭 줄이는 방안이나, 사회봉사명령 등의 자유형으로 대체해 감옥에 들어갈 사람의 수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사회봉사명령제도는 처벌의 효과, 노력 봉사를 통한 사회기여도, 사회복귀에 별다른 장애가 없는 점 등, 자유형을 대체할 처벌제도로서 매주 적합하다. 처벌받는 사람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저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동안 봉사작업에 종사함으로써 처벌의 효과가 충분하다. 교정교화도 못하고, 관리도 못하는 상황에서 잔뜩 사람만 가둬두고 있는 상태는 누가 봐도 크게 어리석은 상태가 아닐 수 없다.
“범죄자에게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
감옥에서 재소자들이 겪는 고통은 한둘이 아니다. 아파도 제대로 진료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 죽게 된 상태가 되어서야 병원 구경을 해본 재소자도 한둘이 아니다. 감옥에 가는 것 자체도 유전무죄라지만, 감옥에서의 대접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야말로 목숨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채로 ‘때우기’를 하고 있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어느 잡범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
감옥의 각종 규율과 징벌, 면회에 대한 규정과 실질적인 적용, 종교생활, 식사, 편지 등 차라리 제대로 된 것, 문제없는 것을 찾는 게 훨씬 수월한 작업일 게다.
도대체 다른 분야는 모두 발전하고 있는데, 왜 유독 감옥만이 고집스럽게 아무런 변화도 없이 인권 사각지대의 오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인권단체에는 감옥과 관련한 인권침해 사건들이 거의 매일 접수되고 있다. 재소자들이 보낸 진정서를 다 읽어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은 민원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저런 억울한 사정을 접하다 보면, 역시 예의 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왜, 유독 감옥만이 이 지경일까.
앞서 지적한 문제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옥에 근무하는 교정직 공무원들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옥과 관련된 인권문제가 제기될 때 만나게 되는 교정직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시절은 변했고, 지금이 일제시대나 5공 치하도 아닌데, 괜히 별것도 아닌 문제를 인권단체가 나서 크게 만든다는 핀잔을 수도 없이 들어보았다. 요즘엔 국가인권위도 있는데, 왜 법적 권한도 없는 민간단체까지 나서느냐는 소리까지 보태졌다. 교정직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평소 생각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교정직 공무원들의 발언 몇 가지를 모은 것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재소자 사망사건에 대해 “범죄자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 범죄자에게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 프랑스에서 극우파 르펜이 선전하는 것도 프랑스가 범죄자들에게 너무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범죄자에게 잘 치료해 주고, 잘 대해주라고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죄 진 사람은 그에 맞는 고생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죄 짓지 않는다.” 최근 인권단체 심포지엄에 참석한 법무부 교정국 한 간부의 발언.
“우리는 교정의 고객인 국민의 뜻에 부합되는 수용관리를 해야 한다. 수용자 의료환경 개선 등 기본적인 처우향상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로 인해 수용질서가 이완되거나 수용자가 교정기관의 주인인 양 행세하면서 교정 본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은 부당한 주장에는 결연한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 또한 일부 인권단체가 일방적으로 수용자의 입장에서 교정의 본래 임무수행을 저해하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교정기관이나 교정공무원은 수용자에게 보다 편안한 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국민이 바라는 교정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한 교정공무원이 법무부 교정국 홈페이지에 올린 글.
“특히, 최근 수용자들이 사회의 인권신장 분위기에 편승해 직원의 정당한 업무집행에 대해서도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고 있으며, 작년 11월 26일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시행됨에 따라 수용자의 진정과 인권위원들의 교정시설에 대한 조사방문 등으로 일선 현장의 업무부담이 더욱 가중되었지만, 우리 직원들이 커다란 동요 없이 법과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엄정하게 업무를 수행한 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법무부 교정국장의 신년사 중에서.
격무와 박봉, 폐쇄된 공간에서 일해야 하고, 거친 사람들과 생활해야 하는 처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교정직 공무원들을 몰아붙이자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교정직 공무원들은 인권과 너무도 먼 거리에 있고, 인권을 그저 거추장스럽고, 업무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이나, 재소자들의 배부른 소리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을 시비 걸자는 것이다. 우리의 교정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전국 여러 곳의 교정시설들의 홈페이지라도 들어가 보라. 그전에는 밥을 먹거나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일을 바닥에서 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식탁이 제공되었다거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재소자들이 손목시계도 착용할 수 있게 되어서, 보다 계획성 있고, 알찬 생활을 하고 있다는 등의 자랑거리가 넘쳐나고 있다.
단 한 시간의 인권교육(물론 인권교육이 단순한 인권에 관한 지식정보의 전달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재소자들을 그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재소자들을 맡겨둘 수는 없다. 감옥 운영과 관련해 각종 외부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외부위원회를 만든다든지, 국가인권위의 역할을 보다 강화한다든지, 교정기관을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면서 독립시켜 주든지 하는 대책들이 있어야 한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된다.
이제는 감옥이 변해야 한다.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라고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신체의 자유를 제약당하는 것도 모자라 더 큰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소자들의 더 큰 고통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얻는 것이 하나라도 있냐고 묻고 싶다.
더 이상 감옥이 범죄를 학습하고, 범죄의 재생산을 모의하는 곳이거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열악한 곳, 사회로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보다는 다시 들어오는 사람이 많은 곳이어선 안 된다. 이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월드컵에서 꿈의 4강을 이루었다는 등 남들이 챙겨보지도 않는 자랑은 그만두고, 우리 사회가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인지, 재소자들의 기본권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인지에 대해 국제적이고, 문명적이고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자.
감옥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법률은 행형법이다. 이 법의 제1조 [목적]은 감옥의 존재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형자를 격리하여 교정교화하며 건전한 국민사상과 근로정신을 함양하고 기술교육을 실시하여 사회에 복귀하게 하며….”
행형법은 단순한 격리가 아니라 교정교화를 감옥의 존재이유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니, 단순히 ‘격리만’ 하여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교정당국은 2000년 한햇동안 재소자의 사망사건에 대해 12명의 재소자가 자살했다고 발표하였을 뿐, 다른 사망사건에 대해 일체의 언급도 없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된 재소자들의 잇단 사망사건의 경우 구타에 의한 것이든 병이 깊어진 탓이든 도무지 소생가능성이 없는 다 죽게 된 상태에서 감옥 밖으로 나온 재소자들은 그로부터 얼마 후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경우는 교정당국의 사망사고 통계에서는 빠진다. 교정당국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소자들이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생명권마저 이렇게 다뤄지고 있는 상황이니, 다른 권리의 침해는 그저 일상적인 일일 뿐이다.
감옥에는 심각한 인권문제가 많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래도 중요하게 생각해 봤으면 하는 몇 가지 문제만을 다루도록 한다. 아시다시피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옥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 지면 관계상 극히 일부밖에 다룰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하루에 600원을 벌다
2000년 한햇동안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뒤 법무부 교정국이 낸 교육훈련 성과보고에 따르면 초중고 과정에 재학중인 기결수는 2342명이다. 중입, 고입,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는 1204명이고 대입 합격자는 18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 통계에서 말하는 ‘초중고 과정에 재학중인 기결수’의 수는 소년범 재소자 2342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소년범 재소자의 경우에는 어찌되었든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재소자들 중 20세 미만의 재소자가 1046명이고, 특히 18세 미만이 145명이나 되는데도, 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이 진행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연령에 해당되는 30세 미만의 재소자가 1만4222명이나 되는데도, 1년 동안의 대입 합격자(전문대 포함)가 18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천안이나 김천소년교도소처럼 ‘검정고시 학과반’이라도 운영하는 소년교도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감옥에서 교육기회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형법 35조 이하는 재소자들의 작업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재소자들은 강제적으로 작업에 종사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재소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작업이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재소자의 교정교화,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
행형법 39조에 따르면 작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모두 국고로 잡히고, 재소자들에게는 (작업이 처벌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임금 대신 작업상여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작업상여금은 출소할 때 재소자들에게 지급된다. 2000년 한햇동안 작업에 나선 2만3618명의 재소자들이 벌어들인 돈은 모두 280여억 원(1명의 재소자가 한햇동안 120만 원 정도의 수익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이었으나, 작업상여금으로 지급된 돈은 59억 원 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1년간 꼬박 작업에 나선 재소자의 경우 평균 작업상여금 수령 액수는 22만8114원인 것이다. 일당으로 치면 하루에 600원이 조금 넘는 액수다. 출소할 때 지급받는 작업상여금이 새로운 출발에 최소한의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정도의 돈으로는 교도소 내에서 밑반찬을 사기에도 부족할 뿐이다.
정부는 재소자들의 작업으로 매년 280억 원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출소자들이 사회복귀에 실패할 경우의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턱도 없는 액수이다. 기결 재소자들의 경우 처음 교도소에 들어오는 사람이 45.8%에 불과하고 나머지 54.2%는 두 번, 세 번, 네 번째 감옥에 오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작업상여금의 현실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작업의 내용도 문제다. 작업을 하더라도 출소 이후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감옥에서 진행되는 작업은 대부분 50∼60년대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작업은 석방 후 정직한 삶을 얻을 수 있는 수형자의 능력을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유엔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현재 진행되는 작업과 작업상여금은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라는 형사정책적 측면에서도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교도소에서 배운 기술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4.8%에 그쳤다.
떡잠과 칼잠
감옥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정당국이 제시하는 구금시설의 수용정원은 5만8000명인데, 1998년의 경우 1일 평균 구금자가 6만7883명이었고, 1999년에는 6만8087명, 2000년에는 6만3472명이었다.
법무부가 제공하는 통계만 본다면, 감옥에는 적정한 인원보다 ‘조금’ 많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정한 수용정원부터 잘못됐다.
한국도 지난 1990년에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자유권조약)’ 10조는 “자유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은 인간의 고유한 존엄에 기초한 인간적인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앞서 소개한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은 인간적인 처우를 위해 최소한 재소자들에게 독방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 행형법에도 규정되어 있는데, 행형법 제11조는 “수용자는 독거 수용한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혼거 수용할 수 있다”고 독방원칙을 제시하며, 공동수용을 단서조항으로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부득이하게 혼거수용하는 경우에도 “수용자의 형기, 죄질, 성격, 범수(犯數), 연령, 경력 등을 참작하여 거실을 구별수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은 그렇다치고, 그럼 현실은 어떤가. 재소자들 중에서 독방을 쓰는 경우는 7% 정도고, 나머지는 전부 혼거방에 수용되어 있다. 단지 7% 남짓만 독방생활을 한다는 것은 감옥이 원칙(인권, 교정교화, 사회복귀 등을 위한)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혼거방의 현실은 또 어떤가. 역시 98년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도대체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감옥에 갇혔다는 이유만으로 강요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당신이 수용되었던 감방의 화장실을 포함한 면적은 몇 평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감방에 수용된 인원은 대략 몇 명이었습니까?”란 질문에 대한 출소자들의 답변들이다.
광주교도소 2동 15방은 3.45평에 15명/광주교도소 5동 12방은 4.5평에 33명/대구교도소 2동 3방은 약 4평에 20명/대전교도소 2동 4방은 1.4평에 9명….
놀라운 결과다. 감방에서 화장실 면적을 빼면 누워서 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과밀 수용이다. 좁은 방도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방도 있으나, 평균적으로 2.3평 정도에 8명의 재소자가 생활하고 있다. 잠을 자야 하고,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텔레비전(설치된 경우에 국한되지만)을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편지를 쓰고, 공부를 하고,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 매우 좁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기본권이 일상적으로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감방에 건달이라 불리는 조직폭력배가 끼어 있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건달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두 어깨를 바닥에 붙이고 자는 소위 ‘떡잠’을 잘 수 있지만, 일반 재소자들은 모로 누워서 자는 ‘칼잠’을 잘 수밖에 없다. 감방 내에서 행해지는 구타, 금품 탈취, 괴롭히기, 왕따 등도 역시 일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과밀수용은 교정교화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97년의 경우 기결 구금자가 3만3502명이었고, 1998년에는 3만6645명, 1999년에는 3만9438명 등으로 꾸준히 늘어났지만, 미결구금자의 경우에는 1997년에는 2만5825명, 1998년에는 3만1238명, 1999년 2만8609명, 2000년 2만4745명 등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이런 상황은 IMF 이후 생계형 범죄의 급증, 김대중 정권 초기 검찰의 불구속 위주의 수사방침 등에 기인한 것이다. 검찰은 언제나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만, 기실 수사의 편의나 구속 수사로 인한 미결구금상태가 주는 징벌효과 때문에 말로만 불구속 수사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문자 그대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진행해 미결구금자의 수를 대폭 줄인다면, 급한 대로 과밀수용의 문제는 다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과밀수용 해소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들을 대폭 줄이는 방안이나, 사회봉사명령 등의 자유형으로 대체해 감옥에 들어갈 사람의 수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사회봉사명령제도는 처벌의 효과, 노력 봉사를 통한 사회기여도, 사회복귀에 별다른 장애가 없는 점 등, 자유형을 대체할 처벌제도로서 매주 적합하다. 처벌받는 사람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저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동안 봉사작업에 종사함으로써 처벌의 효과가 충분하다. 교정교화도 못하고, 관리도 못하는 상황에서 잔뜩 사람만 가둬두고 있는 상태는 누가 봐도 크게 어리석은 상태가 아닐 수 없다.
“범죄자에게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
감옥에서 재소자들이 겪는 고통은 한둘이 아니다. 아파도 제대로 진료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 죽게 된 상태가 되어서야 병원 구경을 해본 재소자도 한둘이 아니다. 감옥에 가는 것 자체도 유전무죄라지만, 감옥에서의 대접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야말로 목숨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채로 ‘때우기’를 하고 있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어느 잡범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
감옥의 각종 규율과 징벌, 면회에 대한 규정과 실질적인 적용, 종교생활, 식사, 편지 등 차라리 제대로 된 것, 문제없는 것을 찾는 게 훨씬 수월한 작업일 게다.
도대체 다른 분야는 모두 발전하고 있는데, 왜 유독 감옥만이 고집스럽게 아무런 변화도 없이 인권 사각지대의 오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인권단체에는 감옥과 관련한 인권침해 사건들이 거의 매일 접수되고 있다. 재소자들이 보낸 진정서를 다 읽어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은 민원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저런 억울한 사정을 접하다 보면, 역시 예의 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왜, 유독 감옥만이 이 지경일까.
앞서 지적한 문제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옥에 근무하는 교정직 공무원들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옥과 관련된 인권문제가 제기될 때 만나게 되는 교정직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시절은 변했고, 지금이 일제시대나 5공 치하도 아닌데, 괜히 별것도 아닌 문제를 인권단체가 나서 크게 만든다는 핀잔을 수도 없이 들어보았다. 요즘엔 국가인권위도 있는데, 왜 법적 권한도 없는 민간단체까지 나서느냐는 소리까지 보태졌다. 교정직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평소 생각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교정직 공무원들의 발언 몇 가지를 모은 것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재소자 사망사건에 대해 “범죄자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 범죄자에게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 프랑스에서 극우파 르펜이 선전하는 것도 프랑스가 범죄자들에게 너무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범죄자에게 잘 치료해 주고, 잘 대해주라고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죄 진 사람은 그에 맞는 고생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죄 짓지 않는다.” 최근 인권단체 심포지엄에 참석한 법무부 교정국 한 간부의 발언.
“우리는 교정의 고객인 국민의 뜻에 부합되는 수용관리를 해야 한다. 수용자 의료환경 개선 등 기본적인 처우향상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로 인해 수용질서가 이완되거나 수용자가 교정기관의 주인인 양 행세하면서 교정 본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은 부당한 주장에는 결연한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 또한 일부 인권단체가 일방적으로 수용자의 입장에서 교정의 본래 임무수행을 저해하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교정기관이나 교정공무원은 수용자에게 보다 편안한 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국민이 바라는 교정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한 교정공무원이 법무부 교정국 홈페이지에 올린 글.
“특히, 최근 수용자들이 사회의 인권신장 분위기에 편승해 직원의 정당한 업무집행에 대해서도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고 있으며, 작년 11월 26일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시행됨에 따라 수용자의 진정과 인권위원들의 교정시설에 대한 조사방문 등으로 일선 현장의 업무부담이 더욱 가중되었지만, 우리 직원들이 커다란 동요 없이 법과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엄정하게 업무를 수행한 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법무부 교정국장의 신년사 중에서.
격무와 박봉, 폐쇄된 공간에서 일해야 하고, 거친 사람들과 생활해야 하는 처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교정직 공무원들을 몰아붙이자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교정직 공무원들은 인권과 너무도 먼 거리에 있고, 인권을 그저 거추장스럽고, 업무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이나, 재소자들의 배부른 소리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을 시비 걸자는 것이다. 우리의 교정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전국 여러 곳의 교정시설들의 홈페이지라도 들어가 보라. 그전에는 밥을 먹거나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일을 바닥에서 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식탁이 제공되었다거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재소자들이 손목시계도 착용할 수 있게 되어서, 보다 계획성 있고, 알찬 생활을 하고 있다는 등의 자랑거리가 넘쳐나고 있다.
단 한 시간의 인권교육(물론 인권교육이 단순한 인권에 관한 지식정보의 전달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재소자들을 그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재소자들을 맡겨둘 수는 없다. 감옥 운영과 관련해 각종 외부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외부위원회를 만든다든지, 국가인권위의 역할을 보다 강화한다든지, 교정기관을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면서 독립시켜 주든지 하는 대책들이 있어야 한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된다.
이제는 감옥이 변해야 한다.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라고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신체의 자유를 제약당하는 것도 모자라 더 큰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소자들의 더 큰 고통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얻는 것이 하나라도 있냐고 묻고 싶다.
더 이상 감옥이 범죄를 학습하고, 범죄의 재생산을 모의하는 곳이거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열악한 곳, 사회로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보다는 다시 들어오는 사람이 많은 곳이어선 안 된다. 이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월드컵에서 꿈의 4강을 이루었다는 등 남들이 챙겨보지도 않는 자랑은 그만두고, 우리 사회가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인지, 재소자들의 기본권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인지에 대해 국제적이고, 문명적이고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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