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가슴은 적어도 세 살 이후 햇볕을 보지 못한다. 여자아이의 수영복은 가슴을 감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학습시킨다. 봉긋 솟기 시작한 젖가슴에 처음 브래지어를 두를 땐 한동안 갑갑함으로 시달리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도 못한다.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일 때만큼은 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낼 수 있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모유를 먹일 때조차도 섹스의 상징물로 굳어져버린 젖가슴을 아무 데서나 드러내지 못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브래지어는 한때 여성운동과 저항문화의 영향으로 화형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기 몸을 아름답게 꾸밀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교묘하게 상업적으로 포장되면서 브래지어는 다시 여성의 필수품이 됐다.

여성들은 여름에 특히 바쁘고 힘들다. 노출이 많은 계절, 겨드랑이는 물론이고 팔다리의 털도 부지런히 깎고 뽑아야 한다. 찌는 듯한 더위에 가슴팍에 땀띠가 솟아도 꽉 끼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는 문 밖을 나서지 못한다. 더운 여름 얇은 셔츠 아래 도드라진 남자의 젖꼭지나 축 늘어진 가슴이 얄밉기만 하다.

브래지어는 또 어떤 여성이나 착용하지만 착용한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실례가 되는 요상한 물건이다. 어깨 끈이 옷 밖으로 드러나 보일까봐 늘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떼었다 붙였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끈,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 끈도 나왔다. 끈 부분이 패션이 되자 브래지어 끈 같지 않은 끈을 단 상품이 올 여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추운 겨울이 때로 반가운 이유는 두꺼운 옷 덕분에 들킬 염려 없이 브래지어 없는 자유로운 가슴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좀 더 용기를 내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피곤한 발을 물 속에 담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상하고 불편한 물건을 가슴에서 벗어 던지는 거다. 브래지어는 내가 내 몸에 주는 선택일 뿐이며, 가슴은 자유롭게 숨쉬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신감을 갖자. 잘록한 허리에 터질 듯 봉긋한 가슴을 원하는 남자에겐 대신 바비 인형을 선물하자.

황지희 본지 기자 nabts@pspd.org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2/10/30 00:00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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