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아시아에서 드물게 식민통치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다. 1855년 보링조약으로 영국에 자유무역항을 내주고 치외법권을 인정하였으나 프랑스와 영국 사이를 오가는 그네뛰기 외교에 성공해 식민지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1930년을 기점으로 태국은 동남아시아 나라 중 가장 부유하고 국력이 강한 나라로 성장하여 이웃 나라의 선망을 받고 있다.

태국은 라만 7세가 서구민주주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인 1932년까지 그 이름을 시암이라 했다. 그 후 41년 간 군부독재가 이어졌다. 군사독재는 71년 타놈 키티캬촌 장군의 철혈정치로 극에 달했다. 73년 그는 민간인 반대세력에게 축출당해 이제야 민주주의가 찾아오나 했으나 3년 뒤 다시 초마난 장군이 정권을 탈취했다.

그 후 쿠데타가 끊이지 않아 군장성, 군과 야합한 민간 연정이 잇따라 정권을 장악했다. 92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추난이 총리가 되기까지 계속된 정쟁으로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은 크게 위협을 받았으며 정치권의 부정부패는 극심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졌다.

오랜 독재로 민중생존권은 바닥수준

2001년 정보통신 재벌인 탁신 시나왓이 추난에 이어 총리가 되었다. 그가 이끄는 태국애국당은 하원 500석 중 300여 석을 장악한 가운데 시나왓 총리는 자신이 예순 살이 되는 7년 뒤에 스스로 은퇴한다고 밝혔지만 서방언론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분위기다. 태국의 지식인들은 탁신을 ‘민간복을 입은 독재자’라고 비난하지만 일반국민, 특히 빈민들은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부르짖는 새 총리에 어느 정도 매혹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민들에게 100만 바트를 융자해 발전기금으로 삼게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30바트의 건강자금을 지급하고 앞으로 3년간 모든 농가부채를 탕감해 주는 프로그램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솔깃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6300만 태국인에게 진정한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줄 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다.

오랜 독재로 민중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은 것과 비례해 태국의 인권상황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특히 농민 노동자의 인권문제는 농촌을 잠깐 여행해보면 그 심각성을 곧 느낄 수 있다. 또한 태국의 인권상황은 이웃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야 한다. 이웃 나라들의 인권상황이 태국의 그것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 예로 북부 치앵라이는 미얀마 군의 소수민족 말살정책으로 지난 15년 간 샨족, 카렌족, 몬족을 축출하고 있다. 미얀마 군인들은 소수 민족 독립군들의 가족 관계를 끊기 위해 다른 지역에 수용소를 짓고 강제 이주를 시키고 있다. 강제수용소의 소수민족 부녀자들은 집단 강간을 피하기 위해 태국 등지로 잠입을 기도한다. 잠입 도중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죽임을 당하고 살아서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방콕 등의 대도시에 팔려가 성노예로 전락한다. 홍등가로 세계에 잘 알려진 방콕의 팝폰 지역은 태국 여성은 물론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여성들로 북적댄다.

국경지대를 떠도는 소수민족 난민 문제

지난해 중반까지 태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미얀마가 태국을 속국으로 삼은 껄끄러운 과거사도 한 이유다. 가까이로는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의 군부독재가 많은 반독재 운동가들을 태국으로 망명케 하였고 그들이 태국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독재를 피해 국경을 넘어오는 미얀마 소수민족 난민들도 태국에겐 골칫거리다. 수만 명의 피난민들은 유엔으로부터 아직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국제 NGO들의 원조에 의지해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나라의 관계를 경직시키는 또 다른 문제는 마약이다. 국제마약금지기구들의 통계에 따르면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와족의 연합해방군 1만5000명은 연간 5억 개의 히로인 정제를 생산해 태국으로 밀매하거나 태국을 거쳐 다른 나라로 밀매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두 나라의 긴장관계는 태국 국방장관이 지난해 7월 미얀마 수도 랑군을 방문하고, 두 달 뒤 미얀마 군부의 1인자 킨눈트가 방콕을 답방하면서 어느 정도 누그러진 상태다. 그래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바라는 태국 정부의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적극적인 성원은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태국 정부는 지난 8월 북부 칸차나 부리주에서 미얀마 민주세력의 지도자 31명을 불법노동자라는 이유로 체포해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 있다. 이는 미얀마 군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탁신 수상의 외교적 몸짓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95%의 국민이 불교를 믿는 이 나라는 평화와 자비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태국 정부는 국경지대 난민들을 구호하는 국제 민간 종교기구들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으며 1989년 이후 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해 자기 나라를 떠난 40만 명이 넘는 양심세력을 태국 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인도의 소수민족 나가족의 독립운동본부도 방콕에 있다. 부자 나라도 아니면서 이웃나라 소수민족에게까지 자유의 터전을 제공하는 태국의 태도는 지난 7년 간 겨우 4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우리나라와는 크게 대비된다.

박경서
2002/10/30 00:00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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