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쓴 대한민국 빈곤 보고서- 절망의 대물림, 그 끝없는 추락
2000/2000년 01월 :
2000/01/01 00:00
지난 12월 19일 오전 9시 3분 지하철 1호선 서울역 플랫폼 맨 앞쪽. 남루한 청재킷을 입은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박태식 씨(49세). 구로행 지하철이 서자 그는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올라탄다. 그뒤 재빨리 검은 가방에서 하모니카를 꺼낸 그는 연주를 시작한다. 오늘 첫곡은 ‘나의 살던 고향’.
박씨에게 지하철은 세 명의 식솔을 먹여살리는 직장이다. 일요일은 벌이가 좋은 편. 오후 5시경까지 적당히 운이 따르면 2만~3만 원은 손에 쥘 수 있다.
구걸이라도 해서 교육비 벌어야 할 형편
전라북도 임실이 고향인 박씨가 서울로 혈혈단신 상경한 것은 19년 전. 당시 스무살이 되던 해에 밭을 쟁기질하다가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실명한 뒤 홀로 살 길을 마련해보겠다며 떠난 길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찾아간 곳은 상계동에 위치한 홍파복지원. 그는 3년 동안 안마와 물리치료를 배우고 안마소를 전전하다가 친구 소개로 똑같이 앞을 못 보는 한 여인과 결혼한다. 맞벌이 부부로 3남매를 키우며 지낸 10여년간이 박씨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88년 부인이 위암으로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뜨자 집안은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동안 부인과 함께 푼푼이 모아왔던 종잣돈과 빚까지 얻어 병치레에 다 쏟아붓고 나니 끼니 해결조차 막막해진 것이다. 그나마 그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은 맞벌이 덕택이었다. 그가 안마사로 일을 한다지만 남자 안마사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벌이가 시원찮았던 것이다.
박씨는 그때부터 돈통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방구석에 눌러앉아 연락처를 남겨놓은 안마시술소로부터의 전화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아들과 새해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남매가 있다. 하다못해 구걸을 해서라도 자식들의 교육비라도 벌어야했다.
“1급 장애인으로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매월 45만원을 정부로부터 보조받고 있어요. 그런데 이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구임대 아파트(13평형) 관리비만 15만 원이고, 여기에 교육비를 지출하고 나면 그만입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도 없고요.”
서울시내 전역의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맹인은 어림잡아 200여명. 이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정부 보조가 최저생계비에도 크게 미달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최근 한가지 큰 고민이 생겼다. 관할구청이 새해부터는 그나마 나오던 정부 지원마저 없어진다는 통고를 해온 것이다. 큰아들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부양능력이 있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아직도 매양 길거리를 쏘다니는 자식에게 기댄다는 것 자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큰 수입원을 잃은 것이다.
“구청장을 직접 만나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더도말고 한 3년만 더 봐달라고 말입니다. 큰아들이 졸업했어도 싸돌아다니는데 재간이 있습니까. 그 녀석도 이제 곧 군 입대할 겁니다. 구걸로만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한달 9일 취로사업으로 네식구 입에 풀칠
실제 생활상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가족관계만으로 복지혜택을 저울질하는 폐단은 단지 박씨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재개발 아파트 건축이 한창인 85번 종점 봉천5동. 한쪽에선 고층아파트가 하늘로 치솟고 있지만 그 바로 밑엔 영하의 온도를 가리기도 힘든 베니아 합판으로 둘러싸인 판잣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성칠성 할머니(68세). 그도 이 무허가 판자촌에서 8년째 중풍을 앓고 있는 남편과 손녀딸 2명과 함께 살고 있는 주민이다. 성 할머니의 주 수입원은 일당 1만 7,000원의 취로사업. 하지만 이것조차 저소득자로 분류돼 있는 그에겐 한달에 9일로 제한돼 있다.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에서 누락된 탓이다. 하지만 큰아들은 되레 자신의 딸 둘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은 제몸 하나 건사하기도 빡빡해 거의 연락을 끊고 살다시피한다.
“그래도 지금이 나아요. 이웃들의 온정 때문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편이죠. 좀 덜 먹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건강 때문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해요. 내일모레가 칠십이지만 아직도 세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니까요.”
그는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이젠 식사시간이 끝날 때가 됐다”며 빗자루와 부삽을 들고 총총히 골목길을 나섰다. 성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동네 교회분들이 다녀갔고, 이웃집 아줌마가 반찬거리를 놓고 갔다. 국가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를 이같은 손길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최근 참여연대와 UNDP가 발표한 한국의 빈곤보고서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던 적이 있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빈곤층이 확대됐다는 이 보고서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것이다. 빈곤층에 대한 통계를 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해 그 잣대에 따라 때론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라고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다. 강남구 개포동 570 구룡마을은 통계에서 제외된 그 대표적 예로 볼 수 있다.
주민등록 발급받지 못하는 구룡마을 사람들
지하철 1호선에서 껌팔이를 하고 있는 한 할머니를 찾기 위해 구룡마을에 간 것은 지난 12월 18일 오전 8시 30분경. 수은주가 영하로 급강하한 날이다. 710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구룡마을 입구에 이르니 대모산 위로 한 뼘 정도 솟아 있는 해가 게딱지처럼 낮게 포복한 판잣집을 비추고 있었다. 제법 매워진 바람은 판자촌 2,150가구의 거적같은 삶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오늘은 노인정 현판식이 있는 날입니다. 오후 2시에 노인분들은 모여주십시오.”
“오늘은 무료 급식이 있는 날입니다. 노인분들은 점심식사하러 무료급식소로 나와주십시오.”
마을회관 앞에 이르자 흡사 포로수용소에나 있을 법한 철탑에 매달린 4개의 스피커에서 연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지사항이 울려퍼졌다.
‘7-63-9’. 문짝에다 검은 펜으로 번지수를 써놓은 껌팔이 할머니의 집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사전에 전화약속을 했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할머니는 손녀 딸이 감기에 심하게 걸려 약을 사러 일찍 집을 나섰던 것을 나중에 전화로 확인했다.
되돌아 가는 길에 이곳 사정을 알아볼 요량으로 구룡마을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구룡마을 자치회 김원심 총무(52세ㆍ여)는 기자를 만나자 대뜸 “법의 혜택을 전혀 못받고 산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지지 않는다. 무허가촌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거의 주민등록지를 친구 또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다른 곳에 두고 있다. 이들에게 없는 것은 주민등록뿐만 아니다. 그에 따르는 복지혜택이다. 가령 이들은 일용 잡부로 노가다판을 전전하는 등 최하층의 삶을 어렵사리 이어가고 있지만 영세민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제 살고 있는 주민등록지에서 꺼리기 때문이다. 취로사업과 공공근로도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구룡마을자치회는 얼마 전 관할 동사무소에 33명 노인들이 취로사업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주민등록이 등재된 관할 동사무소에 신청하라”는 말만 들었다. 실제 개포동에 살고 있지만 개포동 주민은 아닌 것이다. 이곳 뿐만이 아니라 서울지역 대부분의 빈민촌에서도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다반사다. 각 구청의 재정부담으로 통계에서 누락되는 영세민도 많다. 이들에게는 최근 제정된 생활보호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이다.
류정순 가정학 박사는 “맹인은 장애 1등급으로 가장 많은 정부 지원을 받지만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수혜 수준이 낮고, 지자체의 재정 때문에 빈민들의 대량 거주지역의 경우 영세민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밀 조사작업과 함께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넘자 제일 먼저 무료급식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할머니 품에 안겨 들어온 한서희양(7세)이었다. 그는 “육십 밤만 지나면 아빠가 학교에 보내준다고 했다”며 토끼 모양의 가방에서 장난감 핸드폰을 멈칫거리면서도 자랑스레 내보인다.
조금 있으니까 명동 노상에서 액세서리를 팔면서 모은 돈으로 상점을 운영하려다가 다 까먹고 이곳으로 흘러온 박전화 할머니(58세), 지난해 8월에 45만 원 받고 일하던 폐지공장에서 쫓겨나 경제력이 없는 두 남매 생계가 막연해졌다고 하소연하는 현아무 할머니(75세)등 사연 많은 노인들이 줄을 이었다.
“새마을 일(취로사업)이라두 시켜줬으믄 좋겠어유. 지난 여름엔 수해났고, 불도 여러 차례 났어유. 이걸 어떻게 갚는데유. 내 나이 일흔다섯이지만 기를 쓰고 일할 자신이 있다구요. 젊은 사람들보다도요…” 현아무 할머니의 눈자위가 금세 붉게 물든다. 취재를 마치고 올라탄 710번 버스는 은마아파트,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나 광화문 쪽으로 달렸다.
9개월치 아파트관리비 못내
백용선 씨(37세ㆍ여). 프레스센터 뒷길에서 만난 그는 개조한 리어카에 빵을 놓고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영업은 오늘이 처음. 집을 나올 때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골라 하루 장사를 한다. 하루 매상은 많으면 10만 원까지, 하지만 재료비 빼고 리어카 임대료 빼면 남는 것은 3만~4만 원이 고작이다. 한달 사글세 20만 원과 중학생인 두 딸의 교육비에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3~4년 전에는 남편과 함께 식당을 개업하기도 했지만 장사도 안되고 그나마 남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다고 했다. 남편은 화교다. 따라서 고향이 전북인 백씨 역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국적자다. 영세민 혜택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처지다.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중산층을 찾아봤다. 월계동의 공공임대아파트에서 만난 김병기 씨(51세). 토목하청업자인 그는 IMF 이전까지만도 승용차와 화물차를 1대씩 굴리면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9개월치 아파트 관리비를 못낼 정도로 어렵다. 그가 쫓겨날 지경에 처했다는 말에 십시일반으로 이웃 사람들이 이중 일부를 분담해 냈다.
“IMF 직전 전주의 국민연금관리공단 전북회관의 하청일을 계약했습니다. 우리에게 하청을 준 두설토건은 잘만 지으면 다른 지역의 공단회관도 짓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빚을 내가며 자재를 사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빚만 1억 원이 되더라고요. 한번 작품 만들면 미래가 보장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두설토건이 부도를 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어떻게 빌린 돈인데 공중에 뜬 것 아닙니까. 거의 모든 공사가 하청으로 이뤄지지만 하청관계는 부도시 보호가 안돼요. 하는 수 없이 자재를 고철값에 팔아넘기고 빚더미에 올라앉았죠. 그 전에 일한 인건비라도 건지려고 했는데 5~6개월 어음으로 주는 바람에 큰 덕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씨 집에 앉아 있는 동안 여러번 전화가 울렸으나 받지 않았다. 그는 부인이 부업하기 위해 어제부터 개통한 전화라고 했다. 그 전화기 옆엔 1박스를 조립하면 4,000원의 수고비가 지급되는 콘센트 조립 부품이 널려 있다.
“외국에서는 임대주택의 경우 관리비가 밀려도 쫓아내지 않는답니다. 더이상 쫓아낼 곳이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서 무얼하겠어요.” 옆에 앉아 있던 전은행 씨가 김씨가 못 다한 말을 하려는 듯 거든다.
“임대주택이지만 관리인원이 일반 분양 아파트보다 30%나 많고, 관리비도 많습니다. 이게 복지국가를 떠벌리는 우리나라 복지의 현주소 아닙니까.”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적용됐던 구조조정정책은 빈곤문제를 더 심화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빈곤이 발생하기는 쉬워도 퇴치하기는 매우 힘들며 긴 시간을 요한다는 점에서 98년 초의 짧은 구조조정정책이 미쳤던 충격은 크나큰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96년~99년까지 도시가구의 소득 규모별 소득변화를 살펴보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외환위기 발생 전인 1997년부터 전체 도시가구 중 하위 40% 가구에서 이미 소득이 감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그 범위는 더 확대돼 98년 하위 60%의 가구에서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대로 상위 20%의 소득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증가폭은 둔화됐으나 여전히 증가세를 유지했다. 빈부격차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새해 10월부터 174만명의 생활보호대상자(현재까지)는 4인가족 가구당 월 최저생계비 93만 원 수준으로 정해 그 금액을 보장받게 된다. 이를 현실화시키려면 적어도 내년 4조 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4% 삭감됐다.
희망찬 새 밀레니엄의 초입. 그러나 아직 극악한 빈곤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희망을 말하기에는 섣부르다.
박씨에게 지하철은 세 명의 식솔을 먹여살리는 직장이다. 일요일은 벌이가 좋은 편. 오후 5시경까지 적당히 운이 따르면 2만~3만 원은 손에 쥘 수 있다.
구걸이라도 해서 교육비 벌어야 할 형편
전라북도 임실이 고향인 박씨가 서울로 혈혈단신 상경한 것은 19년 전. 당시 스무살이 되던 해에 밭을 쟁기질하다가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실명한 뒤 홀로 살 길을 마련해보겠다며 떠난 길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찾아간 곳은 상계동에 위치한 홍파복지원. 그는 3년 동안 안마와 물리치료를 배우고 안마소를 전전하다가 친구 소개로 똑같이 앞을 못 보는 한 여인과 결혼한다. 맞벌이 부부로 3남매를 키우며 지낸 10여년간이 박씨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88년 부인이 위암으로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뜨자 집안은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동안 부인과 함께 푼푼이 모아왔던 종잣돈과 빚까지 얻어 병치레에 다 쏟아붓고 나니 끼니 해결조차 막막해진 것이다. 그나마 그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은 맞벌이 덕택이었다. 그가 안마사로 일을 한다지만 남자 안마사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벌이가 시원찮았던 것이다.
박씨는 그때부터 돈통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방구석에 눌러앉아 연락처를 남겨놓은 안마시술소로부터의 전화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아들과 새해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남매가 있다. 하다못해 구걸을 해서라도 자식들의 교육비라도 벌어야했다.
“1급 장애인으로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매월 45만원을 정부로부터 보조받고 있어요. 그런데 이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구임대 아파트(13평형) 관리비만 15만 원이고, 여기에 교육비를 지출하고 나면 그만입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도 없고요.”
서울시내 전역의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맹인은 어림잡아 200여명. 이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정부 보조가 최저생계비에도 크게 미달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최근 한가지 큰 고민이 생겼다. 관할구청이 새해부터는 그나마 나오던 정부 지원마저 없어진다는 통고를 해온 것이다. 큰아들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부양능력이 있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아직도 매양 길거리를 쏘다니는 자식에게 기댄다는 것 자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큰 수입원을 잃은 것이다.
“구청장을 직접 만나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더도말고 한 3년만 더 봐달라고 말입니다. 큰아들이 졸업했어도 싸돌아다니는데 재간이 있습니까. 그 녀석도 이제 곧 군 입대할 겁니다. 구걸로만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한달 9일 취로사업으로 네식구 입에 풀칠
실제 생활상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가족관계만으로 복지혜택을 저울질하는 폐단은 단지 박씨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재개발 아파트 건축이 한창인 85번 종점 봉천5동. 한쪽에선 고층아파트가 하늘로 치솟고 있지만 그 바로 밑엔 영하의 온도를 가리기도 힘든 베니아 합판으로 둘러싸인 판잣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성칠성 할머니(68세). 그도 이 무허가 판자촌에서 8년째 중풍을 앓고 있는 남편과 손녀딸 2명과 함께 살고 있는 주민이다. 성 할머니의 주 수입원은 일당 1만 7,000원의 취로사업. 하지만 이것조차 저소득자로 분류돼 있는 그에겐 한달에 9일로 제한돼 있다.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에서 누락된 탓이다. 하지만 큰아들은 되레 자신의 딸 둘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은 제몸 하나 건사하기도 빡빡해 거의 연락을 끊고 살다시피한다.
“그래도 지금이 나아요. 이웃들의 온정 때문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편이죠. 좀 덜 먹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건강 때문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해요. 내일모레가 칠십이지만 아직도 세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니까요.”
그는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이젠 식사시간이 끝날 때가 됐다”며 빗자루와 부삽을 들고 총총히 골목길을 나섰다. 성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동네 교회분들이 다녀갔고, 이웃집 아줌마가 반찬거리를 놓고 갔다. 국가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를 이같은 손길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최근 참여연대와 UNDP가 발표한 한국의 빈곤보고서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던 적이 있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빈곤층이 확대됐다는 이 보고서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것이다. 빈곤층에 대한 통계를 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해 그 잣대에 따라 때론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라고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다. 강남구 개포동 570 구룡마을은 통계에서 제외된 그 대표적 예로 볼 수 있다.
주민등록 발급받지 못하는 구룡마을 사람들
지하철 1호선에서 껌팔이를 하고 있는 한 할머니를 찾기 위해 구룡마을에 간 것은 지난 12월 18일 오전 8시 30분경. 수은주가 영하로 급강하한 날이다. 710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구룡마을 입구에 이르니 대모산 위로 한 뼘 정도 솟아 있는 해가 게딱지처럼 낮게 포복한 판잣집을 비추고 있었다. 제법 매워진 바람은 판자촌 2,150가구의 거적같은 삶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오늘은 노인정 현판식이 있는 날입니다. 오후 2시에 노인분들은 모여주십시오.”
“오늘은 무료 급식이 있는 날입니다. 노인분들은 점심식사하러 무료급식소로 나와주십시오.”
마을회관 앞에 이르자 흡사 포로수용소에나 있을 법한 철탑에 매달린 4개의 스피커에서 연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지사항이 울려퍼졌다.
‘7-63-9’. 문짝에다 검은 펜으로 번지수를 써놓은 껌팔이 할머니의 집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사전에 전화약속을 했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할머니는 손녀 딸이 감기에 심하게 걸려 약을 사러 일찍 집을 나섰던 것을 나중에 전화로 확인했다.
되돌아 가는 길에 이곳 사정을 알아볼 요량으로 구룡마을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구룡마을 자치회 김원심 총무(52세ㆍ여)는 기자를 만나자 대뜸 “법의 혜택을 전혀 못받고 산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지지 않는다. 무허가촌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거의 주민등록지를 친구 또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다른 곳에 두고 있다. 이들에게 없는 것은 주민등록뿐만 아니다. 그에 따르는 복지혜택이다. 가령 이들은 일용 잡부로 노가다판을 전전하는 등 최하층의 삶을 어렵사리 이어가고 있지만 영세민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제 살고 있는 주민등록지에서 꺼리기 때문이다. 취로사업과 공공근로도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구룡마을자치회는 얼마 전 관할 동사무소에 33명 노인들이 취로사업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주민등록이 등재된 관할 동사무소에 신청하라”는 말만 들었다. 실제 개포동에 살고 있지만 개포동 주민은 아닌 것이다. 이곳 뿐만이 아니라 서울지역 대부분의 빈민촌에서도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다반사다. 각 구청의 재정부담으로 통계에서 누락되는 영세민도 많다. 이들에게는 최근 제정된 생활보호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이다.
류정순 가정학 박사는 “맹인은 장애 1등급으로 가장 많은 정부 지원을 받지만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수혜 수준이 낮고, 지자체의 재정 때문에 빈민들의 대량 거주지역의 경우 영세민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밀 조사작업과 함께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넘자 제일 먼저 무료급식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할머니 품에 안겨 들어온 한서희양(7세)이었다. 그는 “육십 밤만 지나면 아빠가 학교에 보내준다고 했다”며 토끼 모양의 가방에서 장난감 핸드폰을 멈칫거리면서도 자랑스레 내보인다.
조금 있으니까 명동 노상에서 액세서리를 팔면서 모은 돈으로 상점을 운영하려다가 다 까먹고 이곳으로 흘러온 박전화 할머니(58세), 지난해 8월에 45만 원 받고 일하던 폐지공장에서 쫓겨나 경제력이 없는 두 남매 생계가 막연해졌다고 하소연하는 현아무 할머니(75세)등 사연 많은 노인들이 줄을 이었다.
“새마을 일(취로사업)이라두 시켜줬으믄 좋겠어유. 지난 여름엔 수해났고, 불도 여러 차례 났어유. 이걸 어떻게 갚는데유. 내 나이 일흔다섯이지만 기를 쓰고 일할 자신이 있다구요. 젊은 사람들보다도요…” 현아무 할머니의 눈자위가 금세 붉게 물든다. 취재를 마치고 올라탄 710번 버스는 은마아파트,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나 광화문 쪽으로 달렸다.
9개월치 아파트관리비 못내
백용선 씨(37세ㆍ여). 프레스센터 뒷길에서 만난 그는 개조한 리어카에 빵을 놓고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영업은 오늘이 처음. 집을 나올 때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골라 하루 장사를 한다. 하루 매상은 많으면 10만 원까지, 하지만 재료비 빼고 리어카 임대료 빼면 남는 것은 3만~4만 원이 고작이다. 한달 사글세 20만 원과 중학생인 두 딸의 교육비에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3~4년 전에는 남편과 함께 식당을 개업하기도 했지만 장사도 안되고 그나마 남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다고 했다. 남편은 화교다. 따라서 고향이 전북인 백씨 역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국적자다. 영세민 혜택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처지다.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중산층을 찾아봤다. 월계동의 공공임대아파트에서 만난 김병기 씨(51세). 토목하청업자인 그는 IMF 이전까지만도 승용차와 화물차를 1대씩 굴리면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9개월치 아파트 관리비를 못낼 정도로 어렵다. 그가 쫓겨날 지경에 처했다는 말에 십시일반으로 이웃 사람들이 이중 일부를 분담해 냈다.
“IMF 직전 전주의 국민연금관리공단 전북회관의 하청일을 계약했습니다. 우리에게 하청을 준 두설토건은 잘만 지으면 다른 지역의 공단회관도 짓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빚을 내가며 자재를 사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빚만 1억 원이 되더라고요. 한번 작품 만들면 미래가 보장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두설토건이 부도를 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어떻게 빌린 돈인데 공중에 뜬 것 아닙니까. 거의 모든 공사가 하청으로 이뤄지지만 하청관계는 부도시 보호가 안돼요. 하는 수 없이 자재를 고철값에 팔아넘기고 빚더미에 올라앉았죠. 그 전에 일한 인건비라도 건지려고 했는데 5~6개월 어음으로 주는 바람에 큰 덕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씨 집에 앉아 있는 동안 여러번 전화가 울렸으나 받지 않았다. 그는 부인이 부업하기 위해 어제부터 개통한 전화라고 했다. 그 전화기 옆엔 1박스를 조립하면 4,000원의 수고비가 지급되는 콘센트 조립 부품이 널려 있다.
“외국에서는 임대주택의 경우 관리비가 밀려도 쫓아내지 않는답니다. 더이상 쫓아낼 곳이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서 무얼하겠어요.” 옆에 앉아 있던 전은행 씨가 김씨가 못 다한 말을 하려는 듯 거든다.
“임대주택이지만 관리인원이 일반 분양 아파트보다 30%나 많고, 관리비도 많습니다. 이게 복지국가를 떠벌리는 우리나라 복지의 현주소 아닙니까.”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적용됐던 구조조정정책은 빈곤문제를 더 심화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빈곤이 발생하기는 쉬워도 퇴치하기는 매우 힘들며 긴 시간을 요한다는 점에서 98년 초의 짧은 구조조정정책이 미쳤던 충격은 크나큰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96년~99년까지 도시가구의 소득 규모별 소득변화를 살펴보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외환위기 발생 전인 1997년부터 전체 도시가구 중 하위 40% 가구에서 이미 소득이 감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그 범위는 더 확대돼 98년 하위 60%의 가구에서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대로 상위 20%의 소득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증가폭은 둔화됐으나 여전히 증가세를 유지했다. 빈부격차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새해 10월부터 174만명의 생활보호대상자(현재까지)는 4인가족 가구당 월 최저생계비 93만 원 수준으로 정해 그 금액을 보장받게 된다. 이를 현실화시키려면 적어도 내년 4조 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4% 삭감됐다.
희망찬 새 밀레니엄의 초입. 그러나 아직 극악한 빈곤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희망을 말하기에는 섣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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