꽹과리 장단에 신명나는 지역사랑
2000/2000년 01월 :
2000/01/01 00:00
‘덩기덕 쿵덕, 덩기덕 덩더러러러…’
신명나는 가락에 맞춰 정신없이 북을 돌리고 흠뻑 땀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북겴弱?꽹과리겶×?빠져 우리 소리를 배우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사람사는 정,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 풍물패에서 익힌 실력으로 풍물가족을 일군 사람이 있다. 동북운수(8번 버스)에서 9년째 버스기사를 하고 있는 박종귀 씨(37세·북부시민회 풍물패 ‘박달’ 후원회장).
강북구 수유역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한 ‘신세대중화요리’집. 그곳은 그의 부인 조귀님 씨(34세)의 일터다. 열심히 사는 ‘깐돌이 부부’로 통하는 그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생활공간에서 틈이 나면 풍물로 주변이웃과 대화한다. 백운초등학교 5학년 박슬기, 같은 학교 2학년 박지석. 4인가족이 모이면 각종행사 때 실력을 발휘,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저희 가족이 풍물한 지는 5∼6년 정도밖에 안돼요. 제가 처음 1∼2년은 목숨바쳐 풍물패를 따라다녔고, 그런 다음 제 아내를 배우게 했어요. 애들은 따라다니면서 저절로 가락을 익히게 됐고. 처음에 아내는 제게 집안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호통치기도 했으나 배운 후에는 아내도 가락에 빠졌어요. 가락을 배우면서 온가족이 하나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박종귀 씨는 시종일관 아내가 풍물을 배운 게 다행이라는 눈치다. 풍물을 알고 나서 그를 이해해주는 마음이 더 깊어졌기 때문. 또 그가 풍물에 빠져 있었을 때는 언제나 그를 대신해 집안일을 챙겨주었기 때문에 늘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자동이체하는 성실회원
박종귀 씨의 고향은 전남 보성,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에 서울로 혼자 올라왔다. 구두닦이, 중국집 보이, 신문배달, 우유배달, 똥푸는 차 일 등 안해 본 것 없이 일을 했다. 그러다 다시 여수로 내려가 버스안내원을 하던 때 자동차 운전을 배웠고, 장돌뱅이 등을 전전하다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다. 그때 조귀님 씨를 만났고 둘은 결혼했다. 변변한 직장이 없었던 그는 대기업 등에 시험을 봤지만 영락없이 ‘미역국’이었다. 그후 연탄공장 연탄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 일로 월급 27만 원을 받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게 됐다. 그때가 1987년, 6월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때다.
그때 북부주민회(현 북부시민회)가 87년 대선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펼쳤고, 그는 그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북부주민회는 현재 북부시민회로 명칭을 변경,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그런 북부시민회의 활동에 공감한 그는 93년 단체에 가입, 매월 3만 원을 자동이체하는 성실회원이 됐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몰라도 저는 나누고 베풀고 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나도, 가족도, 사회도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조귀님 씨에 따르면 박종귀 씨가 한창 풍물에 빠져 지낼 때는 외박에 늦은 귀가, 만취 등 그녀와 싸울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마구 벌어졌단다. 그래서 그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하고, 종종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그러나 그녀도 풍물을 알게 되고, 북부시민회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런 갈등은 일거에 해소됐다고.
“회원들끼리 식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이사할 때 이삿짐 같이 나르고, 누가 개업하면 우르르 달려가 도와주고, 두레 품앗이 있듯이 북부시민회 회원들끼리 그렇게 나누고 살아요. 친한 친구, 부모형제들과도 가질 수 없는 돈독한 정이 흘러요. 그런 걸 제가 느끼다보니 애 아빠를 혼낼 수 없더라구요. 하하하!”
절기살리기운동에 앞장서
사람들의 훈훈한 정으로 뭉친 북부시민회 박달은 드림랜드에서 1년 1회 풍물 정기공연을 갖는다. 가락뽐내기 이 행사는 지금까지 12년간 지속돼 온 북부시민회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이와 같은 지역의 행사는 가락뽐내기뿐만 아니라 대보름굿을 비롯, 지신밟기겧溶參樗?단오제 등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절기를 찾아 지역민들과 함께 절기살리기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 절기살리기운동에는 60∼70세 노인부터 꼬마들까지 참여한다. 명실상부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통문화도 익히고, 지역주민과의 만남을 가져 실제 강북구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까지 북부시민회의 위상이 상승해 있기도 하다.
사심없이 지역주민들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추진하고, 지역의 문제를 토로하는 장을 만들기 때문에 실제 북부시민회의 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더라도 북부시민회의 ‘심증적 지지자’가 지역내 요소요소에 있음을 자부하는 박종귀 씨는 지역단체 풍물패와의 인연을 딸의 전망까지 연결시킨다.
“제 딸은 정식으로 풍물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끼를 발휘하더라구요. 그래서 저희 풍물패장과 상의해서 초등학교 마치면 국악중학교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 거의 매일 연습을 하고 있는데도 싫은 내색을 안해요. 너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얘기해도 괜찮다고 하는 걸 보면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남원춘향제 판소리대회 중 사물놀이경연대회 수상, 서울랜드 학생동아리 문화관광부상 수상, 일본 TBS 방송국 초청공연…. 등을 얘기하면서 그는 은근히 딸자랑을 한다. 자식덕에 부모의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종귀 씨는 이처럼 온가족이 풍물을 할 때면 한마음이 되는 것같아 너무 좋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토록 가족풍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그는 북부시민회와도 끈끈한 정을 나누면서 ‘마을지킴이’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번도 북부시민회에 가입한 걸 후회해본 적 없다는 그는 늘 시민회의 활동이 무궁번영하기를 기릴 뿐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생한 걸 요즘에서야 보답받는 것 같다며 사는 게 이보다 더 보람찰 수는 없다며 껄껄 웃는다.
신명나는 가락에 맞춰 정신없이 북을 돌리고 흠뻑 땀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북겴弱?꽹과리겶×?빠져 우리 소리를 배우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사람사는 정,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 풍물패에서 익힌 실력으로 풍물가족을 일군 사람이 있다. 동북운수(8번 버스)에서 9년째 버스기사를 하고 있는 박종귀 씨(37세·북부시민회 풍물패 ‘박달’ 후원회장).
강북구 수유역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한 ‘신세대중화요리’집. 그곳은 그의 부인 조귀님 씨(34세)의 일터다. 열심히 사는 ‘깐돌이 부부’로 통하는 그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생활공간에서 틈이 나면 풍물로 주변이웃과 대화한다. 백운초등학교 5학년 박슬기, 같은 학교 2학년 박지석. 4인가족이 모이면 각종행사 때 실력을 발휘,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저희 가족이 풍물한 지는 5∼6년 정도밖에 안돼요. 제가 처음 1∼2년은 목숨바쳐 풍물패를 따라다녔고, 그런 다음 제 아내를 배우게 했어요. 애들은 따라다니면서 저절로 가락을 익히게 됐고. 처음에 아내는 제게 집안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호통치기도 했으나 배운 후에는 아내도 가락에 빠졌어요. 가락을 배우면서 온가족이 하나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박종귀 씨는 시종일관 아내가 풍물을 배운 게 다행이라는 눈치다. 풍물을 알고 나서 그를 이해해주는 마음이 더 깊어졌기 때문. 또 그가 풍물에 빠져 있었을 때는 언제나 그를 대신해 집안일을 챙겨주었기 때문에 늘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자동이체하는 성실회원
박종귀 씨의 고향은 전남 보성,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에 서울로 혼자 올라왔다. 구두닦이, 중국집 보이, 신문배달, 우유배달, 똥푸는 차 일 등 안해 본 것 없이 일을 했다. 그러다 다시 여수로 내려가 버스안내원을 하던 때 자동차 운전을 배웠고, 장돌뱅이 등을 전전하다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다. 그때 조귀님 씨를 만났고 둘은 결혼했다. 변변한 직장이 없었던 그는 대기업 등에 시험을 봤지만 영락없이 ‘미역국’이었다. 그후 연탄공장 연탄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 일로 월급 27만 원을 받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게 됐다. 그때가 1987년, 6월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때다.
그때 북부주민회(현 북부시민회)가 87년 대선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펼쳤고, 그는 그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북부주민회는 현재 북부시민회로 명칭을 변경,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그런 북부시민회의 활동에 공감한 그는 93년 단체에 가입, 매월 3만 원을 자동이체하는 성실회원이 됐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몰라도 저는 나누고 베풀고 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나도, 가족도, 사회도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조귀님 씨에 따르면 박종귀 씨가 한창 풍물에 빠져 지낼 때는 외박에 늦은 귀가, 만취 등 그녀와 싸울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마구 벌어졌단다. 그래서 그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하고, 종종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그러나 그녀도 풍물을 알게 되고, 북부시민회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런 갈등은 일거에 해소됐다고.
“회원들끼리 식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이사할 때 이삿짐 같이 나르고, 누가 개업하면 우르르 달려가 도와주고, 두레 품앗이 있듯이 북부시민회 회원들끼리 그렇게 나누고 살아요. 친한 친구, 부모형제들과도 가질 수 없는 돈독한 정이 흘러요. 그런 걸 제가 느끼다보니 애 아빠를 혼낼 수 없더라구요. 하하하!”
절기살리기운동에 앞장서
사람들의 훈훈한 정으로 뭉친 북부시민회 박달은 드림랜드에서 1년 1회 풍물 정기공연을 갖는다. 가락뽐내기 이 행사는 지금까지 12년간 지속돼 온 북부시민회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이와 같은 지역의 행사는 가락뽐내기뿐만 아니라 대보름굿을 비롯, 지신밟기겧溶參樗?단오제 등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절기를 찾아 지역민들과 함께 절기살리기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 절기살리기운동에는 60∼70세 노인부터 꼬마들까지 참여한다. 명실상부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통문화도 익히고, 지역주민과의 만남을 가져 실제 강북구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까지 북부시민회의 위상이 상승해 있기도 하다.
사심없이 지역주민들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추진하고, 지역의 문제를 토로하는 장을 만들기 때문에 실제 북부시민회의 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더라도 북부시민회의 ‘심증적 지지자’가 지역내 요소요소에 있음을 자부하는 박종귀 씨는 지역단체 풍물패와의 인연을 딸의 전망까지 연결시킨다.
“제 딸은 정식으로 풍물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끼를 발휘하더라구요. 그래서 저희 풍물패장과 상의해서 초등학교 마치면 국악중학교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 거의 매일 연습을 하고 있는데도 싫은 내색을 안해요. 너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얘기해도 괜찮다고 하는 걸 보면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남원춘향제 판소리대회 중 사물놀이경연대회 수상, 서울랜드 학생동아리 문화관광부상 수상, 일본 TBS 방송국 초청공연…. 등을 얘기하면서 그는 은근히 딸자랑을 한다. 자식덕에 부모의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종귀 씨는 이처럼 온가족이 풍물을 할 때면 한마음이 되는 것같아 너무 좋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토록 가족풍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그는 북부시민회와도 끈끈한 정을 나누면서 ‘마을지킴이’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번도 북부시민회에 가입한 걸 후회해본 적 없다는 그는 늘 시민회의 활동이 무궁번영하기를 기릴 뿐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생한 걸 요즘에서야 보답받는 것 같다며 사는 게 이보다 더 보람찰 수는 없다며 껄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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