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NGO와 연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을!
2002/2002년 12월 :
2002/11/29 00:00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 전역에서는 반전겧赴決쳄?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독일 뮌헨에서 반전시위를 경험하고 돌아온 필자에게 그쪽 반전운동 분위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최근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 위협을 마치 섹스피어식 가족복수극에 비유했다. 부왕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왕위를 계승한 아들이 대신하여 아버지의 한을 풀어준다는 셰익스피어 극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모티프를 연상시킨다는 뜻이다. 미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점유하려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었던 방법은 70~80년대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꼭두각시 독재정권을 앞세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다가, 이들 독재정권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현재 이라크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워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다. 최근 한 TV 방송에서 방영된
<실종>이라는 영화에서 칠레에 사회주의 성향의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서 광산을 국유화하려 하자 미국 군부를 조정하여 좌파정권을 무자비하게 축출하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던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와 같이 80년대 이란에 반미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해 이란과의 전쟁을 부추기고, 그 대가로 이라크에게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생화학 무기 제조법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라크가 미국에 저항을 하자 다시 이라크를 몰아세우고, 대량 살상무기 제조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기사찰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실은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키고 친미정권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조정하겠다는 의도는 뒤로 감추고 말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이러한 오만하고도 탐욕스런 태도에 대해 전세계가 분노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도 그중 가장 명확하고도 구체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곳은 서유럽이다. 서유럽에서는 반전과 평화운동의 역사가 19세기 말, 징집거부와 여성들의 평화운동이 시발점일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다 현대로 거슬러 와서는 1960년 중반부터 본격화된 미국에 의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운동이 학생운동과 접목되면서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70년대 말부터 소위 신사회운동의 일환으로 평화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신사회운동의 결실로 평가되는 녹색당도 평화와 환경, 그리고 여성운동의 주체세력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그들의 요구들을 제도권 내에서 관철시키기 위해 창당된 것이다.
80년대는 남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부터 북부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미군기지를 에워싸고 반전·반핵·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80년대의 열기를 찾아볼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걸프전, 크로아티아와 코소보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적 반전시위가 한때 유럽을 휩쓸기도 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90년대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평화와 반전운동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뮌헨에서 만난 반전시위
간간이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었던 유럽의 반전운동을 필자는 지난 10월 독일의 뮌헨에서 직접 경험하였다. 그것은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의 중심지 시청 앞 광장에서 약 2,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열렸다. 마침 화창한 날씨에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라 많은 인파들이 몰려 이를 참관하였다. 주위에 단 한명의 경찰도 찾아볼 수 없었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위였다. 이날 시위는 ATTAC 독일 지부와 PDS (옛 동독 공산당 후신) 뮌헨 지부, 휴머니즘 정당과 지역 평화운동 단체 등에 의해 주관되었는데, 아탁 관계자의 전쟁의 부당성 주장, 미국인의 미국에 대한 비판과 미국 내에서의 반전운동 소개, 시 낭송과 노래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위대들 중 나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온몸으로 평화운동에 헌신한 경륜이 엿보여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반전시위는 독일 전역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될 예정이며, 주관단체 역시 아탁을 주축으로 PDS를 비롯한 각 지역의 평화단체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은 이제 유럽의 운동에서 반세계화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도 ATTAC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외상인 녹색당의 요시카 피셔를 비롯하여 다수의 녹색당 정치가들이 아탁의 회원으로 등록하였고, 이는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 가고 있는 아탁에 대해, 한국의 시민사회도 많은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조직은 과거 녹색당이 했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녹색당은 운동 정당으로 이런 사회운동들을 주도해 왔는데, 이제 제도권 정당으로 완전히 그 입지를 굳히면서 사회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시위문화와 다른 점은 역시 좀 심심하고 조용하고, 그래서인지 시위대나 참관자들로 하여금 전쟁의 부당성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심심치 않게 미국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인 맥도날드가 습격을 당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아마도 지난 9월 독일 총선거에서 반미와 반전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전을 치렀던 사민당을 선택했고, 그 결과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연합이 재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독일인들은 그들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으므로 이런 시위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서유럽 국가들 중 이렇게 반미와 반전을 명확히 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에 대한 인색한 관심
그러나 며칠 후 평화운동 전문가를 만나 대화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의 평화운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뮌헨 규모의 대도시에서는 적어도 수천 명이 참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운동의 역동성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그의 주장대로 현재 독일 평화운동의 잠재력은 거의 고갈된 듯이 보였다. 참가자 규모도 그랬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도 참가자들이나 군중들을 선동하고 미국을 비롯한 전쟁 옹호집단에 대해 신랄하고도 감정적인 구호가 난무했었어야 했는데 -적어도 한국적 상황과 비교해 보면- 마치 강의실에서 강의 듣는 기분이었고, 노래도 ‘blowing in the wind’류의 folk song이 대부분이었다. 참가자들도 조용히 듣고 환호와 박수만 보낼 뿐 그 흔한 반미 구호조차 없었다.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운동의 역동성이 소진된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필자는 우리의 상황에 견주어 보며 그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마냥 흐뭇해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우, 그 역사나 비중에 비해 평화운동이 너무나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의 나라 비극에 우리는 이들의 평화운동처럼 수백 명은커녕 단 수십 명이라도 모여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들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해 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특히 대 이라크전과 관련하여 우리의 대중 매체들은 유가 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하니, 초강대국 미국이 그들의 최신 첨단무기들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느니 경제적 이해타산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도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의 원인과 그로 인한 이라크인들이 당할 피해와 고통 등에 대해서는 보도에 인색하여, 전쟁으로 인한 우리가 당할 경제적 이해만을 부각시키는 것 같아 스스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사회운동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것 같다. 비록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사회운동이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다양성이 결여되어 특정 운동분야에 치우쳐 있고,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편이다. 이는 물론 운동의 역사가 짧고, 그로 인한 운동의 잠재력도 풍부하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국제 이슈의 국내 이슈화, 그리고 국내 이슈의 국제 이슈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며,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한국의 시민운동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국제적 지도력도 갖게 될 것이다.
최근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 위협을 마치 섹스피어식 가족복수극에 비유했다. 부왕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왕위를 계승한 아들이 대신하여 아버지의 한을 풀어준다는 셰익스피어 극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모티프를 연상시킨다는 뜻이다. 미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점유하려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었던 방법은 70~80년대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꼭두각시 독재정권을 앞세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다가, 이들 독재정권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현재 이라크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워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다. 최근 한 TV 방송에서 방영된
<실종>이라는 영화에서 칠레에 사회주의 성향의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서 광산을 국유화하려 하자 미국 군부를 조정하여 좌파정권을 무자비하게 축출하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던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와 같이 80년대 이란에 반미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해 이란과의 전쟁을 부추기고, 그 대가로 이라크에게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생화학 무기 제조법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라크가 미국에 저항을 하자 다시 이라크를 몰아세우고, 대량 살상무기 제조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기사찰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실은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키고 친미정권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조정하겠다는 의도는 뒤로 감추고 말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이러한 오만하고도 탐욕스런 태도에 대해 전세계가 분노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도 그중 가장 명확하고도 구체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곳은 서유럽이다. 서유럽에서는 반전과 평화운동의 역사가 19세기 말, 징집거부와 여성들의 평화운동이 시발점일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다 현대로 거슬러 와서는 1960년 중반부터 본격화된 미국에 의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운동이 학생운동과 접목되면서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70년대 말부터 소위 신사회운동의 일환으로 평화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신사회운동의 결실로 평가되는 녹색당도 평화와 환경, 그리고 여성운동의 주체세력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그들의 요구들을 제도권 내에서 관철시키기 위해 창당된 것이다.
80년대는 남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부터 북부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미군기지를 에워싸고 반전·반핵·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80년대의 열기를 찾아볼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걸프전, 크로아티아와 코소보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적 반전시위가 한때 유럽을 휩쓸기도 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90년대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평화와 반전운동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뮌헨에서 만난 반전시위
간간이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었던 유럽의 반전운동을 필자는 지난 10월 독일의 뮌헨에서 직접 경험하였다. 그것은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의 중심지 시청 앞 광장에서 약 2,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열렸다. 마침 화창한 날씨에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라 많은 인파들이 몰려 이를 참관하였다. 주위에 단 한명의 경찰도 찾아볼 수 없었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위였다. 이날 시위는 ATTAC 독일 지부와 PDS (옛 동독 공산당 후신) 뮌헨 지부, 휴머니즘 정당과 지역 평화운동 단체 등에 의해 주관되었는데, 아탁 관계자의 전쟁의 부당성 주장, 미국인의 미국에 대한 비판과 미국 내에서의 반전운동 소개, 시 낭송과 노래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위대들 중 나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온몸으로 평화운동에 헌신한 경륜이 엿보여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반전시위는 독일 전역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될 예정이며, 주관단체 역시 아탁을 주축으로 PDS를 비롯한 각 지역의 평화단체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은 이제 유럽의 운동에서 반세계화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도 ATTAC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외상인 녹색당의 요시카 피셔를 비롯하여 다수의 녹색당 정치가들이 아탁의 회원으로 등록하였고, 이는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 가고 있는 아탁에 대해, 한국의 시민사회도 많은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조직은 과거 녹색당이 했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녹색당은 운동 정당으로 이런 사회운동들을 주도해 왔는데, 이제 제도권 정당으로 완전히 그 입지를 굳히면서 사회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시위문화와 다른 점은 역시 좀 심심하고 조용하고, 그래서인지 시위대나 참관자들로 하여금 전쟁의 부당성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심심치 않게 미국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인 맥도날드가 습격을 당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아마도 지난 9월 독일 총선거에서 반미와 반전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전을 치렀던 사민당을 선택했고, 그 결과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연합이 재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독일인들은 그들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으므로 이런 시위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서유럽 국가들 중 이렇게 반미와 반전을 명확히 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에 대한 인색한 관심
그러나 며칠 후 평화운동 전문가를 만나 대화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의 평화운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뮌헨 규모의 대도시에서는 적어도 수천 명이 참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운동의 역동성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그의 주장대로 현재 독일 평화운동의 잠재력은 거의 고갈된 듯이 보였다. 참가자 규모도 그랬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도 참가자들이나 군중들을 선동하고 미국을 비롯한 전쟁 옹호집단에 대해 신랄하고도 감정적인 구호가 난무했었어야 했는데 -적어도 한국적 상황과 비교해 보면- 마치 강의실에서 강의 듣는 기분이었고, 노래도 ‘blowing in the wind’류의 folk song이 대부분이었다. 참가자들도 조용히 듣고 환호와 박수만 보낼 뿐 그 흔한 반미 구호조차 없었다.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운동의 역동성이 소진된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필자는 우리의 상황에 견주어 보며 그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마냥 흐뭇해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우, 그 역사나 비중에 비해 평화운동이 너무나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의 나라 비극에 우리는 이들의 평화운동처럼 수백 명은커녕 단 수십 명이라도 모여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들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해 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특히 대 이라크전과 관련하여 우리의 대중 매체들은 유가 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하니, 초강대국 미국이 그들의 최신 첨단무기들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느니 경제적 이해타산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도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의 원인과 그로 인한 이라크인들이 당할 피해와 고통 등에 대해서는 보도에 인색하여, 전쟁으로 인한 우리가 당할 경제적 이해만을 부각시키는 것 같아 스스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사회운동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것 같다. 비록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사회운동이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다양성이 결여되어 특정 운동분야에 치우쳐 있고,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편이다. 이는 물론 운동의 역사가 짧고, 그로 인한 운동의 잠재력도 풍부하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국제 이슈의 국내 이슈화, 그리고 국내 이슈의 국제 이슈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며,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한국의 시민운동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국제적 지도력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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