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운동중계차-인천
2003/2003년 01월 :
2002/12/30 00:00
인천의 상징이 맥아더 일 수는 없다
한국이 2002 월드컵 축구대회 4강에 진출하면서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일약 한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히딩크 감독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 일부 언론은 그를 ‘제2의 맥아더 장군’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는 지금도 우리 국민의 가슴에 영웅으로 남아 있다.
맥아더는 인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천을 소개하는 관광안내서들은 자유공원과 맥아더 동상을 빠뜨리지 않는다. 한 안내 책자를 들춰보자. “자유공원: 고종 20년에 인천이 개항되면서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의의가 있는 곳이다. 응봉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우뚝 솟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공원을 대표한다. 1957년 인천상륙작전기념일에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후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인하대 서규환 교수가 인천지역 청소년 1170명을 대상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을 조사했는데 여기서 맥아더는 20.3%를 얻어 미추홀(인천의 옛 이름)에 도읍을 정한 백제 시조 비류(4.3%)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해 충격을 주었다.
맥아더는 진보당 당수 조봉암 선생, 미술사가 고유섭 선생,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 등 인천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역사적 인물들을 제치고 인천의 상징으로 굳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조사에 대해 서 교수는 “청소년들의 인식이 그릇되었다기보다 기성세대가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영웅으로 각인돼 있는 맥아더의 그늘이 세월의 시련 앞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 50주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비밀문서가 잇따라 공개되면서, 맥아더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맥아더는 태평양전쟁의 주범이었던 히로히토 일본 천황에게 처벌을 면제해 주었다.
또 맥아더는 “문화재 반환 요구는 미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일본의 정당성에 대한 위축감을 초래하며, 체제전복 세력에게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유엔의 결정을 어기고 한국전쟁에 참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맥아더 최대의 업적으로 일컬어지는 인천상륙작전 역시 일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월 초 인천연대는 맥아더 동상의 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인천연대는 “인천의 가장 상징적인 공원에 미국 장군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인천시민과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며, 최근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높아진 국민들의 반미정서에도 맞지 않다”며 동상을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으로 옮기고 자유공원도 원래 이름인 만국공원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했다.
인천연대는 “낡은 과거와 유물을 청산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는 인천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인천연대는 앞으로 지역의 다른 시민단체 및 인사들과 대책모임을 꾸려 시민 대상 여론조사와 홍보, 각종 퍼포먼스 등 다양한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인천연대는 1983년 세워진 개항 100주년 기념탑이 일제 강압에 의한 굴욕적 개항을 기념하는 몰역사적 조형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해 인천시가 곧 철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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