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별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 인수위 관계자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부산하게 움직였다. 수십 차례의 전화 끝에 어렵사리 연결된 김병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1월 15일 오후 5시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그와 만났다. 메이저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 나선 그는 메모가 전달되면 황급히 자리를 떴다가 다시 인터뷰를 이어갔다.

DJ정부는 출범 당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모토를 걸었다. 노무현정부 인수위가 생각하는 개혁의 주요 방향은 무엇인가. 어디에 방점을 찍고 활동하는가.

“우선 이번 인수위가 97년 인수위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겠다. 97년엔 주로 국회의원들과 그 보좌관들이 인선에 참여하고 일을 추진했다. 그래서 팀워크는 잘 맞았으나 공무원이 이질적 집단으로 취급받았다. 이번에는 교수들과 전문가 집단이 주로 구성되었다. 거기에 민주당 전문위원과 공무원이 들어왔다. 이물감 있는 집단이 서로 섞여 호흡을 맞추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97년에 비해 좋은 점은 국회의원보다 교수가 하루종일 사무실에 잘 붙어 있다는 거다. (웃음)

덜 권위적이고, 부처에서 보고 받는 것을 보고라 생각하지 않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수위원들은 주로 노무현 정책의 비전과 철학을 짰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처에서 온 사람들에게 노무현정부의 비전과 방향, 철학은 이런 거라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각 부처에서는 이에 맞춰 뭘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부처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한다. 대부분의 부처는 지금 이러저러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고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노무현 당선자는 앞으로 분권과 자율,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이런 방식으로 국정운영을 펼칠텐데 그 부분이 이것과 틀린 거냐고 물으면 그 사람들이 ‘아∼’ 그런다. 뭔가 연결이 안 돼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오늘도 부처에서 보고를 받다가 제발 기획과장 혼자 보고서 만들지 말고 워크숍을 하더라도 간부 직원들이 함께 노무현의 비전과 철학에 대해 논의하고 우리더러 와서 설명 좀 하라고 부르면 달려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고나서 두번 째 실무자를 만나면 그땐 좀 달라진다. 상호 학습하는 과정이다. 과거와는 패턴이 달라지는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기존 보수세력들이 결집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재벌은 물론 한나라당을 필두로 하는 보수정치세력,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공격은 2004년 총선 때까지 더욱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딜레마를 타개할 대안을 갖고 있는가?

“묘안이 있으면 좀 가르쳐달라. (웃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언론환경이 그리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 외에 노무현 당선자는 20∼30대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은 40∼50대 아닌가.

이런 점에서 국가 운영을 하는 통치기반이 상당히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믿는 것은 결국 국민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정책,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면 야당이라 해서 무조건 반대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정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왜곡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개혁의 참뜻, 새 정부의 새로운 철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건 희망사항이다. 어쨌든 전반적인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정치를 많이 할 것이다. 우선 인터넷이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번에 국민참여센터를 통해 공무원 인사 추천 받는 것도 그렇고, 정책제안 받는 것도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기존의 언론뿐 아니라 대안언론도 많이 활용할 계획이다. 이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국민들과 대화하고 토론해 나가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유능한 인재 등용 위한 시스템 연구 ]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김 간사께 인사개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새 정부 인사는 어떤 원칙과 방향에서 결정되는가. 새 정부에 등용돼서는 안될 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다면 말해달라.

 
  
“지금 고민중이고, 진행중인 문제다. 노무현 당선자는 정치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빚진 데가 없는 사람이다. 그 점이 인사하기에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뽑으려 노력하는데, 문제는 그런 인사가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일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유능한 인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당선자에게 사람에 대한 정보가 왜곡되어 전달 될 수 있다. 대체로 인사파일 자체가 불완전하다. 좋은 사람 수가 적은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꼭 알아야 할 ‘필요정보’가 충분치 않고, 있다해도 분류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며, 정렬이 안돼 있다.

그 다음, 소위 말해 외부 압력에 의한 정보왜곡을 막는 차단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노 당선자가 인사정책에 대한 개혁을 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은 내가 행정학자니까 그런 걸 좀 해달라는 뜻이었을 거다. 어떤 사람을 골라 달라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고르고 그를 적재적소에 앉힐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겠는가 그걸 연구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여러 형태의 검토를 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중인지 말해줄 수는 없는가.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말 못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고위관료 정부직과 국영매체 사장까지 포함해서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하면, 바로 청와대 밑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이다. 외부 압력에 의해 이 비서관의 직무 자체가 순수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큰일이 난다. 이런 걸 어떻게 제대로 ‘교과서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런 점에 역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조중동은 최근 시민운동이 정치세력화 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들이 펴는 주장의 논거는 부족하나 노무현정부와 시민운동의 올바른 관계정립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출신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경실련 운동을 경험한 바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방자치위원장도 했다. 우리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이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선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국회가 국민의 이해를 다 대변한다고 말할 수 없고,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나름대로의 보수성과 관료적 타성을 지니고 있다. 사법부는 그 나름대로의 메커니즘에 의해 상당한 한계점과 문제를 보이고 있다. 입법·행정·사법 전반에 걸쳐 우리 국가가 굉장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것을 시정해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직접적인 목소리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민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시민운동을 다 그만둔 것은 아니다. 지금 하는 것도 그 시스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온 것뿐이다.

정책자문단의 교수들도 그렇다. 중간에 어려움이 많아서 도중에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분들이 고민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이것도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 시민운동 하던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운동에 대한 열정으로 일하고 있다. 그 마음에 변함 없다.”

[ 분열 지향적 세력 바꿔내야 ]

노정권은 ‘통합과 균형’, ‘자율과 분권’, ‘대화와 타협’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다 좋은 말이긴 한데, 도대체 어떤 세력과 통합하고 균형을 맞추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사실 국민이 노무현정권에 거는 기대는 ‘확실한 개혁’일 수 있다.

 
  
“통합은 사회통합의 의미로 지역분열 구도를 없애야 한다는 걸 강조한 거다. 노사간, 지역간, 남북간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합이란 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똑같은 수준으로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일부의 잘못된 정치세력이라든가 분열 지향적인 세력, 통합에 방해되는 부분을 걷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통합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게 아니고, 균형은 여러 의미로 차별 없는 사회, 남녀 수도권 지방 지역 이런 것을 뛰어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익집단의 활동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의약분업 때 의사파업을 기억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이익집단의 갈등이 첨예화 될 때 정부는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는가.

“그러니까 대화만 있는 게 아니고, 타협이 있지 않는가. (웃음) 노 당선자가 생각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서로 툭 터놓고 이해관계 부분을 얘기하면 어려운 점도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신뢰기반이 없으니까 대화도 안되고 타협도 안 된다고 본다.

우리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가 낮다. 그러니까 사람을 불신하고 의심하다가 결국 이뤄지는 게 없는 거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그런 것 많이 느꼈는데, 상대 정치세력을 불신하니까 모든 것이 어려워지고, 비용도 엄청나게 발생한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신뢰가 다져진다. 느린 과정 같지만 그게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노사관계도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 제4자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와 토론이 이뤄지면 지금 보다 낫지 않겠는가.”

막상 정권이 출범하고 청와대에 들어가 집무를 시작하면 관료와 인의 장막에 가려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노무현 당선자의 경우, 본인이 인터넷 매니아다. 저녁에는 꼭 인터넷을 해야하는 사람이다. 어떤 때는 그가 우리보다 오히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인터넷을 하니까 가능한 것이다.

지금도 CUG(closed user group)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그 CUG에 나온 걸 본인이 직접 메모하고 본다. 정말 그를 정신적으로 지지하며 지원해주고 직언할 수 있는 사람들과 CUG를 만든다면, 당선자와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지리적 공간 개념을 바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인터넷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즐겨 사용하기 때문에 전임 대통령과 다를 것이다.

또한 그는 격의가 없다. 지금도 인수위 간사들과 식사할 때 그는 스스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농담도 하고. 그러다 보면 할말 안할 말 다 나오고, 자연스레 대화의 장벽이 무너진다.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다.

혹여 본인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나면 나중에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꼭 얘기한다. 그리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내가 부담되면 빠지겠다’고 하고, 잠시 나갔다 온다. 인수위 과정에서 그런 경우들이 상당히 있었다.”

노무현 당선자는 인수위 자료가 사초로 쓰일 수 있도록 꼼꼼히 기록하라고 당부한 바 있는데, 현재 인수위 자료는 제대로 기록되고 있는가.

“인수위 관련 자료는 나 스스로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인수위를 굉장히 독특한 성격으로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 인수위는 당선자의 급한 현황들을 챙기고, 한편으로는 정책적 그림을 그리면서 노무현 당선자의 철학을 밖으로 펼치고 있다. 앞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공무원들과 대화하는 장을 만들고, 공론화도 시킬 예정이다.

간혹 사람들이 미국 인수위와 비교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꼭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리가 펼치는 방식이 나름대로 독특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미국 인수위처럼 하면 심심해서 못한다. 우리가 훨씬 더 역동적이다.

지금 기자들과 인수위 사이에서 그런 오해가 발생한다. 인수위엔 현재 자그마치 200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파견돼 있다. 메이저언론의 경우엔 각사 별로 6∼7명이나 된다. 그러나 현재 인수위엔 그 많은 기자들이 모두 기사를 쓸 만큼 기사거리가 많지 않다.

우리는 주로 대화와 토론을 거쳐 하나씩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데, 초창기에 기자들은 쓸만한 기사가 없으니까 아무거나 막 썼다. 그래서 인수위가 이렇다 저렇다 비쳐졌는데 속은 안 그렇다. 기자들이 이런 구도를 이해하고 써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무조건 너무 많이 파견돼서 기사를 쓰다보니 과대 해석돼 쓰여진 기사가 많다. 나중에 그런 뜻이었구나 이해하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핵심브레인으로서 대외적으로 ‘지방분권지지자’, ‘국가균형발전주의자’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수위원회 이후 어떤 활동계획을 갖고 있는가.

“핵심브레인 아니다. 인수위원회 이후 활동 계획은 모르겠다. 그동안엔 뜻이 맞아 도왔는데, 어떤 때는 스스로 너무 많이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권운동가와 학자로 남고픈 욕구가 크고 그쪽에 20년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꾸 ‘노무현 사람’으로 부각된다. 한편으로 억울하다. 노무현의 사람 이전에 내가 20년 동안 가꿔온 것들이 있는 데 말이다. 내가 노무현 당선자와 어디까지 같이 갈지 사실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노무현은 노무현의 길이 있고, 김병준은 김병준의 길이 있는 거다. 가다가 지금 큰길을 같이 가는 것뿐이고 언젠가는 제 길을 찾아갈 것이다. 내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노무현정부에는 참여할 것인가.

“인수위도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뜻대로 못했다. 뭐든 뜻대로 안 되는 것 같다.”

노무현정부의 국정좌표는 무엇인가.

“그건 송병준 교수 전공이다. (웃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새 정부가 시민단체에 너무 편향적이라고 하는데, 시민운동은 그런 비판에 너무 구애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정체성만 확실히 하면 된다고 본다.

본분을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선을 그어 ‘전쟁’할 필요는 없다. 시민운동진영이 보기에 노무현정부를 밀어주지 않으면 한국사회가 아예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적극적으로 밀고, 노무현정부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하면 반대해서 막아달라.”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3/02/06 00:00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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