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권력 동네언론 같이 감시해요'
2003/2003년 02월 :
2003/02/06 00:00
서울 강동 · 송파지역의 다윗 "위례시민연대"
전당포, 불정암, 발관리, 쑥찜옥돌안마방, 중국노래 전문 노래방, 호프집 하이트월드, PC방.
서울 강동구 천호4동 덕송빌딩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간판들이다. 이중 유독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백제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위례시민연대(www.skngo.or.kr) 간판이다. 7평 남짓 사무실은 작고 아늑했다. 한일자로 뻗은 사무실 앞쪽엔 손님을 위한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고, 뒤쪽엔 두어 명의 활동가가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다.
위례시민연대(공동대표 김경호)는 1989년 전교조 합법화를 위한 강동송파 대책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1992년 ‘사회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강동송파 시민회의’, 95년 ‘민주사회와 참다운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강동송파 시민회의’, 2000년 3월 ‘2000년 총선 강동송파 시민연대’를 거쳐 2001년 2월 창립했다. 여러 차례 조직의 이름을 바꾸긴 했으나 지역사회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의지엔 변함이 없다.
서울 강동·송파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발굴하고, 현장을 채록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위례시민연대 실무자는 딱 둘. 황기룡 사무국장(35세)과 최영선 간사(32세)이다. 두 사람은 부부다. 지역신문 기자였던 최 간사는 황 국장의 아내가 된 뒤 위례시민연대 활동가가 되었다. 부부가 아예 동네 문제를 떠맡은 격이다. 1978년부터 단 한 차례도 이 동네를 뜬 일 없는 황 국장과 최 간사 부부가 펼치는 시민운동. 가히 위력적이다.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부부싸움 하셨다구요?”
2001년 3월 송파구 뉴질랜드 카지노온천관광 시민대책위 활동을 할 때다. 이유택 현 송파구청장이 송파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 공원 개장식에 참가하면서 9박10일간 온천관광을 다녀온 게 알려져 핫이슈가 됐다. 위례시민연대는 서울시 최초로 이 사건 관련 주민감사청구를 펼치며 기초단체장의 외유성 관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주민감사청구를 위해서는 700명의 지역주민 서명이 필요했는데, 위례시민연대가 발 벗고 나서 1000명 이상의 주민 서명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팡파르를 올리기에는 일렀다. 최 간사의 말이다.
“동사무소에서 집집마다 확인전화를 돌린 거예요. 서명했느냐, 이의 있으면 취소해도 된다 …. 그래서 정말 취소한 경우도 많아요. 심지어 어떤 부인은 이것 때문에 부부싸움 했다고 하소연한 경우도 있어요. 왜 동네 시끄럽게 그런데 간여하느냐고 남편한테 혼났다고.”
점심시간 송파구청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였지만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증거불충분’으로 관련 공무원 2명만 징계됐을 뿐 여전히 이유택 구청장은 건재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나오니까 덕분에 다른 데가 긴장하더군요. 강남구청장 해외연수 계획이 취소되고, 송파구에 해외 민속예술단이 올 예정이었는데 그것도 취소됐고….” 그러나, 이럴 때 참 난감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동구청장이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동하고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다.
“강동구가 스페인 세고비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시찰에 나섰는데, 여기에 지역신문 기자들이 같이 간 거예요. 함께 갔다 온 기자가 여행기 형식으로 글을 썼는데, 나중에 구청 공보과에서 그걸 검열했다는 후문도 있어요. 문제는 주민들이 낸 세금, 구정홍보비가 이런 식으로 마구 쓰인다는 겁니다.”
얼토당토않은 ‘세금 누수현상’. 황 국장은 ‘계도지 폐지운동’을 당장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로 건축업자와 자영업자의 손아귀에 장악된 지역언론은 구청을 흠집 내는 기사를 전혀 쓰지 않는다. 구청과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지역언론은 사실상 구청에 기생하는 수준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언론개혁운동은 중앙무대 뿐 아니라 동네에서도 절실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아직도 반상회보를 10만 부씩 찍어요. 누가 본다고? 시민단체가 구청과 싸우면 언론은 무조건 구청 편 들어요. 이게 언론입니까.” 지역언론 기자 출신으로 자괴감이 든다는 최 간사의 말이다.
기실 한순간이라도 한눈팔면 ‘권력과 언론’은 유착해 주민을 속이거나 뒤통수친다. 그러나 역량의 한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위례시민연대가 생각하는 대안이다.
“송파구 문제로 머리 터지게 싸우다 우연히 뒤를 돌아보면 강동구가 사고 쳐요. 그 옆엔 하이에나 같은 지역언론이 도사리고 있고. 정말 미치겠어요. 힘이 달려요. 공무원노조가 설립되면 행정권력 감시는 거기서 좀 맡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른 일 좀 하게. 후훗.”
2002년 8월 23일 오후 5시경. 강동구 고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골대가 넘어져 그 학교 2학년생 한승지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월드컵 열풍 이후 사설축구교실이 한창이던 때 벌어진 사건으로 동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위례시민연대는 유가족과 함께 ‘고일초교어린이사망사건대책위’를 만들고, 서울시에 「학교시설물 안전조례」를 제정하라고 요구했고, 현재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초등학교 안전시설 조례가 없다
“교장은 방과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책임 없다 발뺌하고, 골대를 옮겼던 대학생들도 어린이의 과실을 주장하고….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았지요. 유족은 대학생 2명과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에요.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조차 안전하게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서울시 측에 초등학교 안전시설 제도화를 서두르라고 요청한 거지요.”
이 부부가 펼치는 운동은 이뿐 아니다. ‘용산미군기지 이전반대운동’ ‘송파구 판자촌 비닐하우스 주소지 찾기운동’ ‘풍납토성 보전운동’ ‘강동구 예산감시 모니터링’ ‘위례건강복지센터-실업자 도배교육’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하루 평균 9시간씩 일하면서 그들이 받는 급여는 황 국장 80만 원, 최 간사 70만 원이다. 최 간사의 경우는 실업극복국민운동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돈으로 충당한다. 이유는 회원 회비만으로 운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수익사업으로 자판기도 해봤고, 자동차보험도 하고 있어요. 자판기가 잘 될 때는 월 40만 원까지 됐는데 지금은 그것도 못하지요. 자동차보험 수익은 한달 8만 원 정도고, 회비는 115만 원 들어와요. 프로젝트 하기 전에는 사무국장이 50만 원도 못 가져 왔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 3개월간 반상근으로 일했고, 또 가락시장 중도매인회에서 4개월 돈 벌었어요. 밖에서 돈 벌고, 그걸로 ‘운동자금’ 쓰고 그랬답니다. 하하.”
소탈하게 웃지만 최 간사의 웃음 뒤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다. 올해 네살바기 토현이가 점점 크기 때문에 생계걱정도 되고, 정작 이 부부말고는 선뜻 위례시민연대를 책임지고 끌고 나갈 후배 운동가들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하겠다는 젊은이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그래서 부부는 오늘도 한숨이 난다. 100명의 회원과 11명의 임원, 2명의 상근자가 일궈가는 위례시민연대. 정주의식이 없는 서울사람들에게 그들이 꼭 하고픈 말이 있단다. “서울 사람들, ‘애향심’ 좀 갖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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