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해말 한 잡지가 주관하여 대학교수와 비평가들이 선정한 조사에서 20세기 한국 최고의 소설가로 그가 뽑혔다. 왜 그를 20세기 한국 최고의 작가로 뽑았을까는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작가 황석영은 1943년 만주 장춘 태생이다. 해방되고 평양을 거쳐 서울로 이주, 6·25를 겪었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최고의 잡지인 사상계에 『입석부근』이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다. 대학을 다니다 베트남 전쟁에 갔다온다. 유신독재 시절, 그는 소설가로, 운동권 지식인으로, 막노동 꾼으로 혹은 현장 운동가로서 살았다.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문인들의 시국 선언이나 농성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고, 뭇사람들을 놀라게 한 방북과 망명 그리고 감옥생활 5년. 본인의 말로 팔자라 하지만 그는 우리 민족의 격변의 현장에 늘 있게 되는 운명이었다.

그러니 그의 문학적 궤적 또한 만만치 않다.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객지」(1971)는 우리 사회의 생산과 노동과정의 왜곡상황에 대한 뚜렷한 문제 제기였고 『한씨연대기』(1972) 등은 분단문제를 우리 문학의 주된 고민으로 수용했으며 대하소설 『장길산』(1984)은 문학이 역사를 보는 안목이 어떠해야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문학 세계는 남한의 지식인이자 통일운동가로서 살아온 실천적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출옥 후에도 그는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비서구적인 조선적 사유의 형식실험이라 할 수 있는 『손님』, 동아시아 근대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심청- 연꽃의 길』, 작은 일상들의 소중함을 감싸안은 『황석영의 맛과 추억』 등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그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은 의미 있을 터이다. 미래나 예견에 사로잡힌 추상적인 관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서 휩쓸리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역류해가던 문학인 개인의 어떤 삶의 구체성이 우리 현실 진단에 묻어 나기 때문이리라.

작가이자 통일운동가

1989년 방북 이후 2000년, 『오래된 정원』으로 돌아온 그는 『오래된 정원』의 장기수 주인공 오현우 같았다. 시대의 중심에 있기는 하되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따라서 사소한 속세의 먼지 속에 빛나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오히려 더욱더 깨달을 수 있었을 터. 오현우의 그 이후의 삶이 우선 궁금했다. 그는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찾아 일산 작업실로 향했다. 네 개 밖에 안 남은 이를 보강(?)하기 위해 치과에 가고 없었다. 옥중 단식은 눈과 이를 상하게 했단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려 선생을 만났다.



방북, 망명, 투옥 생활 후,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계시는데 근황은 어떠신지요.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요즘은 『한국일보』에 「심청-연꽃의 길」을 연재하고 있어요. 19세기 동아시아의 근대를 그리려하는데 자료를 보니 좀 길게 써야할 것 같기도 합니다. 새벽까지 글 쓰고 점심 때 일어나 산책하고 병원에 가고 시장도 가고 책 보다가 밤에 또 집필을 합니다. 30여 년 습관이라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담배를 하루 두 갑 정도 피우는데 주위에서 끊으라고 합니다. 건강은 괜찮은 편입니다.”



이번 선거가 N세대의 역량에 도움을 받으며 6월항쟁 세대가 정권의 중심부에 진입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정원』의 주인공들이 정원을 다시 찾아가는 노력이 이제 보여지겠지요. 소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를 두고 난 생선 굽기에 비유했습니다. 불에 생선을 올려놓고 그 동안 너무 오래 한 면만을 구워왔죠. 김대중정권을 거치며 생선을 한번 뒤집기는 했지만 아직 익지 못했어요. 이걸 다시 돌려놓으면 그 생선은 아주 못 먹게 돼요. 그 면을 좀더 익혀야 제대로 된 생선을 먹지 않겠습니까? 물론 김대중정권이 연장 유지된다는 의미로 노무현 정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이제 비로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번 선거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기분 좋은 일입니다. 걸리는 문제는 민주노동당입니다. 민노당에 대한 애정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민노당으로 가는 것이 분명 불가능하니 기왕의 수구 보수 세력들의 입지가 약화되는 터전을 우선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민노당의 미래도 밝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앞으로 잘 될 걸로 봅니다.”



앞으로 노무현정부는 개혁의 걸림돌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한편으로 새로운 시대적 요구들을 수용해 나가야하는 이중적 과제를 떠 안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시대적 요구의 주체들인 N세대의 성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실 13년 만에 나와서 소설을 써야하니까 젊은 세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온 후 맨 먼저 인터넷, 컴퓨터 등을 배웠어요.

이 친구들은 우선 이성이나 논리, 이런 것을 따진다기보다는 감성에 의해 움직이기 좋아하고 ‘우리’보다는 ‘나’라는 말을 쓰기 좋아합니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겠지요. 코드가 맞지 않으면 아예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거나 소비 지향적이며, 욕망을 드러내놓고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 세대는 이번 선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고 또 뭔가를 보여 주었지요. 우선 붉은 악마의 응원전이 있었죠. 그리고 대개 놓치고 있기는 하지만 아시안 게임을 들 수 있어요. 북한 응원단이 관중들 사이에 섞여서 응원하며 인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저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남북의 거리 같은 것이 좁혀졌다는 거예요. 이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상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 중요하죠. 젊은이들의 민족의식, 분단극복의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촛불시위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죠. 미국의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죠. 지난번 책 출간 때문에 유럽에 한 달여 체류한 적이 있어요. 이때 유럽의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쪽의 젊은 세대들은 무슨 정상 회담을 하면 반세계화 구호를 내걸고 수 만 명이 모여 데모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류적 성향은 아나키즘이에요. 정치적으로 대단히 첨예하게 문제제기를 하지만 개인의 자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왜 이들이 그러한가를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들 젊은 세대가 인터넷 세대라 그렇다는 겁니다. 인터넷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거죠. 오사마 빈 라덴 보다는 멕시코의 반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에 더 가까운 세대, 인터넷으로 싸움하는 세대,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개인과 일상과 정치가 한데 묶여있는 모습은 우리 N세대를 이해하는 데 어떤 시사점이 있습니다.”



김대중정부가 힘을 쓴 시기는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정부도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힐 수도 있을 텐데, 노무현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과거 같으면 미사일 압수 사건 같은 것은 선거에 큰 악재였고, 선거 기간 내내 북핵 위기가 있었고 정몽준 씨의 지지철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가 민노당과 지지율을 합친다면 압승이라는 것이 우선 희망적입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수구세력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권력과 부는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원칙을 선택하고 국민을 선택하면서 위기를 넘겼어요. 앞으로 1년여간이야말로 이런 자세가 더욱 필요한 때라 봅니다.

어떤 이는 이번 선거를 종이 신문과 인터넷 매체의 대결에서 후자가 승리한 것으로 해석하더군요.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저야 나이든 구식이라 종이신문을 안볼 수 없지만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 매체들을 애용하더군요.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을 통해 하는 일상적인 참여를 여론으로 수렴해 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시민단체들의 역할도 바로 그 운동의 일상화를 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일상적 운동세력의 의견 역시 잘 수용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혁에 부족한 힘을 이들에게서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북·미가 핵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방북한 경험도 있으셔서 조금 더 민감하게 이런 문제에 대해 발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봐야할까요.


“북한문제는 제 오랜 과제이기도 합니다만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 갔다 왔다고 해서 무슨 친북파다 그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들의 어떤 원칙론 같은 것을 답답해하는 입장입니다.

북한 이야기를 해보죠. 남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우리는 분리 가입을 결사 반대했지요. 그런데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김일성 주석도 북한은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제1차 범민족 대회에서도 했지요. 이런 입장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의사로 봐야지요. 동시가입의 목적은 교차 승인에 있었습니다. 일본과 미국은 북한을, 소련과 중국은 한국을 승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중국, 소련과 수교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일본과 미국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미 문제는 시작되었다고 봐야합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북한을 테러국가로 그대로 놔두었고 동구권 무너지면서 북한은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이 생존에 큰 위협을 느낀 것은 당연하지요. 에너지 문제도 과거처럼 중국과 소련의 지원이 쉽지 않았지요. 달러를 지불해야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동 군사 훈련도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더구나 유엔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간 북한에서는 200∼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런 기아현상이 아프리카 등에서처럼 일시에 굶어 죽은 것이 아닙니다. 10여 년의 경제 봉쇄로 인해 배급량이 줄고 생필품이 부족해지면 전체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리다보니 유아사망률이나 노인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현재 음식물 쓰레기가 일년에 10조 원 수준입니다. 이런 액수로 북한 2000만 동포를 3년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애완동물 시장이 4000억 원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북한에 식량을 좀 공급하면 퍼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발언이 도대체 가능합니까?

이제 이 문제를 제대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반도의 교차 승인 문제에 있어서 우선 미국에 원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우리도 그 기아문제에 죄를 짓고 있었던 겁니다. 북한이 현재 금강산관광특구나 개성공단, 신의주 경제특구를 만들고 법을 바꾸면서까지 남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면서 한편으로 미국에다 핵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겠어요? 우리를 인정해 달라, 생존을 위해서는 관계개선이 필요하다, 관계개선을 하자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촛불 시위 같은 것도 어떻게 보면 『무기의 그늘』에서 보여주는 미국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되고 대중화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거기다가 인터넷 세대들의 독특한 인식론 같은 것도 동반되었을 것 같고요. 촛불시위에 참가하셨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촛불시위를 지켜보신 소감은 무엇인가요.


“효순이, 미순이의 죽음으로 촉발된 촛불 시위는 소파 협정이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지를 대중적으로 인식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땅에서 전쟁의 권한은 미국에 있다는 겁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쟁의 지휘권을 갖고 있어서 전쟁을 해도 정전 상태에서는 위법이 아닙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평화협정을 조속히 맺는 것이죠. 평화체제로 넘어가면 군축이 됩니다. 클린턴 정권은 이 단계의 초입까지는 접근했었다고 봐요. 김대중정권의 성과는 6·15선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국면에서도 북풍이 먹히지 않은 것은 6·15선언 덕이라 생각합니다. 대중들에게 이젠 반공이데올로기라는 무기가 소용닿지 않지요. 미국에 대한 인식도 이제 변해야 할 땝니다.”



10월 24일 ‘애플데이’에 선생님께서는 베트남전에 대한 사과발언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동남아인들에 대한 노동 착취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어 있습니다. 사과하고 시정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벼락부자가 정말 가난한 손님 괄시하듯이 하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약자에게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가깝게는 군사정권의 산물이자 길게는 일제 잔재입니다. 아시아에서의 식민지 통치가 지금 일본의 역할과 인식에 큰 제한을 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동남아 관광을 다니면서 하는 행태나 연변 자치구를 거의 황폐화 시켰다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지독히 착취하고 있다는 점은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스런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지난번 대만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일입니다. 대만 반한파의 대다수는 화교출신입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자장면 집 아니면 전혀 장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배타적이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우리 동포 기업인들의 위상과 비교해 보면 할 말이 없는 정도입니다. 독일에서는 여행자가 본국 내에서 병이 들면 보험처리를 해서 고쳐줍니다. 하물며 노동하는 사람들은 두말할 나위 없지요.

냉전체제의 틀이 깨지면서 제3세계를 묶는 고리가 없어지긴 했지만 동아시아 연대의 진보적인 틀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서구적인 문명의 대안들이 모색될 필요도 있고요. 이런 정황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대만과 일본, 그리고 기타 아시아 국가들 민중들의 진보적 연대활동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렇기에 더욱더 한국의 내실 있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때입니다.”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은 어떻습니까.


“급박한 시기에는 어떤 주제를 전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일에 치중했지요. 그러다가도 아주 개인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기도 했고요. 전자가 『손님』이라면 후자는 『오래된 정원』 같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저도 문학적 창작의 자유를 좀 누리고 싶어요.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회비 열심히 내고 행사 있으면 참가하는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집필은 현재 『심청-연꽃의 길』을 연재하고 있습니다만, 몇몇 사람들과 동아시아 연대를 위한 잡지를 하나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요리에세이 『황석영의 맛과 추억』을 펴내셨는데 이것도 그런 작가의 소망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책의 내용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6·25때 꿀꿀이 죽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미국부대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이죠. 이걸 끓여 먹는데 이거 먹다보면 담배꽁초도 나오고 쇠붙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밥을 제대로 못 먹을 때였으니까 이걸 학교 갔다오다가 시장에서 사먹었어요. 운 좋으면 고기 덩어리도 걸려 올라오니 아주 맛있었지요. 부대찌개라는 것도 그래요. 월남전 때 씨레이션을 주는 데 잘 못 먹겠어요. 그러다가 케이레이션이라는 게 나왔어요. 김치, 멸치 같은 게 들어있었는데 이걸 다 섞어서 고추장 넣고 끓이면 이게 부대찌개입니다. 이 맛이 잊혀지질 않아요. 감옥에 있을 때 관식이라는 게 매일 같은 거라 참 먹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운동 나가면 마당에서 쑥을 뜯어요. 복도에 있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관급 고추장 조금 풀고 멸치는 없으니까 오징어다리 좀 넣고 해서 쑥국을 끓이면 정말 맛이 기막힙니다. 저는 먹는 일이 인간답게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챙겨 먹으면 정말 하루가 잘 구획되면서 사는 것 같아요. 단식을 할 때면 하루가 정말 길고 괴로워요.

사실 저는 진짜 맛이라는 게 맛 자체에 있다고 보질 않습니다. 맛 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허망합니까. 마치 결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악무한에 빠져버리죠. 맛있게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한데 그 조건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우선 궁핍해야 합니다. 또 혼자 아무리 맛있는 거 먹어봐야 맛없습니다. 함께 먹어야 맛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을 하고 난 후에야 맛있습니다. 이것이 맛있게 먹고 인간답게 사는 비결이라고 썼지요. 이런 이야기는 과거 같으면 하기 어려웠어요. 일상이 떳떳해지고 그 소중함이 강화된 요즘에 와서야 가능한 이야기지요.”

마지막 질문은 참여연대 활동에 대해서였다. 물론 예상된 대답이었지만 중요한 시민단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면서 참여연대가 제기하는 문제도 아주 보편적인 것이고 명망가 중심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단체라는 점에서 더욱 바람직해 보인다는 대답이었다. 아주 열성적으로 지치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는 대답을 들었다.

황석영 선생과 이야기 하다보면 완전히 그에게 빨려 들어간다. 작품에서의 설득력과 같은 수준이다. 선생의 대답에 빨려들면서 준비해간 질문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약속된 시간을 다 채워버렸다. 작업실을 나선 후에야 깨달았지만, 더 듣고 싶은 부분은 그의 문학을 통해 들어야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서경석 문화평론가 · 한양대 국문과 교수
2003/02/06 00:00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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