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엄띄엄 자리잡은 농가들 사이로 빛바랜 가건물 한 채가 보였다. 외벽에 걸린 ‘하예성 사랑의 집(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첫 글자, 이하 사랑의 집)’이라고 적힌 나무현판을 보고 희상이(7)네 집임을 알아차렸다. 경기도 남양주시 남면. 희상이네 대식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10여 년 전 한 목사가 문을 연 이곳은 조건부 허가시설이다. 무상 임대한 가건물을 재건축하고 땅을 사야 조건부란 딱지를 떼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 때까지 공적인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한다. 현재는 후원금과 선교비, 몇몇 식구들의 생활보험급여로 살고 있다.

희상이네 가족 23명은 모두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다. 30대 초반의 아저씨부터 80대의 할머니까지 대부분 거리를 떠돌다 병을 얻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다. 씻는 것과 먹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의사표현 역시 상대방과 말을 주고 받는 것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외침에 가깝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자신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허가받은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결국 면사무소와 시청 사회복지과를 통해 ‘사랑의 집’에 오게 되었다. 단, 스스로가 원할 경우에만 식구가 되기로 약속했다. “이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마지막 예우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채워드릴 수는 없지만 되도록이면 자유롭게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사랑의 집의 가장인 박치병 전도사(47세) 역시 가정 불화 때문에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셨고 방황을 했었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술 마시며 사고치고 다니니까 자연히 옆에 사람들이 없어지더라구요. 고립되었죠. 그런 경험 때문에 이 분들의 심정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지문조회를 통해 주민등록을 추적해보면 이곳의 노인들에게도 법적인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서로에게 가족이라는 끈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간혹 찾아온 가족들도 모시고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연락을 끊는다. 이곳 식구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정신병원이나 행려자 쉼터, 기도원 등을 거쳐 사랑의 집에 마지막으로 몸을 맡긴 탓이기도 하다. 그래도 식구들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오기로 한 자식들이 오지 않으면 계속 물어보세요. 언제 오냐고. 왜 오지 않느냐고.”

치매가 있는 한 할머니는 길을 잃고 헤매다 사랑의 집에 왔다. 지문이 지워져 가족을 찾지도 못했다. 처음 입고 온 옷을 결코 벗으려고 하지 않았다. 식구들이 손대는 것도 싫어해 친해지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2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딸 같은 아주머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되살아난 지문을 통해 연락이 닿은 아들이 나타났다. 할머니는 아들을 따라 돌아간 지 석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달라진 환경에서 서로 힘들어 할까봐 식구들이 나갈 때 붙잡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 박 전도사 부인의 말이었다.

우리집 가훈은 ‘자유롭게 그리고 느긋하게’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두 차례 열리는 예배는 진풍경이다. 서있는 사람, 소리를 지르며 우는 사람, 옷을 입은 채 앉아서 소변을 보는 사람들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둔다. 식사 시간 역시 전쟁이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 입에 넣어주기까지 서로 진을 빼기 일쑤다. “어, 좋아”보다 “아니야, 싫어”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식구들의 몸에 배어있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거지같은 게, 웬수 같은 게 먹기만 한다”는 살벌한 말을 내뱉곤 한다. “자신들이 이제껏 들어온 말을 하는 거죠. 피해의식이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보고 다그치기는 힘들죠. 받아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멈추거든요. 식구들이 원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들은 일반 사람들이 금지하고 싶은 것들이죠. 하지만 이분들이 소리 지르고 욕을 하게 만드는 가슴 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이해해야죠.”

박 전도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식구들의 ‘속사람’을 향해 말을 걸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속사람을 건드리는 것”이 헛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주 조금씩 자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한 식구는 어느 날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며 괴로워했다. 23명이 제각기 다른 곳에서 한 지붕 아래로 모여들었지만 차츰 가족임을 느끼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식구 수가 많을 뿐 다른 집들처럼 살아요”

매일 오전 8시 반 쯤 사랑의 집으로 건너온 박 전도사 부부가 식구들의 몸을 씻기고 청소를 하고 나면 금새 점심 때가 돌아온다. 함께 밥을 먹고 난 뒤의 시간이 가장 한가롭다. 날씨가 따뜻한 날은 집 밖으로 나가 앉아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방안에 누워지낸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병원에 혼자 다녀오는 것이 중요한 일과다. 동네 밭에 나가 쉬운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당장은 식구들이 마음을 많이 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박 전도사는 서두르지 않는 사람이다. 식구들을 금방 변화시키려는 욕심으로 그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지내는 것이다. 식구들과 해보고 싶은 일도 다른 가장들과 다르지 않다. 생일상 챙겨주는 것, 여름에 물가로 놀러가는 것.

“계획이나 준비 없이 사랑의 집을 꾸리게 되었어요. 몸이 불편한 식구들과 어떻게 사나라는 염려는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냥 같이 생활하는 거죠 뭐.” 박 전도사는 자신에게 남다른 박애정신이나 사명감이 있어서 많은 식구들을 돌보게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 “먹고 치우다보면 하루가 다 가요.(웃음)” 결혼 전에 ‘청소년의 집’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과 10년이 넘게 생활했던 희상이 엄마에게도 이곳 생활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희상이는 아빠 엄마와 놀 시간이 거의 없다. 식구들을 돌보느라 늘 바쁜 엄마는 “희상아, 할아버지 물 가져다 드려” “아줌마 좀 도와줘”라고 연신 재촉한다. 잠만 자는 집으로 먼저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재작년까지 희상이네는 교회 겸 집에서 다른 식구들과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이 아픈 아저씨가 저지른 사고였다. 그 때문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방이 모자라 희상이와 아빠, 엄마는 잠자는 집을 따로 구해야 했다.

집은 힘들고 지쳤을 때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랑의 집 식구들은 조금 늦게 집을 찾았다. 가장의 바람은 이곳이 식구들에게 마지막 집이 되는 것이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2003/02/06 00:00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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