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선과 강인이 일본 극우파 이시하라 산타로를 말하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로 알려진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東京)도지사는 최근 “문명이 가져온 가장 유해한 것은 할머니”라는 망발로 여성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여성이 생식 능력을 잃고도 살아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며, 지구에 심각한 폐해”라는 망언으로 119명의 자국 여성으로부터 1309만 엔에 이르는 손해배상 및 사죄광고 청구 소송을 당했다. 이에 대해 그는 단지 도쿄대 교수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아줌마’ 둘이 이 남자 때문에 아침부터 마주 앉았다. 두 여자는 자신들을 예비 할머니라고 생각한다. e-매너서비스연구소 소장 권정선 씨(44세)와 대한은퇴자협회 전문위원 강인 씨(38세). 자리에 앉기 무섭게 복사해온 신문기사를 보며 열변을 토했다.

권정선(이하 권) : 서비스에 대해 강의를 하며 수강생들에게 따뜻함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순간적으로 적어보라고 하면 할머니라는 단어가 꼭 나와요. 할머니는 포근함의 상징이죠. 그런데 이시하라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나 봐요. 강인 씨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니 할머니 되려면 한참 남지 않았나?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요?

강인(이하 강) : 대학에서 노인 관련 강의를 하면서 이 문제를 학생들에게 물어봤어요. 할 말이 없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입니다. 가부장적인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긴 해요. 일본의 경우 가족이 함께 살더라도 세대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생활을 하는 특징이 있어요. 일본 노인들을 뒷방노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생식능력으로만 인간의 존재 가치를 정한다면 사람과 동물이 뭐가 다를까요. 말할 가치가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권 : 일본의 고유문화로 이해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하지 않았을까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로 이 문제를 봐야 해요.

강 : 냉철하게 말해 현대사회가 수명이 길어졌고, 60대 이상 노인의 70%가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해요. 따라서 많은 비용이 들겠죠. 이시하라가 이런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한 것이라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웃음)

권 : 노인들을 고려장 시키기는 뭐하니까 할 수 없이 같이 살겠다는 뜻일까요?

강 : 그러한 발언들을 그냥 덮어버리지 말고 외부의 압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기회에 다양한 의견이 공론화 되어야 해요.

권 : 이시하라가 시선을 끌긴 했으니 논쟁의 초점을 할머니의 역할에 맞춰 봅시다. 내 경험을 얘기해 보면, 노인들에게 옷차림에 대해 강의하면서 관찰해본 결과 할아버지의 양말만 보면 누가 할아버지의 옷차림을 관리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어요. 아내가 없거나 며느리가 관리하는 경우 옷에 어울리지 않는 양말을 신고 다닙니다. 또 가을에도 여름구두를 신고 다니기 일쑤예요. 그러나 할머니가 있는 집은 다릅니다. 할머니들은 감각이 있죠. 눈에 바로 띄지는 않지만 바탕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강 : 여자의 희생으로 우린 여기까지 왔어요. 특히 우리 세대는 할머니라는 존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았나요?.

권 : 일을 하다가 은퇴 한 뒤에도 30년은 더 살아야 합니다. 노인이 된 뒤에도 사회적 역할이 크고, 특히 가족의 문화를 할머니가 좌우한다는 것에 주목합시다.

강 : 아내가 없는 남자들은 빨리 죽는 반면 혼자 사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아요.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에 대한 기여도에서 훨씬 생산적이죠. 하다 못해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라도 하는 것은 할머니지 할아버지가 아니에요. 자원봉사자를 보더라도 할머니가 더 많아요. 그 관점에서 할아버지는 경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죠.

권 : 가정 자체가 할머니에게는 산업단지예요. 나는 사회생활 하면서 집안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우리사회에선 아직까지 여자가 사회생활을 할 때 가사를 책임져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요. 현재 우리 30대나 40대 여성이 이만큼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 배경에는 할머니가 있어요. 우리 딸이 나더러, 자기도 결혼을 한 뒤 일을 계속 하면 할머니처럼 자기를 도와주겠냐고 묻더라구요. 저는 자신이 없네요.

강 : 생산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노인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노인들을 돈만 축내는 존재로 경시하는 분위기가 이시하라의 발언에도 담겨있어요. 이젠 노인들을 생산인구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동가치를 무시한 이시하라의 발언은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말 한 것과 같아요.

권 : 맞는 말이네요. 주변을 돌아보면 저 분이 정말 할머니 맞아? 하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똑똑한 할머니들이 많아요.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는?

강 : 할아버지의 가치에 대해 따져봅시다. 이시하라가 말한 생식능력의 기준으로도 생각해 봐요. 생식능력이 없는 젊은 남자들이 요즘 얼마나 많아요? 가부장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는 넘쳐요. 불임부부만 살펴봐도 생식능력이 없는 여자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는 있어도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 때문에 이혼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죠.

권 : 요즘은 생식을 포기하는 여자들이 많아요. 아이 낳은 것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할머니라는 이름표를 붙여야 할까요? 여자들이 진정 자신을 되돌아보고 할 일을 찾아가는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생식능력’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40대예요. 그 전에는 역할이 너무나 많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마흔다섯은 되어야 인생을 새롭게 출발해 보려고 합니다.

강 : 현재 할머니 세대와 젊은 여성 세대의 차이는 ‘교육수준’ 밖에 없어요. 할머니들은 매우 건강하고 부지런한 세대예요.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서 사회에 뭔가를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권 : 맞아요. 오히려 세대가 낮아질수록 공부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우리가 노인세대가 되었을 때가 더 걱정이에요. 가정을 이끌어 가는 방법을 우리는 배우지 못했죠.

강 : 나는 일흔넷 된 우리 엄마에게 재미있게 살라고 말해요. 데이트도 하시고 춤도 배우시라고 수강증을 일부러 끊어줬어요. 처음엔 손사래를 치던 어머니도 막상 나가시면서 얼굴이 밝아졌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다시는 춤 배우러 안 간다고 하시더라구요. 알고 보니 젊은 할머니들은 인기가 많은데 당신은 늙어서 같이 춤추자는 사람이 없었나 봐요. 그래서 내가 돈으로 해결하라고 했어요(웃음). 밥 사주고 선물 사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요. 할머니들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거예요.

권 : 할머니들의 패션쇼를 기획하고 있어요. 할머니라는 이름표를 떼고 할머니들의 가치를 자꾸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뽀글뽀글한 할머니 파마나 빨간 립스틱만 바르는 화장에서 벗어나야 해요. 할머니들의 문화시장도 넓혀야죠.

강 : 이시하라가 말한 생식능력에 대해 더 얘기를 해봐요. 아이 낳는 능력을 말하는 걸까요, 성적인 측면을 말한 걸까요. 그나저나 노인 중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데 할머니들의 성문제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 학생들한테 말을 해보았더니 젊은애들은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동성애도 좋고, 자위기구도 있고, 인터넷에 야한 비디오 많은 데 뭐가 걱정이냐고 말해요. 다음 세대의 노인들은 분명 다르게 살 거예요.

권 : 접촉을 통해 정신적인 만족을 얻는 게 중요해요.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도 화제가 됐잖아요. 노인이 되더라도 남녀가 만나는 게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할머니말고 다른 말 없나? 사실 요즘 할머니라는 말은 팔십은 넘어야 적합해요.

강 : 노인부부들의 사랑을 보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훨씬 깊어져요. 젊었을 때는 여자가 더 남자를 사랑하는 데 늙을수록 반대래요. 왜 그렇게 변할까요?

권 : 그것이 공평한 관계의 사랑인지, 의존적 사랑인지를 따져봐야 해요. 경제력까지 잃은 남편에 대해 아내에게 남은 감정은 귀찮다는 것뿐입니다. 우리 세대 어머니들이 겪었던 남편의 구박이나 멸시를 할머니들은 잊지 않았어요. 참은 것이지 용서한 것은 아닌 거죠.

강 : 정리해 보면 결국 걱정해야 할 것은 이시하라가 말 한 것처럼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되는 건가요? 정보가 급격하게 늘어가면서 직업생활만 한 할아버지 세대야말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노하우가 없어졌어요. 안타까워요. 노인과 청년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가야할 때가 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 보고서는 2022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중이 14%를 넘어 한국이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비껴갈 수 없는 삶의 통과의례다. 그래서 노년은 공포스럽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공부와 일밖에 없는 20대 여성들은 김치도 담글 줄 모르는 할머니가 되는 게 두렵고,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남성은 무력한 할아버지가 되어 자식과 아내에게 구박 당할까봐 무섭다.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을 보며 그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순순히 인정하고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시하라의 발언은 우리들의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는 두려움에 불을 지폈다. 그렇지만 그의 발언은 핵심을 찌르지 못했다. 두 여자는 그의 말을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한 가부장적 발언이라고 일축한다. 그들은 생식능력이 기준이라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차이가 없으며 사회적 생산력으로 따진다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노인여성의 사회적 가치를 재발견해야 할 때가 왔다. 할아버지의 제 역할도 찾아줘야 한다. 30년 이상 직업전선에서 일해 온 경험은 은퇴 뒤 물거품이 되어 손자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시대 할아버지들의 모습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여류작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노년-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을 통해 인간 역사를 통틀어 한 사회 집단이 그 집단의 필요나 이해관계에 따라 노인들의 운명을 결정해왔으며, 이것이야말로 노인의 인간 조건 중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0년에 프랑스 사회를 분석한 이 책이 21세기 한국과 일본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모양이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3/02/06 00:00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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