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서울 대학로 극장가에선 길거리 호객 행위가 부쩍 늘었다. 그런데 호객행위들 중에 제일 짜증나는 유형이 있다.

“저질 연극, 개그콘서트, 할인권 배포 행위에 관심 갖지 맙시다. 좋은 연극은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공연합니다. 호객행위에 관심 갖지 맙시다.”

다름 아니라 연극협회와 배우협회에서 호객행위에 관심을 갖지 말자고 호객하는 거다. 며칠 전 대학로에 나갔다가 차량 스피커에서 나오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입이 쩍 벌어졌다. 범죄행위가 아니고서야 호객행위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행여 그들의 불법 행위로 인해 자신들의 공연이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지, 이런 대응은 보기 민망할 뿐이다.

몇 년 전엔 소위 ‘벗는 연극’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연극계 어르신들께서 노발대발하셨고 실제로 벗는 연극을 하는 극장 근처에서 시위를 하시기도 했다. 그 분들 역시 한국연극협회와 배우협회 회원이시고 나도 그 두 단체의 회원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안타까운 맘이 든다. 예술엔 정답이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자기들이 하는 연극만이 ‘참’연극이고 뒷골목 연극은 연극이 아니라는 생각엔 동의할 수 없다. 제도권 안의 연극도 그동안 수없이 여배우들을 벗겨 왔다.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하루에 두 번 이하로 공연하면 ‘좋은’ 연극이고 그 이상 공연하면 ‘나쁜’ 공연이라는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6년 전 <비언소>라는 작품을 공연할 때였다. 극장으로 출근하던 중 포스터들 앞에서 어느 것을 볼까 고민하는 행인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호객하는 뒷골목 연극의 ‘삐끼(호객꾼)’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출연하던 공연은 지루한 거라고 한마디로 폄훼하면서, 무대세트는 달랑 침대 하나에 배우는 속옷차림의 남녀 배우 둘 뿐인 자신의 연극을 열띠게 선전하는 모습을 목격한 거다. 그 때 나는 화가 나기는커녕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공연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저절로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호객행위에 넘어갈 관객들이면 어차피 협회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연극에 발걸음을 옮길 생각이 없는 관객들이다.

제도권 연극인들은 그런 악다구니를 쓸 시간에 자신들의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게 관객을 뒷골목으로 뺏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호객행위에 관심을 갖든 지 말든지 그건 관객 스스로 알아서 할 문제지, 자신들이 관객들에게 도덕심까지 가르치려 드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이요, 도를 넘은 ‘꼰대정신’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한참 입을 쩍 벌리고 그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중에 바로 옆에선 호객꾼들이 개그콘서트 할인권을 뿌리고 있었다. 이번 게임은 그들의 압승이었다.

오지혜 영화배우
2003/02/06 00:00 2003/02/06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796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