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하르보 카리사!
2003/2003년 03월 :
2003/02/25 00:00
현지르포-요르단 암만 도착에서 이라크 바그다드 입국까지
지난 2월 7일 "한국이라크평화팀"은 전쟁을 막기 위해 이라크로 떠났다. 현재 7명의 평화운동가들은 비자문제로 이라크에 입국하지 못한 채 열흘 넘게 요르단에 머물고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평화운동가들이 요르단에서 이라크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 현지에 있는 한국 평화운동가들로부터 요르단 소식을 전해듣는다. 편집자주
요르단 도착
마음은 담담했다. 이라크 입국절차를 밟기 위해 비자 발급 받으러 요르단 주재 이라크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관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서성이고 있었다. 일본에서 온 언론인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모두 비자를 받기 위해 줄 서 있었지만, 비자 받고 환하게 웃는 이를 볼 수는 없었다. 혹여 이라크 비자를 받은 사람일지라도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지금 비자를 신청하면 한 달 뒤에나 받을 수 있다는 말에는 다리에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맥빠진 얼굴로 한숨을 터트리고 있는 순간, 이라크대사관 직원은 동양의 평화운동가에게 넌지시 바그다드에서 보내주는 초청장이 있으면 비자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고 힌트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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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라크평화팀은 비자문제로 요르단에 머물고 있었다 |
다음날 하지(이슬람 최대의 종교적 연례행사)가 시작되었다. 하지가 되면 모든 관공서는 문을 닫는다. 이라크대사관도 마찬가지였고, 은행과 가게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대구참여연대 동부지부 대표 이영화 씨와 그의 딸 남효주 씨, 그리고 나는 현지의 평화운동가들을 수소문하거나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요르단에서 열린 반전 집회
그후 2월 15일을 맞았다. 2월 15일은 국제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반전 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요르단에서도 대규모의 반전 집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집회에 공식적으로 참가해 ‘한국이라크평화팀’의 이름으로 연대사와 간단한 메시지를 전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최측에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고 기다렸으나 답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라크에 들어가 평화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또 이라크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요르단에 머물고 있는 평화운동가들의 수는 제법 됐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요르단의 평화집회에 참석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집회 현장에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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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공격 임박으로 요르단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
집회 현장에 도착하니 시위대가 도배하다시피 들고 있는 압달라 요르단 국왕의 사진 피켓들 사이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사진이 언뜻언뜻 보이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집회를 주관했던 그룹이 이라크의 집권당과 같은 계열인 바스당이었던 것이다. 철저한 관제 집회에다 후세인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이는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집회가 아닌 응전의 의지를 다지는 성격의 집회였던 것이다. 우리 그룹이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게 무척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집회의 열기는 뜨거웠고, 요르단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형(?) 집회였다. 시위 참가자는 2000∼3000명 정도 돼 보였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관제집회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처럼 보였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부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자, 주위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외신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2월 8일 즈음 시작된 우기로 ‘빗속의 집회’를 카메라에 담는 취재팀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었다. 시위대 중 몇 사람과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영어가 통하지 않아 불발로 끝났다. 마이크를 들이대고 열심히 시위대들을 인터뷰하는 아랍 방송국들이 부러운 시간이었다. 하지가 끝난 직후여서인지 집회는 종교적인 색채도 강하게 띄었다. 집회 구호 사이사이에 기도문들이 들렸다. 시위대가 아닌 지나가던 주민들도 시위대 곁을 스쳐가면서 구호소리가 들리면 따라 하는 모습도 간간이 발견할 수 있었다. 집회가 막바지로 들어설 무렵 마이크에선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쪽에 모여 춤을 추면서 집회는 축제 분위기로 바뀌기도 하였다. 집회는 뜨거우면서도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3시간 여의 집회가 끝난 뒤 모두 해산한 다음, 시위대가 외치던 기도문이 귓전에 긴 여운을 남긴다. “알라후 아크바르”(하느님은 위대하시다!)
바그다드로 간다
2월 17일 한국에서 이라크평화팀 2인이 요르단 암만에 도착했다. 요르단 암만 공항에서 그들을 만나니 적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보던 얼굴과 달라보이기까지 했다.
2월 15일 ‘다소 실망스런’ 반전집회를 목도한 우리들은 바그다드로 들어가 평화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관광비자로라도 입국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2진으로 도착한 사회당 전 부대변인 허혜경 씨와 내가 먼저 이라크에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요르단에 들어와 있는 국제기구들과 만나 난민 구호사업을 펼치기로 협의했다. 그리고나서 한국대사관측에 우리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유사시엔 한국대사관으로 피신해야 하고, 한국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사관에서도 어느 정도의 우리 행동을 알고 있어야만 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한국이라크평화팀’에게 이라크에 입국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차라리 요르단에 남아 난민지원 사업을 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면 한국대사관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는 결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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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 숙소에 걸려있는 한국이라크평화팀 깃발 |
2월 18일, 나와 허혜경 씨는 바그다드로 간다. 닥칠 위험이 예상된다. 바그다드 현지에서 막 요르단 암만으로 나온 국제평화운동가들은 바그다드 상황이 그리 범상치 않음을 예고해 주었다. 일 대 일로 이라크인들이 미행하고 있고, 수시로 숙소를 수색하거나 이메일도 이라크정부가 제공하는 것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한 즈음, 독일과 프랑스는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전쟁반대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이라크 민중과 함께 세계 정상들에게 고할 것이다. 이라크에서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서 안 된다고. 알 하르보 카리사!(전쟁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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