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전쟁은 이제 그만


한국에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간 7명의 평화운동가 중 5명이 여성이다. 카메라를 들고 전쟁의 실상을 기록하겠다고 떠나는 기자들 중여도 여성이 있다. 한 여성운동가에 따르면, 8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세례를 받은 여성들이 최근 반전평화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쟁을 벌이는 주체가 주로 남성이라면, 평화를 지키는 주체는 여성이다.

종전 50주년.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세계는 또 다시 전쟁의 광풍 속으로 휩쓸릴 위협에 빠져 있다.

최근 이라크전의 발발 위기 앞에서 세계 평화운동가들은 ‘인간방패’를 자청하며 이라크로 떠나고 있다. 한국의 평화운동가들도 세계반전평화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그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지점이다.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이하 이라크평화팀)은 2월 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기 위해 이라크로 출발한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면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는 바, 이러한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한국의 평화운동가, 사회운동가, 예비 병역거부자, 환경운동가, 여성운동가, 학생운동가, 청소년, 대학생, 언론인 등은 여러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전쟁 저지를 위한 활동을 하고자 한다”며 이라크로 떠나는 목적을 밝혔다.

2월 18일 현재 이라크평화팀에서 출발한 인원은 한상진, 이영화, 남효주, 허혜경, 박은국, 성혜란, 전승로 씨로 모두 7명. 그 가운데 5명이 여성이며 앞으로도 다수의 여성평화운동가들이 이라크로 향할 예정이다. 더구나 이라크평화팀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들은 대구에 살고 있는 이영화 씨(45세), 남효주(17세) 씨로 이들은 모녀지간이다.

평화운동의 참된 실천

이영화 씨는 “외국에서는 모녀가 평화운동을 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평화운동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커서 전문적인 평화운동가가 되는 거다. 우리가 이라크로 가는 것 자체가 평화운동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평화운동가의 자격이 아니라 카메라나 펜을 들고 떠나는 기자들 중에도 여성들이 있다. 이라크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인 이들은 전쟁 생중계가 아닌 ‘평화’의 시각에서 전쟁터를 발로 누빌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여성해방연대 오김이숙 활동가 또한 조만간 이라크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이라크평화팀원들과 달리 ‘평화운동가’ 이전에 ‘여성운동가’임을 분명히 한다. 여성해방연대는 “전쟁으로 인한 폭력이 국가 간의 무력분쟁일 뿐만 아니라 지배집단이 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해 가하는 억압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전쟁은 여성과 남성,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똑같이 경험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은 여성을 전쟁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왔으며, 전시에 여성에게 행해지는 강간과 구타와 학대는 전쟁이 성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상황임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 1월 7일 발표된 UN 보고서만 보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경우 최소 50만 명의 사망자와 3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평화운동도 활발

‘국제 반전행동의 날’인 지난 2월 15일에는 ‘이라크 공격 반대, 한반도 전쟁위협 반대를 위한 국제공동 반전평화 대행진’이 서울 대학로에서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 행사에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활동가들과 어린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으며 많은 여성 참가자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아울러 여성해방연대는 지난 2월 11일부터 미국대사관 앞에서 전쟁반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등 국내외에서 평화운동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성평화운동진영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에는 광복 56주년을 맞아 어머니들의 한반도 평화선언이 있었다. “땅속엔 지뢰, 물속엔 핵 잠수함, 하늘엔 미사일전투기, 지상엔 백색가루가 있는 곳에서 우리 어린 생명들이 숨쉬며 꿈꾸며 사랑할 곳이 있겠습니까”라는 어머니들의 질문은 평화운동에 어머니들이 나서는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지난 해 연말께 활발하게 진행됐던 여중생 사건 촛불시위에도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는 등 각종 비폭력평화 시위에서 여성들의 등장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여성평화운동이 본격화 된 이유

이처럼 여성들의 평화운동이 본격화 된 이유는 무엇일까? 평화운동가이자 개혁국민정당 여성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이덕수 씨는 현재 외국의 많은 여성평화운동가들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며 지금의 현상을 ‘386세대의 특징’ 중 하나라고 요약했다.

손이덕수 개혁당 여성위원장은 “현재 평화운동의 주역들은 30대들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여성해방 운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사회의식이 강해지면서 사회활동과 이론을 통해 몸에 체화된 것이다. 386 세대의 여성들은 대학 시절 때 참여했던 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 다시 평화운동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50년 전 6·25 당시 많은 외국인들은 평화가 아닌 전쟁의 이름으로 한국을 지키러 왔다. 이젠 우리가 싸움꾼이 아닌 평화꾼으로 국제사회를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쓰는 주체가 되기 위해 보다 많은 여성들의 의식이 깨어야 한다. 전쟁을 벌이는 주체가 대부분 남자라면, 평화를 지키는 주체는 여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사회의식의 강화와 더불어 여성운동이 평화운동과 맞물리는 과정은 외국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1980년대 초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라는 요구가 강했던 독일의 여성운동의 경우 가사노동에 지불되어야 할 돈이 군수공장으로 들어간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에 독일의 여성운동계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군수공장을 폐쇄하라고 요구한다. 즉 시작은 여성운동의 일환이었지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평화운동의 하나로 발전 한 것. 이를 시작으로 여성평화운동은 전쟁 자체의 반대 운동을 비롯해 전쟁을 통한 여성의 구타과 강간을 반대하는 운동 등으로 분화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여성들의 평화운동의 움직임은 늦은감이 있지만 매우 반갑다. 21세기는 국제적 이익이나 정치관계, 계급과 인종문제를 떠나 생명의 차원에서 세계를 바라봐야 할 때다. 생명의 소중함과 전쟁 안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폭력을 자각한 여성들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3/02/25 00:00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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