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한반도


이라크 전쟁은 21세기 인류 양심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민족에게 이라크 전쟁은 단순히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그 누구, 어떤 나라보다 우리가 이라크 공격을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맨몸으로라도 전쟁을 막겠노라’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이라크 반전 평화팀이 현지로 떠났다고 한다. 그 결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시간대에 우리 정부의 총리는 이라크 파병을 검토중이라 했고, 주한 미 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쌍수를 들어 환영 의사를 나타내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그나마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국제적 체면을 위해서도 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무지가 인간에게 도움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을 터, 이라크 위기 못지 않은 북핵 위기를 안고 있는 나라의 처신이 어찌 저런가하는 개탄마저 든다. 국제 푼수 소린 듣지 말아야 할 텐데….

세계적 반전 평화의 물결이 예사롭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일부 극렬 우경 정치인 및 그들의 ‘푸들 강아지’ 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빼면 세계 만방에서 반전의 메아리가 드높다. 1990년대 이후 상향선을 그으며 전개되어 오던 반세계화 운동이 9·11테러로 조성된 국제적 공안국면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금 반전평화운동으로 새로운 출로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 규모와 대오의 단일성에서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대적인 반전 평화운동의 향방은 가장 먼저 이라크에 대한 21세기형 ‘더러운 전쟁’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넘어, 우리의 생존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북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완벽하게 고립, 포위하고 있는 미국을 국제시민사회가 정치적, 도덕적으로 포박할 수 있다면, 개전 여부 및 전쟁의 규모와 양상은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띠게 될 지도 모른다.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기 위한 준비된 전쟁

사실 세계 유일의 초강국 미국이 국제시민사회와의 여론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당성 없는 개전 사유 자체에서 기인한 바 크다. 미국은 애초부터 예정된 시나리오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위협 △이라크와 알카에다의 연계설에 근거한 반테러 전쟁 △이라크의 민주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국제사회를 설득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의 경우 유엔 무기 사찰단이 이 잡듯이 수색을 했어도 이렇다 할 증거를 찾아 내지 못했고, 나아가 대량살상무기로 말하면 북한과 파키스탄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라는 논리에 설득력이 바랬다. 알카에다와의 연계설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라크의 민주화도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후세인 정권을 지원해 유지시킨 것이 바로 지금의 미국 매파라는 점에서 되려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되어버렸다.

이러저러한 구차한 이유는 다 던져버리고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기 위한 준비된 전쟁이라 보는 편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현재 미국은 국내 석유 소비량의 5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2020년 무렵에는 이 비율이 65%로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해외 석유 의존은 초강국의 유일한 ‘아킬레스 건’이라 할 만한 중대사안이다.

어떤 의미에서 예정되고 준비된 전쟁이라 할 이라크전쟁이 가진 위험성은 이것이 단순히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사실 이라크전쟁의 숨은 이유가 석유라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확보된 석유, 즉 안정적 에너지원에 기반해서 미국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진정한 문제가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유일적 패권의 안정적 유지와 재생산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라크, 이란, 북한 등 지목된 ‘깡패국가’의 제거를 통해 비로소 최종 완료된다. 그런 점에서 경제 분야에서 미국기업연구소(AEI)와 더불어 미국 매파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선봉대 역할을 하고 있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가 최근 부시에게 보낸 공개편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올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가 이 그룹의 주축이다.

“사담 후세인의 제거는 이라크 정부를 품위 있게 재건하고 중동에서 당신의 전략적 비전을 수행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기타 깡패국가들이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사실 이제부터 우리는 2개의 전쟁 시나리오에 직면해 있다. 설사 이라크전에 병력을 보내더라도, 북한은 자신의 핵 개발을 완료하기 위해 협정을 폐기하고 양보를 얻지 못할 경우 전쟁 위협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악의 축의 3번째 국가인 이란 역시 마찬가지로 핵 개발을 시도해 왔다.”

이라크 파병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면 위배

PNAC그룹의 부시 행정부내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라크 전쟁은 부시의 있을 수 있는 전쟁기도의 첫 번째 경우이다. 따라서 이라크전의 개전 여부, 기간, 양상 등은 북핵 문제의 전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라크전이 부시가 의도한 대로 조기 종전될 경우, 북핵 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고 그것이 저지되거나 장기 소모전으로 전개될 때 북핵 문제의 해결은 다른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정이 그렇다 할 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외 다른 그 어떤 것도 가능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없다고 보는 한국의 시민사회에게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연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차대한 첫걸음으로 자리매김된다. 반대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말하는 우리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검토한다 함은 그 자체가 중대한 자기 모순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에 부화뇌동해 이라크에 파병까지 한 나라가 자기 문제는 무력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국제사회에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지 지극히 의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 정부가 이라크 파병의 구실을 한미상호방위조약-그것이 해방이래, 아니 단군이래 우리가 체결한 가장 불평등한 국제조약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잠시 접어두자-에서 찾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그 제1조를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한다.”

다시 말해 이라크 파병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유엔의 목적에 합당한 방법을 요구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1조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침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고 조약의 발동사유를 규정한 제2조를 보더라도, 현재 미국이 이라크의 “무력침공”을 받고 있다고 볼 근거가 없는 이상 조약의 발동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라크 전쟁은 21세기 인류 양심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것은 단순히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그 누구, 어떤 나라보다 우리가 이라크 공격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2003/02/25 00:00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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