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언론, "미국의 이라크 공격" 어떻게 바라보나


요즘 수백 개에 이르는 아랍지역의 신문들과 수십 개의 방송은 다가오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큰 관심을 보이며 날마다 많은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정책에서 나타나는 이중 잣대에 대한 불만, 종교적 동질감, 민족적 형제애, 역사·문화적 일체감 등이 아랍언론의 시각과 태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라에 따라, 또 같은 나라에서도 언론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느껴진다.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걸프 국가·요르단·이집트 언론이 예멘·수단·리비아와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독재정치가 만연한 아랍지역에서 관영언론과 비관영언론의 시각은 상당히 다르다. 마지막으로 이라크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는 걸프국가들과 이들을 비판하는 수단·예멘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종종 입에 올리는 ‘아랍권’ 혹은 ‘이슬람권의 입장’이라는 말은 22개나 되는 아랍국가들의 입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이라크 사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아랍 언론의 반응을 아랍 각국의 주요 일간지와 TV방송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테러와의 전쟁

대다수 아랍 언론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당시 그 명분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으면서, 공격에 따른 민간인 희생 문제를 주요 관심사로 다뤘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랍 방송과 신문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했다는 미국과 영국의 주장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과격 이슬람운동이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떠오른 이집트 알제리 등 일부국가 언론만이 “테러리즘은 근절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월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주장한 알 카에다와 후세인 정권과의 연계에 대해서도 아랍언론들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어도 후세인 대통령과 국제테러조직의 직접적인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요르단 『알두스투르』 2003년 2월 6일자). 많은 아랍의 방송과 신문들은 파월 장관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이라크 정부가 “증거는 조작된 것이고, 전쟁을 위한 미국의 쇼”라고 반박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 이라크의 무장해제

이라크가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실에 대해 모든 아랍언론은 강력하게 비난했다.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과 대량살상무기 제거 결정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이라크 공격과 이라크 무장해제의 연관성에 대해 아랍언론은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랍언론은 “지난 12년 동안 유엔이 이라크에 대해 취한 경제제재와 미국과 영국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이라크의 군사력이 상당히 약화되어 중동과 국제사회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레바논 『알사피르』 2002년 12월 8일자). 특히 대다수 아랍 방송과 신문은 “91년 걸프전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지금은 무기가 없어 미국이 우리를 공격해도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의 2월 13일 발언을 수긍하는 듯한 태도로 보도했다(팔레스타인 『알쿠드스』 2003년 2월 14일).

▶ 미국 주도의 대이라크 군사행동

아랍언론은 물론 각국 정부와 국민들이 가장 깊은 거부감을 표시하는 문제다.

‘일방적인 전쟁 반대’ 움직임을 주도하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세 나라가 지난 2월 11일 △이라크에 평화적인 무장해제 기회 부여 △이라크 사찰단 수 2∼3배 증원 △무력은 최후의 수단 등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자 아랍 언론은 일제히 이를 지지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라크에 침공을 당했던 쿠웨이트마저도 “이 지역에서 전쟁은 한 번으로 족하며, 한두 국가가 우리 형제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쿠웨이트 『알시야시야』 2003년 2월 12일자).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라크 사태 수습 이후 미군 철수를 요청하기로 결정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은 이 결정을 “사우디의 개혁을 위한 진정한 의지”라고 환영했다(사우디아라비아 『알야움』 2003년 2월 11일자).

▶ 사담 후세인 축출

후세인 정권의 급진적인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주변국들과 후세인의 무자비한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반체제인사들, 아랍권 인권운동가들은 후세인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중동지역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일부 아랍인들은 서구의 압력을 견뎌내는 후세인의 꿋꿋한 태도를 지지하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논란거리는 후세인의 퇴진 방식이다. 현재 아랍언론이 요구하는 가장 무난한 방법은 미국에 의한 후세인 제거가 아니라 후세인을 설득해 스스로 물러나 망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상당수 아랍국가들은 지난해부터 이를 위해 물밑작업을 해왔고,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입장 변화를 가져왔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최근 후세인 망명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데 이어, 파월 국무장관도 2월 12일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후세인 대통령이 퇴진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후세인 대통령을 망명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른 나라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집트 『알샤으브』 2003년 2월 13일자).

요르단은 최근 “후세인과 그의 핵심 측근들이 망명할 경우 아랍권의 특정국가에 망명처를 제공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카타르 『알자지라』 TV 2003년 2월 14일). 그러나 다른 국가의 일부 신문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외부 압력을 통해 망명시키는 것은 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수단 『알시야시』 2003년 1월 4일자).

▶ 후세인 이후 이라크 정치구도

아랍 방송과 신문은 소위 ‘포스트 사담(post-Sadam)’ 체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싣고 있지만 대체로 이라크 정치구도에 대한 외부 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과 영국의 2∼3년간 군정 실시 구상이나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 아흐마드 샬라비의 후세인 후임 내정설 등에 대해 아랍언론은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상당수의 아랍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려는 것은 이라크와 카스피해 주변의 석유를 독점하려는 경제제국주의적 발상 때문”이라며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구상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시리아 『알사우라』 2002년 10월 17일자).

서정민 '중앙일보' 기자
2003/02/25 00:00 2003/02/25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8096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