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지친 11명 어린이들의 생생 토크


우리 사회가 아동인권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없이 성공을 목표로 하는 "관리"위주의 시각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소외된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우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본지는 심각한 아동인권침해 사례를 통해 한국사회에서도 국제법에 준하는 아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장치가 필요한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에선 수요일 오후가 되면 어린이 기자학교가 열린다. 2월 12일은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놀이터를 취재해서 모이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취재회의를 잠시 미루고 ‘어린이의 놀 권리’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모처럼 또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인 아이들


토론을 제안했던 기자가 참여연대부터 소개했더니 한 어린이가 “참여연대는 시민권리를 위해 8년이나 일을 했다는 데 왜 세상은 변화가 없는 거죠? 우리 어린이들은 왜 제 권리를 찾지 못하는 거죠?”하고 따끔한 질책부터 날린다.

이처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졌던 이 어린이들은 토론 내내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쳤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으로 구성된 11명의 어린이 기자들은 어른들과 자신들의 삶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우리에겐 주말도 없다

교사 : 너희들은 매일 신나게 놀면서 살았으면 좋겠지? 너희들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노니?

교사의 질문에 어린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루요?” 어린이들 입에서 동시에 터진 말이다. 그랬다. ‘하루’에는 놀 시간이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놀까말까 한다는 아이들에게 교사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교사 : 그렇다면 우리 어린이의 놀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각자 한 주간의 주간일정을 말해보기로 할까?

어린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저는 1학년인데 일주일에 3일은 학원에 가요. 학교 마치고 나서 오후 2시 25분부터 4시까지는 피아노, 그리고 5분 정도 쉬었다가 미술학원에 가서 5시 30분에 집에 오는데 정말 너무 피곤해요. 학원 가기 싫어요.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어요. 유치원 때처럼 놀 수가 없어요. 집에 와도 저녁 먹고 7시까지는 공부해요.

가장 나이가 어린 어린이가 학원이 힘들다고 말하자 언니, 오빠들은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각자의 생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11명 아이들에게 2∼3개의 학원은 필수였고, 가정으로 교사가 방문해서 수업을 받는 것까지 포함하면 평균 6개 정도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학원은 피아노, 미술, 태권도, 과학교실, 창의력 교실, 컴퓨터, 힙합댄스, 일일학습지, 독서교실, 바이올린, 논술, 한자, 영어 등. 대부분의 하루 일정이 이렇게 학원과 과외수업으로 빽빽한 만큼 평일에 ‘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말에도 학원에 다닌다는 어린이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을 매주 만나고 있는 김소희 교사도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 학원을 실제로 다니고 있는지는 정말 몰랐다. 이 지역은 서울에서도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서울 강남의 어린이들은 어떨지 상상이 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린이 : 학원에 다녀와서도 숙제를 다 끝낼 때까지는 놀 수가 없어요. 놀 시간이 있다고 해도 그 때 친구들은 학원에 가 있어요. 그래서 혼자 놀아요.

어린이 : 저는 길을 가다가 대문을 두드리면 친구가 나와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 집에 전화를 하지 않고 가면 만날 수가 없어요. 꼭 전화를 해야 해요. 일주일의 반을 공부하면 일주일의 반은 놀아야 공평한 거 아니에요? 지금은 공부만 더 많이 해요.

교사 : 그러면 우리 친구들은 언제 주로 놀게 되지?

어린이 : 학교 마치고 간식을 사먹으면서 놀아요. 아니면 학원 가서 수업 기다리는 애들이랑 같이 놀아요. 안 그러면 혼자 놀아야 해요. 초등학교 들어온 뒤로 놀이터에는 안 가봤어요.

어린이 : 운동장에서 달리기 경주하고 싶은데 체육시간에만 뛸 수 있어요. 놀이터는 중학생 오빠들 때문에 무서워서 안가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비디오 보여줄 때만 놀아요. 쉬는 시간에도 잘 못 놀아요. 칠판에 쓴 거 공책에 옮겨 적어야 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화장실에도 못 갈 때가 많아요.

어린이 : 비 온 뒤에 땅을 파서 물길을 잡고 놀고 싶은데 유치원 다닐 때만 해봤어요. 나무젓가락을 모래에 꽂고 쓰러뜨리기 놀이도 하고 싶고요. 시골에 가서 소 타고 다니는 놀이도 하고 싶어요.

어린이 : 만날 시계 보면서 학원 갈 시간만 생각해야 해요. 우리를 괴롭히는 공부는 가라!(이때 모두 박수를 친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놀이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놀이 동산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 보다 일상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고 싶어하는 바람이 더욱 컸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고민이 많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마치 자신만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 민감했고 부모들이 학원에 보내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아울러 학원에 보내주는 부모들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도 컸다.

어린이 : 부모님들이 다 우리 잘 되라고, 우리 훌륭한 사람 되라고 학원 가라고 하는 거 알아요. 저도 걱정이에요. 다른 친구들이 학원 다니는 거 보면 저도 학원에 다녀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어린이 : 전에 실컷 놀다가 지겨워서 공부를 했더니 더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공부는 재밌어요. 그런데 학원을 안 다니면 제가 너무 게으른 것 같고 그런 제가 싫어요. 학원을 다니다가 그만 두면 제가 끈기가 없는 나쁜 어린이 같아요.

어린이 : 얼마 전에는 엄마와 아빠가 제 학원비 때문에 싸웠어요. 그런 거 보면 속상해요. 엄마가 태권도 학원 보내주셔서 친구들과 미니올림픽 하면서 재밌게 놀아요. 저는 그럴 때 엄마에게 참 고마워요.

어린이 : 저도 많이 들어서 다 알아요. 옛날에는 돈 없어서 공부를 잘해야만 했다면서요? 시험지 살 돈도 없었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부모들이 우리에게 공부 많이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공부 잘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 맞나요?

우리도 할말이 많다

교사 : 놀고 싶은 마음이 참 많구나. 그렇다면 부모님들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이 많겠구나. 엄마나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발표해 볼까?

어린이 : 학원 다니는 거 정말 싫지만 나는 차라리 학원에 많이 다니고 싶어요.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엄마 잔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학원 많이 다니는 게 속 편해요. ‘공’자만 들어도 짜증이 나요.

어린이 : 나는 정말 잠깐 노는 건데, 엄마가 ‘할 일은 다했니? 공부는 다했니?’ 하면서 이래라 저래할 때 참 싫어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데 공부얘기를 하면서 저를 혼낼 때도 기분이 나빠요. MBC 방송 <느낌표>에 나오는 ‘얘들아 행복하니?’라는 프로를 보면 중·고등학교 언니오빠들이 공부 때문에 가출했다가 부모들을 찾는데 그 프로 보면 저도 꼭 그렇게 될 것 같아요. 화나서 자살하거나 가출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다른 어린이들도 ‘나도 그랬다’며 한마디씩 공감했다. 한 어린이는 한나절 가출해본 적도 있다고 했다).

어린이 : 지하철에서 거지를 봤는데 엄마가 저렇게 안되려면 공부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거지가 불쌍하다는 것만 알지 거지가 얼마나 힘든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저는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다른 아이 누구는 뭐를 잘하는데 하면서 잔소리만 해요. 그럴 때 엄마가 전생에 미친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우릴 괴롭히죠. 나는 나중에 스트레스 받아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나쁜 병에 걸릴까봐 무서워요.

어린이 : 엄마는 나중에 자기가 호강하려고 우리에게 공부 많이 하라고 하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내가 빨리 커서 엄마보다 아는 게 많아지면 엄마한테 그대로 복수하고 싶어요. 엄마 코를 납작하게 하고 싶어요. 빨리 어른 돼서 마음대로 살래요.

어린이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친구들이 무엇인가를 말 할 때마다 아이들은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치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 대한 불신도 심했다. 한 어린이는 기자에게 “이런 기사들을 부모님이 봐도 소용이 없어요. 어른들은 신문에 나오는 얘기를 자기 자식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렇게 말해도 어른들은 금방 까먹어요”라고 충고도 던졌다.

토론을 하는 중간에도 기자에게 이런 기사가 나왔을 때의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몇번 씩 던지기도 했다. 학원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초등학생들의 뉴스를 봤지만 그걸 본 자신의 부모들이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어린이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공부로만 고민하는 게 아니다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신나게 떠들던 어린이들, 그런데 한 어린이가 서러움에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리자 갑자기 토론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아이들의 눈물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었다. 어린이들은 단순한 학원스트레스만으로 그들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들 사이의 갈등을 포함해 부모들이 자신에게 던진 가벼운 농담에도 상처받고 있었다.

어린이 : 엄마, 아빠가 제발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거 보면 너무 답답하고 슬퍼요. 그 때도 싸우는 거 보고 울었는데, 그 때 생각이 많이 나요.

어린이 :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앞에서 잘 안 싸우는 편인데 전에 아빠가 텔레비전 던진 적 있어요. 그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두 분이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또 싸울까봐 무서워요.

어린이 : 엄마가 우리 때문에 만날 고생하다가 친구들 만나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했는데 아빠는 그걸 가지고 화를 내요. 그래서 저도 속이 상했어요.

어린이 : 저는 이런 내 마음 엄마한테 말하고 싶은 데 혼날까봐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맞으면 어떻게 해요? 어린이학대법은 없나요? 공부 안하면 회초리로 맞는데, 그런 법에 걸리진 않나요?

어린이 : 저번에 태권도학원에 가야했는데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았어요. 그냥 집으로 가면 엄마가 ‘너 가기 싫어서 그냥 왔지?’ 그럴까봐 추운데도 한참을 걸어서 갔어요. 그런데 학원이 쉬는 거예요. 그때 얼마나 억울했는지 몰라요. 그 얘기를 했을 때 엄마가 제 등뒤에서 저더러 ‘병신’이라고 말한 거 들었어요. 작게 말했지만 들렸어요. 부모님들은 우리에겐 욕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꼭 해요.

어린이 : 아이들은 왜 어른의 말에 복종해야만 하는 거죠? 우리가 왜 무조건 부모님 말을 잘 들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아이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뭘까. 토론에 열중하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였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은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들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제일 즐겁단다. 엄마와 아빠가 다정하게 영화 보러 가는 모습을 볼 때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토론을 마치자 아이들이 서둘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교사가 토요일 오후에 잠시 만나는 시간을 갖자고 했으나 여기 저기서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고 손을 든다. 주말에도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참석이 가능한 어린이들만 모이기로 하고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가와 여가의 권리

지난 1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강조된 조기교육과 과도한 입시교육에 대한 한국의 현실을 아동권리 침해 사례로 들었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식사, 질병, 나쁜 환경 등으로부터 ‘보호’받고 교육과 놀이터를 ‘제공’받으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즉 우리나라의 아동들은 현재 유엔아동권리협약이 규정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라는 광고가 전혀 신기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오로지 대학입학을 위해 20년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게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의 현실인가 보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단순히 공부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아울러 학원을 적게 보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족의 해체과정에서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어린이들은 결코 아이가 아닌 가족의 구성원의 하나로, 또 하나의 인격체로 자신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이제 “요즘 애들은 불쌍하다”고 말할 때가 아니다. 바로 “내 아이가 불쌍하고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현실을 인정할 때다.

참가자김소희(교사), 정수진(행당초등학교 1학년), 주영주(행당초등학교 2학년), 김민경(무학초등학교 4학년), 남정림(사근초등학교 4학년), 김보화(경일초등학교 2학년), 김선호(행당초등학교 2학년), 강현진(행당초등학교 2학년), 강희영(행당초등학교 3학년), 원소정(행당초등학교 3학년), 박한나(행당초등학교 3학년), 강은진(행당초등학교 3학년).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3/02/25 00:00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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