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자들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반지하"
2003/2003년 03월 :
2003/02/25 00:00
반지하에 산다고 반만 행복해서야 ...
"반지하"는 물질을 토대로 형성된 문화적 정서적 경계를 주목했다. 그리고 이 경계를 뛰어 넘자고 주장한다. 돈을 벌어 집을 사는 물질적 탈출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부터 경계를 넘어보자는 것이다.
'거기 지붕 오른쪽, 좀 밀어봐!”
'그래. 벽에 고정시킬 때까지 잡고 있어.”
2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겨울이다. 밖은 이미 깜깜한데 현관이며 창문이며 모두 활짝 열어놓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곳은 인천 동구자활훈련기관원이다.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이 이루어진다.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한 인천에서는 이런 공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실제로 이곳은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되고 낮에는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이용하든 공공장소는 대체로 구조는 획일적이고 색깔도 무채색으로 무미건조하다.
오늘의 ‘공사’는 동네 꼬마들을 위해 ‘공간의 획일성’을 벗기는 작업이다. 5∼6명이 이틀동안 작업하여 동구자활훈련기관원 로비는 새롭게 태어났다. 감자깡·짬뽕왕뚜껑·안성탕면·새우깡 등이 찍혀있는 폐박스들은 둥지모양의 집으로 만들어졌다. 버젓이 문까지 달렸다.
다음날 아침이면 달려올 동네꼬마들이 환호성이 눈에 선하다. 이 집은 동네꼬마의 아지트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꼬마 영화관’이 탄생할 예정. 영화관은 어렵지 않게 지어진다. 벌써 비디오기기와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이제 영화 테이프만 가져오면 끝. 그 다음은 아이들의 상상과 취향에 맞게 활용될 것이다. 하얗기만 하던 복도도 달라졌다. 나뭇가지들과 나무토막들로 야트막한 담이 만들어졌다. 비록 벽에 기대어진 담이라 해도 아이들은 담 너머를 상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도 한 대 놓여졌다. 정말 골목이다. 순식간에 동네가 만들어졌다.
개인의 표현이 사회적 표현의 시작이다
짧은 시간에 두어 평 공간을 동네로 만들어낸 재주 좋은 이 사람들은 ‘반지하’ 활동가들이다. ‘반지하’는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을 표방하고 나선 퍼포먼스 집단이다. 이들은 개인 삶의 표현이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데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삶의 문제와 현실 그리고 개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표현집단’이 되고자 한다.
‘반지하’는 2001년 9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미술선생님 드라마고 씨(31세)와 장애여성극단 ‘끼판’에서 활동하던 지경 씨(27세)가 만난 것이 출발이 되었다. ‘반지하’는 물론이고 여기 활동가들의 이름부터 생경하다.
드라마고 씨는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 지난 나의 삶도 그러했다”며 타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명명되어진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이름들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드라마고 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미 여러 조직에서 공동체 실험을 해왔고 지경 씨는 다양한 극단에서 퍼포먼스를 시도해왔다.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 만난 이들은 ‘사회적 퍼포먼스’를 실험하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고 ‘반지하’를 만들고 현재까지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적 퍼포먼스’는 사회이슈를 포함해 인간본성을 표출하고 이것으로 자기치유까지 이끌어 내는 것이다.
혹시 ‘반지하’라는 이름 때문에 반지하 주택 거주민 권익운동단체로 오해받지 않을까 싶어 물었더니 드라마고 씨는 웃으며 그보다는 “정말 반지하에 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들에게 ‘반지하’는 경계의 의미다. ‘반은 지하에 반은 지상에 걸쳐 있다’를 사회적으로 해석해 물질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지닌 경계로 보았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반지하 주택은 가난한 이들의 주거공간이다. ‘반지하’는 물질을 토대로 형성된 문화적 정서적 경계를 주목했다.
그리고 이 경계를 뛰어 넘자고 주장한다. 돈을 벌어 집을 사는 물질적 탈출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부터 경계를 넘어보자는 것이다. 드라마고 씨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자본의 그늘에서 왜곡되고 숨겨지는 것이 싫다. 먼저 현실을 인정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 삶의 복잡한 현실과 다양한 감상들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했다”며 문제의식과 지향을 설명했다. 이 과정을 통해 “반지하에 스며드는 햇볕이 되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희망이다.
찾아가는 문화활동
‘반지하’의 주요 활동무대는 인천이다.
지난 2001년 7월부터 4개월간 인천 구월동, 십정동, 동인천 화교촌, 송림동, 가정동 등을 필름에 담았고 인터뷰를 통해 주민의 삶을 기록했다. 스틸사진, 영상자료는 홈페이지와 전시회로 소개됐다. 이 작업에는 지역주민, 특히 아이들의 참여가 많았다. 처음에는 카메라 작동법도 모르더니 나중에는 아이들 나름의 시각으로 자신의 터전을 담아냈다. 이 모든 과정과 영상물은 디지털로 저장해 고스란히 CD에 담았다.
‘반지하’는 이 결과물을 지역주민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작품이란 본디 ‘찍은 자, 그린 자’의 소유가 아니라 작품 안의 사람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인천 하우스’라는 명칭으로 시도된 이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을 찍고 나눠주는 것 외에 다른 과정이 더 있다. 냉정하게 바라본 삶의 공간을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참가했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놓고 본격적인 표현을 시작했다. 칼라로 찍은 사진인데도 무채색 톤이었다.
여기에 아이들은 색깔을 입혀주고 자신을 표현했다. 시계만 걸려 있던 내 방에 꽃이 들어오고 재미있는 캐릭터가 그려졌다. 작은 대문도 환한 빛깔로 칠해졌고, 연탄 창고도 더 이상 까맣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작고 초라한 집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찾아가는 문화활동’으로 기지촌에서도 시도됐다. 이번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실제 공간으로 표현이 확장되었다. 참가한 아이들의 소망대로 담과 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반지하에 경계는 없다
현재 ‘반지하’는 ‘문화연대’와 ‘찾아가는 문화활동과 소외지역 문화활동’으로 경기도 연천 농촌과 공부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집회에서의 퍼포먼스 등으로 ‘사회적 표현과 참여’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청소년의 활동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드라마고 씨는 “아직까지 어른들은 표현의 경계를 잘 넘지 못한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반지하’ 프로젝트에서 청소년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청소년문화기획단’과 ‘청소년독립신문 시퍼런’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반지하’도 청소년들의 영향을 받아 대안교육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계를 뛰어넘는 활동을 하는 만큼 ‘반지하’의 경계는 없다. 삶과 세상을 표현해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반지하’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 반지하에 산다고 반만 행복해서는 안 된다. 반지하 사람들로 표현되는 모든 소외된 자들을 위해 ‘반지하’는 오늘도 뭔가를 표현해내고 있다. 개인적인 목소리든 사회적 표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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