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가수 지현 '남자의 눈물이 좋다!'
2003/2003년 03월 :
2003/02/25 00:00
박태희와 차 한잔
『참여사회』 황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 씨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러나 나는 대뜸 페미니스트가 뭐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지현 씨와의 만남은 준비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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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서 본 가사들과 음반에 실린 그림들은 나의 음악적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다시 만난다는 뜻의 <후>라는 보랏빛 음반은 표지 그림부터 독특해 보였다. 마주 보는 듯 하면서도 평행선을 그리는 시선을 지닌 두 여인의 얼굴. 새 봄을 맞이하는 요즘, 긴 겨울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주듯 <겨울 숲>이라는 연주곡으로 음악은 시작된다.
6월의 장미와 같은 그
서울 대학로 어느 카페에서 만난 지현 씨는 6월의 장미처럼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삭발한 머리지만 긴 머리의 여성 못지 않게 부드러움과 세련됨이 느껴졌고 피어싱을 한 코와 귀는 삶의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커다란 눈동자에 짙은 눈화장과 강렬한 입술은 여성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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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도 듣고 기사들을 읽으면서 지현 씨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습니다.
“초등학교라는 말은 아직 낯설고, 국민학교 시절을 말하면 될까요?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사회를 접하다 보니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제 인생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죠.(웃음) 2학년, 4학년, 6학년 때 그러니까 짝수 학년이 힘들었어요. 다 남자 선생님들이었어요. 가벼운 성추행부터 경험해 보지 못한 폭력 등이 학교는 근처도 가고 싶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자 선생님들과는 교감도 잘 되고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전교조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선생님으로서의 자세와 교육에 대한 비전이 좋았죠.”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건가요?
“노래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어요. 단지 성가대를 하고 싶어 교회를 다닐 정도였어요. 지금은 교회에 안 다닙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종교가 사춘기 시절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요즘은 생각해요.”
지현 씨를 보니 도현이 생각이 나네요. 도현이는 같은 반 여자친구에게 맞고 살았어요.
“저도 남자친구들을 때리고 바지를 벗기는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남자가 좋아요. 많은 것을 억압당하는 한국 사회라 그런지 남자의 눈물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영화배우 이병헌의 눈물 연기가 참 애절하고 좋죠.”
누구 앞에서 노래하고 싶나?
대학 때 <또 하나의 문화>에서 연극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연극을 할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연극을 하다 왜 가수가 된 거죠?
“<또 하나의 문화>는 남성주의적 가부장 문화의 대안인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학과 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책을 읽고 발제하는 세미나 위주의 생활이었는데 가끔 그 안에 있던 연극동아리에서 소극장 공연을 했어요. 연극이 쉽지는 않더라구요.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저에게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던 친구가 물었어요. 누구 앞에서 어떤 노래를 하고 싶냐고. 그 때 처음으로 페미니스트 가수이고 싶다고 입밖에 내어 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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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재즈댄스를 시작한지 한 달이 됐어요. 제가 꿈은 보아가 아니겠습니까(웃음). 처음에는 너무 못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자기 비하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몸을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행복이더라구요. 그래서 열심히 해보려구요.”
사람들이 이걸 많이 물을 것 같은데, 삭발한 느낌이 어떤가요? 저는 남자면서 염색을 많이 해서 그런 질문 많이 받곤 하지요.
“머리를 깎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멋있어 보이고 파워 업 된 느낌이에요.”
조금은 공감 할 수 있었다. 윤도현밴드에서 촌스럽기로 유명한 내가 처음으로 머리를 노랗게, 아주 노랗게 물들인 적이 있다. 2∼3일 동안은 뛰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머리만 쳐다보는 것 같았고 부모님과 목사님, 그리고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멤버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란 간판, 노란 수건, 노란 안전 표지판, 노란 교습자동차, 노란 공책, 노란 색연필….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지워지지 않는 노란색. 그때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첫 음반 녹음할 때 힘드셨죠? 음반 작업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가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합니다. 처음 해보는 녹음이기도 하고 라이브보다 섬세함이 요구되어 정말 힘들더라구요. 혈압이 낮아서 지하에서는 작업을 못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기도 했어요. 작업실 사람들이 그럼 너는 한국에서는 영영 작업 못할 거라고 하더라구요. 한국은 녹음실이 대부분 지하에 있대요(웃음). 그런데 음반작업이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너무 컸어요.”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월경페스티벌의 단골 초청가수죠? 그런 곳에서의 공연은 어떻습니까? 관객에도 차이가 있나요?
“제 콘서트와 같은 느낌이에요. 어떤 남자들은 여탕 같다고도 하고 여자 화장실에 온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에 남자와 같이 가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작년 오사카여성영화제와 도쿄여성페스티벌에 초대손님으로 가서 공연을 하고 왔어요. 관객이 모두 일본 여성들이었는데도 굉장히 열광을 해줘서 정말 사랑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자매의 정을 느끼고 왔죠. 일본 관객들은 나이가 좀 많은 게 특징이더군요.”
저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그런 사람들보다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를 적으로 여긴다고 생각해요. 그건 정말 오해죠. 페미니스트의 적은 남성 개인이 아니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 공통의 적이 있는 데 그게 바로 가부장제죠. 그 가부장제 안에서 권력을 주로 남성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들을 무찔러야 하는 목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가부장제 안에서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자기가 있고 싶은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100% 가지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여자 쪽으로 가지고 와야 돼요.
그 과정에서 남자들이 많이 빼앗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공유해야 되는 것과 서로 나누어야 되는 것을 이제 나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양성(兩性)을 다 행복하게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하면 좋겠어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앞으로는 싸우고 싶어하지 말았으면 해요. 가끔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은 마음이 상해요. 저는 이제 별로 싸우고 싶지 않거든요. 평화로운 걸 좋아하고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결혼생활 2년째를 맞이하는 나를 되돌아보니 아내에게 할 말이 없다. 내 삶 속에 뿌리내린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가 일상 속에서 숨어 있던 가시처럼 돋아나기 때문이다. 양성이 다 행복한 사회를 위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여성들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멋지게 찾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내와 함께 페미니스트에 대해, 가부장제에 대해, 남녀의 완전한 하나됨에 대해 대화해보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아야겠다.
가수말고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부자가 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을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시민단체들도 돕고 싶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싶기도 해요. 그러면서 여성문화의 풍요성, 대중문화의 다양성에도 한 몫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세계적인 가수가 되고 싶기도 해요.”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요?
“우선 소녀들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20대, 30대가 되어 그것을 새로 체득하려면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해요. 청소년기에 시작하면 훨씬 더 빨리 할 수 있을 거구요.
두번째는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해야지요. 부모가 원해서 하는 공부는 하지말고 학교에서 시킨다고 하지말고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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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성관계를 가질 때는 꼭 피임을 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중요해요. 그것은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과 같은 거예요. 청소년들도 성욕이 있고 섹스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말을 하면 부모님들이 염려하겠지만 이미 다하고 있잖아요? 꼭 피임을 하고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응하지 말아야 해요.
몸을 도구로 돈 벌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나의 몸은 너무 소중하니까. 그리고 성매매는 단순한 돈의 거래가 아니라 인권이 침해되는 것 아닐까요. 돈을 받고 내 몸을 내주는 것은 단순히 매매가 아니라 내 인권을 다른 사람에게 잠시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남자가 섹시하다고 생각하세요.
“울 줄 아는 남자, 얌전하고 말 잘 듣는 남자, 공격적이지 않은 남자요.”
지현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화가가 떠올랐다. 풍경화, 성화, 특히 누드화로도 유명한 서양화가 장완 씨다. 장 화백은 ‘물 위의 여인’이라는 그림을 내게 보여주며 말해주었다. “아내는 꿀단지, 보물단지”라고.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그는 아내에게서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날마다 얻는다고 했다. 꿀보다 달콤한 맛을 날마다 보며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귀한 보석을 날마다 아내를 통해 얻는다고 했다.
지현 씨의 음악이 획일화되고 메마른 대중음악계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안의 잘못된 풍경들, 즉 여자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조금은 씻기어 내려 제자리로 돌아와서일까. 우주 만물을 만들고 마지막 작품으로 여자를 만든 절대자의 뜻은 무엇일까. 그 뜻이 무엇이든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존귀한 것이 내 아내에게 있다! 내가 외치는 삶의 고백이다.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 씨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
내안의 나를 만나 나는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내안의 나를 만나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안의 나를 만나
나의 기쁨이 무엇인지
나의 슬픔이 무엇인지
내안의 나를 만나
그렇게 사랑으로
그렇게 사랑으로
2003.2.16. 박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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