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치현실을 개탄하고 민중의 삶을 구슬프게 그려냈던 민중가요가 90년대 중후반 이후 일상생활과 얽힌 개인의 정서를 담아오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서정적인 포크에서 격렬한 록에 이르기까지 점차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민중음악의 오늘을 조명해 본다.

길거리 손수레에서 수도 없이 틀어대 사람들을 홀리는 대중가요와는 다른, 어느 집회에서나 들을 수 있는 투쟁가풍의 고전적 민중가요와도 또 다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 리더인 성우(이얼 분)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넌 행복하니?”라고 넌지시 혹은 대놓고 물어 어쩔 수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게 만들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잠시나마 쓴 소주잔에 담긴 일상을 끄집어내 볼 수 있도록.

90년대 초반 이후 문화운동의 침체 속에 민중가요판의 솔로와 밴드들은 일상생활에 얽혀있는 개인들의 정서를 노래 속에 담아오고 있다. 특히 록밴드 ‘천지인’을 시작으로 2001년 ‘가객’에 이르기까지 민중가요 밴드들은 서정적인 포크에서 격렬한 록에 이르기까지 민중가요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가객(歌客)=연주를 하던 사람들이 만든 팀인 만큼 다른 팀에 비해 화려한 연주실력을 내세우는 퓨전밴드. 화려한 대중음악에 길들여진 귀에도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1집 앨범의 수록곡 ‘아야(口我也)’에서는 비슷한 결성배경을 가진 대중가요그룹 ‘긱스’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꽃다지’에서 활동한 이지은(건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에서 활동한 엄기현(드럼), ‘우리 여기에’의 박창근(보컬) 등이 모여 포크에서 펑키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2집 앨범 준비에 들어갈 예정.

◇마구리밴드=‘마무리’의 뜻을 지닌 마구리밴드는 작업실이 있는 경기 의정부에서 이웃들의 일상을 음악으로 만드는 ‘동네밴드’를 지향한다. 1집 앨범의 수록곡 ‘빨간풍선’이나 ‘난 나야’를 통해 생활에 매몰된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단순한 것을 자기 색깔로 내세우는 마구리밴드의 음악 역시 솔직하고 때묻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의정부 시청 앞에서 앨범 홍보를 위한 거리공연과 여중생 사망 항의 집회 공연을 했으며 민중음악 밴드들의 ‘노래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민중가요를 불러온 김규상(보컬과 기타)과 전향미(건반)가 전부인 마구리밴드는 올해 안으로 식구를 늘려 본격적인 활동을 펼 계획이다.

◇바람=4명의 멤버, 손호준(보컬), 주두환(일렉기타), 박성진(베이스 기타), 박창순(드럼)이 모두 대학노래패 출신이다. 98년 결성된 ‘바람’은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록을 선택했다. 지난해 발표한 1집 앨범에서는 일반 대중가요의 느낌이 배어난다. 수록곡 ‘외톨이(난 외톨이/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몰라/눈을 감고 서 있을 뿐/세상 사는 지혜가 너무 복잡해/귀를 막고 돌아설 뿐)’나 ‘’놓지마(너의 꿈을 놓지마/함께 한 꿈은 멀지 않아 /눈을 감지마 놓지마)’가 일상의 독백이라면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오 나의 젊은 사람아’는 ‘바람’다운 노래다.

◇유정고 밴드=민중가요계의 ‘동물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만든 ‘꽃다지’ 출신의 작곡가 유인혁, 노래패 ‘새벽’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정윤경, ‘천지인’ 출신의 박우진(드럼) 세 사람이 제각각 굵직한 민중가요의 흐름을 타온 이들이기에 편안함과 함께 묵직한 저력이 느껴진다. 1집 남상(濫觴, 사물의 시초나 근원)’에서 이들의 록과 포크어법을 만날 수 있다.

◇천지인=운동권의 진보적 록밴드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천지인’은 지난 2001년 3집 ‘외눈박이’를 발표한 뒤 대학가 공연과 콘서트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해체된 록밴드 ‘메이데이’에서 활동했던 허훈(베이스)과 엄광현(보컬), 문성억(일렉기타), 현상익(드럼), 김정은(키보드)으로 구성된 천지인은 현재 3.5집을 준비중.

“우리는 소통을 원한다”

여전히 집단적 정서를 주로 노래하는 일부 솔로가수들이나 노래패들의 표현 영역은 집회나 투쟁현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성으로 인해 좁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밴드 음악은 퓨전, 포크록, 하드록 등 비교적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 있다. 스펙트럼의 확장으로 대중가요권과 겹쳐지는 부분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밴드들은 음악적 경계는 없는 대신 내용적 구분은 유효하다고 말한다.

“음악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노래의 배경이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고 어떻게 실천해내고 있는가 등을 따져봐야 한다.”(유정고밴드의 유인혁)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다. 물론 밴드들은 되도록 많은 공연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다.

“김광석 씨는 무수한 콘서트로 대중가요와 민중가요 양쪽을 아울렀다. 사람들이 민중가요가 대중가요와 다른 점을 몸소 깨닫게 되고 가수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공유했다고 본다.”(가객의 엄기현)

이처럼 되도록 많은 공연기회를 바라는 이들이지만 공연 한 번을 너끈히 치러낼 수 있는 그룹은 많지 않다. 이런 형편에서 공동콘서트가 대안으로 떠올랐고 실제로 지난해 밴드들의 연대를 통해 몇 차례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올해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객의 매니저 오성화 씨는 서울 민예총과 함께 5월중에 민중가요 페스티벌과 반전평화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집회와 같은 고정된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런 기획을 통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음악인들의 활동통로는 일반적으로 음반, 방송매체 활용과 공연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공연뿐이다. 음반 유통은 막혀버린 지 오래고 방송매체는 더 먼 이야기다. 독자적인 판매망을 갖추는 길이 시급하지만 10년 이상 계속돼온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대중음악의 대안문화로 당당하게 세우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돈의 힘으로 음악이 뜨고 가라앉는 왜곡된 대중음악 판에서 이들은 건재를 과시한다.

“우리의 작업은 쇠퇴하지 않는다. 팬들의 애정이 계속 채워진다면 밴드음악은 살아난다. 밴드는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 이것이 자양분이 되고 그 위에 많은 새로운 창작자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천지인의 허훈)

“민중가요는 명확하게 분류하기 위한 어떤 선이 아니라, 역사를 발전시키는 비주류의 목소리를 담아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노래라는 일종의 지향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단지 노래를 잘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노래문화의 다양한 수용자들이 실질적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게 교육과 조직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대중음악평론가 이영미 씨가 지난 1월 ‘민중가요 비평과 전망을 위한 월례포럼’에서 한 지적이다.

사랑 타령이 대부분인 가볍고 달착지근한 대중음악에 물린 이라면 새봄을 맞아 민중가요 밴드의 음악에 한 번 진지하게 귀 기울여봄이 어떨지.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2003/02/25 00:00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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