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은 수영장에 산다?』

이 제목만으로는 무슨 책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얼핏 문학작품의 제목 같기도 한 이 책은 정치를 재미있고 알차게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문의 1면 기사가 늘 정치기사로 얼룩지는 게 우리 현실이지만 정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예상외로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니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정치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바, 이렇게 정치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교양서는 외국에서도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 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아스러울 정도.

이 책을 엮은이는 도리스 슈뢰더 쾨프 여사. 바로 현 독일 수상인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부인이다. 그녀는 『빌트』지, 『엑스프레스』지, 『포쿠스』지 등 여러 언론사에서 다년간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던 경력의 소유자로서 딸 하나를 둔 1963년생 엄마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슈뢰더 여사가 엄선한 독일의 쟁쟁한 필자들 27명의 글이 담겨 있다. 이들 필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대개 50년대생에서 60년대생. 슈뢰더 수상이나 요시커 피셔 외무장관 같은 대표 선수들의 삶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기존의 정치 질서를 부인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독일의 지식인 그룹. 철저히 인간을 중심 가치로 놓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공통의 전제는 하나다. 바로 정치란 혐오스럽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삶의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 선진국이라도 정치에 대해 갖는 생각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데 약간의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왜 정치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정치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략) 그건 슬프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란 기껏해야 ‘가능성의 기술’일 뿐이다. 그러나 무엇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다. (중략) 그러기 위해선 정치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떠한 규칙들이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16쪽)

사회참여는 확실한 투자다?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어진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며, 적어도 그 성패에 상관없이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실 소파에 가만히 기대고 앉아 정치에 대해 욕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별로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전 국민이 참여할 때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뭔가 바꾸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노숙자 쉼터를 마련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고, 시민들을 깨우칠 글을 쓰고, 원자력 발전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다.” 잉케 브로더젠 (16쪽)

이런 사회참여야말로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에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 집단적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이는 정보화 사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혼자서는 많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 때문에 시민들은 힘을 합쳐야 한다. 말을 탄 배달부가 우편물을 전하고, 소리를 쳐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게 고작이었던 시절에는 백성들이 힘을 합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상들은 힘을 모아 제후와 병사들과 살랑거리는 간신들을 물리쳤다. 더구나 요즘처럼 전화와 인터넷이 존재하는 시대에는 사회적 불행을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한결 더 수월해진 느낌이다.”(59쪽)

아이의 눈높이에서 본 정치라는 괴물

이 책의 대상 독자층은 바로 어린이다.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읽을 수 있다. 어린이 책과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필자인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하지만 이 책은 어른들에게도 안성맞춤의 책이다. 특히 획일적인 국정 정치경제 교과서로 원론적 지식들만 줄줄 외워야 했던 우리나라 기성 세대들에게는 더욱 더!

모두 27명의 필자들이 쓴 글들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정치를 풀어내고자 각각 다양한 형식과 문체를 과시한다. 일기투와 편지체, 핵심 정리 노트식, 인터넷에서 퍼온 글 인용하기, 2010년 가상 국민투표 결과 발표문, 심지어 2099년의 온라인 강의 형식 등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전반적으로 책장을 아주 쉽게 넘길 수 있다.

가끔씩 웃음 짓게 만드는 대목들도 이 책의 강점. 이런 식이다. “(독일 수상이 일본을 방문하면) 일본 천황은 생선을 좋아하니까, 슈퍼 돌비 시스템으로 녹음한 프란츠 슈베르트의 <숭어 5중주곡> CD를 선물하고….” 울리케 포쉐 (90쪽)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정치란 결국 현실’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 데 있다. 독일 패전 후 기본법을 정하던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정치의 기초가 되는 헌법이란 과연 무엇이며 얼마나 중요한지 적절하게 설명해 낸 솜씨도 돋보인다. 이밖에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분단에서 통일까지 이어졌던 독일 정치사가 자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담겨 있다.

끝으로, 대통령 전용기의 모든 것과 영부인의 생활, 국가 원수급의 공식 방문 준비 과정, 로비스트의 유래 등과 같은 자질구레한 궁금증도 산뜻하게 풀어 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풍부하게 사고하고 무언가 암시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헌법에 담기는 규정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은 기본권 제한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을 뜻한다든지, ‘국가란 조심스럽게 울타리에 가둬 놓고 길러야 하는 괴물’이라든지(기자인 피터 마츠는 보스니아 내전 사태를 취재한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인간성의 내면에 괴물이 숨어 있다고 씁쓸하게 토로한다. 이런 반성적 성찰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은 곧 국가고 국가는 곧 인간이다), 민족적이라고 흔히 일컫는 것들에 숨겨진 허구성이라든지 자세히 읽다 보면 책장을 접어 둬야 할 곳들이 적지 않다. 끝으로, 몇 쪽 뒤적거려 퀴즈를 낸다.

* 다음에서 동의하는 경우는? (괄호 안의 번호는 관련 쪽수임.)

① 우리는 우리나라에 들어 와서 사는 외국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64)

② 외국인이 한국인으로 귀화하려면 한국적인 것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 (62)

③ 헌법은 연애편지, 숙제, 일기, 문자 서비스, 문집을 하나로 뭉쳐 놓은 것과 같다.(65)

허병두 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2003/02/25 00:00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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