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이남은 안돼!
2003/2003년 03월 :
2003/02/25 00:00
방학을 맞아 전국에 사는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에게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볼이 발그스름한 소녀는 앵커우먼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내 남동생, 그러니까 그 애의 외삼촌이 얼른 거들었다. “야, 넌 안돼, 대전 이남이잖아.”
조카는 부산에서 나서 자라고 있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남동생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서울말’이 아니면 그쪽에서는 발붙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조카는 무슨 말이냐고 되묻고 싶은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조카의 엄마와 이모들은 남의 희망을 무 자르듯 싹둑 자른 동생에게 벌떼같이 항의성 발언을 해댔다. 어쨌거나 ‘말로 벌어먹는 일’을 하려면 대전 이북에서 태어나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웃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어느 방송국 진행자로부터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상세한 내용은 담당 피디가 설명해줄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피디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마자 피디는 대뜸 “어머, 사투리를 쓰시네요!” 했다. 다소 실망스럽고 놀랍다는 투였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사투리가 아니라 억양이 다르다”고 재빨리 대답해 주었다.
난 억양이 다른 것을 사투리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을 만나면 교정해 주고 싶어 안달을 내는 사람이다. 일을 설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피디가 내 억양을 테스트하는 듯 느껴졌다. 말씨를 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는 기분이 좀 상했다. 다음날 결국 피디와 나는 의미는 없으나 체면은 살릴 수 있는 말, 즉 ‘다음에 연락하자’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씁쓰레한 기분이 며칠동안 계속 됐다. 대학시절 서울로 간지 1년도 안되어 완벽한 서울말로 변신해 돌아왔던 친구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서울로 간 여학생들은 일단 말투부터 교정하는 게 급선무였다나 어쨌다나.
서울 ‘말씨’는 모든 다른 지역 말씨 위에 군림하고 있다. 타 지역을 무조건 시골이라는 사람들이나 엇경사까지도 표준말이라고 억지쓰는 ‘서울’ 사람들 때문에, 살면서 기분 상한 ‘지방’사람들이 한둘일까. 그럼 아무리 정확한 어휘를 골라 쓰고 어법에 맞는 말을 써도 지방 출신들은 표준어 사용자가 아니란 말인가? 영국 살 때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표준영어라고 하는 BBC영어가 런던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런던 말은 런던 사투리일 뿐이었다.
학력, 학벌, 가진 것, 나이, 성별, 외모…. 우리는 온갖 차별로 숨이 막힌다. 게다가 말씨 때문에 차별 받아야 한다니, 서울에 살지 않는 것도 차별의 요인이 되야 한다면, 수도권을 아무리 옮긴들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자식 시골말 안 쓰게 하려고 보따리 싸서 상경하는 부모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진한 전라도, 경상도 억양을 써도 대통령이 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세상이다. 특히 새정부는 차별을 없애겠다고 공언한 터이다. 새 대통령은 말씨로 사람차별하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해주면 좋겠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말이 맞습니까, 맞지요?
조카는 부산에서 나서 자라고 있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남동생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서울말’이 아니면 그쪽에서는 발붙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조카는 무슨 말이냐고 되묻고 싶은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조카의 엄마와 이모들은 남의 희망을 무 자르듯 싹둑 자른 동생에게 벌떼같이 항의성 발언을 해댔다. 어쨌거나 ‘말로 벌어먹는 일’을 하려면 대전 이북에서 태어나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웃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어느 방송국 진행자로부터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상세한 내용은 담당 피디가 설명해줄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피디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마자 피디는 대뜸 “어머, 사투리를 쓰시네요!” 했다. 다소 실망스럽고 놀랍다는 투였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사투리가 아니라 억양이 다르다”고 재빨리 대답해 주었다.
난 억양이 다른 것을 사투리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을 만나면 교정해 주고 싶어 안달을 내는 사람이다. 일을 설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피디가 내 억양을 테스트하는 듯 느껴졌다. 말씨를 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는 기분이 좀 상했다. 다음날 결국 피디와 나는 의미는 없으나 체면은 살릴 수 있는 말, 즉 ‘다음에 연락하자’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씁쓰레한 기분이 며칠동안 계속 됐다. 대학시절 서울로 간지 1년도 안되어 완벽한 서울말로 변신해 돌아왔던 친구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서울로 간 여학생들은 일단 말투부터 교정하는 게 급선무였다나 어쨌다나.
서울 ‘말씨’는 모든 다른 지역 말씨 위에 군림하고 있다. 타 지역을 무조건 시골이라는 사람들이나 엇경사까지도 표준말이라고 억지쓰는 ‘서울’ 사람들 때문에, 살면서 기분 상한 ‘지방’사람들이 한둘일까. 그럼 아무리 정확한 어휘를 골라 쓰고 어법에 맞는 말을 써도 지방 출신들은 표준어 사용자가 아니란 말인가? 영국 살 때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표준영어라고 하는 BBC영어가 런던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런던 말은 런던 사투리일 뿐이었다.
학력, 학벌, 가진 것, 나이, 성별, 외모…. 우리는 온갖 차별로 숨이 막힌다. 게다가 말씨 때문에 차별 받아야 한다니, 서울에 살지 않는 것도 차별의 요인이 되야 한다면, 수도권을 아무리 옮긴들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자식 시골말 안 쓰게 하려고 보따리 싸서 상경하는 부모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진한 전라도, 경상도 억양을 써도 대통령이 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세상이다. 특히 새정부는 차별을 없애겠다고 공언한 터이다. 새 대통령은 말씨로 사람차별하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해주면 좋겠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말이 맞습니까,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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