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잉크 마르기 전에 정치개혁 합의하자'


지난 2월 17일 시민단체 여야 정치권 학계 등이 망라된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가 떴다. 노무현정권 출범 초기에 정치개혁의 고삐를 쥐고 달리지 못하면 개혁은 물 건너가고 만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범국민협의회에 동승한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

강 의원은 요즘 특별히 바쁘다. 범국민협의회에 추진위원으로 참여해 이 단체와 정치개혁에 관한 논의 채널도 열어 두어야 하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한나라당의 차기 당권 주자로서의 포부도 감추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인터뷰 다음날인 2월 18일은 지도체제 문제를 비롯한 당 개혁안을 놓고 한나라당 연찬회의가 열리는 날.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을 뒤엎고 강 의원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도중 기회 있을 때마다 ‘시대와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한 강 의원은 한나라당도 과거의 무게와 권위를 벗고 시민단체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TK지역의 대표 주자로서 강 의원은 보수라는 용어에 대한 본인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남북문제, 시장경제 문제에 있어 과거 한나라당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음을 중간중간 강하게 내비치기도 했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으로서, 그리고 한나라당 차기 당권 도전자로서 그를 만나 범국민협의회가 주도하는 정치개혁의 제도화 가능성을 타진함과 동시에, 한나라당 변화의 폭과 깊이를 가늠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오늘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 출범식에 참석했다. 한나라당에서의 입지나,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의 직위로 보나 마냥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본다. 특별히 참여 배경이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을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왔을 때, 누구하고 상의해본다든지 또는 보내놓고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든지 하지 않고 제안을 받은 그 자리에서 가입하겠다고 확인해 줬다. 그 이유는, 내가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아 일을 해왔는데 작년에도 한달 하다보면 해산돼 버리고, 또 12월 돼서 만들어 놓으면 하네 못하네 이런 식이었다. 여야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시기를 잘못 만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결이 안 된다. 작년에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는 지방선거에 필요한 몇 가지만 딱 꼬집어 끝나고, 또 작년 연말에는 대선이 앞에 있어서 당리당략 때문에 안 되고. 자꾸 이렇게 성과 없이 끝나니까 내가 답답해서 이번에는 작심하고 앞장서서 인사청문회법, 일문일답식 대정부질문제도 등을 통과시켰다.



정치의 생리가 이상한데, 한달 전에 했으면 됐을 것을 한달 후에 하면 하나도 안 되는 것이 정치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으로서 다른 사람보다는 잘해야 될 것 아니냐. 대선이 끝나고 지금보다 더 좋은 호기가 어디 있겠느냐.

여야 대통령 후보와 정당이 11월과 12월 좋은 얘기는 골라가면서 다 얘기했는데, 그 잉크가 마르기 전에 테이블에도 올려놓고 떠들어야 진행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국민들이 같이 나서서 거들겠다는데 얼마나 고맙고 잘된 일인가 싶었다.

또 하나는 범국민협의회에 들어가야 정치개혁과 관련된 분위기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지금까지 우리 당이 시민단체와 다소 소원한 관계를 가져왔는데 이번에 나부터 그런 관계를 협력관계로 바꿔 보고 싶었다.”

이번 범국민협의회 출범으로 특별히 정치개혁이 힘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이 대통령선거 직후니까, 여야 대선 후보가 불과 얼마 전 시민단체 앞에서 서명까지 함께 했는데 이제 와서 (개혁을) 안 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6개월 지나고, 1년 지나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빨리 빨리 쇠가 단 김에 두드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상황이 더 낫다. 그리고 여야가 뭔가 개혁안을 만들려고 서로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그 안을 받아서 하면 진행이 더 빨리 되지 않겠나 싶다. 과거에는 말도 못 꺼내던 것을 이제는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민단체는 각 당에서 논의하는 정당 개혁안과 더불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세부 내용, 정치자금법을 비롯한 반부패 입법, 선거공영제 강화, 선거연령 인하 등 입법화 과제를 안고 있는 제도개혁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범국민협의회가 제시하는 정치개혁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치개혁 하는데 순서를 정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국민의 열망이 높은 것 먼저 논의해야 한다. 정치자금을 잘 받고 잘 쓰는 문제, 정당 민주화 문제, 선거공영제, 깨끗한 선거, 정치 신인의 진출 등 국민하고 직접 관계되는 것을 먼저 논의하고, 그것이 무르익었을 때 나머지도 건드렸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수표 사용과 관련된 정치자금 문제를 선거 앞두고 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런 문제부터 빨리 빨리 처리해야 한다. 정치권도 자기들끼리 게임의 룰을 짜는 선거구제 문제 같은 것은 어차피 지금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해도 안 된다. 결국은 (선거 1년 전에 합의되어야 하는 선거구제 문제 같은 것은) 금년 4월 전에는 안 된다. 안 되는 걸 쥐고 그것만 치르다 보면 정파 이해관계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한다.

나는 노무현 당선자가 제일 잘못한 것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 먼저 안하고 1년 뒤에 국회의원 선거하는 데 필요한 얘기를 먼저 꺼내서 마치 민주당이 제1당이 되려는 정략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비춰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이 지구당 폐지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가 우왕좌왕 하게 돼버린 이유는 그것이 정치개혁이라는 순수한 목적만이 아니라 당 내부를 어떻게든 정돈하고자 하는 정략적인 목적이 함께 포함돼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내버려두고 국민이 피부에 와닿는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개혁안 중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세부 내용이 여야 각 정파와 소수 진보정당, 시민단체의 뜨거운 관심사다. 또 중대선거구제 문제도 아직 불씨로 남아 있다.

“전국적 비례대표제냐, 권역별 비례대표제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일장일단이 있어 검토해봐야 한다. 그런데 비례대표라는 게 자리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것을 권역별로 나누면 광주, 대전, 울산 등 지방도시에는 전국구 의원이 한 사람씩 배치되는 꼴이다. 좀 더 논의해봐야 한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우리 당의 당론은 소선구제다.”

한나라당 지도부 내지 소위 기득권을 가진 의원들이 시민단체의 개혁안을 수용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어떻게 보는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선거연령을 19세로 내린다고 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리당략적으로 도움이 되겠나 안되겠나 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것말고 예를 들어 야당 5년간 더해야 할 한나라당이 무슨 정치자금 더 받을 일 있냐면서 설득하면, 그런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면 명분도 있고 좋지 않느냐 이렇게 설득할 수 있다. 또 당 지도부가 더 젊어지고, 사고방식도 더 유연해지고 그런 체제로 가면 정치개혁도 좀 쉬워질 것이다. 나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정치개혁 논의를 정계개편과 연관짓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이념과 정책에 따른 자연스런 정계개편을 옹호하는 입장도 있지만, 시민단체는 순수하게 정치개혁의 틀로만 논의돼야할 범국민협의회가 자꾸 정계개편과 연계돼 해석되는 것이 우려스러운 점도 많다.

“어떤 특정세력이나 특정인이 특정한 시기에 정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문제다. 항상 그런 문제는 야당이 피해자고 여당이 노리는 것이었다. 새 정권이 탄생하면서 이념 중심의 이합집산 또는 동서화합을 명분으로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내거는 것은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우리를 흔들기 위한 음모나 장난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정계개편이란 용어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발족식 격려사에서도 혹시 오해가 없도록 (시민단체가) 공평무사한 모습을 갖춰달라고 부탁했다. 솔직한 얘기로 오늘 거기 참석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해 지도부에서는 어떤 의도로 갔느냐 이런 걸 분석해보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거기 가니까 참석한 의원들에 대한 시각이 그래도 좀 낫다. 만약 시민단체가 저쪽에서 주장하는 것만이 개혁이고, 그것이 공익이라는 식으로 자꾸 하면은 한나라당에서는 흔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온건 합리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정강정책에 반영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노무현 정권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의원님의 구상과 비전을 설명해달라.

'우선 민주노동당, 이런 정당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이나 우리 당이나 다 보수정당이다. 그런데 남북대치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오는 과정에서, 보수는 좀 진부하고 구태의연하고, 좀 시시하고, 자기이익만 챙기는 그런 개념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된 측면이 있다. 나는 그래서 보수라는 말을 가능하면 안 썼으면 좋겠다.

한나라당이 지켜야할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다. 한나라당은 북한 핵 문제라든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되는 입장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또 경제문제에서 제일 기본은 시장경제 원리다. 거기에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개입을 조화시켜야 한다. 그런 기본을 지켜야 한다.

그런 기본이 아닌 일에 한나라당이 괜히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변화를 싫어하는 것처럼 하는 그런 대목을 말끔히 씻어버려야 한다. 사실 범국민협의회 같은 모임은 옛날 한나라당 같으면 잘 안 갔을 것이다. 나도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을 이유로 정중히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만날 하는 게 한나라당 스타일이고, 권위고 무게라면은 그런 걸 빨리 털어 버리는 것이 한나라당이 살길이고 이 나라 정치가 발전하는 길이다.

노무현 정권과의 관계설정은, 나는 아까 말한 꼭 지켜야할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든가 이런 걸 지키기 위해서는 치사하게 뒤에서 다리를 걷고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앞에 딱 서서 몸통을 잡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여당이나 정부가) 안 받아 줄 때는 아무 것도 진행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그 다음에 작은 일들은 시원하게 양보하고 타협하고, 그래야 나라도 살고 야당도 산다는 것을 확실하게 견지하고 가야 한다. 그런데 다행히 노무현 당선자가 해방 이후 세대라 그런지 쓸데없는 권위나 무게는 없는 것 같다. 속셈은 잘 모르겠는데, 스타일은 노무현 정권하고 같이 바꿔보겠다.”

간접적으로나마 당권 도전의사를 밝힌 분으로서 한나라당의 지도체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

“지금까지는 정당이 정책을 개발해서 정치를 완성시키는 일보다는 정당 조직을 강화해서 선거에만 골몰하는 그런 체제 비슷하게 여야가 경쟁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중앙당이 비대해지고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왔다. 그래서 한나라당도 연수원도 팔아버리고, 중앙당도 빨리 팔고 필요한 당원들만 일하는 구조로 빨리 무게를 줄여야 한다.

지도체제는 그런 것을 뒷받침 될 수 있는 체제라야 한다. 그러나 갑자기 전 지구당도 없애 버리고, 모든 걸 다 없애는 급격한 변화를 지금 당장 한다면,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정치개혁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권당은 당권-대권 이렇게 분리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은 야당이 단합해서 정치투쟁도 하고 그러려면 단일성이 있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다. 원내정당으로서 원내총무라든가 정책위원장의 권한도 강화시켜야 하고, 그래서 원내 정당화로 가되, 그러나 야당의 얼굴은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무질서해지고, 단합이 안 된다. 그래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가 좋다. 당원이 직접 뽑는 당의 얼굴이 있고, 그 다음에 최고위원이든 뭐든 같이 상의하는 지도체제를 말한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국민속으로’로 대표되는 개혁파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의원님은 상이한 두 집단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리더십을 발휘하겠는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본적은 없다. 아직 당권 도전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 당이 풀어야 할 제일 어려운 과제가 바로 그런 문제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

DJ정부의 북한 비밀지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해법이 좋다고 보는가?

“일단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안 하겠다고 하니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특별검사제도 필요하다. 나는 특별검사가 수사를 해서 꼭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일단 특별검사가 진상을 규명해놓고, 이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비춰 처음 일어난 일이니, 우리 정치권이 노력을 해서, 국가이익이 그 안에 포함돼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양해할 수도 있다. 동독하고 서독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보면은 우리보다 더 많은 유무상의 여러 가지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주는 대신에 뭘 한다든지 안 하든지 조건을 달았고, 국민에게는 감췄다고 하더라도 여야 정치권은 서로 양해 속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몇 년이 지나면 국민에게 모두 공개했다. 만약 이번에 그냥 어물쩍 넘어가면 이것이 금년 내내 정치혼란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지금까지 당 현안이나, 정치 현안에 대해 말을 아낀 것 같다. 본인의 스타일과 리더십을 자평한다면?

“우리 정치가 지금까지 말 공해가 심하다. 그리고 자기를 홍보하는 농도가 지나치다. 나는 공기나 물 같이 사실은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오히려 중요할 때 유익한 그런 정치인이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당이 어려운 시기에 행보를 보이면서, 공공선이라고 볼 수 있는, 정의라고 볼 수 있는 항상 그런 방향으로 처신해왔다. 어떤 행보를 할 때도 결판이 다 난 다음에 치사하게 무슨 잘 된 쪽으로 다리를 걸친다든지 그렇게 한 적 없다.

그렇게 정치를 해왔고, 그래서 말을 많이 안 한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강재섭이 한 마디 하면 상당히 경청해 준다. 그러나 나도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창출에 주력해왔고, 그러다 보니 단합에 비중을 두다 보니까 내 목소리를 내야할 때 조금은 삼갔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할 것이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2003/02/25 00:00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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