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도, 중국 실용주의, 그리고 투박한 정의
2003/2003년 03월 :
2003/02/25 00:00
집단소송 제대로 알기
집단소송은 경험론의 산물이다. 미국 집단소송제도의 원전인 연방민사소송규칙 23조를 보면 여러 법익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얼마나 어수선하게 자국을 남기고 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은 냉정한 형식주의 정의를 뛰어넘어 현대사회에 실질적 정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제도다.
노동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경로는 더욱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개인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서비스나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자연히 한 개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같은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의 수도 많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피해자 한 명 한 명이 받은 피해가 작을 경우 아무도 먼저 나서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그 문제가 사법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일명, 분산이익의 문제). 또, 각각의 피해자가 받은 피해의 크기에 관계없이 피해자들의 숫자가 많은 경우, 같은 사건들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물론, 피해자들 중의 한 사람이 희생적으로 나서서 많은 원고들을 하나의 소송에 참가시킨다면 좋겠지만, 고전적인 민사소송절차를 적용할 경우 그 희생적인 피해자는 크나큰 절차의 벽을 넘어야 한다. 즉, 소송에 참여하려는 피해자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위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집단소송이다. 집단소송제도는 간단히 말해 매우 적은 숫자의 원고가 불특정다수인 잠재적인 원고들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고 이 소송을 승소나 합의로 이끈 뒤 그 불특정 다수가 판결액이나 합의금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집단소송은 원고들에게 아무런 금전적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중대한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1994년 미국연방지방법원 로스앤젤레스 법원에는 캘리포니아 의회가 특별목적세로 마련한 재원을 일반회계에 포함시킨 것에 대한 집단소송이 제기되었다. 승소판결이 내려진 뒤 원고였던 관련 업계의 직능단체는 한 푼도 받지 못했지만 캘리포니아 의회는 해당 금액을 특별회계로 환원시켜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해야 했다.
개념법학과 집단소송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피해를 입었을 때 몇 명의 대표가 소송을 제기한 뒤 그 과실을 적절한 절차를 통해 다른 피해자들과 나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납득되는 일이다. 실제로, 소수의 대표가 위임을 받지 않고 다수의 이익까지 대변하는 형태의 소송은 이미 11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왜 집단소송법의 도입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집단소송법은 상식적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자유민주주의적 법논리 체계에서는 괴물에 가깝다. 영국에서도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적 법치주의가 자리잡으면서 배격되기 시작했다. 즉, 어떻게 존재가 확인되지도 않은 불특정 다수의 권리를 변호사가 대리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재판에 참여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권리에 대해 판사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이유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개념법학에 충실한 대륙법계 국가들은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집단소송제도의 부재는 분산이익이나 사법효율의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제조물책임소송의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의 집단소송제도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경험론의 전통이 강한 영미법 국가에는 물론 브라질과 이스라엘에도 집단소송제도는 존재한다. 더욱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국도 1991년 집단소송법을 제정, 이에 따른 다자소송이 공해, 소비자, 증권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1996년 한 해에만도 △1994명의 농민들이 가짜 종자 판매상 △215명의 농민들이 저질 비료상 △60여 가구 농민들이 인근 벽돌공장에서 비롯된 대기오염 △773가구 주민들이 인근 공장에서 비롯된 수질오염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이런 소송들은 집단소송법이 없었더라도 이론적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소송제도가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원고의 이익까지 도모해 소송의 제기를 수월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1994년 26명의 소비자들이 베이징(北京)의 6개 백화점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생일 100주년 기념 시계를 샀다가 시계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금이 가짜인 것을 알고 백화점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이 때 해당 법원은 현지의 한 석간신문에 이 시계를 산 사람들은 소송에 참여할 수 있다는 광고를 냈다.
이는 집단소송의 또 하나의 장점으로서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법원이 나서서 불특정 다수에게 소송 진행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원고의 숫자는 300여 명으로 늘었다. 결국, 법원은 피고 백화점들에게 시계값을 모두 돌려주는 것은 물론 한국 돈으로 구매자 1인당 35만∼40만 원에 해당하는 위자료와 소송비용까지 물리는 판결을 내렸다.
사회 자체를 시장으로 생각하는 세계관을 지켜온 중국 인민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지난 몇 십 년 동안 공산당을 이용해왔다. 개방을 시작한 후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의 원론도 깊게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반세기동안 길들여진 집단적 성향에 개방실용주의가 결합했을 때 집단소송법의 도입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사회변화와 집단소송제도
개인들 사이의 잘잘못을 어떻게 정교하게 가려낼 것인가에 집착하면 집단소송은 너무나 투박해보인다. 중국의 어떤 학자들은 집단소송 덕분에 사회불안요소로 자라났을 분쟁들이 법적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논평한다. 이 말은 사실 집단소송에 대한 찬사라기보다 집단소송이라는 형태를 통해 법치주의가 자신들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감의 표시로 보여진다.
미국이 1966년에 집단소송규칙을 개정한 커다란 동기의 하나도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집단소송의 허용이었고, 개정 이후에야 제조물책임소송, 환경소송, 반독점소송, 소비자소송, 소액투자자소송 및 인권소송(성차별 및 인종차별) 등이 봇물 터지듯 집단소송의 형태로 제기되어 현재처럼 개인이나 단체의 소송이 사회발전의 강력한 한 축을 이루는 나라가 되었다.
집단소송은 경험론의 산물이다. 적절히 바람직한 목표, 현실과 타협하는 기준, 원칙보다는 효율에 치우친 절차의 배합으로서, 논리적으로는 형편없는 내구성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다른 절차규범들과 쉽게 화합되지도 않는다. 미국 집단소송제도의 원전인 연방민사소송규칙 23조를 보면 여러 법익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얼마나 어수선하게 자국을 남기고 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흉물스러운 도구주의의 산물은 냉정한 형식주의 정의를 뛰어넘어 현대사회에 실질적 정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제도다.
추상적인 법이론을 위해 명쾌한 상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세련된 형식보다는 투박한 실질을 추구해야 한다. 법학논리가 좀 부실하더라도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잠시 법학노트를 접어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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