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북한 소 한 마리가 ‘탈북’한 적이 있었다. 아마 홍수가 터져 휴전선 바로 밑 김포 부근 어느 섬까지 떠밀려왔던 모양이다. 그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어느 TV는 저녁 정기 뉴스시간에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이 소를 빨리 구출해야 한다!”고 절규한 적이 있다.

우리네 시장바닥에서는 이렇게 가축 한 마리에까지도 스스럼없이 ‘인도주의’를 역설할 정도로 인간미가 넘쳐흐른다. 그런데 과연 우리 민족은 인도적인가?

‘고아 수출’

예컨대 올림픽 얼마 후에 미국 언론은 한국인의 ‘아기수출’을 경쟁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그들은,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으로 ‘88 올림픽’ 주최국임을 자랑하는 한국은 정부의 은밀한 지원 아래 해마다 6000명 가량의 어린이를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고 있으며, 미국 가정에 입양되는 외국 어린이의 59%가 한국인”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사실 그 무렵 사회복지를 책임지고 있다는 국내의 여러 자선(?) 단체들은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해외입양에만 정력을 쏟으면서 치열한 ‘수출 경쟁’까지 벌였다. 심지어 보건사회부 감사 결과 홀트아동복지회 등 해외입양기관들이 입양아동을 더욱 많이 그리고 보다 빨리 쟁취하기 위해, ‘목 좋은’ 고아원이나 병원 등에 양육비, 사례금 명목으로 사전에 막대한 청탁성 뇌물을 미리 갖다 뿌린 것으로 밝혀진 적도 있다. 그야말로 ‘고아 선도매입’이었던 것이다. 6·25 직후라면 누군들 ‘정상참작’이라도 하지 못할 것인가. 그러나 올림픽을 치르고 선진국 대열에 돌입하고 있다며 소란법석을 떨던 나라에서 ‘아기 수출량’이 갈수록 증가한 것이다.

북한이 유럽 등지의 공항에서 한국으로부터 ‘팔려오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선전자료로 활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이런 ‘고아 수출’을 ‘동족을 팔아먹는’ 반민족적 ‘만행’이라 규탄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반박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뜨거운 혈육의 정을 강제로 끊긴 채 동생은 이 나라로, 언니는 저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 없어 낯선 이국 땅에서 자살로 어른들의 비인간적 불륜을 고발하는 한국인 해외입양 어린이들의 참담한 보도를 접할 때, 우리들 어른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얼굴을 치켜들 수 있겠는가.

걸핏하면 ‘인간적으로 하자’는 말을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정말 인도적인 민족인가?

혹시 우리는 민족이나 인종 차별을 극심하게 자행하는 민족은 아닐까?

나도 어린 시절 ‘깜둥이’, ‘??? 쨩꼴라’, 등등의 모욕적인 명칭들을 마구잡이로 자랑스럽게 구사하는 환경 속에서 듣고 배우며 자랐다.

나는 아직도 이런 우스개 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어느 날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셋이서 돼지우리에 들어가 누가 더러운 것을 가장 잘 참는지 내기를 하기로 했다 한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일본 사람이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이주쯤 후에는 한국인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돼지가 쏜살같이 내빼더라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민족 차별을 예사로이 여기면서도, 우리는 예컨대 일본 같은 곳에서 재일 교포들에게 지문날인을 요구한다고 아우성치며 벌떼같이 궐기하는 민족이다. 물론 그런 행위가 그르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남의 존엄성도 함께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핍박받는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가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남한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가 지금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해답은 분명해질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 한국

최근의 해외 사례만 간략히 훑어보기로 하자.

2001년 2월 6일자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미 노동부 조사팀이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모아 제도에 있는 한 한국인 소유의 소규모 의류공장에서 발생한 끔찍한 노동착취 사실을 발각했다고 한다. 노동부 보고서는 이 공장의 근로자 합숙소는 감옥을 연상케 했으며, 근로자들에게는 영양 부족을 일으킬 정도의 죽만 공급된 한편, 의무 귀소시간인 밤 10시 이후로 들어온 근로자들은 구타당했다고 밝혔다. 그 전 해 11월에는 한 근로자가 파이프에 맞아 한 쪽 눈이 실명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이 공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학대행위까지 자행되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한 달에 400달러를 받았으나, 당초 약속과는 달리 숙식이 무료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월 150∼200달러의 숙식비 지불까지 강요당한 바 있어, 이 공장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사모아의 최저 임금이 시간 당 2.6달러임에 반해, 이들 근로자들의 임금은 시간 당 불과 1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이윽고 뉴욕 소재 노동운동 단체인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5년간 노동착취 현장에 대한 조사를 수행해왔으나, 이처럼 극단적으로 노동착취가 자행된 것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 학생이 ‘제국주의 국가’로 비난하기도 한 미국보다 더 지독한 제국주의적 착취가, 바로 해외에 진출한 우리 민족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내의 천민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 상태가 그대로 해외에까지 직수출된 셈이다. 요컨대 식민 모국의 반민주적 억압체제를 식민지에도 강요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제국주의를 반대한 특정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대한민국이 앞장서 멋들어지게 입증한 셈이다.

그렇다면 동족들끼리라도 잘 뭉치는가? 대답은 극히 부정적이다.

우리 동족의 쾌거가 다시 한번 더 『뉴욕타임스』를 탔다. 2001년 5월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한인 이민자 13명이 한인 증권 브로커에 속아 거액을 날렸다며, 이들을 고용한 대형 증권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다. 특히 영어에 서툰 신규 이민자들을 상대로 주식시장에서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주겠다고 속이는 “동족간 사기”(Affinity Fraud)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실정이었다.

어느 한글학자에 의하면 ‘아름답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아리땁다’의 ‘아리’ 또는 ‘아지’는 병아리, 송아지의 예에서 보듯이 어린 것,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라 한다. 이처럼 본시 자그마한 체구 또는 어린 여자의 용모를 묘사하던 ‘아름답다’는 말이 언제부턴가 서구어의 영향으로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하는 식으로 적용범위가 한껏 넓어졌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본래 국토가 작아서인지 우리는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작은 성취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온 민족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이웃사촌’이라며 서로들 훈훈한 정을 나누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던 우리 조상이었다. 요컨대 보잘것없는 겉모양보다는 튼실한 내용을 뒤쫓던 게 바로 우리의 전통 아니었는가.

이 곱던 마음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
2003/03/25 00:00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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