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김대중 정부와 정반대로 해주십시오'
2003/2003년 04월 :
2003/03/25 00:00
개혁은 앞당기고 신자유주의정책은 전면 재검토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한 달,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중단 위기에 놓인 재벌수사, 이라크전 파병 계획 등이 근심스런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쓴소리"를 싣는다. 지금 당장 입에는 쓰지만 앞날에 귀한 약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노무현 대통령께.
여러 개혁과 북한 핵문제 등으로 얼마나 고심하십니까? 당선을 축하할 기회가 없었던 만큼 이 자리를 빌려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펜을 든 것은 때늦은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여정부에 미리 ‘쓴 소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2000년 총선과 관련해 김대중정부 2년 간의 중간평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김대중정부의 성격을 ‘민주개혁의 정체와 신자유주의적 개악의 이중주’로 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김대중정부는 정작 해야 할 민주개혁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신자유주의적 개악은 과감하게 추진했습니다. 이후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중요한 업적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김대중정부 5년에 대한 최종 평가는 3년 전에 제가 내렸던 중간평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께 제가 할 수 있는 쓴 소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김대중정부와 정반대로 해달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정체되었던 민주개혁은 과감하게 추진해 주시고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무비판적으로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적 개악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모두들 개혁을 부르짖지만 문제는 어떤 개혁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아직 무엇이라고 단정하기는 뭐하지만, 그간에 나타난 것들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우선 신자유주의적 개혁, 아니 개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대해 인수위는 김대중정부가 무비판적으로 추진해온 기간산업의 민영화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부족하지만 다소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팀은 그 구성에서부터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입장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급한 판단인지 모르지만, 대통령 자신도 이 점에서는 현 경제팀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듭니다. 그것은 대통령 당선 후 ‘국민과의 대화’ 형식의 토론회에서 하신 이야기 때문입니다.
국민토론회의 발언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저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전체 노동자의 60%에 이르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정규직의 해고가 어려워 기업들이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규직의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전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풀자는 끔찍한 발상입니다.
이후 대통령은 민주노총을 방문해서도 이제는 옮고 그름이 아니라, 효율성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져 실망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지표인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것도 결국 이와 관련된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김대중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벌써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참여정부의 국정기조가 지나치게 경제중심적, 성장제일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님은 대선 과정에서도 대선 후보 중 누구보다 빠른 고도성장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셨고, 당선 후 실시한 전북지역 국민토론에서도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그동안 투자한 재원이 사장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기이한 논리를 내세워 환경보호보다 경제성장과 개발주의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환경단체들은 새 정부에 환경정책이 없다며 전면투쟁도 불사하겠다고 결의한 바 있습니다.
한편, 민주개혁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하실 것으로 기대가 큽니다. 이미 장관 국민추천제, 다면평가제 등 참여정치의 제도화, 탈권위주의적 정치 스타일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개혁 역시 걱정스러운 면이 적지 않습니다.
‘양심수 전면석방’ ‘한총련 합법화’의 성과를 보여주세요
민주개혁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재벌개혁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고건 총리가 속도 조절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벌써 내부에서부터 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심수 전면석방, 한총련의 합법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소식만 들릴 뿐 가시적 성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공무원과 교수노조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등 반민주 악법에 대한 개혁은 국정의 주요 목표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들은 국회 통과가 요구되므로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고 있다면, 이는 잘못입니다. 오히려 이를 초반부터 적극 추진하면서 한나라당의 반대로 이들 개혁이 실패하면 이를 여론화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해야 합니다. 또 북핵 문제로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라크전 파병은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 모두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속은 안 바뀌고 겉만 바뀌는 ‘무늬만의 개혁’입니다. 아니, 국민참여 등 탈권위적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은 개악되는 것입니다. 노동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직접 방문한 것은 전례가 없는 혁명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형식’의 개혁이 정규직의 해고 용이화를 통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개악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달리 말해, 인적 구성에 있어서는 낡은 주류와 낡은 권위주의가 깨어지고 있지만,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들이 오히려 구 주류에 포섭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마저 듭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사실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우선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행히 그 추세가 바뀌었지만, ‘인권 대통령’이라는 김대중 대통령 때 국가보안법 구속자와 양심수 수가 김영삼정부 때보다 오히려 많았습니다. 끊임없이 색깔론에 시달려 올 정도로 70년대 이후 가장 진보적인 대중 정치인이자 서민의 대통령을 자부해온 김대중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정책을 편 결과 객관적인 결과로 보자면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반서민적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5년 간의 민주개혁의 지체와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완전히 뒤바꾸어 민주개혁을 과감하게 실시하고 신자유주의를 근본부터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이 두 사실(특히 후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고요.
노 대통령님,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