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과 차 한잔


작가 조선희를 알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 언제쯤인 것 같다. 『한겨레』 문화부 기자였던 그녀는 매우 차분하면서도 똑부러지고 논리적이어서 건달 끼 있는 남자들이 아예 말 붙이기를 피해버릴 것이 분명한 인상이었다. 그런 기억만 남아있었다.

2002년, 그녀는 소설가가 되었다. 『열정과 불안』의 작가. 사실 그녀가 작가로 데뷔한 것은 이미 15년쯤 전의 일이다. 『밤길의 사람들』이란 합동소설집에 「퇴적층」이라는 중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소설로 발언하기에 적당한 내용이어서 소설을 썼을 뿐이라고 했다. 발언? 그 때는 신문 기자로 살던 시절이니 기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소설가로 전업해버렸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이야기꾼으로 살아가야 할 터. 그런데 그 성격이 소설가로 맞는 것일까. 주절주절 속속들이 미주알 고주알 비루한 것들을 찾아내 낯뜨겁게 이야기하는 요즈음 일군의 소설을 떠올려보면 그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그 소설도 분명히 재미없을 거야. 그런데 『열정과 불안』은 이런 추측을 보기 좋게 저버렸다. 그녀와 북한산 등산길에 올랐다가 동행한 극작가 겸 소설가 안종관의 논평, “내용은 둘째치고 그거 되게 재밌대”.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 조선희를 생각하며 산을 오르다 『참여사회』 가 그녀를 인터뷰 대상자로 고른 이유가 떠올라 내 직업을 탓했다. 그녀가 소설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의 전형이기 때문이었다.

열정과 불안

그녀는 1960년 강릉생이다. 고등학교를 그곳에서 졸업했는데 자기 학교에서 고려대 독문과에 처음 들어간 학생이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연합통신 기자가 되었다. 들어가기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나오기는 쉽게 나왔다. 『한겨레』가 창간되자 월급이 훨씬 적은데도 훌쩍 옮겨버린다. 이유를 물어보니 당시 그의 생각으로는 당연한 결론이었다는 대답. 대답이 너무나 선선해 정말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걸까. 이 대목에서 그녀의 성향이 드러난다.

운동권이었나? 그걸 물으면 이 세대는 운동권이었어도 대개 아니라고 대답한다. 더 처절한 삶을 살았던 ‘그들’에 대한 예의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70년대 학번들은 사회과학세대들이다. 조금만 진지하다면 학교에 들어가 경제사부터 시작되는 그 길고 긴 ‘커리큘럼’을 한번씩은 거쳤고 운동권이든 아니든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 키운 소양이 『열정과 불안』에서 상상력의 근간으로 작동했으리라 추측도 해본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 기자와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창간사업에 팀장으로 뛰어든다. 90년대 중반일 듯. 그야말로 영화의 시대에, 모르는 한국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이 잡지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대중의 욕망을 읽고 해석하며 또 조종해가는, 일약 문화계의 중요 인물이 된다. 이름도 이때 결정적으로 알려졌다. 이 경험은 아마도 그의 소설 작업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력만 살펴서는 그녀의 절반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잘 나가는 영화잡지 편집장 자리를 헌신짝이 아니라 새 신짝 버리듯 버렸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한겨레』, 『씨네21』과의 결별이 그렇게 쉬웠겠는가. 그러나 새 신을 버릴 정도로 단호한 그 속내가 궁금하고 한국사회의 여성에게는 아직 중세적 억압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던 1980∼90년대를 결혼과 직업, 어느 것도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해온 비법이 궁금했다. 바로 그것이 『참여사회』의 주문이었던 것이다.

장나라, 린다김, 조선희 셋 중 누구를 할 것인가 고민했다는 거 알아요?

“그 선정이유 좀 써 놓으세요.”(웃음)

소설가가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저는 고등학교 때 문예반을 하거나 대학시절 문학에 뜻을 두고 공부한 것은 아니니까 소설가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자 시절 첫 소설을 쓰면서 연변 노인의 고향방문기를 조카를 화자로 해서 썼는데, 이건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소설형식을 빌어 말하고 싶어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소설가로서는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써보니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이창동 감독과 통화를 하면서 소설을 쓰려고 직장을 그만두려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만두자 이 감독이 황당하고 답답했던 모양이에요. 만나서 술도 마시고 그랬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이 세계가 새롭게 다시 일궈 나가야 할 현실이니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정말 좋습니다.”

그가 직장을 나와서 거의 2년 만에 낸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은 제목부터 암시하는 바가 작지 않다. 열정 뒤에 오는 불안이란 개인적이지만 또 시대적이다. 지금의 우리 시대가 연상되지 않는가.

1권은 벤처캐피탈과의 인수합병을 둘러싸고 주인공 영준과 회사를 함께 세웠던 동창생들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영준이 이상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찾는 인물이라면 민혁은 명예와 권력, 돈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2권은 삶의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은 정신과 여의사 인호가 세상을 읽고 화해해 가는 내용이다. 우리 시대의 인간 군상들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0대와 소설, 직장을 그만두는 일



소설 쓸 때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살아오면서 겪고 생각했던 것을 여러 번 되씹고 걸러내어 쓴다고 생각하니까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창조적인 작업이니 해 볼만도 하고. 영화를 많이 본 것이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가 이야기답지 못하면 아무리 진지해도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소설 쓰기 방식에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녀의 소설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개가 예상했던 것(?)보다 잘 읽힌다는 것이었다.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형화되어 버리고, 좋게 말하면 섬세한 감수성의 문학, 나쁘게 말하면 소소한 자기 감성에 빠져버린 문학이 보편화되어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녀의 작품은 갈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휠씬 시대적이고 중성적이다.

소설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삶의 허망함을 이겨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글을 통해 내면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분출해 낼 수 있다면 소설 쓰기는 나의 40대에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살아온 지난 삶들, 누구나 그렇지만 그 열정과 후회의 자취들을 걸러내어 미래의 희망으로 다시 엮는 일이 지금 나에게 소설 쓰기입니다. 그것은 나를 재창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란 과정으로서의 나이기에 열심히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겠죠.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흥분도 됩니다.”

그녀는 서문에다 이렇게 썼다.

“20대에서 30대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늘 몸은 여기 있으되 마음은 어디 딴 데를 헤매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전염성 강한 인플루엔자가 내 안에 들어와 청춘의 열병을 앓게 했던 것 같다. 이제 토해놓고 보니, 저것이 들어 있어서 내가 그 동안 때때로 어지럽고 미열이 나고 잠을 설치고 마음이 아프고 또 들뜨기도 하고 까불기도 하고 결국은 직장생활을 못 견디고 뛰쳐나오고 그랬구나, 싶다. 그것들을 모두 토해놓고 나니 이제 비로소 내가 안전하게 40대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40대와 소설, 그리고 직장을 관두는 일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씨네21』 관둘 때 어땠습니까.

“직장 생활을 19년 했습니다. 『씨네 21』에서도 5년 간 일했습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어요. 시작할 때의 열의 같은 게 그렇게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니니까 힘도 들고 우선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냈는데 새 부장 구할 때까지 6개월 더 일했습니다. 후배들도 제가 오래 있으면 불편한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소설 쓴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가벼웠습니다. 다만 조직에서 벗어나 백수로 지내는 일에 적응할 수 있을까 불안했는데 더 바쁩니다. 아코디언도 배우러 다니고 등산도 다니고.”

말하는 품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성실 범생 여성이었다. 거기에다 상황을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결단력과 새로운 국면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것 같았다.

폭격 맞은 집안 살림

영화잡지를 그만큼 키워냈을 때는 어떤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있어서 조직을 잘 이끌어야 했을 텐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후배들이 다른 소리 안 하도록 저 역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잡지 만들 동안 좋아하는 소설도 거의 못 읽었습니다. 일중독으로 지냈지요. 제한된 돈으로 이윤을 만들어 내는 일이 쉽겠습니까.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습니다.”

직장에 그렇게 매여 있으면 다른 일들은, 가령 아이들 키우는 일?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큰 아이는 제가 키웠지만 작은 아이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요. 잡지 만들기 시작할 때 큰애가 세 살, 작은 애가 생후 2개월이었습니다. 작은 애를 대구에 계신 시어머님께서 여섯 살 될 때까지 키워주셨습니다. 집안 살림이야 엉망이었지만 남편이 도와주고 해서 근근히 버틴 거죠. 육아문제는 사회적인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에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남편과 시어머님께 고맙고 그렇습니다. 내가 시간 관리를 잘 했더라면 한 2년 정도만 맡기고도 가능했을 텐데. 이 부분은 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녀의 산문집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한겨레 출판부)에 잘 나와 있다. 직장 여성으로서 살아나가는 일이 때론 깡다구나 분노를 용솟음치게 하지만 ‘폭격 맞은 집안 살림’이란 글에서 보듯 안타까운 아쉬움도 진하게 배어 있다.

주위의 도움이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네요. 부모님은 어떠셨어요.

“아버지는 1919년생, 어머니는 1916년생이에요. 대학교 때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어떤 역할 모델이란 게 없었어요.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셨으니 어른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도 잘 몰랐죠. 교수님들을 어떻게 만나 어떻게 배워야할 지도 몰랐으니까.

정말 힘이 되었던 건 선배들과 동료들입니다. 나보다 한 13년쯤 나이 많은 선배가 한 분 계신데 내게 여러 역할을 해주셨어요. 삶의 장애물을 치워주었다고 할까, 집안 일부터 직장 생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상담해주고 위로해주고 채워주고 술도 함께 마셔주고. 서로 다른 부분들을 채워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도 저에겐 자랑이지만 행운입니다. 남자들은 사회에 나오면 위로 선배들이 쭉 있습니다. 여자들은 한 8할 정도가 결혼해서 집안으로 숨어듭니다. 어떤 팀을 이뤄 함께 살아갈 준거를 만드는 일이 그만큼 힘듭니다. 이런 점에선 한국 남성들은 고마워해야 합니다. 저에게 이런 팀이 있었다는 건 정말 제가 사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모여서 화투 치는 재미도 커요. 지난번에 모여서 쳤는데 제가 다 땄습니다. 또 쳐야죠(웃음).”

그녀가 행운이라 이야기했지만 그건 제발로 찾아와 준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 낸 것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신영복 선생이 ‘사랑은 경작하는 것’이란 표현을 썼듯이, 그 행운이란, 기회가 왔을 때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도움을 주고 공동의 주체를 만들어가려한 그녀의 노력의 산물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과거를, 과거 자신의 삶을 잘 경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친구 선배 가족 직장 등이 그 경작의 소출이라면 이제 그는 글로 새로운 영토를 경작하려 한다. 응당 잘되지 않겠는가. 다시 문학에 대해 물었다.

무진장 바쁜 그녀

영화계에서도 편집장으로, 영화평론가로 고수(?)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소설판에서는 자칭 초보이자 무명작가입니다. 소설에 대한 문단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신문에서 신문 기자 출신이 소설 썼다고 많이 다뤄주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평론가들의 평은 많지 않았습니다. 김명인, 방민호 씨 등이 호평을 해주었다는 기억이 있고 그래서 더 궁금해집니다. 내가 계속 소설을 더 써야할 지 어떨 지를 좀 평가받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잘 쓸 때까지 써볼 작심도 하고 있습니다.”

산을 내려와 순대국 한 그릇 먹고 생맥주집에 앉아 한 시간 가량 이야기했다. 등산 동료가 아니라 유명인사로 인터뷰하는 일이 서로 어색해서 500cc 생맥주를 두 잔씩 마셨다. 그녀는 지금도 무진장 바쁘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도 ‘조선희의 이창’(씨네21), ‘기자를 꿈꾸는 후배에게’(인터넷신문 지키), ‘조선희의 성공클릭’(여자와 닷컴) 연재에 바빴을 것이고 아코디언 치고 본격적으로 아이들 돌봐주고 산에 오르고 글 쓰고 술 마시고, 한 마디로 멀티 플레이어다. 다음 주부터 수요 등산에 못나오겠다고 아쉬운 듯 이야기하는 품으로 보아 뭔가 ‘쎈 일’에 또 걸려든 것 같았다.

서경석 문화평론가 · 한양대 국문과 교수
2003/03/25 00:00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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