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문제에 운동사회 보호논리는 안될 말
2003/2003년 04월 :
2003/03/25 00:00
이선희와 시타가 엄태근을 말하다
장애운동단체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함께 운동을 했던 비장애인남성이 장애여성을 성추행 했던 이번 사건은 100인위 활동이후 운동사회 내부의 성폭력 문제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편집자주
최근 장애인이동권연대 전 사무국장이었던 엄태근 씨가 함께 활동했던 장애이여성활동가를 성추행 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두 여자가 참을 리 없다. 강철구 사건 대책위(KBS노조간부 강철구 씨가 노조직원인 여성들을 성폭행 한 사건)에서 활동하는 시타 씨(30세)와 민주노동당 종로구위원장 이선희 씨(39세)가 한자리에 모였다. 운동사회 내에서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이라면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 두 여자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
시타 (이하 시) : 이번 사건에 대해 엄태근 씨는 성추행 사실을 결국 인정했어요. 그러나 엄태근 씨가 쓴 사과문에서 피해여성에 대한 사과는 두 줄 뿐이었어요. 그 나머지는 이번 사건 때문에 장애인운동에 지장을 줘서 조직에 사죄하는 내용이더라구요.
이선희 (이하 이) : 영화 <오아시스>가 떠오르더군요.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라더니,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고 더구나 운동사회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게 끔찍했습니다.
시 :성추행을 당하고 7개월 만에야 피해 여성이 입을 열었습니다. 피해여성이 운동에 활발하게 동참하는 활동가였다고 들었고 그만큼 장애운동에 애정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지난 7개월이 지옥 같았을 거예요.
이 :이번 사건도 성폭력 사건의 전형이었어요. 바로 피해여성이 엄태근 씨를 전부터 좋아했었다는 등의 소문이 돌더군요. 좋아하면 성추행해도 되는 겁니까? 사랑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성폭력 사건들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성폭력 사건들의 전형 중의 전형으로 진보정당 내부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시 :성폭력 사건마다 가장 많이 애용되는 시나리오예요. 폭력을 사랑의 문제로 바꿔버리는 것이죠.
이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소속된 단체에서 곧 바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가해자를 조직에서 제명시켰어요. 성폭력 사건을 대처하는 운동사회의 방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거죠. 사람들은 이처럼 명백하게 성폭력임이 드러난 경우 가해자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운동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죠. 피해여성도 운동의 주체였다는 것을 잊고 말이예요. 특히 가해자에게 당분간 운동을 하지 말라는 피해여성의 요구에 대해 논란이 많더군요. 민노당에서도 그런 논란은 있었죠. 성폭력 사건 때문에 피해자의 운동할 권리와 자유를 침해해도 되냐는.
시 :운동사회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최종적인 문제는 가해남성이 아니라 피해여성이 다시 운동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예요. 그 여성이 운동을 하면서 사건이 끊임없이 환기되거나 논란이 되면서 가해자에 대한 동정의 말이 들리는 것이 문제가 되죠. 그 문제로 피해여성이 운동을 관두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자가 활동하는 범위 내에서 가해자더러 운동을 그만두라는 의미예요.
이 :이번 사건을 다룬 『오마이뉴스』의 기사에 대해 어떤 장애여성활동가가 강하게 반발했어요. 피해자 중심의 기사가 아닌 단체의 대응을 중심으로 한 기사였으니까. 마치 이동권 연대가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 듯한 느낌을 줬죠.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 |
시 :작년 8월에 있었던 사건인데, 사건의 공론화가 빨랐던 것도 아니죠. 왜 이제서야 사건을 밝히느냐는 것이 사람들의 의문인데 그것은 ‘왜 그때 저항을 하지 않았냐’는 식의 피해자의 행동을 문제삼는 가부장적 시각과 같아요. 제가 많은 성폭력 사건을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피해자에게는 이중적인 심리가 있어요. 머릿속으로는 공식적으로 제기해야 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폭행 당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어요. 결국 참다가 그러한 가해자가 운동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사건을 공론화 시키게 돼요. 그런 이유가 없으면 납득하지 못하는 운동사회의 인식수준이 오히려 더 문제죠. 그러나 피해여성의 경우 장기적으로 이러한 사건을 숨기는 것이 이동권연대의 싸움을 약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맞아요.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성폭력 당했을 때 금방 드러내지 않는 것 중의 하나를 순결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당한 사람이 정상적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것은 운동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운동사회에서는 조직보위 이데올로기가 있지요.
시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운동사회는 여성활동가들에게 ‘남자 같은 활동가’와 ‘여성다움’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운동을 오래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여성이 아닌 활동가’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정체성에 대한 엄청난 충격일 수 있습니다. 좀 더 알아본 바에 따르면 평소 피해여성은 운동진영 내에서 중증장애인, 그리고 여성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의 목소리가 묻히는 것에 분노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이 :순결이데올로기 보다 무서운 건 조직보위 논리죠. 성폭력 사건을 공개한 것이 조직 전체에 미칠 부정적인 파장은 피해여성도 알아요. 여성들도 운동가니까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더 괴롭죠. 도덕화된 집단 속에서 피해자가 받은 충격은 더 크고, 운동을 하는 한 가해자를 계속 지켜봐야 하니까 견디기 힘들어요. 조직은 이러한 일을 통해 가해자가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것은 고민하지만 피해여성이 조직에 복귀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조직의 과제로 생각하지 않아요.
이 :민노당의 경우 남성활동가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폭력 사건이 자주 발생해요. 저는 종로구에 오기 전에 여성위원회를 맡았었는데 도대체 이런 사건을 처리하느라고 당운동을 할 수 없었어요. 이런 일들을 처리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판단을 하고 중재를 해야 하는 데 사람들은 객관을 가장해 여성을 편드는 게 아니냐고 비난을 합니다.
시 :특히 노동운동은 남성중심의 운동이라 그런 면이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술을 마시고 벌어진 사건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거나 후배를 아껴주려는 차원에서 행동하다가 실수로 저지른 거라고 덮어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젊은 세대들도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똑같이 성폭력을 저질러요. 친밀한 관계와 호감을 악용하는 거예요. 이번 사건도 피해자가 동료의 차원에서 운동에 대해 갈등하는 엄태근 씨를 위로해 주기 위해 따로 만났다가 벌어진 일이었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이 세대들의 특징은 사과문에 자신의 20년 인생사를 다 늘어놓고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받지 못한 가부장제의 꼭두각시였다는 둥 유식한 말을 써가며 불쌍한 척을 해요. 그렇게 동정을 사고 자신을 합리화시키죠. 엄태근 씨처럼 잠적을 하거나 폐인이 돼버리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더 부담을 느낍니다.
이 :민노당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들을 교육시키는 데 막상 교육에 들어가면 기가 막혀요. 나는 너무 무지하니 너희들이 한번 제대로 가르쳐보라는 식으로 나와요. 그것도 사실 웃기는 논리죠. 예를 들어 남성활동가가 정치개혁에 대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봐요. 그 내용의 주체가 되도록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 :엄태근 씨가 쓴 사과문을 보고 생각난 게 가해자들은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몰라요. 조직에 누를 끼쳐서 미안하다? 이건 길 가다 여성을 때린 후 남편에게 사과하는 남자들과 똑같은 거예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처럼 피해여성을 주체적인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이 :남성화된 여성활동가들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80년대에 운동을 했던 여성들은 더 해요. 문화적으로 남성화 되는 게 많고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동성이 남성적인 특성이라고 착각을 해요. 저는 민노당에 와서 입다물고 있으면 심지어 참하다는 말도 들었어요. 여성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는 얘기도 들었구요.
시 :여성활동가들이 모순적인 요구를 받아요. 활동가가 아닌 여성활동가로 취급받죠. 여성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실제 운동사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은 운동의 수발을 드는 경우가 많았어요.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활동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저 여성 활동가도 가만있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공격을 바로 받아요.
![]() |
“사실은 망설였다.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은 싸움의 와중에 뭔가 그것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에 대한 갈등도 있었지만 공영방송의 기자에다가 막강한 대규모 방송사의 노조 간부인 싸움의 상대에게 또 다른 빌미를 주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 되지 않을 지, 걱정되었다는 게 더 솔직한 이유다.”
『페니스 파시즘』에서 운동사회 내의 성폭력을 고발했던 시타 씨는 책의 서두에서 이와 같은 두려움을 고백하며 그러한 감정이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성폭력에 관해 말할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하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두 여자의 대화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절절하게 드러났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여성이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통인지 그들은 뼛속 깊이 체감하고 있었다. 더구나 운동사회 내의 성폭력 사건은 사건 자체보다는 운동사회의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며 본질을 잊기 쉽다.
엄태근 사건은 다른 성폭력 사건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가해자의 발빠른 사과나 조직차원의 대응은 기존의 성폭력 사건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피해자는 만족해야 할 것인가.
이쯤에서 고통스런 기억 하나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녹색연합 장원 총장 사건과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가 성폭력 사례와 가해자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한 사건이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시민운동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며 타격을 입었다거나 장원 총장의 뒷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당시의 피해자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당시 시민운동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그녀는 지금도 시민운동을 하고 있을까.
이제 방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때다. 당시의 100인위 사건 때처럼 100인위가 의도는 좋은데 너무 경솔했다는 식의 충고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100인위가 2000년 운동사회 내의 성폭력 문제에 화두를 던졌다면 이제 답을 해야할 때가 왔다. 성폭력 사건들은 운동사회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점점 지능화 되어가고 있다. 가해자들은 성폭력과 연애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고 조직보위의 논리는 갈수록 정교화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이와 같은 성폭력사건들을 차치하더라도 여성단체를 제외하고 여성이 운동단체의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은 손으로 꼽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가부장적인 구조의 타파에 더 뛰어들어야 할 때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