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일꾼 구하기
2003/2003년 04월 :
2003/03/25 00:00
권위적인 양반 집보다 태풍이나 지닌에 끄떡없는 귀틀집으로…
집은 주변과 잘 어울리고 자연적인 소재로 지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사람들에게 중압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 웅장한 기와집보다는 소박하게 돌너와로 지붕을 인 것도 좋았고, 통나무 사이사이에 짚과 흙이 들어간 것도 좋았다. 깡통이 된 통장만 빼면 말이다.
집터를 잡고 난 뒤 해야 할 일은 크게 보아 나무를 구하는 일과 일꾼을 구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집을 어디에 지을 지, 어떤 식으로 지을 지를 정하는 일이, 수도권을 벗어나려는 결단 다음에는 가장 어려웠다고 본다.
지난번 이야기대로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집터를 정했다. 집을 어떤 식으로 지을 지는 약간 고민이 되었다. 물론 이미 말한 것처럼 귀농한 한 후배의 소개를 받아 방문했던 곳의 귀틀집 양식이 마음이 들어 그것을 택한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 집이 마음에 들었던가? 먼저 집이 주변과 잘 어우러지고, 자연적인 소재로 지어서 편안한 느낌을 주며, 무엇보다도 사람이 집에 대해 중압감을 느끼지 않아 좋았다. 웅장한 기와집보다는 소박하게 돌너와로 지붕을 인 것도 좋았고 통나무 사이사이에 짚과 흙이 들어간 것도 좋았다. 권위적으로 보이고 화려한 양반 집보다 평범한 살림집이 더 좋아 보였다. 게다가 전통 한옥의 살림집 중에서도 뼈대집에 비해 귀틀집은 통나무를 직각으로 맞물리게 쌓아올려 벽체를 만들게 돼 있어 어지간한 태풍이나 지진에도 잘 쓰러지지 않는, 요샛말로 ‘내진 설계’가 된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아하!’라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선소나무와 칠레소나무
이제 통나무를 구해야 할 차례다. 강원도에서 나오는 육송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구하러 나섰다. 대목수와 이미 집을 지어본 경험자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의 소나무가 필요한 지 어림셈을 한 뒤 되도록 좋은 나무를, 좋은 가격에 구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강원도로 떠났다. 강릉 부근의 목상들을 몇 군데 방문했다. 목재소 마당에 나무들이 많이 쌓여있긴 했는데 가격이 맞지 않거나 나무가 좋지 않았다. 목상은 지금은 시기가 맞지 않으니 다음 간벌 때를 맞춰 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지금쯤 나무가 나올 것 같다는 말을 선배 귀농인으로부터 듣긴 했는데, 마침 시간이 나지 않아 함께 나무를 사러 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좋은 나무를 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너도 나도 통나무를 많이 쓰는 집을 짓기로 하고 좋은 소나무 구하는 데 혈안이 된다면 강원도 소나무도 머지 않은 미래에 씨가 마를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간벌하는 것으로도 충당이 되겠으나 나중에는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지 않을까? 그러면 당연히 해외에서 사들여오겠지. 그렇지만 지구촌의 열대우림이나 좋은 숲들이 급속히 파괴돼 환경 재앙이 우려된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 오지 않는가?
좋은 나무를 사서 집을 짓기보다 시골에서 허무는 집에서 나오는 폐목재를 재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집 짓는데 필요한 나무의 규격과 수량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어디에서 한옥을 뜯는 지도 미리 알아야 하며 게다가 그 주인들과 잘 상의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없을 뿐더러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책도 보고 강의도 하고 회의도 해야 하며 논문이나 원고도 쓰고 때로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들이 청해오는 토론이나 특강에 나가기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돈이 더 들더라도 나 사는 곳 가까운 제재소에서 대들보와 문골, 창틀, 마루, 상량에 쓸 소나무를 샀다. 일부는 조선소나무이고 일부는 칠레소나무였다. 귀틀을 짤 비교적 가느다란 통나무는 인천에서 수입 소나무를 취급하는 상인에게서 25톤짜리 트레일러 한 대 분량의 러시아 소나무를 샀는데, 양이 모자라 나중에 5톤어치를 더 샀다. 고미반자와 지붕에 쓰일 호랑이 무늬의 미송 합판과 집성 합판은 그 뒤 또 다른 제재소를 통해 샀다. 내 경우는 나무 구입에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대신 돈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가 돈을 절약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들여야 할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무 가격은 천차만별이어서 좋은 가격에 사려면 여러 군데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또 미리 나무를 사서 껍질을 벗기고 잘 말린 뒤 집을 지을 때 필요한 크기로 잘라 쓰는 것도 뒤틀림을 방지하는 데 좋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치밀한 계획과 충분한 시간을 전제로 한다. 지금 생각이라면 강원도든 아니면 자기 집 지을 곳이든 좋은 제재소 주인을 잘 사귀어서 미리 자기 구상을 설명하고 협의를 잘 한 뒤 나무를 사고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깡통이 돼버린 통장
나무를 구한 다음에 일꾼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대목수에게 맡겼다. 그와 일을 함께 해 본 소목이나 일반 일꾼들이 있어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기대만큼 호흡이 맞지 않은 경우도 눈에 띄었다. 예컨대 대목수와 늘 같이 일하던 소목이 마침 다른 데로 일을 나가 없는 바람에, 다른 소목을 불렀더니 틈만 나면 놀려고 하고 지나치게 자주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틈틈이 들러 목격을 한 일이긴 했지만, 작업 현장의 일은 대목수를 믿고 일임해 그를 중심으로 팀이 자율적으로 일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못 본 체 그냥 넘어가곤 했다.
일삯과 관련해서는 대목수가 자신이 소신껏, 성의껏 일을 한다는 전제 하에 도급이 아니라 일당으로 쳐 달라는 요구를 했다. 자신은 도급으로 일을 맡으면 너무나 꼼꼼하게 일을 하고 자재 시세를 잘 몰라 적자가 나기 일쑤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자재는 건축주인 내가 사서 공급하고 자신은 목수로서의 노동력만 제공할 터이니 일당으로 품삯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대목수의 살아온 인생역정을 들으며 그 인품을 믿었기에 그의 말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많은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방식으로 하면 일정이 늦어지고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더 나가고 작업 통제가 잘 안 되니, 목수와 잘 상의해서 인건비와 재료비, 완공 날짜 등을 확정한 뒤 한꺼번에 돈을 주는 식으로 하청(도급)을 주라”고 했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돈이나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다. 나는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한 편은 아니었으나 돈을 아끼느라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대목수가 하자는 대로 했다. 물론 나무 사는 데 거금을 들였고 중간에 인건비를 몇 번 챙겨주고 나니 통장이 ‘깡통’이 되어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생각이 역시 맞다. 이런 생각을 갖기는 어려우나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로 “집 한 번 지으면 사람들에게 속이 상해 팍팍 늙어버린다”는 서글픈 경험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야 나중에 그 누구를 다시 보아도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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