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 그후… 근본적인 안전대책 마련에 중앙정부 적극 나서야


이제 겨우 40여 일이 지났을 뿐이다.

나라를 삼켜버릴 듯한 슬픔은 잦아 들었고 지하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다. 언론 보도도 시들해졌다. 이렇게 또 잊어갈 것인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씨랜드 화재사건 때도 우리는 이랬다. 눈물과 망각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지난 2월 18일, 한 방화범에 의해 대구 중앙역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200여 명에 달하는 시민이 1079호와 1080호 지하철을 탔다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죽었다. 온 나라는 할 말을 잃었다. 사망자, 실종자 명단 확인과 함께 본격적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문책이 시작되었다.



대구시청과 지하철공사는 사고 수습능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대신 시민단체 중심으로 ‘대구지하철참사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려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에 나섰다. 2차에 걸친 현장조사를 통해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 배출, 1인 승무원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방재기능이 이번 참사의 직접적 원인으로 드러났다. 소방호스, 비상 유도등, 흡입구 등의 세부적 문제점도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방재 시설은 전무한 상황에서 비상대응할 기본 인력도 없었던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국가적 차원의 안전대책 마련’이 근본적인 해결 책임이라는 것과 단시간 내에 안전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시설이 갖춰질 때까지 안전을 담보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현재 승무원과 역무원 인력 현황으로는 위기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위기대응할 최소 인력도 안돼

기존의 지하철은 이용객의 이동로를 따라 역의 양 끝에는 매표소, 역 중앙에는 역무소를 두었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이 이런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신설되는 역은 매표소와 역무소를 통합해 역 중앙에 두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도 있지만 6명의 역무원을 3명으로 줄일 수 있으니, 인력비용 만큼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러나 인력감소로 인한 현장의 걱정은 심각하다. 한 역무원은 “크고 작은 사고가 많다. 부상자 옮기고 안전조치 하려면 역무원 모두 달려가도 부족한데, 언젠가 매표소 잠깐 비우고 나갔다가 난리났다. 이용객들은 단 1분도 봐주지 않더라. 이젠 승차장에 폭탄이 터져도 매표소는 못 비운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승무원의 인력감소는 더 심각하다. 기존의 수동지하철에는 운전자인 기관사와 승하차를 비롯해 열차의 경우 모든 업무를 보는 차장이 2인 1조를 이뤄 운행했으나, 자동화된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1인 승무제로 바뀌는 상황이다. 대구지하철과 서울도시철도가 1인 승무제로 운행되고 있다. 허인 서울도시지하철 노조위원장은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1인 승무원제’는 벌써 몇 년째 노사협상에서 위험 가능성을 지적했지만, 지하철공사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일관된 반응이었다”며 그간의 상황을 밝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동화’된 지하철은 ‘자동’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없었고, 기관사가 많은 책임을 뒤집어 써야 했다.

기관사가 슈퍼맨인가

대구지하철공사의 운전규정 208조는 열차화재시 기관사들에게 다음의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승객 대피, 소화, 화재상황 보고, 안내방송을 할 것.” 그러나 열차를 세우고 문을 여닫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니, 실제로는 기관사 1명이 동시에 6가지 조치를 해야 한다. 이원준 대구지하철 노조위원장은 불가능한 지침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지키지 못해 참사가 발생했다는 억지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1079호 기관사는 먼저 불을 꺼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불이 퍼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소화냐 보고냐 대피냐 다 동시에 할 수 없는데, 뭘 먼저해도 욕먹고 징계 받았을 것이다. 기관사들이 잘 했다는 게 아니다. 다들 죄인 아닌 죄인 심정이다. 하지만 번져버릴 열차와 역내 안전시설은 그따위로 만들어 놓고 무조건 기관사만 잘못이라니…. 뭔가 억울한 심정이다.”

근본적인 안전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번 참사를 기관사의 과실로만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반복적으로 터지는 대형 참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안전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는 이미 구조화된 안전불감증에 좀더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 148개 시민사회종교노동단체들은 지난 3월 12일에 기자회견을 열어 더 이상의 참사를 막기 위해 “불쏘시개 지하철·철도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천, 부산, 서울지역의 지하철 노동자들은 “다른 도시도 대구와 다를 바가 없다”며 전국 지하철이 가진 사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이용객은 가장 많은데 비해 시설은 가장 노후화 되어 있어 사고가능성과 잠재적 피해규모가 가장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직후 정부와 서울시도 지하철 공사와 함께 안전진단을 했다. 각계 전문가 등 25명의 ‘지하철소방안전합동점검단’을 만들어 서울지하철 1∼8호선의 차량상태와 소방시설, 시스템 운용 등을 점검한 것이다. 긴급 대응이었던 이 점검을 통해서도 피난시설과 자동화재 탐지설비, 제연설비 등에 대해 581건의 미비사항이 나타나는 등 총 900여 건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일단 지적된 사항만 시정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기간과 예산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대구만이 아닌 전국으로 확대하고 소방시설 만이 아닌 안전시설 일반으로 확장한다면 규모가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전시설에 대한 대책은 천천히 계획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사고’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합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할 때까지, 그리고 예산을 마련하고 구체적 계획에 따라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지 버텨줄 버팀목이 필요하다.

지하철공사, 여전히 안이한 대응

그러나 안전시스템 마련의 주 책임자인 지하철공사의 대응은 안이하기만 하다. 서울지하철공사 안전대책 실무책임자는 “공사 측은 이번 사건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기관사 개인의 책임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일차적 대책으로 “전 직원을 상대로 소명의식을 높이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용객은 물론 일선 승무원과 역무원은 ‘지하철 안전대책 마련’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12년째 역무원으로 일하는 장모 씨는 “안전교육이 안전지침인지 뭔지 읽어보라는 것을 말하는가? 1시간 연장운행 이후에는 근무 마치면 집에 갈 기력도 없는 상황이다. 철야와 업무과다로 쓰러질 지경인데 글이 눈에나 들어오겠냐”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장씨는 얼마 전에 일어난 해프닝 하나를 들려 주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안전점검 시찰’을 온다는 급보에 유도등이라도 먼저 장착하라는 지침이 떨어진 것이다. “그거 물청소 3번 하면 떨어질 게 뻔하다. 그래 놓고 나중에 사고나면 꼭 우리 책임이라고 한다.”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지하철공사 역무원의 현실이다.

대책위 김중철 집행위원장은 “이번 참사는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전면적인 안전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 제34조는 말하고 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만 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 서비스임에도 ‘안전’이 아닌 ‘이익’의 논리로 움직이는 지하철 안전대책, 이젠 정부가 답할 때다.

최현주(참여사회 기자)
2003/03/25 00:00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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