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김효순『한겨레』신임 편집위원장 '발칙한 신문 만들겠다'
2003/2003년 04월 :
2003/03/25 00:00
김효순『한겨레』전 논설위원은 3월 22일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편집위원장에 취임한다. 편집국 기자들의 55% 지지를 받은 그는『한겨레』의 향후 편집방향에 대해 "진보, 참여, 일류, 청년신문" 네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DJ정부 시절 여당지 논란에 휩싸였던『한겨레』지면이 김효순체제에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오후 2시『한겨레』8층 논설위원실에서 3월 24일자 신문부터 "한겨레의 야전사령관" 노릇을 하게 될 그를 만났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28일 선거가 끝났는데 최근엔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겨레』는 선거홍역이 심한 곳입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용광로처럼 걸러져요. 직선제를 통해 편집위원장의 역할을 위임받은 만큼 지면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지면전략과 편집국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어요.”
논설위원으로서 마지막 사설은 언제 쓰시게 됩니까?
“제가 쓰던 칼럼은‘마쓰이 야요리에 대한 회상’을 끝으로 그만뒀구요. 마지막 사설은 일요일 근무가 걸린 3월 16일 쓰게 됩니다. 다만,‘마쓰이 야요리에 대한 회상’을 쓸 때 저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진보언론인이자 민간군사법정을 통해 일본천황을 전범으로 인정케 한 시민운동가이기도 하지요. 일본의 우익 극렬분자들에 의해 총에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군위안부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던 분이었어요. 한국과는 꽤 깊은 인연을 가진 분인데도, 저는 어느 시민단체에서 그분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을 보지 못했어요. 동남아시아 시민단체엔 더러 그분을 추모하는 글이 있었는데, 우린 없어요. 이러면서 과연 국제연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고민하게 됐지요.”
신임 편집위원장으로서 앞으로 『한겨레』를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이십니까.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가 15주년이 됐습니다. 과거엔 빨갱이신문으로 매도될지언정 양심수 석방이나 국가보안법 개폐 등을 제기하면서 다른 신문과 구별되는 『한겨레』만의 영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절차적 민주주의가 개선되면서 『한겨레』 아니면 안 쓰는 영역은 없어졌습니다. 진보적 정론지로서 『한겨레』의 차별성이 뭐냐는 문제제기도 많이 받습니다. 독자들이 생각하는 정보선호와 관계없이 백화점식 정보를 늘어뜨려 놓기도 했고요. 지금은 집중할 것과 버릴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층기획물로 진보성을 대변할 주제를 찾고, 특히 환경 여성 소수자 문제를 체계적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국방이나 남북관계, 군축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는데 이 또한 심층 취재할 계획입니다.
1980년대 초반 『아사히신문』 기자들이 발로 뛰어 주일미군 문제를 1면에 장기간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미군기지가 일본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미군의 세계전락은 뭔지 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군과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취재였다고 봐야지요. 국내 신문들도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범죄문제나 독극물방류사건 등을 단편적으로 보도하지만 체계적으로 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강조할 생각이에요. 또 하나, DJ정부 시절 『한겨레』의 보도 자세를 반성하며 내부 성찰을 위한 사내 토론을 활발히 벌일 생각입니다. DJ정부 5년간 『한겨레』는 이용호게이트 등 권력형비리에 대해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던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유사한 권력형비리에 대해서는 남다른 각으로 취재할 것입니다.”
정책공약집을 보니 부장공모제 등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보이던데요.
“부장공모제는 제 선거공약입니다. 『한겨레』는 창간 당시 3∼4년차의 경력을 가진 기자들이 초석이 돼 만들어졌어요. 경력기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만든 셈인데, 이제 그분들이 대부분 간부진이 돼 있죠. 우리는 ‘항아리형 구조’라고 부르는데, 이 구조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간부진의 젊은 피 수혈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언론사도 검찰처럼 기수문화가 있어서 동기 중 한 사람이 부장이 되면 나머지는 부장대우 정도로 인사를 내요. 그러나 『한겨레』는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인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부장공모제를 통해 데스크가 되려는 분은 맡고싶은 분야의 지면평가와 계획서를 제출토록 하고, 응모결과를 토대로 부장을 선출할 계획입니다.”
여타 신문보다 볼륨이 작던데, 증면 계획은 있는지요?
“『한겨레』가 볼륨이 적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보량이 적은 신문은 아닙니다. 우리 신문은 두 섹션으로 나눠 16면+16면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그걸 쌍둥이신문이라고 부르죠. 다른 신문들처럼 3섹션으로 나누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윤전기 사정상 그렇게 하기 어려워요. 증면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당장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명 ‘자전거일보’라고 불릴 정도로 신문시장이 대단히 혼탁합니다. 정당한 상품가치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무리한 경품으로 판촉에 나서는 건 문제입니다. 과거 『한겨레』조차도 일부 지국단위로 경품판매를 한 바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신문재정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타락시키는 행위이기도 한 겁니다. 『한겨레』는 경품으로 신문을 보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신문의 질로 승부하겠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다른 신문 값의 배를 주고 봐도 아깝지 않다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시민사회면을 신설하시겠다고 했는데요. 과거에도 『한겨레』엔 시민사회면이 있었습니다. 다시 만드는 시민사회면은 어떤 성격인가요?
“시민단체도 독과점현상이 있더군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중앙단체 중심으로 보도되는 경향이 있고, 지역에서 이름 없이 일하는 수많은 풀뿌리 시민단체의 활동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더라구요. 저희들이 새롭게 만들려는 시민사회면은 언론의 조명 없이 지방에서 소리 없이 일하는 풀뿌리단체를 다루는 지면입니다. 지방주재기자 풀을 활용해 지방취재네트워크를 만들면 시민단체 연대에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무현정부 이후 언론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요. 『한겨레』는 앞으로 언론개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나아갈 생각입니까.
“『한겨레』 여론매체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는 언론개혁 문제를 지속적으로 강조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전 조중동의 사실왜곡은 문제삼을 수 있으나 그들의 보수적 세계관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세계관은 자유니까요. 노무현정부는 청와대부터 가판구독을 금지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그런 작은 변화를 눈여겨봐야지요. 수구언론의 못된 행태를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언론개혁 관련 시민단체와 네트워크도 만들어야 합니다.”
김 위원장께서는 『한겨레』를 동북아의 진보언론으로 우뚝 세우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선 국민주 모집 방식으로 만들어진 진보언론 『한겨레』가 15년간 이렇게 버티고 왔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창간 당시 과연 100일이나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비난도 많았습니다. 고생도 했구요. 1996년 마쓰이 야요리 선생이 『한겨레』에 방문한 뒤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에 이런 진보언론이 있다는 게 너무 부럽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작년엔 『아사히신문』 규슈본사 편집국장이 『한겨레』를 방문해 어떻게 운영되는지 꼼꼼히 물을 정도로 『한겨레』에 대한 관심은 높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진보언론인 『한겨레』가 버스정류장, 지하철에서 판매되고 매일 50만 부씩 발행돼 전국으로 뿌려진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겨레』는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명성이 높아요. 인도네시아 『템포』는 인도네시아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언론인데, 그들처럼 진보를 지향하는 매체들과 연대할 생각입니다. 『한겨레』가 아시아 진보언론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야할 문제가 뭔지 고민하겠습니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라든가 개발, 매매춘 등 아시아의 매체간 연대로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우선 영문판이라도 먼저 서비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미국엔 ‘코리안 워쳐(Korean watcher)’들이 있어요. 우린 국익을 위해서라도 영문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조중동 시각만을 제공할 수는 없지요. 적어도 사설과 남북관계, 칼럼만이라도 영문서비스를 통해 한국에도 진보적인 시각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위원장께서 생각하는 진보는 무엇입니까.
“정치권력 등 그 사회의 지배적 관념에 대항해 소수자의 입장에서 문제제기 하고, 모든 차별이나 박해, 소극적 따돌림을 의식적으로 없애나가는 것이 지금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우리로서는 현재 분단된 체제를 극복하고 민족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수구언론이 심어놓은 허위의식, 선입견, 편견 등을 깨나가면서 다수 구성원의 동의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평등한 사회를 구성하자는 게 『한겨레』의 창간목적이자 지금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도 내부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는데요.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한겨레』는 구미기자시스템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기자사회엔 평기자 15년 정도면 당연히 데스크로 가는 게 정식코스로 돼 있어요. 승진 안 되면, 물먹었다, 줄 잘못 섰다 등의 여러 불만이 나오지요. 이런 것은 조직 사기의 방해요소가 됩니다. 평기자로 남을 사람은 계속 평기자로 남고, 데스크 할 사람은 그 길을 가는 거지요. 기자 개인이 판단해 자기의 길을 선택하는 거고, 현장에서 뛰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폼 재는 풍토는 깨야 합니다. 백악관에 출입하는 헬렌 토마스 기자는 86세까지도 현장을 뛰고 있어요. 국제회의 취재를 다녀보면 50∼60대에도 현장을 뛰는 기자들이 많아요.”
『문화일보』는 ‘도올 기자의 현장 속으로’등 파격을 실험하기도 합니다. 『한겨레』도 그런 파격 실험을 할 계획이 있나요?
“그게 좀 고민이에요. 진보적 정론지를 지향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중사회에서 다른 신문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대중들은‘스타’를 갈망하지요. 스타필진이 사실 신문의 인지도와 대중화에 이바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 3월 24일자 이후 『한겨레』에서도 스타필진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도올 기자의 현장 속으로’는 좀 과도한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도올만 자신있게 쓸 수 있는 분야가 있겠지만, 마치 개인의 감상문을 쓰듯이 지나치게 신문 지면을 차지하는 건 좀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언론계가 조중동 대 한경대로 분화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언론의 분화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우선 『한겨레』가 한경대(『한겨레』 『경향신문』 『대한매일』)로 묶이는 것에 불만이 있습니다. 『한겨레』는 명백히 다른 배경을 가진 언론입니다. 신문환경이 바뀌긴 했으나 그런 구분법을 들으면 제 속이 편치 않아요. 『한겨레』는 뭔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그동안 『한겨레』가 게을렀건 무능했건 간에 그 매체들과 ‘동렬 대접’을 받고 있다면 그동안 우리의 진보성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지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가 지금의 출발목표일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진보적 정론지’의 위상을 좀더 쉽게 풀면‘발칙한 신문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고리타분하지 않은 발랄한 신문을 만들겠어요. 그동안 우리 지면의 문체가 너무 딱딱한 경향이 있었지요. 그건 선배들의 책임도 있는데, 기사는 이렇게 쓰는 거야, 너 지금 소설 쓰니? 라면서 후배들의‘끼’를 억제해온 측면이 있어요. 그걸 분명히 바꿔야지요. 젊은 세대의 코드는 변화했는데, 우리는 그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겨레』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질 것이고, 결코 늙은 신문이 되지 않도록 할 거예요.”
최근 『대한매일』이‘한국판 르몽드’가 되겠다며 기자들에게 ‘르몽드 식’문체를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르몽드』라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인데요. 『대한매일』의 이런 도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르몽드』는 굉장히 딱딱한 신문이에요. 다른 매체가 10매 정도 쓰면 『르몽드』는 40∼50매씩 써요. 사진도 없고…. 프랑스에서도 대단한 고급정론지로 통하는 『르몽드』는 고도의 지식을 원하는 사람은 꼭 찾아서 읽어보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예 안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신문전략과 맞물려 있는 건대…, 전문적 정론지로 걸 거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해야겠지요. 이때 떨어져 나가는 독자도 있을 거예요. 『한겨레』는 평범한 서민들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 겁니다. 대중지 노선을 버릴 수 없지요.”
『한겨레』에서 논란됐던 기자의 정당가입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과거엔 언론인의 정당가입 문제가 정치판은 더러우니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식이었지만, 이젠 좀 그런 분위기를 벗어날 때가 된 것 같아요. 헌법이 보장한 걸 사기업이 내규로 규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 많은 이론이 있는데요. 그건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겨레』 소속 자격으로 어떤 후보의 공개지지를 한다면 그건 사전심의를 거쳐 구성원들과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 가판구독을 폐지했고, 『중앙일보』 또한 가판신문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겨레』는 가판신문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개인적으로 가판신문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언론시장을 왜곡하는 수단이 됐고, 특히 『조선일보』가 이걸 즐긴 측면이 있지요. 저는 기존의 권력자들이 왜 그렇게 『조선일보』 앞에 서면 약해졌는지, 가판에 나온 『조선일보』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는지 궁금했어요. 고위직 관료를 만나 물었더니, 『조선일보』 마음에 들지 않는 행위를 하면 다른 문제로 시비를 건다는 거예요. 부동산 투기의혹, 여자문제 등등 해코지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가판구독을 없애는 건 민주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지금 『한겨레』는 가판신문을 내야 합니다. 그건 제주도 독자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돈 많은 신문사들은 제주도에 자체 윤전기를 가지고 있지만 저희는 아직 없거든요.”
시민사회면 부활 등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강조하시는데요. 시민단체에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겨레』도 박봉체제가 오래 가고 있는데요. 맞벌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지요. 『한겨레』의 박봉이 부끄럽긴 하지만, 시민단체는 더 열악하다고 들었어요. 그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겨레』가 보다 나은 사회 만들기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정부시절 『한겨레』가 권력형비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으며 앞으로 『한겨레』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 기자 생활 중 아주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1996년 5월 『한겨레』의 국제부장 시절, 쓰노다 후사코라는 일본의 여류작가를 만났어요. 그는 팔순도 넘은 할머니예요. 한국 유학생을 만나 민비에 대한 얘기를 듣고 『민비암살』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지요. 그를 만나 첫 질문으로 『민비암살』을 쓰게 된 배경이나 동기가 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 할머니가 안색이 변하더니 돌아앉아요. 대화가 단절됐지요. 본인은 한국말을 몰라도 인터뷰하러 갈 때는 관련자료를 다 읽고 간다는 간다면서 『민비암살』서문에 다 나오는 얘기를 왜 또 묻느냐고 하더군요.
기자를 제대로 한다는 게 참 보통 일이 아니에요. 간혹 우리는 취재원에게 아무거나 다 묻고, 경우에 따라서는‘하나도 준비 안했는데, 뭐 물어보지?’하잖아요. 그 할머니를 만난 뒤 전 일의 투철함, 전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태도에 충격 받았지요. 이런 자세는 비단 기자에게만 요구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시민운동가, 정치인 모든 직업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거지요.”
DJ정부 시절 여당지 논란에 휩싸였던『한겨레』지면이 김효순체제에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오후 2시『한겨레』8층 논설위원실에서 3월 24일자 신문부터 "한겨레의 야전사령관" 노릇을 하게 될 그를 만났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28일 선거가 끝났는데 최근엔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겨레』는 선거홍역이 심한 곳입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용광로처럼 걸러져요. 직선제를 통해 편집위원장의 역할을 위임받은 만큼 지면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지면전략과 편집국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어요.”
논설위원으로서 마지막 사설은 언제 쓰시게 됩니까?
“제가 쓰던 칼럼은‘마쓰이 야요리에 대한 회상’을 끝으로 그만뒀구요. 마지막 사설은 일요일 근무가 걸린 3월 16일 쓰게 됩니다. 다만,‘마쓰이 야요리에 대한 회상’을 쓸 때 저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진보언론인이자 민간군사법정을 통해 일본천황을 전범으로 인정케 한 시민운동가이기도 하지요. 일본의 우익 극렬분자들에 의해 총에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군위안부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던 분이었어요. 한국과는 꽤 깊은 인연을 가진 분인데도, 저는 어느 시민단체에서 그분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을 보지 못했어요. 동남아시아 시민단체엔 더러 그분을 추모하는 글이 있었는데, 우린 없어요. 이러면서 과연 국제연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고민하게 됐지요.”
신임 편집위원장으로서 앞으로 『한겨레』를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이십니까.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가 15주년이 됐습니다. 과거엔 빨갱이신문으로 매도될지언정 양심수 석방이나 국가보안법 개폐 등을 제기하면서 다른 신문과 구별되는 『한겨레』만의 영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절차적 민주주의가 개선되면서 『한겨레』 아니면 안 쓰는 영역은 없어졌습니다. 진보적 정론지로서 『한겨레』의 차별성이 뭐냐는 문제제기도 많이 받습니다. 독자들이 생각하는 정보선호와 관계없이 백화점식 정보를 늘어뜨려 놓기도 했고요. 지금은 집중할 것과 버릴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층기획물로 진보성을 대변할 주제를 찾고, 특히 환경 여성 소수자 문제를 체계적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국방이나 남북관계, 군축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는데 이 또한 심층 취재할 계획입니다.
1980년대 초반 『아사히신문』 기자들이 발로 뛰어 주일미군 문제를 1면에 장기간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미군기지가 일본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미군의 세계전락은 뭔지 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군과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취재였다고 봐야지요. 국내 신문들도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범죄문제나 독극물방류사건 등을 단편적으로 보도하지만 체계적으로 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강조할 생각이에요. 또 하나, DJ정부 시절 『한겨레』의 보도 자세를 반성하며 내부 성찰을 위한 사내 토론을 활발히 벌일 생각입니다. DJ정부 5년간 『한겨레』는 이용호게이트 등 권력형비리에 대해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던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유사한 권력형비리에 대해서는 남다른 각으로 취재할 것입니다.”
정책공약집을 보니 부장공모제 등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보이던데요.
“부장공모제는 제 선거공약입니다. 『한겨레』는 창간 당시 3∼4년차의 경력을 가진 기자들이 초석이 돼 만들어졌어요. 경력기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만든 셈인데, 이제 그분들이 대부분 간부진이 돼 있죠. 우리는 ‘항아리형 구조’라고 부르는데, 이 구조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간부진의 젊은 피 수혈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언론사도 검찰처럼 기수문화가 있어서 동기 중 한 사람이 부장이 되면 나머지는 부장대우 정도로 인사를 내요. 그러나 『한겨레』는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인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부장공모제를 통해 데스크가 되려는 분은 맡고싶은 분야의 지면평가와 계획서를 제출토록 하고, 응모결과를 토대로 부장을 선출할 계획입니다.”
여타 신문보다 볼륨이 작던데, 증면 계획은 있는지요?
“『한겨레』가 볼륨이 적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보량이 적은 신문은 아닙니다. 우리 신문은 두 섹션으로 나눠 16면+16면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그걸 쌍둥이신문이라고 부르죠. 다른 신문들처럼 3섹션으로 나누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윤전기 사정상 그렇게 하기 어려워요. 증면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당장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명 ‘자전거일보’라고 불릴 정도로 신문시장이 대단히 혼탁합니다. 정당한 상품가치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무리한 경품으로 판촉에 나서는 건 문제입니다. 과거 『한겨레』조차도 일부 지국단위로 경품판매를 한 바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신문재정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타락시키는 행위이기도 한 겁니다. 『한겨레』는 경품으로 신문을 보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신문의 질로 승부하겠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다른 신문 값의 배를 주고 봐도 아깝지 않다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시민사회면을 신설하시겠다고 했는데요. 과거에도 『한겨레』엔 시민사회면이 있었습니다. 다시 만드는 시민사회면은 어떤 성격인가요?
“시민단체도 독과점현상이 있더군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중앙단체 중심으로 보도되는 경향이 있고, 지역에서 이름 없이 일하는 수많은 풀뿌리 시민단체의 활동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더라구요. 저희들이 새롭게 만들려는 시민사회면은 언론의 조명 없이 지방에서 소리 없이 일하는 풀뿌리단체를 다루는 지면입니다. 지방주재기자 풀을 활용해 지방취재네트워크를 만들면 시민단체 연대에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무현정부 이후 언론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요. 『한겨레』는 앞으로 언론개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나아갈 생각입니까.
“『한겨레』 여론매체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는 언론개혁 문제를 지속적으로 강조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전 조중동의 사실왜곡은 문제삼을 수 있으나 그들의 보수적 세계관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세계관은 자유니까요. 노무현정부는 청와대부터 가판구독을 금지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그런 작은 변화를 눈여겨봐야지요. 수구언론의 못된 행태를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언론개혁 관련 시민단체와 네트워크도 만들어야 합니다.”
김 위원장께서는 『한겨레』를 동북아의 진보언론으로 우뚝 세우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선 국민주 모집 방식으로 만들어진 진보언론 『한겨레』가 15년간 이렇게 버티고 왔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창간 당시 과연 100일이나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비난도 많았습니다. 고생도 했구요. 1996년 마쓰이 야요리 선생이 『한겨레』에 방문한 뒤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에 이런 진보언론이 있다는 게 너무 부럽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작년엔 『아사히신문』 규슈본사 편집국장이 『한겨레』를 방문해 어떻게 운영되는지 꼼꼼히 물을 정도로 『한겨레』에 대한 관심은 높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진보언론인 『한겨레』가 버스정류장, 지하철에서 판매되고 매일 50만 부씩 발행돼 전국으로 뿌려진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겨레』는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명성이 높아요. 인도네시아 『템포』는 인도네시아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언론인데, 그들처럼 진보를 지향하는 매체들과 연대할 생각입니다. 『한겨레』가 아시아 진보언론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야할 문제가 뭔지 고민하겠습니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라든가 개발, 매매춘 등 아시아의 매체간 연대로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우선 영문판이라도 먼저 서비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미국엔 ‘코리안 워쳐(Korean watcher)’들이 있어요. 우린 국익을 위해서라도 영문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조중동 시각만을 제공할 수는 없지요. 적어도 사설과 남북관계, 칼럼만이라도 영문서비스를 통해 한국에도 진보적인 시각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위원장께서 생각하는 진보는 무엇입니까.
“정치권력 등 그 사회의 지배적 관념에 대항해 소수자의 입장에서 문제제기 하고, 모든 차별이나 박해, 소극적 따돌림을 의식적으로 없애나가는 것이 지금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우리로서는 현재 분단된 체제를 극복하고 민족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수구언론이 심어놓은 허위의식, 선입견, 편견 등을 깨나가면서 다수 구성원의 동의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평등한 사회를 구성하자는 게 『한겨레』의 창간목적이자 지금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도 내부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는데요.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한겨레』는 구미기자시스템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기자사회엔 평기자 15년 정도면 당연히 데스크로 가는 게 정식코스로 돼 있어요. 승진 안 되면, 물먹었다, 줄 잘못 섰다 등의 여러 불만이 나오지요. 이런 것은 조직 사기의 방해요소가 됩니다. 평기자로 남을 사람은 계속 평기자로 남고, 데스크 할 사람은 그 길을 가는 거지요. 기자 개인이 판단해 자기의 길을 선택하는 거고, 현장에서 뛰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폼 재는 풍토는 깨야 합니다. 백악관에 출입하는 헬렌 토마스 기자는 86세까지도 현장을 뛰고 있어요. 국제회의 취재를 다녀보면 50∼60대에도 현장을 뛰는 기자들이 많아요.”
『문화일보』는 ‘도올 기자의 현장 속으로’등 파격을 실험하기도 합니다. 『한겨레』도 그런 파격 실험을 할 계획이 있나요?
“그게 좀 고민이에요. 진보적 정론지를 지향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중사회에서 다른 신문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대중들은‘스타’를 갈망하지요. 스타필진이 사실 신문의 인지도와 대중화에 이바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 3월 24일자 이후 『한겨레』에서도 스타필진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도올 기자의 현장 속으로’는 좀 과도한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도올만 자신있게 쓸 수 있는 분야가 있겠지만, 마치 개인의 감상문을 쓰듯이 지나치게 신문 지면을 차지하는 건 좀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언론계가 조중동 대 한경대로 분화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언론의 분화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우선 『한겨레』가 한경대(『한겨레』 『경향신문』 『대한매일』)로 묶이는 것에 불만이 있습니다. 『한겨레』는 명백히 다른 배경을 가진 언론입니다. 신문환경이 바뀌긴 했으나 그런 구분법을 들으면 제 속이 편치 않아요. 『한겨레』는 뭔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그동안 『한겨레』가 게을렀건 무능했건 간에 그 매체들과 ‘동렬 대접’을 받고 있다면 그동안 우리의 진보성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지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가 지금의 출발목표일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진보적 정론지’의 위상을 좀더 쉽게 풀면‘발칙한 신문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고리타분하지 않은 발랄한 신문을 만들겠어요. 그동안 우리 지면의 문체가 너무 딱딱한 경향이 있었지요. 그건 선배들의 책임도 있는데, 기사는 이렇게 쓰는 거야, 너 지금 소설 쓰니? 라면서 후배들의‘끼’를 억제해온 측면이 있어요. 그걸 분명히 바꿔야지요. 젊은 세대의 코드는 변화했는데, 우리는 그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겨레』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질 것이고, 결코 늙은 신문이 되지 않도록 할 거예요.”
최근 『대한매일』이‘한국판 르몽드’가 되겠다며 기자들에게 ‘르몽드 식’문체를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르몽드』라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인데요. 『대한매일』의 이런 도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르몽드』는 굉장히 딱딱한 신문이에요. 다른 매체가 10매 정도 쓰면 『르몽드』는 40∼50매씩 써요. 사진도 없고…. 프랑스에서도 대단한 고급정론지로 통하는 『르몽드』는 고도의 지식을 원하는 사람은 꼭 찾아서 읽어보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예 안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신문전략과 맞물려 있는 건대…, 전문적 정론지로 걸 거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해야겠지요. 이때 떨어져 나가는 독자도 있을 거예요. 『한겨레』는 평범한 서민들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 겁니다. 대중지 노선을 버릴 수 없지요.”
『한겨레』에서 논란됐던 기자의 정당가입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과거엔 언론인의 정당가입 문제가 정치판은 더러우니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식이었지만, 이젠 좀 그런 분위기를 벗어날 때가 된 것 같아요. 헌법이 보장한 걸 사기업이 내규로 규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 많은 이론이 있는데요. 그건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겨레』 소속 자격으로 어떤 후보의 공개지지를 한다면 그건 사전심의를 거쳐 구성원들과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 가판구독을 폐지했고, 『중앙일보』 또한 가판신문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겨레』는 가판신문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개인적으로 가판신문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언론시장을 왜곡하는 수단이 됐고, 특히 『조선일보』가 이걸 즐긴 측면이 있지요. 저는 기존의 권력자들이 왜 그렇게 『조선일보』 앞에 서면 약해졌는지, 가판에 나온 『조선일보』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는지 궁금했어요. 고위직 관료를 만나 물었더니, 『조선일보』 마음에 들지 않는 행위를 하면 다른 문제로 시비를 건다는 거예요. 부동산 투기의혹, 여자문제 등등 해코지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가판구독을 없애는 건 민주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지금 『한겨레』는 가판신문을 내야 합니다. 그건 제주도 독자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돈 많은 신문사들은 제주도에 자체 윤전기를 가지고 있지만 저희는 아직 없거든요.”
시민사회면 부활 등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강조하시는데요. 시민단체에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겨레』도 박봉체제가 오래 가고 있는데요. 맞벌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지요. 『한겨레』의 박봉이 부끄럽긴 하지만, 시민단체는 더 열악하다고 들었어요. 그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겨레』가 보다 나은 사회 만들기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정부시절 『한겨레』가 권력형비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으며 앞으로 『한겨레』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 기자 생활 중 아주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1996년 5월 『한겨레』의 국제부장 시절, 쓰노다 후사코라는 일본의 여류작가를 만났어요. 그는 팔순도 넘은 할머니예요. 한국 유학생을 만나 민비에 대한 얘기를 듣고 『민비암살』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지요. 그를 만나 첫 질문으로 『민비암살』을 쓰게 된 배경이나 동기가 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 할머니가 안색이 변하더니 돌아앉아요. 대화가 단절됐지요. 본인은 한국말을 몰라도 인터뷰하러 갈 때는 관련자료를 다 읽고 간다는 간다면서 『민비암살』서문에 다 나오는 얘기를 왜 또 묻느냐고 하더군요.
기자를 제대로 한다는 게 참 보통 일이 아니에요. 간혹 우리는 취재원에게 아무거나 다 묻고, 경우에 따라서는‘하나도 준비 안했는데, 뭐 물어보지?’하잖아요. 그 할머니를 만난 뒤 전 일의 투철함, 전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태도에 충격 받았지요. 이런 자세는 비단 기자에게만 요구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시민운동가, 정치인 모든 직업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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