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서랍 속의 악몽"으로 봉인해야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찬성하는가? MSNBC조사에 참여한 미국인 53%는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대다수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북폭 위험은 언제나 한반도에 도사리고 있다. 그 가능성이 어떠한지 가늠해 본다. 편집자주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일단락 되어 갈 즈음, 미국의 MSNBC가 참으로 요상한 여론조사를 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찬성하는가?’ 응답자의 반응은 지지 53%, 반대 35%. 이란이나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 여부 지지도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 질문을 한국인에게 던진다면? 절대 다수가 단호한 반대 의견을 보일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지난해 10월 핵문제가 불거진 뒤 6개월 남짓한 대치 끝에 대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또 다른 전쟁 발발 우려는 쉬 사라지지 않는다. 이라크 침략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가공할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목도한 마당에 ‘걱정’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을 살펴보면 ‘한반도의 또 다른 전쟁 가능성’은 한낱 기우만은 아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선 ‘임박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단독’(!)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리곤 ‘예방적 반(反)확산’을 다룬 대목에서 “지난 수년간 북한은 자체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동시에 탄도미사일 개량을 위한 실험을 계속했고 세계 탄도미사일의 주요 공급자였다”고 지적했다. 예방적 반확산이란 ‘선제공격’의 일방적 공격성을 은폐하려는 외교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또 미국 국방부가 지난해 의회에 비밀리에 제출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는 북한·중국·러시아·이라크·이란·시리아·리비아 등 7개국을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로 꼽고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는 긴급대비책을 수립해놓고 있음을 밝혔다.

미국의 ‘예방적 반확산’ 전략

이렇게 북한은 유사시 미국의 핵공격을 포함한 선제공격 대상에 들어 있다. 문제는 미국이 ‘예방적 반확산’ 전략을 북한에도 실제로 적용할 것인가 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북아 지역전략의 관계, 북한과 이라크의 차이 및 각각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 중동 정세와 동북아 정세의 차이 등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쟁점이 많다.

미국은 왜 전 세계적인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이라크 침략을 강행했을까? 이 질문은 미국의 북한 공격 여부를 가늠해볼 비교 준거를 제시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왜 침공했나? 해답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그리고 석유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이런 자문자답은 갖은 논의의 표준적 해석에 가깝다. 미국은 전쟁(말의 바른 뜻에서 전쟁이 아니라 불법한 침략이다)의 이유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시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미국의 대 중동 전략은 ‘(친미적)현상 변화’다. 이를 위해 세계 2위 원유자원 보유국이자 중동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이면서도 철두철미 반미적인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데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동 원유 자원에 대한 확실한 통제력의 행사는 중동의 분할통치는 물론 21세기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유럽연합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국이 왜 그토록 이라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했는지 느낌이 온다.

MD를 중심으로 한 3각 안보네트워크

그런데 북한엔 ‘석유’도 ‘이스라엘’도 없다. 한마디로, 이라크와는 달리 ‘매력이 없는 나라’다. 더구나 동북아엔 내부 정치적 부담에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고 파병 방침을 밝힌 ‘신실한 하위 동맹국’ 한국과 일본이 있다. ‘북한 붕괴’ 또는 한반도 통일은, 일반의 상식과 달리, 미국에 그리 달가운 변화가 아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주일미군과 함께 주한미군이 필수적인데, 이런 변화는 주한미군의 존재근거를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과 러시아가 ‘마음을 고쳐먹고’ 확실한 미국편이 될 가능성은 적어도 중단기적으론 없다. 유럽과 달리 역내 국가간 지역협력 안보 틀도 없다. 그러니 지금껏 동북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의 이 지역 전략이 ‘현상유지’라는 지적은 그리 새삼스러울 게 없다.

지금 동북아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는 북한의 무력화 또는 북한 붕괴라기보다는 ‘잠재적으로 팽창주의적’인 중국의 견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중국의 지역패권국화는 미국이 좌시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미-일, 한-미 동맹을 내실있게 강화하며, 미사일방어(MD)체제를 매개로 ‘(3각)안보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물론 ‘불안정하고 위험한’ 북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미국으로선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북한과 관련해선 핵 또는 미사일(기술)의 역외 유출, 특히 중동 수출은 미국으로선 반드시 막아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은 MD체제 추진 구실의 하나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내세우고 있지만, MD의 핵심 대상이 중국이라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중국과 정면충돌하지 않으면서 MD체제를 추진하기 위해선 적당한 수준의 ‘북한발 위협’이 필수불가결하다. 이점, 최근의 핵 위기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우리란 전망을 낳는 근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대북공격을 결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북한과 중국이 1961년에 맺은 ‘조-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 2조는 “서명국은 상대국이 특정 국가 또는 동맹의 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대항한다”고 명기해놓았다. 미국의 북폭은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개입’을 불러오게 돼 있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핵의혹 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이 이 조약의 규정에 따라 자동개입할 지는 불분명하다.

제2의 한국전쟁은 결코 안 된다

무엇보다 ‘제2의 한국전쟁은 결코 안 된다’는 한국의 반전 여론이 있다. 한국에선 극소수 정신병자 수준의 반북 극우세력을 빼고는 대부분 국민은 미국의 북폭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북폭은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가 갖은 고난 속에 일군 모든 것을 잿더미로 돌려버릴 정도의 재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폭’을 심각하게 고려하던 1994년 5월 19일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이 군통수권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한테 보고한 내용을 보자.

“최초 3개월간 미군 사상자 5만2000명, 한국군 사상자 49만 명은 물론이고, 여기에 더해 엄청난 수의 북한군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 추산했고, 군사비는 61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고했다.”(『두개의 한국』, 돈 오버도퍼 지음, 길산 펴냄)

한반도에서의 또 다른 전쟁 가능성은 ‘책상 서랍 속의 악몽’이다. 그 악몽이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도록 책상 서랍을 봉인해야 한다.

이제훈『한겨레신문』기자
2003/05/01 00:00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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